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테산도를 걸으며 나는 환상의 소설을 둘러싼 소설을 생각했다. 친구에게 『열대』 이야기를 하자 그도 호기심을 보였다.
"아깝군. 그 책이 여기 있었으면 ‘침묵 독서회‘에 안성맞춤일텐데." - P28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가니 유리벽 건물 2층에서 미녀들이머리를 손질하거나 노출 콘크리트의 반지하 공간에서 화이트보드를 놓고 수수께끼 같은 회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느낌의 뒷골목을 지나 단독주택이 늘어선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섰다. - P29

"늘 이곳에서 하는 모양이야. 주인이 독서 모임 주최자거든."
"이상한 나라의 입구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침묵 독서회에 발을 들였다. - P30

백발 남자가 오카모토 기도의 괴담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거기서 아서 매컨의『괴기 클럽 The Three Impostors The GreatReturn』 이야기로 넘어가고, 나아가 햐쿠모노가타리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마침적당한 전개다 싶어 나는 『천일야화』에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명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P30

내가 그렇게 벼락치기로 얻은 지식을 선보이자 거기서부터화제가 이어졌다. 가짜 사본에서 연상해 보이니치 사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라는 기묘한 소설을 소개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 P31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건 싫은데요. 귀꼬리의 정체가 알고 보니 시시한 거면 내 어린 시절 자체가 시들어 버릴 것 같아요. 그건 저한테 소중한 추억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 다시 그 책을 읽어볼 생각은 없고, 이 계단이나 계단참을 제가 어렸을 때 봤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인 채로 두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제야 나는 주인이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아하, 그래서 ‘침묵‘ 독서회군요." - P34

(전략)
‘이거 또 난해한 이야기를 하는군…………….?
나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때 소파 안쪽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체격이 작고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이 생기 넘쳤다. 분명히 매력적인 외모였지만 그보다 더 내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이었다.  - P36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였다.
나는 너무 놀라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친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큰일 났는데요."
"뭐가? 무슨 말썽이라도 생겼어?"
"『열대』를 발견했습니다." - P36

우리는 그룹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조금 전 그룹으로 다가갔다. 그리스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던 남자는 우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라고운을 뗀 뒤 여자에게 말했다.
"그 책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그녀는 경계하듯 『열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 P37

그녀는 잠자코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대로 휙 어디론가 가버릴 듯한 낌새에 불안했지만 그녀는 뜻밖에 생긋 웃었다.
"그럼 어떤 책인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녀는 도전적으로 말하며 테이블에『열대』를 올려놓았다. - P37

나는 가까이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건 압니다."
그녀는 엄격한 면접관처럼 매섭게 말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열대』의 내용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동안 그녀는 테이블 위의 『열대』에 손을 올려놓은 채 보일 듯 말듯 눈썹을 찌푸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 듣고 있는지 불안해질 정도였다. - P38

"그게 끝이라고? 모리민!"
"끝까지 못 읽었으니까요. 실물을 읽으면・・・・・・.‘
나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의 『열대』를 가리켰다. 그러자그녀는 『열대』를 집어 다시 품에 안았다.
아아, 이렇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있건만 왜 나를 경계하는 걸까. 내가 그 정도로 수상쩍은 아저씨로 보이는 걸까. - P39

"정말 그렇게 읽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말했다. "실제로 읽어봤더니 당신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딴판일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확실히 그녀 말이 맞을 것이다. 과거에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하는 것은 곧잘 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지루했던 책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더라 하는 일도 있다.  - P39

"사실은 저도 이 책을 다 못 읽었거든요."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다 읽을 때까지."
그녀는 기이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 P40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그녀는 손가락을 쳐들고 조용히 말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거든요." - P40

나는 헛기침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말 그대로예요. 이 책은 끝까지 읽을 수 없어요." - P40

그녀는 냉랭하게 그를 바라봤다.
"마지막 페이지만 읽으면 소설을 읽은 게 되나요? 첫 문장부터 소설 속 세계에 들어가서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야 그 소설을 읽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으음."

