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아노 Play It Again - 아마추어, 쇼팽에 도전하다
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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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1세계 백인 남성’의 표상을 본다면 정신병이거나 굉장히 멍청한 것, 둘 중 하나다. 다만 피아노가 주제인 것마냥 번역판 제목을 이렇게 잡은 편집자는 책임이 있다. 특출난 음악적 가치는 없지만, 월 3천만 원을 벌던 스타급 리버럴 저널리스트의 삶 전반이 잘 드러나는 괜찮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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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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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했다 오늘 받고 정신없이 지금 덮었네요. 세 시간만 투자해 이 소설을 읽으면 여러분에게 그 어렵던 클래식이 포근하게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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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 눈꽃처럼 살다 간 소녀, 아야의 일기, 개정판
키토 아야 지음, 정원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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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키토우 아야 (木藤亜也)는 폴 모리아의 토카타를 좋아한다고 한다. 자신의 문학적 소양과 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오히려 어릴 때 적은 일기에 더 드러나고 있는 게 뚜렷하여 '아쉽다'. 나는 리스트 (Franz Liszt)의 나단조 곡들을 들으며 그의 삶을 곱씹었다.


지금까지는 여동생이 심술궂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실은 다정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남동생은 나를 두고 척척 앞으로 가 버리는데, 여동생은 더딘 나랑 보폭을 맞춰서 걷는다. 그리고 육교를 건널 때는 가방을 들어주고, "언니는 손잡이를 잡아."라고 말해 준다.(p.23)


엄마가 의사 선생님께 내 상태를 설명했다. 넘어질 때는 보통 팔을 앞으로 뻗어 몸을 보호하는데, 그러지 않고 얼굴을 그대로 땅에 부딪쳐서 턱을 다친 것,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아서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 살이 빠진 것, 동작이 둔하고 민첩하지 못한 것 등. 엄마가 설명하는 내용을 듣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늘 바쁘게 지내는 엄마가 이렇게나 자세히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니……. 엄마는 내 모든 걸 꿰뚫어 보고 계셨구나.(pp.26-27)


내가 죽을 둥 살 둥 공부하는 건 이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한테서 공부를 빼면 불편한 몸만 남을 뿐.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외로워도 힘들어도, 이게 현실인걸. 머리는 나빠도 좋으니 제발이지 몸이 건강했으면…….(pp.49-50)


학생수첩 외에 신체장애인수첩을 받았다. 척수소뇌변성증.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운동신경을 지배하는 소뇌의 세포 움직임이 약해지는 병이라고 한다. 한 100년쯤 전에 처음 발견한 병이란다. 이 병은 왜 나를 택했을까? 운명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p.53)


"절대로 무리하지 마. 택시 회사에는 엄마가 설명해 두었으니까 너는 택시비를 내지 않아도 돼."

엄마, 난 꼭 돈 먹는 벌레 같아요. 언제까지나 부담만 주는 아이 같아요. 엄마, 미안.(p.55)


장애인도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마음을 지녔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편할 뿐이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지려면, 건강한 사람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무언가를 익혀야 한다.(p.69)


특별활동 시간에 임원과 각각의 학급 일을 맡아서 할 담당자 선거가 있었다. 반 학생 수는 마흔다섯 명. 담당자로 선출된 건 마흔네 명. 나 혼자만 아무 일도 맡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난 천사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자. 떨어진 휴지를 주울 수도 있고, 창을 닫을 수도 있어. 하려고만 하면 할 일이 얼마든지 있거든.(p.69)


히가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정신 바짝 차리고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희망을 남겨 놓는 게 필요했다.(p.102)


자연히 나아질까? 17살이 되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싸워야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까? 나는 엄마의 지금 나이인 42살이 된 나를 상상할 수 없다. 히가시 고등학교를 2학년 때 그만두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듯이 42살까지 산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불안하다. 하지만 살고 싶다.(p.127)


초등학교 때는 크면 의사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대학에서 복지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히가시 고등학교 때는 문학 계동으로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바뀌어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은 한결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졸업한 후에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주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손을 잡아 사람의 따스함을 전해 주고 싶다.(p.139)


눈물을 참고, '엄마, 다시는 걸을 수 없어요. 붙잡고 서려 해도 설 수가 없어요.'라고 종이에 써서 문을 열고 내밀었다. 내 얼굴을 보여 주는 것도,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워서 얼른 문을 닫았다.(p.219)


화장실까지 3미터를 기어서 간다. 복도가 싸늘하다. 내 발바닥은 부드러워서 손바닥 같다. 반대로 손바닥과 무릎은 발바닥처럼 딱딱하다. 보기 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유일한 이동수단이니까.

뒤에 인기척이 났다. 기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기어오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으뜨리면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단번에 터져 나와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게 내버려 두었다. 엄마의 무릎이 내 눈물로 흠뻑 젖고, 엄마의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p.219)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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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 300년 후 미래에서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바라보다
나오미 오레스케스.에릭 M. 콘웨이 지음, 홍한별 옮김, 강양구 해제 / 갈라파고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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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지적


몇 가지 지적을 좀 해보자.

번역, 교열, 편집 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100자평으로 감당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리뷰로 남긴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을 토대로 욕하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렇게 허비하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니, 한 가지씩만 예시를 들고 넘어가도록 하자.


