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동물 인식의 복잡성
상식과 일상 언어 모두 이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 동물들에게 믿음과 바람을 부여하는 것은 그 동물이 불멸의 (비물질적인) 영혼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와 논리적으로 무관하다. 또 이 동물들의 행동은 그 동물에게 믿음과 바람을 부여하는 것과 일관된다. 그리고 진화론은 동물들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또한 자신이 믿는 것을 믿기 때문에 종종 그렇게 행동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 P149
누적 논증이 제공하는 누적적 지지는 동물이 믿음과 바람을 갖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쪽에 입증 책임을 지우는 데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하다. - P150
실제로 상식이나 일상 언어가 가축이든 야생동물이든 동물에게 믿음과 바람을 부여하는 쪽에 있다는것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이 도전에 맞서려는 철학자는 전혀 없다.⁴ 그리고 의식은 비물질적이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존재에게만 가능하다는 데카르트적 가정을 하거나, 이 가정을 근거로 입증 책임을 다하려고 시도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4) 야생동물에게 믿음, 바람, 의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Thomas A. Long, "Hampshireon Animals and Intentions," Mind 72, no. 287(July 1963): 414-416 - P150
그렇지만 반대를 고려할 때는 가장 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것을 공평무사한 대표로 삼을 것이고, 논쟁이 되는 생각들을 살펴볼 때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관련되는 상황에 적절한 정도로 철저하게 대하겠다고 희망해본다. - P150
2.1 믿음-바람 이론
옹호할 주장을 충분히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중략), 메릴랜드 대학교의 철학자인 스티븐 스티치(Stephen P. Stich)는 동물에게 믿음을 부여하는 입장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고 있는데, 이 입장을 "우리의 직관적인 ‘믿음-바람 이론"이라고 지칭하며특별히 명쾌하게 규정한다. 그의 언급을 상세히 인용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⁵
:. 5) Stephen P. Stich, "Do Animals Have Beliefs?," Australasian Journal of Philosophy 57, no. 1(March 1979): 17~18. - P151
믿음도 바람처럼 여러 가지 원인을 갖는다. 가장 명료한 두 가지 원인은 지각과 추론이다. 개 주인이 고기가 붙은 뼈를 개 밥그릇에 둔다면, 개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뚜렷이 보고 있다면, 개가 주의를 집중하고 있고 심리적으로 정상이라면 개는 밥그릇에 고기가 붙은 뼈가 있다는 믿음을 형성할 것이다. 또개는 주인의 활동을 관찰한 결과 지속적인 것이든 순간적인 것이든 또 다른 다양한 믿음 역시 틀림없이 형성할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지각은 유기체의 비축된 믿음에서 특정 믿음을 제거하기도 한다. (…) 믿음은 다른 믿음에 의해 생성된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을 때, 믿음이 또 다른 믿음을 생성하는 과정은 추론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피도가 자신이 문을 긁으면 주인이 문을 열 것이라고 믿고, 문이 열리면 뼈까지 갈 수있다고 믿을 수 있다. 피도는 이 두 가지 믿음으로부터 자신이 문을 긁으면 뼈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⁶
6) 같은 글. pp. 15~17. - P152
스티치는 지금 인용한 것이 상세한 심리학 이론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심리학 이론의 가장 기본적이고 폭넓은 개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언급은 "동물 행동에 대한 최선의 심리학적 설명은 직관적인 믿음-바람 이론의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는 이론에 의해 제시될것이다"⁷라는 주장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7) 같은 책, p.17 - P153
그리고 진화론의 함의에 대한 그리핀의 언급을 따라서 "인간과 고등 동물 사이의 진화론적 관련성과 행동적 유사성에 비추어볼 때, 믿음-바람 심리학이 인간의 행동만 설명할 수 있고 동물의 행동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만약 인간이 믿음을 갖는다면 동물도 믿음을 갖는다"라고 말한다.⁹
9) 같은 글, p.18 - P153
지금은 도덕철학의 어떤 연구에서나 흔한 이러한 가정들이 동물권 연구에서 삐딱하거나 해로운 의미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외부 또는 내부 자극에 대한 ‘선천적‘이거나 ‘조건화된‘ ‘반응‘으로 환원하는 견해" ¹⁰는 어떤 경우에는 비판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일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또는 없는) 이론적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자.
