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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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랑으로 넣은 금빛 눈동자, 희고 창백한 피부. 검붉은 입술과 곧고 아름다운 육체. 그래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고, 눈을 감아도 자꾸만 생각나는 존재. 한번 뱀파이어를 알아보면 그다음부터는 수만 명 속에서도 뱀파이어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그런 존재. (270쪽)

 

천선란 작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의 후반부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묘사이다.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 대목을 읽자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뱀파이어와 인터뷰가 생각이 났다. 영화나 드라마상의 다양한 뱀파이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두 사람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 속 뱀파이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뱀파이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먼저 인간의 피를 섭취하는 것부터가 조금 달랐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뱀파이어를 퇴치하는 일을 하는 완다에 따르면 큰 사고가 발생하는 곳에서 실종되는 이들은 뱀파이어에 의한 실종일 확률이 높고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외로움을 파고들어 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소설은 재개발구역의 철마재활병원에서의 투신자살 사건을 형사 수연이 조사를 하면서 시작된다. 7층에서의 투신이었지만 사건현장에 피가 거의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수연은 우연히 사건현장을 돌아보는 완다를 만나서 이 사건이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다는 황당한 소리를 듣는다. 위에서 이 소설의 뱀파이어의 특징으로 사람들의 외로움을 파고든다고 했다. 다음은 외로움을 파고드는 뱀파이어에 대해서 완다가 수연에게 하는 설명이다.

 

외로움과 고독 끝에 몰린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잊었다고 해야 할지 소용없는 걸 안다고 해야 할지.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며 하루를 까먹지. 슬플 때 눈물이 난다는 거, 그래서 울 수 있다는 거, 그 나름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야. 의욕을 잃은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운다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울지 않으면 몸속 수분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를 못해. 그 수분 때문에 피가 아주 묽어지는 거지. 잘 숙성된 적포도주처럼.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해서 그 고독한 피의 향을 맡을 수 있어. (118쪽)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먼저 형사 수연으로 어릴 적부터 외로움이 익숙하게 살아온 그녀는 초등학교 앞의 가게를 하는 할머니에게 요구르트를 매번 얻어먹고 마음으로 터놓은 유일한 할머니가 경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경찰에 된 케이스이다. 자녀가 이민을 간 할머니는 철마재활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고 그곳을 이제는 수연이 자주 방문을 한다.


다음으로 프랑스로 입양이 된 완다로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혼자 지내다 릴리라는 뱀파이어를 알게 된다. 하지만 다른 뱀파이어에게 양부를 잃은 그녀는 아제 한국으로 돌아와 번역 일을 하면서 협약을 어긴 뱀파이어의 뒤를 쫒는다


마지막으로 철마재활병원의 간호사로 일고 있는 난주이다. 난주는 가족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착한 딸로 자란 것이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부모가 난주에게 짐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인공인 세 사람 모두 지독하게 외로움과 관련이 있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분명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되 뇌이게 되는 것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이 뱀파이어를 부르고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니까. 그래서 뱀파이어를 구원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외로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찾아오는 이들이니까.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미스터리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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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중국 :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슬픈 중국 3부작 3
송재윤 지음 / 까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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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날카로운 이빨도 두꺼운 피부도 큰 덩치도 가지지 못하지만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상태계의 최대 포식자로 군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동이 가장 중요한데 나보다 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여럿이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와 힘을 합치는 이의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이다. 한 순간 생사가 오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등 뒤를 맡긴다는 것은 어지간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내가 속한 무리와 다른 무리를 본다면 손을 먼저 내미는 것 보다는 적대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지금도 우리와는 다른 인종, 종교,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적대를 하는 집단이 적지 않다. 대륙과 해양의 경계선이 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도 대륙 및 해양의 세력과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적대하면서 오랜 기간 살아오고 있다.

 

나와 다른 집단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마 우리 집단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그래야 어느 점에서 협력을 하고 어느 점에서는 대립을 할지 기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송재윤 교수의 슬픈 중국시리즈는 청나라가 몰락하고 지금의 중국이 되기까지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슬픈 중국 3 : 대륙의 자유인들의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부터 현재 시진핑 주석까지 다루고 있다. 중국 역사 관련으로는 춘추전국시대나 위촉오의 삼국지 시대만 읽어온 나에게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시진핑 주석과 관련된 내용은 관련 뉴스에서 접한 적이 있기에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슬픈 중국 3 : 대륙의 자유인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마오쩌둥 사후 대륙에서도 톈안먼 사태를 필두로 민주화 관련 사건과 관련 인사가 적지 않게 있었다. 그 역사를 400페이지 남짓한 작은 책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역사적인 큰 흐름을 설명한 다음 그 흐름의 키를 잡고 있는 인물들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궈펑, 후핑, 옌자치, 팡리즈 등 마오쩌둥, 덩사오핑, 후친타오 등 중국 주석만 겨우 알고 있는 나에겐 낯선 이름이 대게 등장하였다.

