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 담덕 4 - 고구려 천하관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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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 학자들은 적지 않다. 그 여행을 원해서 한 것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넓은 세상을 두 눈으로 보는 일은 시야를 넓혀주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광개토태왕 담덤의 네 번째 이야기 고구려 천하관에서는 동부욕살 하대곤과 해평의 반란으로 압록강을 표류하게 된 담덕과 마동이 뜻하지 않게 여행을 하며 유람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먼저 표류하던 중 백제로 가는 교역선의 도움으로 백제의 땅인 갑비고차(강화도)에서 한동안 지내다 관미성을 눈으로 보게 되고 그 교역선을 따라 동진으로 또 다시 서역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연나라의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여 태극군이라는 군대를 조직하고 요동성을 공격하는 아버지 고국양왕을 도움으로써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중원을 돌아보며 담덕이 마동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 고구려도 광활한 땅이 필요해. 땅은 농부들에게 부와 행복을 두고, 또한 그들이 내는 세수가 부국강병의 나라를 들어 주니까(108쪽)”

 

담덕, 아니 광개토태왕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천명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토 확장에 관하여는 어느 지도자보다 뛰어난 그였기에 당연한 듯 보이는 말이나 문제는 그의 나이가 11살이라는 데 있다. 담덕이 부모의 품을 떠나 을두미 사부에게 간 나이가 일곱 살이고 해평의 반란이 일어나고 유람을 하는 나이가 10살에서 11살 정도의 나이다. 물론 덩치가 여타 성인만큼 크다는 설명이 있긴 했으나 과연 그러했을까란 의심은 충분히 들었다.

 

20세에 왕위에 올라 33세의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서양역사를 바꿔 놓을 만한 일을 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교되는 광개토태왕이기에(광개토태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긴 하나 나라는 이끌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리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4권 째 이긴 하나 아직 담덕이란 이름을 쓰고 있는 신분이다. 그가 제위에 올랐을 때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불렸다. 우리가 아는 광개토태왕으로서의 모습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다음 권의 제목이 영략태왕이다. 이제부터는 속이 뻥 뚫릴만한 고구려 대왕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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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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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업적을 남겨 후대에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남기는 것이 이름만이 아니라 흔적도 있다. 마에카와 호마레 작가의 소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는 사람이 죽어 남긴 흔적을 청소하는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의 이야기이다.

 

도시를 떠다니는 해파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아사이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도쿄로 돌아와 술집에서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처음 보는 사사가와와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고 과음으로 사사가와의 양복에 실수를 하게 된 아사이는 옷을 세탁해 주기로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늘 일손이 부족한 사사가와가 운영하는 데드모닝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일은 일종의 유품정리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고독사로 표현하지만 일본에서는 감정이 배제된 죽음인 고립사(孤立死)로 표현한다고 한다. 사체는 경찰이 수거를 해가지만 남은 유품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체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흔적마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와타루는 사사가와와 함께 고립사한 할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서부터 남편과 싸우고 화해하지 못한 채 남편을 보낸 아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집을 청소하려는 엄마, 같은 집에 살지만 2주가 지나서야 동생의 죽음을 안 형, 둘만의 파티를 하고 욕조에서 죽음을 맞은 어린 딸과 엄마 등 여러 의뢰인들을 만나며 다양한 죽음의 현장을 청소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흔히 삶의 중대사를 관혼상제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인식을 뜻하는 관례, 혼인의 혼례를 제외하고 상례와 제례는 죽음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예부터 공동체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가는데 큰일이었지만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요즘에는 이웃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에 고독사나 고립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사가와는 와타루에게 특수청소와 죽음에 대한 인상적인 대화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끝내 알 수 없었어. 딱 하나 알게 된 건 완전히 똑같은 죽음은 없다는 거야.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다르고, 유족의 반응도 모두 달라.”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인생에는 각각의 고뇌가 있고, 고독이 있고, 슬픔이 있고, 또 행복이 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죽음은 그냥 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인 거지. 중요한 건 그 을 묶은 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337쪽)

 