10) (옮긴이) 믿음 - 바람과 같은 정신적 상태를 가정하지 않고 자극과 반응만을 가정하는 이론을 말한다. - P154
(전략), 우리가입증 책임은 이 이론을 동물과 동물의 행동에 적용하는 데 반대하는 쪽에서 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다. 이런 반론에 대처하기 위해서, 가령 동물의 행동을 자극-반응 이론으로 일관되게 해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든가, 믿음과 바람을 인간의 경우에는 인정해도 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부정하는 다른 이론에 의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 P154
이 입증 책임을 해소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애쓰는 방식에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동물은 인간과 달리 믿음이나 바람을 갖지 못할뿐만 아니라 가질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동물의 행동을 믿음-바람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둘째, 동물은 믿음을 갖기는 하지만, 동물이 무엇을 믿는지 말할 수 없기에 동물이 믿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그리고 바람이 믿음을 가정한다면 동물이 바라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동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155
2.2 언어와 믿음
프레이는 주장하기를, 동물은 가령 음식, 물, 성적 발산의 필요를 포함해서 필요를 갖는다. 그러나 필요는 바람과 다른데, 필요를 소유하는 것은 바람을 소유한다는 것을 가정하거나 합의하지 않는다. - P156
프레이의 견해로는 동물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동물은 필요는 가지고 있지만 바람이 없다. 그러므로 믿음-바람 이론은 동물의 경우에 타당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 P156
프레이는 동물에 바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몇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프레이의 대표 논증‘이라고 부르자)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1.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개체들만이 바람을 가질 수 있다. 2. 동물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3. 따라서 동물은 바람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다른 곳에서 전제 1을 지지하는 프레이의 논증에 이의를 제기한바 있다.¹¹
11) Tom Regan, "Frey On Why Animals Cannot Have Simple Desires," Mind 91(1982):277-280. - P156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X에 대한 나의 바람은 "내가 X를 원하면 나는 Y를 해야한다"나 "내가 X를 원하고 Y는 X인 것 같으므로, 나는 Y를 얻어야 한다"¹² 라는 형식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 나나 다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은 바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믿지 않고서 어떤 것을 바라는 것이다.
12) 이런 형식의 믿음이 바람의 분석에 등장한다는 것은 Joel Feinberg가 "The Rights ofAnimals and Unborn Generations," Philosophy and Environmental Crisis, ed. W. T. Blackstone (Athens: University of Georgia Press, 1974), pp. 43~68(Joel Feinberg, Rights, Justice, and the Bounds of Liberty: Essays in Social Philosophy [Princeton: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pp. 159-184°R. G. Frey, Interests and Rights: The Case Against Animals(Oxford: The Clarendon Press, 1980), pp. 55 이하에서 이 분석에 대해 찬성한다. - P157
프레이에 따르면 동물에게믿음이 없는 까닭은, 믿는 것(믿음의 대상)은 주어진 문장이 참이라는 것이고, 동물은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기에 어떤 문장이 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 P157
프레이가 동물에게서 믿음을 제거하며 제시한 이유는 데카르트의 언어검사(1.5를 보라)를 꽤 많이 떠오르게 한다. (중략). 프레이는 동물은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은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 P158
그러나 이런 식으로 프레이에게 비판을 던지는 것에 지적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앞 장(1.5)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인원에 언어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둘러싸고 엄청난 논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유인원에게 언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는지는 의문거리이다. 둘째, 이게 더 근본적인 점인데, 유인원이 언어를 사용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 P158
(전략). 프레이가 한 말은 그 본성상 선언에 더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프레이에게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가 믿는 바는(1) "나는 ...라고 믿는다"와 "그는 ...라고 믿는다"라는 형식의 문장에서 ‘라고‘ 앞에 특정 문장이 들어간다는 것과, 그 때문에 (2) 믿는 것은 ‘라는‘ 앞에 들어가는 문장이 참이라는 것이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 P160
그의 견해에 따르면, 내가 무언가를 믿을 때마다 내가 믿는 것은 어떤 문장이 참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사람들이 때때로 문장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견해와 구별되며, 그 견해로부터 함의되지도 않는다. - P160
특정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 언어로 된 문장이 참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올바르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할 수 있는데, 프레이의 견해는 그가 진술한 것을 보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지못한다. - P161
즉 우리가 어떤 개인(A)이 무엇인가를 믿는다고 말할 때 우리가 긍정하는 것은 A가, 한국어로 된 특정 문장이든 영어나 독일어로 또는 여타 언어로 된 문장이든 동일한 어떤 문장이 참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중략), 그럼으로써 위에서 제기된 비판에 답변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162
프레이의 이러한 가능한 대답은 믿음 부여의 ‘정상적인 경우‘, 다시 말해서 어떤 개인에게 믿음을 부여할 때 믿음의 부여가 명확하게 정당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제한다.¹⁷ ‘이례적 경우‘는 이렇게 정상적인 경우에 믿음이 부여되는 개인과 어떻게든 다르게 부여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정상적인 경우에 믿음이 부여되는 개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17) Frey, Interests and Rights, pp.58 - P164
여기서 세 가지 답변이면 충분할 것이다. 첫째, 무엇을 ‘정상적‘인 경우로 간주하고 무엇을 ‘이례적‘인 경우로 간주하느냐의 문제를 프레이는 명백히 중립적이라고 전제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략) 왜냐하면 믿음 부여의 근거에 대한 어떤 설명에서는 (예를 들어 유기체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 그에게 충분히 믿음을 부여할 수 있다면) 여행객은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 정상적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P164
둘째, 동물의 믿음에 대한 특정 질문은 차치하고, 어려운 생각에 대해 제안된 분석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프레이가 전반적으로 이해한 것을 보면 철저히 보수적이다. 프레이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믿고 있다. 즉 제안된 분석이 ‘정상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이러저러한 ‘이례적인 경우를 들먹이며 그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P165
개념 분석이 하려는 일 중 하나는 주어진 개념을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을 때 만족해야만 하는 조건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때 우리는 어떤 적용이 ‘정상적‘인지만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적용의 한계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개념의 ‘정상적인‘ 적용을 분명하게 하기만 하면 그 한계를 찾을 수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혼동을 한 것이다. (이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사람의 ‘정상적인‘ 기대 수명을 밝히면 최고령자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 P166
셋째, ‘정상적인‘ 경우에 대한 프레이의 이해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그의 견해와 연합해서 보면, 어느 누구도 언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P166
앞 단계들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가 따라 나온다.