"열대』는 소설입니다." 나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소설은 누가 뭘 해서 어떻게 됐다는 식으로 요약해 봤자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등장인물들과 함께 그 세계에 살면서 푹 빠져 읽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그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그런데 『열대』는 그런 식으로 읽으면 끝까지 다다를 수 없다는 뜻입니까?" - P41

"당신도 끝까지 못 읽었잖아요?"
99
"그건 제가 『열대』를 분실하는 바람에……….
"우리 말고도 『열대』를 읽은 사람들을 알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도 끝까지 다 읽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 P41

제2장
학파의 남자

시라이시 씨가 다시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첫 직장을 그만둔 다음이었다. 얼마 동안 고이시카와에 있는 본가에서 울적하게 지내다가 작년 가을경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 P47

그런 하루하루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문득 ‘오랜만에 소설이라도 읽어볼까‘ 싶어 점심시간에 산세이도 서점으로가서 문고본을 샀다.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 1』이었다. - P48

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이 이루 다 읽을 수없을 만큼 있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 근사한 일, 다들 애썼다.
인류 만세!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러다가 11월에 들어선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계산대에 턱을 괴고 앉아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있었다. - P49

이케우치 씨의 직장은 같은 건물 5층에 있는 수입 가구 회사였다.
아마 서른 살쯤 됐을 것이다. 그는 늘 거무스름한 양복을 입고 큰 검정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시라이시 씨는 초연히 비를 피하는 야윈 새가 생각났다. - P50

철도와 독서가 이케우치 씨의 취미였다.
"기차 여행만큼 멋진게 없어요. 차창을 봐도 즐겁고, 책을읽어도 즐겁고, 온통 즐거운 것투성이입니다."
이케우치 씨는 책을 꽤 많이 읽는 사람인 듯했다. 잡담을 주

이케우치 씨에 관해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시라이시 씨가 일하는 유라쿠정 건물 지하, 의원과 여행사가 늘어선 구역에 ‘메리‘라는 고풍스러운 찻집이 있다. 그녀는 오후 2시쯤 점심을 먹으러 나가 빵이 버석버석거리는 마른 샌드위치와 미지근한 커피를 음미하며 문고본을 읽곤 했다. - P52

12월에도 이케우치 씨는 꼬박꼬박 모형 상점을 찾았다.
정체불명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시라이시 씨는 별별 망상을 다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 P53

. 이케우치 씨는 시간표대로 운행되는 열차고, 이 철도 모형 상점은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고, 자신은 역무원이다. 통과하는 열차와 역무원 사이에 로맨스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 주 수요일도 낮이 되자 삼촌이 슬그머니 나가려고 했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가게 부탁한다."
"어디 가려고요?"

"늘 그 노트를 가지고 다니시네요."
그녀가 말하자 이케우치 씨는 "네?" 하고 놀라더니 다시 손에 든 노트를 봤다. 자신이 메모하던 것을 그제야 비로소 깨달은 사람 같았다.
"이게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말이죠."
"업무에 쓰시는 거예요?"
"아뇨, 완전히 사적인 노트입니다. 읽은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베껴 쓴다든지 생각한 걸 쓰곤 하죠." - P55

"노트가 얼마 남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노트가 다 차면 그때까지 적어놓은 문장을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되니까요. 소위 거함거포주의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럼 디디욱 이별이 힘들지 않나요?"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정말이지 딜레마예요. 아주 난감한일입니다." - P56