 

특히 9장 옌자치의 빛, 우상을 깨다편이 인상적이었다. 이론물리학을 정공하고 철학의 길에 들어선 옌자치는 과학적 방법으로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이론을 반박한다. 마르크스 주의가 과학적 진리가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논문은 출판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1979년 그가 제출한 법안이다. 바로 간부 및 영도자 직무의 종신제 폐지를 골자로 한 법안이었는데 2018년 시진핑 주석이 최고 지도자 임기제한 규정을 삭제하기 전까지 중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일당 독재에서 일인 지배로 변모한 지금의 중국 지도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저자가 중국현대사 수업에 가끔 내는 퀴즈 중 일부로 소개된 문제이다.


1. 마르크스와 레닌이 가장 중시했던 단어는?

세계평화 경제상장 자유와 인권 계급투쟁

2. 현재 중국공산당이 가장 중시하는 단어는?

계급투쟁 평등사회 인민 해방 화해

3. 다음 중 중국 헌법에 명시된 공민의 기본권이 아닌 것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거주 및 이전의 자유 파업의 권리 (346-347쪽)

 

저자는 1번을 제외하고는 정답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말한다. 정답은 1번이 , 2번이 , 3번이 , 이다. 2번의 답인 화해는 현대 중국어에서 화목해순(和睦諧順)의 상태를 의미한다. 세상 모든 것이 화목하게 조화를 이룬 상태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중국 공산당은 무산계급과 빈곤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에 앞장서야하는데 화목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강조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3번의 오답인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중국 주요 인사들의 트윗이나 유튜브 영상이 삭제되고 종교의 박해를 받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고 있기에 쉽게 믿을 수 없는 답이었기도 하였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 헌법의 전문에 인용된 사상을 지적하며 변질된 중국 공산단의 이념에 대해 비판도 거세게 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실용주의, 장쩌민의 세가 지 대표 사상,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사상까지 모조리 합친 모순된 이면의 다방, 상충되는 사상의 나열인 뿐이다.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를 한 줄로 관통하는 철학적 원리는 무엇일까? 다다익선인가?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이념적 절대 한계이자 철학의 빈곤이 아닐 수 없다. (365쪽)

 

마지막으로 중국의 현대사 보다 더 인상적으로 본 부분이 제5 노예들아, 일어나라!”이다. 중국 정부가 대만과의 관계에서 늘 주장하는 하나 된 중국이라는 이념에서 지금도 박해를 받고 있는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1720년 청나라에 복속되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독립적인 불교국인 티베트는 1951년 중국공산당에 점령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13년 백서에서 티베트인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력 덕분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 도로를 깔고, 도시를 거설하고, 통신망을 설치하고, 야간 비행을 하 수 있는 공항을 건설하고, 전력망을 확충하는 등 경제성장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낙후된 농촌과 목초지에 식량, 숙소 및 교육의 기회를 제고하고, 45세 이상 주민에게 무상 의료 보험을 보장했다. (387쪽)

 

그들의 주장이 한반도에 철도를 깔고 신문물을 전파하여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섰다는 일본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대규모의 경제 개발을 앞세워 티베트의 고유문화를 없애버리려 적지 않은 승려들을 잡아가는 중국에 맞서 티베트인들은 그들만의 저항을 하는 것도 소개가 되어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타인에 대한 비폭력을 실천하면서도 가장 강력하게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통째로 바치는 소신공양 즉 분신을 선택한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티베트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59명이 분신을 선택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어쩌면 티베트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 위구르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장의 경찰 파일로 알려진 신장 위구르 족의 실상은 지금껏 위성사진 및 공개된 정부 문서나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밝혀진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 경찰 파일에 따르면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쓰고, 경전을 공부하는 일 등으로 사회적 극단주의자라는 혐의아래 중국 정부의 신장 직업 기능 교육 센터라는 이름의 구금소, 강제수용소 등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20개의 캠프에 억류된 목격자들에 따르면 매해 대략 28세의 청년 중 2.5~5% 정도가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의 자료에 따르면 항저우 시의 제1인민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의 건수가 90% 증가하고, 신장 이식은 200% 증가했다고 한다. 사라진 위구르 족 청년과 증가된 이식 수술의 건수의 인과관계의 추측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한 축인 G2의 일원으로 초강국을 꿈꾸고 있는 중국이지만 밖으로 보이는 것만큼 적지 않은 문제점도 볼 수 있는 슬픈 중국 3 : 대륙의 자유인들이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근현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사건으로 시민혁명을 볼 수 있다. 왕정을 붕괴시키고 시민들로 다시 권력을 가져오는 혁명을 유렵 여러 나라가 겪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우리의 조선은 그러한 과정을 겪기 전에 외세의 침략을 받긴 했으나 대한민국은 군부 독재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전복시킨 경험이 있다. 이와는 다르게 청이라는 세계를 호령한 황제 중심의 국가를 국민의 힘으로 종식시킨 중국이 다시금 일인지배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슬픈 중국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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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3-12-02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문학동네 청소년 51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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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이면 중학교 2학년쯤 되는 나이다. 대내외적으로 중2병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예민하고 부서지기도 쉽지만 그만큼 단단해지기도 쉬운 나이이기도 하다. 이꽃님 작가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은 열다섯 같은 반 친구의 은재, 형수, 우영, 지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행운, 타이밍이라 불리는 아주 묘한 이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형수와 우영이 반에서 다크나이트라고 불리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은재가 방충망을 뜯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려고 하는 방편임을 알게 되고 은재가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된 두 친구는 고민에 빠진다. 어찌보면 간단한 이야기이다. 폭력에 시달리는 동급생, 이에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주인공, 그렇지만 도와주는 것은 힘들고 모른 척하는 것은 쉽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열다섯 살이 되는 동안 녀석들이 배운 거라고는 비겁해지는 방법, 불의를 보고 눈감는 방법, 보고도 못 본척하는 방법 같은 것들뿐이지 않은가. (23쪽)