4. 어린아이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다면, 그들은 언어 사용을 배울 수 없다. 5.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언어 사용을 배울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단계 4인데, 이것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면 앞 장의 데카르트의 언어 검사(1.5)에서 논의한 것을 연상시키는 다음과 같은 관찰을 포함해야 한다. - P167
믿음의 대상에 대한 프레이의 견해는 아이를 바로 이러한 운명에 처하게 만든다. 그의 견해에서 아이는 언어 능력을 획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획득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프레이에 따르면, 어떤 것을 믿는 것은 어떤문장이 참이라고 믿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가 언어 사용을 획득하기 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68
그리고 여기에서 아이가 언어 사용을 획득하려면 그런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아이는 언어 사용을 배울 수 없고, 실제로 프레이의 믿음 대상 견해에 따르면 어떤 믿음도 가지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 - P168
프레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판은, 만약 올바르다면, 프레이의 믿음 분석 어딘가에 심각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이례적인‘ 경우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프레이는 성인 인간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린이의 언어 능력 획득은 흔한 일이라고 틀림없이 생각할 것이다. - P168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프레이는 비언어적인 믿음. 다시 말해서 언어 습득과 독립적으로 갖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이는 우리가 하는 말을 배우기 전에 우리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말과 몸짓으로 지시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믿어야 한다. - P169
그전에는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프레이는 동물은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스스로 ‘추가 논증‘이라고 부른 것이체계적으로 무시되었다고 불평할 수 있다. - P169
프레이의 ‘추가 논증‘을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믿음을 위해서는 참인 믿음과 거짓인 믿음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는 무한후퇴로 빠져든다. 이것은 프레이가 우리가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대해 말한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 P170
프레이가 이러한 연결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 P170
그러나 내가 언어와 세계 사이의 연결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고한다면, 나는 그 경우에도 다른 모든 믿음의 경우에 가져야만 한다고 프레이가 합의하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 즉 나는 (a) 이 연결이 이러이러하다고믿는 것과 (b) 내가 잘못 믿을 수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a) "언어와 세계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참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을 믿는 것과 (b‘) "언어와 세계는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거짓이다"를 믿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 P171
그런데 이제 문제가 있다. 내가 (a)와 (b‘)를 구분한다면, (b)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어떤 것을 (a)에 대해서는 믿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내가 (a)과 (b‘) 사이의 구분을 파악한다‘라고 믿고,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그 둘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P171
내가 문제가 되는 연결에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해 참인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 연결에 대해 거짓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구분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 연결에 대해 무언가를 믿으려고 한다면, 이 연결에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한 믿음 역시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대한 믿음도 가져야 한다. - P172
그 결과는 내가 ‘언어와 세계 사이의 연결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내가 참이라고 생각하는 무한한 수의 믿음들과 내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무한한 수의 믿음들을 구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언어와 세계 사이의 연결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참인 믿음과 거짓인 믿음의 구분을 파악해야만 한다는 견해는 이러한 연결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믿음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한 프레이의 견해에 따르면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믿지 못하게 한다. - P172
어쩌면 이것이 프레이가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옳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 지지 논증이다. ‘세계에 대한 믿음‘ 중에서 자신의 경우에는 참인 믿음과 거짓인 믿음을 구분하는데(만약 그런 믿음이 있다고할 때), 다른 모든 믿음(가령 언어와 세계 사이의 연결에 대한 믿음)의 경우에는구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을 타당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믿음 구분의 요구를 세계에 대한 믿음에만 제한을 두면서 지지하는 논증이 없는 한, 이런 믿음에만 제한을 두는 것은 극도로 자의적일 것이다. - P173
이 절에서 살펴본 프레이의 논증은 동물이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그의 부인을 합당하게 옹호해주지 못한다. 따라서 바람이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면 동물이 바람을 가질 수 없다는 그의 부인도 충분히 옹호해주지 못한다. 누적 논증의 입증 책임은 믿음-바람 이론을 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을부인하는 쪽에 있었는데, 프레이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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