어쩌면 우리는 사사가와와 같이 죽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모든 것을 공동체와 같이 해도 죽음으로 하는 길은 홀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사가와와 와타루처럼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사가와의 말처럼 탄생의 점과 죽음의 점을 잇는 선을 어떻게 그을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좀 더 선명한 좀 더 찬란한 선을 그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어제는 이미 살았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오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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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노자 - 오십부터는 인생관이 달라져야 한다
박영규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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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말 중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고사가 있다. 글을 백번 읽다 보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로 총명함보다 부지런함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좌절감을 들게 하는 책이 많은데 대게 그런 책은 동양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제껏 활자만 3번 읽었으니 고사대로라면 97번만 읽으면 되겠지만 이제는 그리 순진(?)하지만은 않기에 생각 없이 글자만 읽어서는 큰 변화가 없음을 깨닫고 있다.

 

이에 고전 읽기에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을 먼저 읽고 생활 속에서 적용을 한 해설서로 접근을 하는 방법이다. 박영규 저자의 오십에 읽는 노자도 그러한 책 중 하나이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고 인생의 반환점에 도달할 즈음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저자는 그 변화를 멈춤’, ‘성찰’, ‘용서’, ‘비움’, ‘조화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전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노자의 도덕경상경하경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고 5천 여자의 비교적 짧은 고전이다. 고전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겁도 없이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물론 그 덕에 활자라도 읽은 셈이지만...^^

 

오십에 읽는 노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십노자이다. 백세시대인 요즘 살아온 날을 점검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준비하기 위한 나이인 오십과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노자는 어쩌면 잘 어울리는 쌍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가장 인상적으로 구절은 제1부의 멈춤과 제4부의 비움에 있었다.

 

먼저 제1이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멈춤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 노자가 말하는 도가 되게 하려면 급한 마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급하게 걸으면 길은 단순한 도로에 지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내려놓고 천천히 길을 걸을 때 길은 비로소 도가 된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살아온 날만큼의 시간이 앞에 놓여 있으니 충분한 여유가 있다. (75쪽)

 

식물원 산책이 일상이 된 걷기 예찬론자인 저자가 걷기에 대해 쓴 글 중 일부이다. 그러고는 도덕경 64장의 일부를 소개한다.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나오고 구층 누대도 한 중 흙이 쌓여 올라가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억지로 하면 실패하고 집착하면 잃는다.”

 

合抱之木(합포지목) 生於毫末(생어호말) 九層之臺(구층지대) 起於累土(기어루토) 千里之行(천리지행) 始於足下(시어족하) 為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도덕경64

 

다음으로 제4복잡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시간: 비움에서의 한 구절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말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는 저자는 언어의 힘은 채찍보다 강하다며 말을 잘 하려면 먼저 침묵하는 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도덕경 5장을 소개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많은 것을 생성시킨다. 말이 많으면 처지가 궁색해진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

  

天地之閒(천지지간) 其猶橐籥乎(기유탁약호) 虛而不屈(허이불굴) 動而愈出(동이유출)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

 

도덕경5

  

앞서 언급한 대로 오십에 읽는 노자는 저자가 도덕경을 읽고 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글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손에서 분류되고 합쳐져 다시 태어난 도덕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다 보면 도덕경원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저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도덕경을 읽고 노자가 제시한 그러한 삶을 나의 삶에 접목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도경덕경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 도덕경멈춤’, ‘성찰’, ‘용서’, ‘비움’, ‘조화의 다섯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분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오십에 읽는 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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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2 - 한 잔 더 생각나는 날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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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경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지켜봐주는 지킴이 일을 하는 이누모리 쇼코가 주인공인 낮술2의 부제는 한 잔 더 생각나는 날이다. 제목만 봐서는 쇼코에게 조금 더 힘든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전남편이 재혼을 하고 딸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어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지 아이를 한동안 못보는 것으로 시작을 하니 아이 엄마인 쇼코에게는 전작보다 더 힘든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전작부터 그래왔듯이 쇼코는 지킴이 일로 만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는 일을 마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한 잔의 술로 피로를 푼다.

