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화를 해석하는 정신분석의 관점들
정신분석 역사상 중요한 최초의 신화 연구 업적은 주로 1906-1920년에 이루어졌다. (중략). 이 시기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정신구조 모델‘의식, 전의식, 무의식)에 근거한 무의식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 발달론을 신화의 심층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용했다. 이에 비해 융은 리비도를 성욕동보다 광대한 인류의 보편적 생명 에너지로 해석했다. - P28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신화가 꿈, 예술작품, 신경증 증상들과 더불어 무의식을 탐색하는 데 유용한 핵심 통로이자 열쇠임을 발견했다.⁴ - P29
1 신화 해석을 위한 정신분석의 기초
4 신화와 꿈, 중상 예술작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과 분석은 여러 글에 분산되어 있다. 《꿈의 해석》,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토템과 터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세상사의 모티프>, <불의 소유와 그 통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등을 참조할 것. - P602
첫째, 신화는 고대 인류의 무의식적 소망과 콤플렉스가 외부로 투사(외재화)된 결과물이다. (중략). 둘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이 전의식의 검열을 통과해 의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변장(압축, 전치, 상징화)되어 표현된 결과물이다. (중략). 셋째,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듯이 영유아와 아동의 사고는 원시 인류의 상태를 반복 재현한다. (중략).⁶ 넷째, 신화·꿈·증상 및 예술작품의 심리적 발생 과정과 발생 구조는 동일하다. (중략). 다섯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의 소망을 의식에 상징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소망을 간접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을 지닌다. - P29
6 지그문트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꿈과 신경중에서 우리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과 정서생활의 독특함을 만나게 된다. 이제 이 명제에 다음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야만인즉 원시인도 만나게 된다. 원시인은 고고학과 민속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P603
융
융은 신화가 인류의 심층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임을 선구적으로 밝혔고, 신화 분석의 중요성을 평생 동안 주장했다. (중략).⁷ 융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행동은 단지 억압된소망이 변장된 개인무의식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그 민족이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용기 있게 대면하거나 보충해야 할 정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초개인적 인류무의식의 상징이다. (중략). 이런 상징은 인간 내부의 대극적 요소들(자아상/그림자, 남성성/여성성)의분열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의 불균형이 심해져서 민족이 위기에 봉착할수 있다는 인류무의식(‘자기)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 P30
7 카를 구스타프 융, <무의식에의 접근>,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1996, 95, 102쪽. 음을 계승한신화 분석가로는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에리히 노이만 등이 유명하다. - P603
자아심리학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구조론(이드·자아·초자아)을 계승한 자아심리학자 제이콥 아를로우Jacob Arlow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본능이드) 충족 욕구, 초자아의 도덕규범 요구, 사회적 관계에기여하라는 현실의 요구, 그리고 이 요구들에 대한 자아의 방어와 적응등의 다중 목적을 지닌 ‘공유된 환상‘•이다."⁹
• 사회가 학교와 매스컴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이념들(자유, 평등, 헌신, 종교 이데올로기)과 그것을 구현하는 신화들에는 구성원 간의 대립 충돌을 최소화하며 개개인이 지닌 ‘이드·초자아자아의 욕구와 기능을 적절히 만족시키는 ‘공유된 환상‘이 담겨 있다. - P31
9 미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 용어사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252쪽. - P603
클라인
여성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기스러운 대상, 섬뜩한 사건, 패륜적 행동들의 심리적 의미를 구강기 유아의 원시적 심리특성과 연관해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에게 고대 신화는 인류의 태초 시기이자 개인의 영유아기 정신 상태인 ‘편집·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의 독특한 경험 구조와 내용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 P31
(전략). 고대인의 작품에 선/악 양극으로 분열된 정신성을반영하는 복수의 여신(원시 초자아)과 정의의 신(문명적 초자아)이 신화적작품에 함께 등장하는 것은 원시적 정신성과 문명적 정신성이 공존하는 고대 그리스인의 상태를 반영한다.¹⁰ 클라인의 관점과 개념은 프로이트가 정밀히 탐구하지 못했던 구강기 유아의 심리와 편집증 환자의 심리를 신화 해석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P32