 

한편 우영도 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아들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생각하는 엄마로 인하여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영은 엄마와의 행복한 기억으로 겨우 참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은재가 시달리고 있는 폭력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우영이 시달리는 폭력이 가볍게 다뤄지고 있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였다. 자신의 딸이니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은재의 아빠의 생각을 가진 어른보다 아들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우영의 엄마의 생각을 가진 부모가 더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은재가 축구를 시작하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축구부 감독인 형수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은재를 어둠에서 구해내면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 도중에 우영은 반장인 지유의 도움으로 점차 자신감을 가지면서 성장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안다.

인생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인생이 당신을 구해 줄 거라고?

개소리 말라지.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구해야만 한다. (181쪽)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영과 은재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심을 한 것은 친구들이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친구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을 지독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그 인생에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언제나 인간이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매년 11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지금도 적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에는 특정 하루를 기념하는 것보다 1년 내내 예방에 힘써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방의 날까지 지정하는 것은 더욱더 어둠속으로 숨는 학대를 당하는 아동, 청소년들을 좀 더 밝은 곳을 이끌기 위한 최소한의 관심인 것 같다. 흔히 아동과 청소년은 사회의 손길이 필요한 약자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의 주인공들은 그들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낸 점에서 우울하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다. 성년이 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어른이 된 그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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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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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을 할 때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때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흔히 도박에서 이겼을 때 그 성취감으로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도파민은 베팅을 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내가 이 판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기에 도박과 같은 행위에는 중독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중독까지 몰고 가는 것일까? 스탠퍼드 중독치료센터 소장 애나 렘키가 쓴 도파민네이션에서는 이런 도파민과 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머리말로 시작한다.

 

이 책은 쾌락을 다룬다. 동시에 고통도 다룬다. 무엇보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5쪽)

 

쾌락과 고통,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 뇌는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도파민과 함께 획기적인 발견으로 표현한 저자는 쾌락과 고통은 저울 양 끝에 놓인 추와 같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그래서 계속되기를 원하는 쾌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뇌의 균형은 쾌락이 아니라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다고 한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87쪽)

 

쾌락과 고통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저자는 중독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넓게 봤을 때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 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강박적으로 소비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27쪽)

 

해를 끼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면 중독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어떤 대상에 중독되는 데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라고 꼬집는다. 주로 책에서는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가 주로 언급되지만 우리주위에 더 흔히 볼 수 있는 SNS나 게임 중독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중독에 빠졌는지 어떻게 알 것인가? 재미있게도 저자는 DOPAMINE이라는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자신의 중독을 이해하는 단계를 설명한다. 각각 이는 데이터(Data), 목적(Objectives), 문제(Problems), 절제(Abstinence), 마음챙김(Mindfulness), 통찰(Insight), 다음 단계(Next Steps), 실험(Experiment)으로 구분된다.

 

마지막인 실험에서 인장적인 구절이 있었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약제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온 구절이다.


