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순간들에 관하여
강지영 지음 / 빅피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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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보다 소설을 자주 읽곤 하는데 그럼에도 에세이를 읽게 되는 이유는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기분이 바닥이거나 슬럼프를 헤매고 있을 때에는 그 위로가 더 간절해진 곤한다. 최근 눈에 띄는 에세이인 모든 꽃이 봄에 피지 않는다이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등 대부분의 에세이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까. 우스갯소리로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SNS에서는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란 생각이 들 때에도 이런 종류의 에세이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는 최근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고 있던 중에 발견한 책이다. JTBC의 강지영 아나운서가 쓴 에세이라고 하는데 지은이보다 제목에 먼저 꽂힌 셈이다. 최근 12년이라는 연재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직까지 묵직하게 남아있는 윤태호 작가의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말과 비슷해 보였다. 평생 해 온 바둑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장그래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담담히 말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알바를 했기에 당일 극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기에 란 말은 사절이다

……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다. 그래야 아프지 않으니까


아프지 않게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장그래나 간절함조차 아프다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이 비슷하게 보였다.


눈에 띄는 제목만큼이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도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강을 건널 때,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거운 돌을 머리나 가슴에 지고 건넌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방황하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거운 고민을 지고 건너는 수밖에 없다고.

지금은 모든 게 무겁게 느껴져도, 그게 나를 휩쓸리지 않게 도와줄 거라고.

깊은 물 속을 지나기 위해서는 더 큰 무게가 필요했다. 때로는 너무 무거워 몇 걸음 걷지 못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게를 감당하는 힘이 생길수록 고민의 시간을 지나기는 점점 수월해졌다.(프롤로그 중에서)


예전 대학 강의에서 한 교수님은 요즘 학생들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생기고 실패의 복기도 가능한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해답을 찾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정작 대학을 다닐 때에는 학점을 핑계로 고민보다는 해답을 찾는 실행을 더 했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난 요즘 고민하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곤 한다.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회계를 전공한 저자가 어떻게 아나운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 신생 방송국에 입사를 하여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매일 시청자들에게 가장 반듯하고 빈틈이 없이 보이는 직업 중 하나인 아나운서이기에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게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단 아나운서나 방송 계통의 업을 가진 이들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장의 한 구절이다.


흔히 프로라고 하면 경력이 많거나 오래된 사람,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보면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을 바라보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해내는 태도 말이다.


야구 예능인 최강 야구의 김성근 감독은 간단하게 프로를 정의했다. 은퇴한 선수라도 어딘가에서 돈을 받으면 프로라며 프로의 정신으로 뛰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던 잘하는 일을 하던 그것에 대하여 대가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프로의 정신으로 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와 비슷하게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을 태도로 규정하는 저자의 정의도 인상적이었다. 아마추어와 구분 짓는 프로만의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다.


프로의 정의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릇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그릇이 크다, 작다는 등으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며 고민을 하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자신만의 그릇을 키우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릇을 키우는 것... 나에게는 자기 계발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키울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이 적은 것 같았다. 이에 저자는 그릇을 키우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릇이 커지려면, 그릇이 찢어져야 한다. 매번 감당할 만한 일만 하고, 견딜 만한 고민을 하면서는 성장할 수 없다. 감내할 수 없는 일, 마주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겨우 단단해진다.


그릇이 커지기 위해서는 그릇을 찢어져야 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불교 법어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인데 말만 들어도 불교라는 종교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부처라는 관념과 조사라는 권위에 미혹 당하지 말고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들부터 해방되어 자주적인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이다. 그릇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그릇을 찢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해방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당당해 보이는 저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끄러웠던 모습까지 표현하고 있기에 조금 더 인간적이고 공감이 가는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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