"웬걸요. 지금도 충분히 자신감 있어 보이시는데요?"
"웬걸요, 속은 정말이지 한심이입니다."
"한심이!"
시라이시 씨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럼 무슨 계기로노트를 쓰게 됐느냐고 물었다.
이케우치 씨는 "그게 좀 묘한 경위랍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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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경 마침내 심문을 위해 카타리나 블룸을 아파트에서 연행할 때, 결국 그녀에게 수갑은 채우지 않기로 했다. 바이츠메네는 수갑을 채우라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플레처여경과 자신의 조수 뫼딩과 함께 잠깐 대화를 나눈 후 그러지않기로 결정했다. - P23

 "내 이름은 카타리나 브레틀로이고, 결혼 전 싱은 블룸입니다. 나는 1947년 3월 2일 쿠이르 지방의 마을 게멜스브로이히에서 태어났습니다. (후략) - P34

"(전략) 1961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모인, 쿠이르 출신 엘제 볼터스하임 부인의 도움으로 그곳 게르버 씨의 정육점에서 가정부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거기에선 이따금 판매 일도 도와야 했습니다. 1962년에서 1965년까지는 대모인 볼터스하임 부인의 도움과경제적 후원으로 그녀가 교사로 일하고 있던 쿠이르 생활과학아카데미에 다녔고, 아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후략)" - P24

"(전략) 페너른 박사님은 나에게 야간 강습 및 평생교육과정을 다니도록 허락해 주었을 뿐 아니라 국가가 공인한 가정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박사님은 매우친절했고 아주 아량이 넓었습니다. 시험을 치른 후에도 나는 그집에 머물렀습니다. 1969년 말, 페너른 박사님은 회계 업무를 담당했던 대기업들의 엄청난 탈세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후략)" - P25

나한테 그동안 저축해 둔 7,000마르크 정도가 있었고, 블로르나 부부가 30,000마르크 신용 대출에 보증을 서 주었기때문에, 1970년 초에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 내가 매달 부담해야 할 최소 금액이 대략 1,100마르크에 달했지만,
블로르나 부부가 월급을 계산할 때 내 식대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매일 먹고 마실 것을 슬쩍슬쩍 쥐여 주어서, 나는 아주 절약하며 살 수 있었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었습니다. - P27

세무서에는 자영업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세금과 보험금은 내가 직접 지불하고, 소득세 신고 등의 일은 전부 블로르나 사무실에서 무료로 처리해 줍니다. 1972년 초부터 나는 1968년형 폴크스바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P27

하흐의 말대로, 그녀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할수도, 이런 심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바이츠메네가 커피와 빵을 맛있게 먹고 나서 와이셔츠 깃부분의 첫 단추를 끄르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아버지처럼 보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아버지처럼 행동했을 때, 블룸은자신을 감방으로 호송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 P28

 오전에 아파트 욕실에서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욕실 문 앞에서 감시했던 두경찰 중 한 명이 그녀에게 "한 잔 대접하겠다"고 했음에도, 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돈을 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 일로 두 경찰과 플레처 부인은 카타리나 블룸이 유머러스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 P29

18

심문이 오래 걸린 까닭은, 카타리나 블룸이 놀랄 정도로 꼼꼼하게 모든 표현을 일일이 검토했고, 조서에 기록된 문장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 P30

블로르나 부부를 가리킨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놓고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졌다. 조서에는 "나에게 친절한"이라고 쓰여있었는데, 블룸은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선량한"이라는 단어가 유행에 뒤진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이 단어 대신 "호의적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그녀는 화를 냈으며, 친절과 호의는 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 준 블로르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주장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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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6
신성, 에로티즘, 고독

에로티즘은 우리를 고독 속에 가둔다는 원칙에서 출발하자. 에로티즘은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이다. 단지 관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에로티즘은 은밀하게 정의된다. 그것은 공개적일 수 없다. 물론나는 반대의 예를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에로티즘은 일상적 삶의 바깥에 위치한다. 우리의 체험에 비추어볼 때, 에로티즘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정상적 의사소통 구조를 벗어난다. - P294

오늘날에는 금기가 완화되었다. 금기에 관한 완화적인 분위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강연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강연장은 담론의 세계에 속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에로티즘은 결국 여전히 우리에게 외적인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 P295