10 M. Klein. "Some Reflections on The Oresteia",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1946-1963, Free Press, 1984, pp.275-299. 이 논문에서 클라인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게 된 현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촉발 원인은 자신이 동일시해온 아버지(아가멤논)가 어머니에게 살해당하자 이들의 자아가 손상된 것이며, 근본 원인은 그동안 묻혀 있던 편집·분열 자리에 의한 가학적 초자아의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이 아들(오레스테스)에게 엄습한 것이다. - P603
대상관계론과 페미니즘
엄마 품에서 분리되어 아버지 세계로 나아가는 오이디푸스 시기(아동기)의 체험이 인간의 정신발달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 프로이트학파의 견해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 유럽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 P33
타인(아기)의 정서에 섬세히 공감하는 모성적 대상관계와 모성성은 개인과 민족적 정신(‘자기self‘와 ‘자아ego‘ 구조)의 최초 형성과 성장에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며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¹¹ 가령 유아기에 불안과 본능욕구가 엄마의 정신에 담겨지는 긍정적 관계 경험이 과잉좌절된 개인은 좋은 엄마의 모성 에너지가 결핍되어 대상과의 편안한 관계능력이 결여된다. - P33
11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정신분석》, 민음사, 1999, 30, 58, 70, 84쪽 참조. - P603
반면 유아기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좋은 성적 경험을 내면화한 개인은 자기가 견실히 구조화되어 외부의 낯선 자극이나 불안을 견뎌내면서전인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정서적 힘을 지니게 된다. 유아기전 오이디푸스기)에 ‘최초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내면화한 모성성과 좋은엄마상은 아동기(오이디푸스기)에 아버지 관계를 통해 내면화되는 언어적분별 활동과 결합하여 정신을 발달시키는 토대가 된다. - P34
인류가 탄생해 ‘최초의 나‘가 형성되는 유년기(태) 삶의 과정을 반영하는 창세신화로부터 사회 속에서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방황하는 격동기(사춘기)를 반영하는 영웅신화를 거쳐 성숙한 주체인 성인으로 고양되는 ‘변환신화‘에 이르는 일련의 정신발달 과정에서 모성 에너지는 부성에너지와 대등한 정신발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P34
자기심리학
‘자존감‘의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는 하인츠 코헛 Heinz Kohut의 자기심리학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은 각 민족이 지닌 ‘자기‘의 안정과 활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애 self-love 와 자존감self-esteem을 보충해준다. - P34
우리나라의 신화 연구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신분석적 신화 연구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고 단순하다. (전략).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용한 신화해석 담론이 정신과 의사 김광일에 의해 생성되었다.¹³ 김광일은 한국의신화가 질서 있게 보이는 이유는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 계층에 의해 구전신화가 문자로 최초 기록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검열과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 P35
13 김광일, <한국 신화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오이디푸스 복합>, 《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 교문사, 1991. - P603
어떤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이 한국, 중국, 일본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발굴하여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국내 신화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P36
국내의 상황과 달리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는 프로이트, 융, 그리고 현대정신분석(자아심리학, 클라인,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 라캉) 등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 P37
3
신화를 창조한 무의식의 유형들
신화를 창조한 근원적 추동력은 어떤 유형의 힘들에서 기인한 것인가? 인간의 정신은 각기 다른 에너지, 특성, 작동 원리, 내용을 지닌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중략). 이에 비해 무의식은 외부 환경이나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떤 표상과 감정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한다.¹⁸ - P38
18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 <억압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열린책들, 1997, 18, 140, 192쪽,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후천적으로 계발된 2차 정신 과정인 의식은 늘 외부 현실 상황을 고려하여 내적 욕구를 조절하는 ‘현실원칙‘에 의거해 작동된다. 이에 비해 무의식의 내용들은 ‘쾌락원칙‘을 따르는 본능적 1차 정신 과정에 의해 작동된다. 무의식은 외부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체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고 유지된다. 그로 인해 어떤 경험 흔적이든 무의식에 들어오는 순간, 원상태 그대로 평생 보존되는 것이다. - P604
억압된 무의식
