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 禪詩, 깨달음을 노래한 명상의 시, 개정신판
석지현 엮음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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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시는 너무 어려운 문학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시인이란 작가들은 내가 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계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고, 그러한 악순환으로 시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주로 소설을 보면서 가끔씩 철학서도 들춰보지만, 시집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만큼 시는 나에게는 넘사벽(?)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시(詩)도 시지만, 여기에 선(禪)이 덧붙었다. 선시(禪詩), 제목만 보아도 막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깨달음을 노래한 명상의 시편들’이란 부제에는 흥미가 인다. 깨달음, 아직까지 미련한 중생에 불과하지만 깨달음을 얻기만 한다면 온갖 번뇌를 떨쳐버리고 자유롭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

 

 사실 선시란 말은 예부터 전해져오는 장르는 아니라고 한다. 1975년 『선시(禪詩)』가 출간된 38년 전부터 쓰였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시들을 모아 선시라는 장르가 탄생한 것은 반세기도 안 되는 셈이다. 하지만 선시로 분류된 시들은 중국 당나라시대의 시를 비롯해서 신라, 중세 일본의 시까지 그 역사가 역사시대와 그 괘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구하였다.

 

 선시를 엮고 옮긴 석지현 선생은 친철하게도 먼저 조금은 생소한 선시의 설명부터 시작하고 있다.

 

 선은 언어를 부정하는 불립문자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언어에 뒤따르는 사고작용마저 선은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오직 자기 자신 속에서의 직관적인 깨달음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 선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선을, 그 깨달음을 제삼자에게 알리자면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 … 그들은 자칫하면 저 관념의 바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그 깨달음의 섬세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래서 선승들은 자신들의 ‘깨달음을 시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선시의 출현이다. (p. 23)

 

 이어서 중국, 한국, 일본의 선시의 역사 및 시풍에 대해 간략하게에 설명을 하고는 본격적으로 선시로 이어진다. 부끄럽게도 시를 이해할 만큼의 소양도 선을 논할 만큼의 수행도 쌓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생이라서 선시 원문에서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적었다. 하지만 한글세대를 위한 독음과 해설은 선시를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석지현 선생의 날카로운 해설이다. 촌철살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예를 들면 3구와 4구의 절묘한 대칭, 마지막 한자가 그저 그런 시를 명시로 만들고 있다, 많은 선시를 남겼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는 등의 직설적인 해설이 한 수 한 수마다 실려 있어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듭 말하고 있지만 아직 선시를 이해할 만한 소양이 없기 때문에 시에 대해서는 뭐라고 쓰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떠 올리는 구절이 있는 선시도 있는가 하면, 달과 구름이 어우러진 산사의 밤을 느낄 수 있는 선시도 있었다. 그중에서 선승의 방을 찾아가 읊었다는 당나라의 시인 왕창령의 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승방 - 왕창령

종려나무 꽃 뜰에 가득하고

이끼는 한가로운 방으로 드네

피차가 서로 말이 없나니

공중에는 천상의 향이 흐르네. (p.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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