신비 체험은 에로티즘과 매우 유사한 체험이면서 좀 다르다. 신비체험에서 느낀 감동은 담론의 형태로 설명할 수 있으며, 설교의 주제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로티즘과 신비 체험은 서로 가까이 있다. - P295

 나는 이제 신비 체험의 감동과 에로티즘의 감동들이 얼마나 강렬한 것들인지를 따로따로 살펴볼 생각이다. 나는 앞서 둘 사이의 차이를 하나는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우리를 사람들로부터 유리시켜 고독 속에 빠뜨리는 데 있다고 지적해 두고 싶었다. - P295

한마디로 그것은 전문가의 체험이다. 감정은 전문가를 빗나가게 만든다. 아주 오래전부터 특별한 한 가지 사실이 나를놀라게 했다. 진정한 철학자는 자신의 생애를 철학에 바쳐야 한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한 분야에서 우월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철학도 다른 모든인식 활동과 마찬가지 처지가 되었다.  - P296

 이제 철학은 더 이상 지식의 총체일 수없으며, 자꾸만 전문성을 띠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철학적인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더 이상 총체적 체험을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렬한 감동을 무시한다면,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또는 존재 일반을 성찰하는 행위가 과온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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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고 전달 체계 thoughttransmission system‘다. 한 사람은 언어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한다. 내적인 언어는 우리 자신의 사고들로 하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다. 언어는 생각을 전달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 P349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또는 이 책은 재미있다‘라는 2가지로 여러분은 말할 수 있는데, 2가지가 지닌 표면 구조의 가벼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심층 구조는 대략 동일하다(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언어는 매우 유연하기에, 똑같은 것을 여러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 P350

모호성

언어는 모호성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그런 모호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이해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 P380

종종 표면 구조로 인해 틀린 심층 구조가 생기는 문장을 가리켜 ‘정원길 문장 garden path sentence‘ 이라고 한다. 정원길 비유 자체는 막다른 길 또는끝에 뜻밖의 혹은 놀라운 것이 있는 길을 따라 정원을 산책하기라는 개념에서 나왔다. 정원길 문장의 작동 방식과 어느 정도 맞는 비유다. 아마도가장 유명한 사례는 ‘The horse raced past the barn fell‘일 것이다(Bever, 1970). - P351

청자로서 여러분은 ‘The horseraced‘를 듣자마자, 달리는 말의 정신적 모형을 짓는다. 또한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 예상 내지 추정을 한다. ‘past‘를 들을 때 여러분은 말이 무언가를 지나서 달렸다고 예상하는데, 알고 보니 그 무언가는 ‘the barn‘이다. 이것은 완벽한 내용이어서 누구에게나 뜻이 통한다. - P351

여러분이 어떤 말을 평가한다고 가정하자.
마구간지기에게 말을 달리게 해서 얼마나 잘 달리는지 본다. 집을 지날 때까진 말이 잘 달렸지만, 헛간을 지나자 그만 넘어졌다(the horse raced pastthe barn fell). 이 문맥으로 보면 정원길 문장은 뜻이 통한다. 여전히 잘못구상된 문장이긴 하지만, 이 경우 뜻을 해석할 수는 있다. - P352

언어적 추론

겉으로는 모호하지않은 문장 이면의 더 깊은 의미를 해석할 때도 동일한 추론 과정이 활약한다. 우리는 이해에 도움을 얻고자 추론을 내놓는데, 이 추론 또한 우리의사고를 지시할 수 있다. - P352

2003년에는 인터넷 뉴스와 SNS가 드물었다(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들겠지만). 그래서 나는 호텔 방에서 TV을 보았다. 캐나다의 앵커가 사용하는 언어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미국 언론은 이 전쟁을‘이라크에서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캐나다 앵커는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라고 불렀다. ‘에서의‘
라는 말은 미국이 이라크에 있는 적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추론하게 한다. - P353