프로이트는 자신이 주창한 지형학적 정신구조론에서 무의식을 크게 두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개인이 출생한 순간부터 외부 환경과 내부 욕동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자극 가운데 당시의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무의식이다. 이 무의식은 주로 충격적 과잉 자극으로 구성된다. - P39
21둘째는 ‘자연적 본능instinct‘과 ‘인간적 본능인 욕동 drive‘이다.²¹ 편의상 이두 가지를 혼합해 ‘본능‘ 내지 ‘요동‘으로 표현하겠다. 욕동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류의 보편 요소다. - P39
21 본능은 고정된 대상에게 고정된 행동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지칭하며, 욕동은 문화적 전환성을 지닌 유동적 본능을 지칭한다. 인간은 본능과 욕동을 함께 지니는 유일한 ‘생리적·심리적 존재‘다. - P604
원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가 반복해서 겪은 강력한 체험들은 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무의식에 저장되었다가 그중 일부는 욕동에흡수되어 유전된다.²³ - P40
2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와이드>,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 110쪽. "자아는이드에서 칼로 자르듯 분리되어 있진 않다. 자아의 하부 일부는 이드와 합병된다. 억압된것 역시 이드와 합병되어 이드의 일부를 구성한다. (...) 억압된 것은 억압으로 인해 자아와단절되어 있지만, ‘이드를 통해‘ 자아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 - P604
본능욕동은 또한 파생물(표상과 감정)을 통해 외부로 분출하여 쾌락을 획득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현실의 냉혹한 압력에 의해 본능표상과 감정이 오랜 기간 과도하게 억압될 경우 내부에 축적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모종의 대리 분출 활동이 일어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원초적 환상‘이다. - P41
무의식은 이처럼 선천적인 본능욕동과 원초환상들, 그리고 후천적으로 경험되었다가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과잉 자극과 공격환상•성환상 등으로 구성된다. 이 선천적 무의식(본능욕동)과 후천적 무의식(상처, 성환상)은 자아가 약해지거나 현재의 어떤 자극이 무의식의 특정 내용과 우연히 결합되어 갑자기 의식으로 치솟을 때 어렴풋이 지각된다. - P42
프로이트가 말년에 제시한 ‘역동적 정신구조론‘에 의거하면 신화의 생성 원인과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²⁷ 3원적 정신구조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다. - P42
27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의 ‘죽음본능론‘, <자아와 이드>에 나오는 ‘3원적 정신구조론‘ 참조. - P605
정신구조론은 여러 유형의 대상들이 이드·자아·초자아 각각에 미치는 영향과 이것들이 정신 내부에서 상호 대립하면서 관계 맺는 역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43
집단무의식
프로이트는 유전된 본능욕동과 환상, 상처, 억압된 유년기 쾌락욕망과 경험 등을 무의식의 주요 내용으로 주목했다. (중략). 융은 프로이트가 개인 삶에 미치는 집단무의식의 거대한 작용을 성찰하지 못한 채 개인무의식의 힘에만 주목했다고 비판한다.²⁹ - P43
29 카를 구스타프 융, 《원형과 무의식》, 솔, 2003, 156-159쪽. - P605
융의 비판에 자극받아 민족의 집단정신성에 관심을 갖게 된 프로이트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당대 생물학 이론을 참고한다. 그리고 이 이론을 응용하여 선조들이 반복해서 겪었던 중요한 경험의 흔적은 본능에 흡수되어 후손에게 유전되고 문화를 통해 전승된다고 생각했다.³⁰ 융은 인간의 본능욕동이 개인사적 경험에 의해 변화되고 문화로 전승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반대한다. - P44
30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테미즘의 유아적 재현>, <토템과 터부》, 경진사, 1993,195,209 (주178), 224-225, 229쪽.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신분석학과 접맥하려 한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맨 끝에 덧붙인 글에서는 자신의견해가 융과 유사함을 언급한다. "편집증 환자 분석을 통해 나는 융의 주장이 타당함을 발견했다. 융은 인류가 신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사라지지 않았고, 신경증에선 지금도 먼 과거와 동일한 정신적 산물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나는 개체의 문제에 적용했던정신분석 명제들을 인류의 문제로 넓힐 때가 곧 오리라 생각한다." 한편 융은 말년 작품인《인간과 상징》에서 "태아의 형성 과정이 역사 이전의 진화 과정을 반복하듯이 마음도 역사이전의 단계를 밟으면서 발달한다. 꿈은 ・・・ 유아기와 함께 선사시대의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을 프로이트도 이미 파악했다."라고 언급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 《인간과 상》, 열린책들, 1996, 99쪽. - P605
인간다움mumanity의 본질인 이 원형에는 인간이 마땅히 실현해야 할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 목적과 정신의 전형적인 발달 과정이 내재해 있다.³¹ (중략).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성화(자기실현)를 이루려는 욕구인 것이다.³² - P44