 

낮술2의 차례에서 보듯이 이번에는 열 번의 술로 이루어져 있다. 전작에 비해 무려 여섯 번의 술이 적다. 그 만큼 한 편의 농도가 더 짙은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아홉 번째의 술에 등장하는 돈코쓰 라멘이다. 소설 속 쇼코는 맥주와 일반 라멘을 먹지만 왠지 소주안주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킴이 일을 하는 쇼코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싱글맘부터 혼자가 된 노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할머니 등 간병일도 아닌 심부름 센터의 업무 중 하나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쇼코의 지킴을 받고는 마음 편하게 밤을 보낸다. 그중에서 암의 말기로 투병 중인 오십대 여성 소설가인 히다와의 만남을 다룬 다섯 번 째 술편이 인상적이었다. 선술집 소설로 인기를 얻었다는 히다는 식도락 소설을 쓴 소설가답게 쇼코에게 먹은 음식의 묘사를 부탁한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대목은 음식의 묘사가 아니라 히다의 말이었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든지, 라는 건 없어요,”

히다는 괴로운 듯 말했다.

모든 것이 그래요. 당신은 분명 지금 여기 있는 것들, 당신 수중의 것들이 언제까지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거든요.” (159쪽)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짧다란 말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여유도 부리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아홉 번째 술의 장에서 라멘집에서 쇼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뭐랄까. 평범한 가게인데 평범하게 맛있어서 좋아해요. 마음이 놓이는 맛이랄까.” (308쪽)

 

평범한 가게인데 평범하게 맛있어서 좋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마 나도 평범하게 쓴 글이 평범하게 좋게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평범하다는 것은 질리지 않는다는 말고 같은 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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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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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로 심야식당이라는 것이 있다. 도쿄의 번화가 뒷골목에서 모두가 귀가할 무렵 문을 열어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을 하는 밥집으로 대표메뉴는 돈지루이지만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모두 해주는 곳으로 손님들의 그 음식을 먹고 허기기를 달래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만화가 원작이지만 원작 만화의 그림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재미있게 본 경우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 매개체가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음식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피곤을 잊는 것은 문화와 사는 방식이 달라도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할머니와 나의 3천엔이라는 소설로 돈을 쓰는 방법을 할머니에게 배우는 과정을 재미있게 알려준 작가인 하라다 히카가 이번에는 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목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낮술이다. 주인공은 지킴이 일을 하는 이누모리 쇼코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아이가 있는 엄마로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다. 그녀가 하는 지킴이라는 일은 소꿉친구인 다이치가 사장으로 있는 심부름센터의 업무이다. 심야에 누군가를 지켜봐주고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 외에 거의 일을 하지 않지만 밤에 새워 일을 해야 하기에 쇼코는 일을 마치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잠을 드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한다. 이때 먹는 하루 한 끼를 한 잔의 술과 함께 하기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처럼 차례도 독특하다. 첫 번째 술부터 열여섯번째 술까지 총 열여섯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은 차례는 술이지만 제목은 음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식당의 음식과 술이 소재로 사용되었기에 그 묘사가 더 구체적인 것이 큰 특징이다. 심지어 일본의 음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묘사만으로 군침이 도는 경험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음심과 술이라는 소재도 재미있지만 쇼코라는 캐릭터도 재미있었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쇼코에 대한 설명이다.


이누모리 쇼코에게는 점심 먹을 식당을 고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

그곳의 음식이 술과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 (11쪽)


식당에 들어가기 전 맛집 앱을 살펴보는 게 식도락 소설의 주인공이나 미식가로선 실격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쇼코에게 더없이 소중한 한 끼. 한 잔이다. 자신은 미식가가 아니므로 감에 의존하지 말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야 한다. (12쪽)

 

음식이 술과 궁합이 맞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맛집 앱을 애용하는 이가 술과 음식 소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쇼코라는 인물이 더 좋았던 것은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소쿄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쳐감으로써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점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딸을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맡기고 혼자 나와 살아가는 인물로 시작하지만 점차 딸에게 엄마의 역할을 다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열 두번째 술인 프렌치 레스토랑 편에서는 전남편에게 재혼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딸과 함께 셋이서 하는 식사를 다루고 있다, 딸이 처음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소 가격이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선택한 쇼코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한다.

 

, 맛있는 음식이란 건 정말 근사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포근하게 해주니까.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고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분명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해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이후에도 문제는 얼마든지 생기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247쪽)

 

... 낮술을 무리지만 밤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혼술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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