비유 및 지구외적인 언어

 우리는 언어를 이용해 유사점을 찾고 비유를 뽑아낸다.
이 유사와 비유는 자구외적인non-literal 언어의 두 사례인데, 우리는 이 둘에의존해 이해에 도움을 얻는다. - P354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슈렉은 동키Donkey에게 왜 오거gre가 이해하기 복잡하고 어려운지 설명한다. 그러면서 "오거는 양파와 같아"라고 말한다. 이는 직유 형태의 비유다(A는 B와 같다). 조금후에 이런 이유를 댄다. ‘오거와 양파는 둘 다 층layer이 있지.‘  - P355

 나중에야 동키는 슈렉이 든 비유를이해한다. 즉, 오거와 양파는 둘 다 여러 층이 있으며 외부가 내부와 다를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이 농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슈렉은 심층적 유사성에 주목한 반면에 동키는 조금 더 웃긴 표면적 유사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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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나는 나라에 있는 집에서 그런대로 고민하며 지냈다.
다음에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라 생활에서 보통내하루는 참으로 담담하다. - P9

그러나 쓰지 못할 때 나는 사회적으로 무나 다름없다.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보다 못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나날이하도 오래 이어지는 바람에 나는 종종 로빈슨 크루소의 처지를생각하곤 했다. - P9

났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싫어진 나는 자고 일어나도 자리를 개지 않고 드러누워 『고전 라쿠고』를 읽고 요재지이를 읽고 『기담이문 사전』읽으며 지냈다. 그것을도 거의 다 읽고 나서 마지막으로 붙든 거대한 작품이 『천일야화』였다.
그러나 인생은 정말이지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 P10

이것이 소위 액자식 구성의 바깥 이야기로, 천일야화』에 담긴 방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셰에라자드가 왕에게 들려주는 식이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또 이야기하기도 하는 터라 이를테면 이야기의 마트료시카 같은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 P11

제1권의 첫머리에서, 언니와 함께 왕을 모시게 된 동생 두냐자드가 미리 의논한 대로 언니에게 자기 전에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그러면 셰에라자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당연한 소임으로서 기꺼이 이야기해드리지요. 훌륭하시고 고상하신 왕께서 허락해주신다면!" - P11

애초에 『천일야화』는 동양과 서양에 양다리를 걸치고 가짜사본과 자의적인 번역이 뒤섞인, 마치 그 자체가 이야기인 듯한 기기묘묘한 성립의 역사를 지닌다. - P12

이런 풍경을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있으려니 이런저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소년 시절 가족과 함께 갔던캠프의 추억과 더불어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로버트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쥘 베른의 『신비의 섬』도 그러나 막상 중요한 것 하나가 생각나지 않았다. - P15

나는 숟가락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겼다.
‘수수께끼의 책‘이라는 말이 내 머릿속을 따끔따끔 찔렀다.
내가 ‘열대‘라고 중얼거리자 아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열대요?"
"그래! ‘열대야. 생각났어."
내가 교토에서 살았던 학창 시절, 우연히 오카자키 근처의 헌책방에서 발견한 소설책, 1982년 출판, 작가는 사야마 쇼이치라는 인물이었다. 천일야화가 수수께끼의 책이라면 『열대』또한 수수께끼의 책이다. - P15

기타시라카와에 있던 다다미 넉장 반 크기의 집은 벽 하나전체가 책장이라, 나는 서점과 헌책방을 돌며 조금씩 책을 사모았다.
책장이라는 것은 자신이 읽은 책, 읽고 있는 책, 가까운 시일내로 읽을 책, 언젠가 읽을 책, 언젠가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라믿고 싶은 책, 언젠가 읽을 수 있게 된다면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그런 책의 집합체요, 그곳에는 과거와 미래, 꿈과 희망, 작은 허영심이 뒤섞여 있다. - P16