31 원형들은 자체로는 인식될 수 없지만, 출생·결혼·모성애·죽음. 이별 같은 인생사의 보편경험을 둘러싼 행위들에서 인식될 수 있다."(앤드루 새뮤얼 외, 《읍 분석비평사전》, 동문선, 2000, 45쪽) 음의 원형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관념을 연상케 한다. 실체란 내재된 본질 목적을 지닌 독립적 존재이며, 잠재된 본질인 ‘가능‘에서 본질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현실태‘로 움직여가는 목적론적 존재다. 이때 외부 세계의 환경은 개별적 실체의 본질이 실현되는것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는 있어도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비록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인간 정신이 (재)통합 상태를 향해 수만 년 동안 진화해왔을지라도 통합해야 할 핵심 대상인 집단무의식의 원형들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32 개성화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며, 집단적 관계를 전제한 인격 발달을 목표로 한다. 또한 집단적 특질을 더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가 약한 사람이 개성화를 시도하면 자아 팽창과 무의식에 압도되어 위험해질 수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261쪽;앤드루 새뮤얼 외, 위의 책, 122쪽. - P606
민족의 무의식에는 태초부터 전승되어온 고유의 ‘원형 이미지‘(영웅상)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주몽, 바리데기, 예, 순, 스사노오, 오오쿠니누시오시리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발드르, 부처, 예수 등은 무의식에 담긴 원형 에너지를 자아에 통합하여 자기실현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영웅표상들이다. - P45
이들 영웅이 수행하는 개성화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는그동안 망각하고 외면해온 민족정신의 부정적 결함 요소인 그림자를 자아의식이 용기 있게 대면하고 변화시켜, 자아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통합하는 단계이다. (중략). 두 번째는 사회적 얼굴이자 역할인 페르소나를 개개인이 형성하고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경직된 사회적 성역할로 인해 소외되어온 본연의 성에너지(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anima, 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인 아니무스animus)를 대면하고 자아에 통합하는 단계이다.³³ - P45
33 음에게 영웅의 원형은 그림자, 아니아니무스, ‘자기‘를 정신의 발달 과정에 맞게 차례로 대면하여 통합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원형은 각 민족의 신화나 역사 속에서 예수부처, 단군 등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런 영웅 이미지들은 이미 존재하던 영웅의 원형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구현된 ‘의식적 표상‘일 뿐이다. 의식적 표상과 원형은 다르다. 원형은 태초부터 선천적으로 존재해오는 것이며, 결코 의식적 경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지않는다. 단지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신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웅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에 유전되는 역사란 의식의 역사가 아니라 동물적 교감을 하던 태곳적 선사시대의 흔적‘들을 지칭한다. 즉 의식의 경험들은 결코 원형에 흡수되거나 유전될수 없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67쪽. - P606
세 번째는 자아가 인류의 원형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자기‘에 접속하여 자기의 힘을 내면으로 흡수하는 단계이다. 영웅신화에서 이 단계는 주인공이 비범한 조력자를 만나서 그로부터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인류의 심오하고광대한 지혜를 전해 듣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과정에 해당한다. - P46
마지막은 개인의 자아가 그렇게 얻어진 인류의 거대한 원형 에너지를 당대 집단이 풀지 못했던 현실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과업 실현‘ 단계이다. - P46
모권적 무의식과 모성적 무의식³⁶
프로이트 이후 현대정신분석학계는 엄마가 유아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밀히 탐구해왔다. - P46
36 클라인과 위니콧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클라인의 ‘박해하는 모성적초자아‘, 위니의 아기의 불안을 품어주고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보통의 좋은 엄마‘ 개념을 반영하면서 프로이트-융 비교를 명료화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한 것이다. 클라인의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 환상은 신화 속의 자애로운 모신과 공포감을 주는 모신으로 연결된다. 대립되는 두 모신은 ‘모성적 무의식‘과 ‘모권적 무의식‘을 반영한다. 이경재, 《신화해석학》, 다산글방, 2002, 258-260쪽 참조. - P606
모권적 무의식: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괴물
영아와 유아의 내면 심리에 주목하고 어머니와의 관계 경험이 아이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최초의 정신분석학자는 클라인이다. 그는 출생 후 5개월 사이 유아의 내면세계에 주목했다. - P47
갓 태어난 영아의 일차 과제는 정신 내부에서 역동하는 죽음욕동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자아가 미성숙한 영아는 이 파괴욕동과 그로 인한 멸절불안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 영아에게는 이것을 대신 처리해줄 양육자의 도움(대리 자아 역할)이 절실하다. - P47
파괴욕동의 극단 양태인 시기심은 정신 내부의 좋은 대상들과 정신활동조차 파괴하므로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아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상태를 감당하기 힘든 유아는 파괴욕동과 불안을 외부의 젖가슴이나 엄마 몸에 투사하거나, 파괴욕동을 담은 정신의 일부분을 엄마 몸에 투사동일시로 집어넣는다. - P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