의지는 인간의 무한 자원이 아니다. 의지는 근육 운동에 더 가까워서 쓰면 쓸수록 더 피로해진다. (123쪽)


의지도 쓰면 피로해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의지민이 아니라 약물이나 외부의 치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바람직해 보였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을 샘솟게 해주는 신경 전달 물질이기 때문에, 분비되면 될수록 쾌락을 느끼며, 두뇌 활동이 증가하며 학습 속도, 정확도, 인내, 끈기, 작업 속도 등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도파민의 총량을 늘리거나 분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약물 등을 사용하고 중독이 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이에 도파민네이션에서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바로 찬물 목욕이다. 찬물 목욕과 도파민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파민은 찬물 목욕 중에 꾸준히 증가했고, 목욕을 끝낸 후에도 한 시간 동안 증가 상태를 유지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처음 30분 동안 가파르게 증가한 다음 30분 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했는데, 목욕이 끝난 한 시간 동안 약 3분의 1로 줄었지만 두 시간이 지나서도 기준치를 넘어선 상태를 유지했다. (175쪽)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쾌락과 고통의 저울에서 찬물이라는 고통의 보상으로 쾌락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앞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저울의 교훈 10가지를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저울은 처음부터 언급이 되는 쾌락과 고통의 저울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의 도를 중시해왔고, 뛰어난 지도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울의 균형을 지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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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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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의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신작이라는 소식만으로 읽은 소설이다. 대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적은 인간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던진 제노사이드나 사형제도에 대해 적지 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13계단등의 소설을 읽어 왔기에 건널목의 유령이라는 제목에서 유령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은유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목의 유령은 말 그대로 Ghost, 유령을 가리켰다.

 

전국 일간지 사회부 기자인 마쓰다는 아내를 허망하게 보내고 나서 직장을 그만두고 여성 월간지의 프리랜서 취재기자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맡고 있는 건설사 비리에 연루된 중견 정치인에 대한 취재가 성과가 없자 젊은 기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기사를 이어받아 취재를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건널목에서 머리가 긴 여성의 상반신만 찍힌 심령사진과 유령에 대한 기사이다.

 

사진기사 요시무라와 함께 마쓰다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심령사진의 제보자를 취재하고 건널목에서의 사건도 같이 조사를 한다. 심령 특집으로만 알고 있는 마쓰다에게 새벽 13분에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는 사회부 기자 시절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1년 전 그 건널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사건 발생 시간이 오전 13분이란 사실과 함께...

 

하지만 사건에 진상에 다가가려 할수록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살해당한 그 여성의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 사망한 건널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해 용의자가 얼이 빠진 채로 체포가 되었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것에 대해 사건을 알려준 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사든 재판이든 체포된 녀석이 저지른 범행이었다고 입증하기만 하면 되니까.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검사나 판사 모두 거들떠보질 않아. 시체검안서만 있으면 사람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증명해주니 말이야. ‘피해자의 성명은 불명. 나이는 약23, 키는 160센티미터, 여성이면 끝이야. 죽은 여자가 누구든 간에 상관없어 (89)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른 인구통계나 사회보장정책을 사용함으로 전과가 없는 일반 실종자의 경우에는 신원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피해자의 특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마쓰다는 사회의 비정함을 알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게다가 피해 여성이 매춘 등 윤락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의 관심은 옅어 졌다는 사실이 사회의 비정함을 한 번 더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살인 사건으로 변한 심령 사건은 피해자의 룸메이트를 찾으며 급물살을 타지만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룸메이트도 사고를 당하게 되고 마쓰다는 거대한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간 한 여성의 삶을 계속 찾아 나서고 그 전말을 밝힌다.

 

유령이 등장하고 심령사진과 생나무가 쪼개지는 심령 현상인 랩음도 등장하지만 이 소설을 심령 서스펜스보다는 스릴러나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잘 짜여 져 있었다. 그러한 미스터리 위에 비합리적인 즉 초자연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다음은 새벽에 의문의 전화를 받고 마쓰다가 생각하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마쓰다는 그곳이야말로 영혼의 거처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혼이란 마치 한 편의 이야기나 음악, 혹은 살아 있는 인간의 의식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 속에서만 발현되는 무언가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듯 영혼과 교감할 수 있지 않을까? (121)

 

어릴 적 중국 드라마인 판관 포청천의 한 장면을 인상 깊게 본적이 있다. 모든 증거와 상황이 한 남자를 범인으로 몰고 있지만 그가 황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결국에는 처벌을 못하는 장면이다. 득의양양하게 개봉부를 나서는 그는 갑자기 내려 친 벼락을 맞고 죽고 그 편이 끝이 난다. 결국 인벌을 받지 못한다면 천벌을 받는 인과응보를 알려주는 편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에피소드이다.

 

건널목의 유령을 읽는 동안 먼저 든 생각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신용사회의 어두운 점을 찌르는 화차에서처럼 건널목의 유령에서도 피해자의 신원은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말을 향해 갈수록 위의 판관 포청천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주인공인 마쓰다였지만 사건을 해결한 것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이 하나씩 해결이 될 때마다 인과응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건널목의 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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