그곳에서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를 발견했다.
입구 옆에 놓인 ‘100 엔 균일‘ 상자를 들여다보는데 그 책이눈에 띄었다. 왜 사고 싶었을까.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값은 100엔이었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열대』를 산 뒤 자전거를 타고 오카자키 간교칸으로갔다. - P17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열대』는 시작됐다.
어떤 이야기인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 P18

아무튼 어째 잘 알 수 없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젊은이가 남양의 어느 외딴 섬 바닷가에 표류하는 데서 시작한다. 배가 난파된 것 같은데 젊은이는 기억을잃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이 섬이 어디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는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한젊은이는 아름다운 후미와 잔교를 발견하고 ‘사야마 쇼이치‘라는 이름의 남자를 만난다. - P18

나는 간교칸 로비에서 『열대』를 4분의 1정도 읽었다. 낡은책장에 인쇄된 흐릿한 활자와 시원한 냉방, 한산한 로비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윽고 나는 정신이 들어 책을 덮었다.
‘묘하게 끌리는 책이군. 아껴서 읽자.‘
『열대』를 배낭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 P19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열대』를 조금씩 읽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군도, ‘창조의 마술‘로 해역을 지배하는 마왕, 마술의 비밀을 노리는 ‘학파의 남자‘, 바다 위를 달리는 2량 열차, 전쟁을 암시하는 포대와 지하 감옥의 죄수, 바다건너 도서실에 드나드는 마왕의 딸………
‘이 이야기는 대체 어떤 결말일까.‘ - P19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는 궤변론부 부원에게서 들은 제논의 역설, 즉 ‘아킬레스와 거북이‘를 종종 연상했다. - P19

어쨌거나 반 정도 읽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열대』와의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백중 연휴가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명히 머리맡에두었을 『열대』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해 방 안을 찾아봐도 없었다.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와 한 번 더 찾아봤지만 역시 찾지 못했다. 어쩌면 가지고 나갔다가 어딘가에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 - P20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그동안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고서시장을 헤매고 도서관을 찾아가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열대』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2003년 나는 소설가로 데뷔해 이윽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 국회도서관에 취직했다. - P20

일주일 지난 8월 초, 나는 도쿄로 갔다.
그날은 볼일 몇 가지를 처리한 뒤 국회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를 만날 계획이었다. 도서관을 퇴직하고 2011년 가을에 도쿄 센다기를 떠나 고향 나라로 돌아온 뒤로 벌써 7년이 지났다. - P21

다음 작품을 둘러싼 고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만남인데,
나는 마감에 대한 증오심에 이성을 잃은 상황이니 이대로 논의를 계속한 의미가 없는 것은 명백했다. - P22

"그 소설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요."
"………어떻습니까?"
"제목이 같은 책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모리미 씨가 말씀하셨던 작품은 못 찾았거든요. 아는 소설가나 편집자한테도 물어봤는데 사야마 쇼이치라는 소설가는 아무도 모르던데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 P23

"그래서 『열대』는 어떤 소설이었는데요?"
"그게 참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끝까지 읽지도 못했고 말이죠."
"헉, 진짜요?"
"네, 진짜로. 이것도 이상한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 P24

"다음 작품으로 『열대』에 관해 쓰는 건 어떨까요?"
".....그렇지만 『열대』를 다 읽지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환상의 소설에 관한 소설인 거예요."
나는 살짝 구미가 당겨 생각해봤다. 아닌 게 아니라 ‘환상의소설‘이라는 아이디어는 소설가라면 한 번은 써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제재를 고르면 소설을 읽는 것, 쓰는 것에 대해 이래저래 망상할 수 있을 것이다.

런천에서 나오자 야스쿠니 거리에는 쪽빛 어스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은 의외로 시원했다.
"이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세요?"
"수수께끼 독서 모임에 간딥니다."
"어머나, 재미있겠는데요."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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