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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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으로 살해당한 젊은 여성 둘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해자는 둘 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않는 미혼모였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의 연쇄살인사건이지만 피해자의 사회적 배경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 매스컴의 보도는 교모하기 그것을 가린다. 그 결정을 내리게 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이는 문장이었다.


피살자가 즉석만남 게시판에서 영업을 하던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보가 흘러 나갔다가는 곧바로 문제가 있으니까 죽었겠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나중에는 죽어도 싸다하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면 세상에는 그런 여자는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그런 발상을 허용했다가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역치가 내려간다.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말이다. 치안이 흐트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조건 법을 어기는 것은 악이라고 못 박아 두는 편이 공중도덕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 때문에 피해자는 언제나 절대적인 피해자여야만 한다. (49-50쪽)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식품공장에 협박문이 도착한다. 세 번째 희생자를 내기 싫으면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문으로 다음 범죄를 예고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주요 상품으로 생산하는 이 식품기업은 오랫동안 블랙컨슈머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이었다. 또한 사건관련 방송 도중 범인으로 주장하는 자가 연락을 취해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보도한다면 돈을 포기하겠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프리랜서 기자 미치코는 이에 연쇄살인과 식품기업 협박사건을 연결하여 경찰 수사와는 다른 사건의 이면을 보여준다.

 

최근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범죄가 많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의 가해자들이 특별한 동기도 없이 그냥 누군가를 해하고 싶었다는 말을 해 더 충격적이었다. 출생지, 개미지옥에서도 사건의 범인이 지목되고 기자인 미치코와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범인은 미치코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 여자들은 죽어서야 처음으로 권리라는 것을 손에 넣었어요.

당신은 진심으로 내가 그 여자들을 죽인 죗값을 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생명에는 숭고한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이 있어요. 그 여자들도, 나도 내 어머니도 숭고하지 않은 생명이에요. 부정해도 소용없어요. 살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권을 부르짖을 수 있는 인간은 듣기 좋은 소리나 지껄이는 카나리아나 마찬가지고, 일그러진 사회의 일면을 알린다는 의미에서만 그 죽음이 문제가 될 뿐이에요 그러니 아무도 그 여자들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죠. 사람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거예요. (470쪽)

 

어쩌면 권총의 방아쇠는 범인이 당겼지만 피해자들은 사회가 죽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까 피해자를 왜곡하는 사회와 죽어서야 피해자들이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범인의 말이 계속 대비가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이 행한 범죄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은 미스터리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범죄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서가 아닐까? 소위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는 이러한 소설을 읽을 때면 재미와는 상반되게 묵직한 돌을 가슴에 얹힌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 느낌이 유독 크고 오랫동안 간 출생지, 개미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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