먼저 번역. 기가 막힌다. 대체 역자가 누구길래 Fisherian statistics를 무시하는 것인지. 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

왜 뚜렷한 인식론적 근거도 수학적 근거도 없는 95퍼센트 신뢰수준이라는 기준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는지는 역사학계의 오랜 의문이다.(p.41)


그러나 원문에는 저런 무책임한 말이 적혀 있지 않다. 바로 역자가 '수학적 (mathematical)'을 수식하는 'substantive'라는 형용사를 빼먹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번역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선 '상당한 수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이건 극명히 차이나는 문장인 게 명백하지 않나. 피셔 기준이 얼마나 정합적인지를 두고 논쟁이 없었을 것 같나, 왜 과학계 성과를 이렇게 무심하게 후려치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긴 뭘 알 수 없겠나. 무식해서 그렇지. 이건 무지가 아니다. 무식이다. 무식은 죄가 아니다. 다만 저작물에 이런 짓을 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라고 할 순 없겠다.


두 번째, 교열.

미국 정치 지도자들도 그것을 부인하는 입장에 섰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에서도 기업가, 은행가,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내세우는 주장을 널리 퍼뜨렸다.(p.25)


복합 명사의 띄어쓰기가 널뛴다. 무슨 문장끼리 엄청나게 떨어져 있어 수정할 여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 사실 엄밀하게는 그것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바로 다음 문장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기준인데 충족하지 못한다.


세 번째, 편집.

번역하면서 문단을 붙이거나 뗄 수 있다. 그러나 원체 긴 문단인데 관련성도 떨어지는 것을 붙이는 건 적절한 편집이라고 보기 힘들다. 편집자는 pp.40-42, 장장 세 페이지에 달하는 문단을 만들어 냈다. 너무 길어서 적기 싫다. 읽기 또한 벅찼다. 지쳐서 원문을 봤더니 딱 중간에서 끊겨 두 문단이었다. 그 두 문단을 붙일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이정도로만 하자.


기후변화라는 개념 자체는 대중들에게 오래지 않았으며 점진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이기에 얼마나 심대한 위협인지 체감하기 무척 어렵다. 대부분의 과학 교양서에서는 위험하다고 열심히 소리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 혼자만의 이야기 같다는 느낌도 들며 공감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의 여름철 기온 추세를 보면 꾸준히 더워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막연하게 더워진다는 것이지 그 실체를 명확하게 대중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의 영향이 더 적은 지역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450 ppm에 달한다면 어떨까, 2030년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한 때라면 어떨까. 지구가 지금보다 2-3℃ 더 뜨거워진다면 어떨까. 모든 책에 나오는 여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때의 환경을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면 다를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간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지구가 망하는 걸 아주 실감나게 보여준다.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내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건 100년 전에도 지구가 지금과 같은 꼴이 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 책이 조금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통 칭찬을 하기엔 부족한 점도 없지 않다. 여러 가지 중립적이지 않은 서술이 있지만 기왕 적었으니 앞서 언급한 내용을 재활용하자. 역자가 허섭하기 짝이 없는 실수를 한 그 문장은 허리케인이 심해진 것이 무엇 때문인지 논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허리케인이 심해진 것이 기후변화 탓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물리학 이론에 따라 저기압 생성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허리케인의 수가 늘거나 규모가 더 커진다는 예상과 일치하는 결과였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맞는 내용이나 이 사례에 단순히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역적으로 다 다른 요인이 있고, 어떤 곳에선 허리케인의 수에만 영향을 주고, 다른 곳에선 오히려 세기가 약해지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저자의 단호함은 도리어 이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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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 2018-09-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리뷰는 오히려 이 책의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해 준다. 리뷰를 작성한 분은 촛점 흐리기를 사용해서 예비독자들에게 책의 가치를 떨어 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지만 리뷰를 보면 이 책의 주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일부 번역 교열의 실수나 논리의 지나친 비약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언급 정도로 그칠 일이지 리뷰의 주제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왜? 이 책은 교양서이지 전문과학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MIO 2019-03-04 00:28   좋아요 0 | URL
미안합니다. 굉장히 늦게 보았네요. 초점 흐리기나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하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리 읽힐 수는 있다고 이해합니다. 애시당초 이 책은 한 곳에 너무 초점이 명확한지라 다른 쪽이 부옇게 나오고 있어서 제가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책이 어느 한 지점에 있어 분석적이고 전문성을 갖는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필드에서는 그 반대쪽을 이렇게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로 인해 이 책의 가치가 다른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목적의 서적보다 가치가 낮은 것이지 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정공 씨는 어찌 받아들일지 몰라도 이론 수준에 머무르는 지식을 단순히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려거든 여러 합당한 전제 조건을 통과한 것만이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혹 그런 것들이 전공자, 전문가에게 읽힌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책이 교양서이기 때문에 그런 책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사려깊이 생각해서 결과물을 내놨어야 합니다. 특히 fisherian 통계학을 무시한 부분은 이게 과학 책은 맞나 의심스럽더군요. 누구에게 추천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그 기회를 쓰레기통에 넣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의 책이니 그런 행동을 취할 것이고 그에 따른 글을 쓴 것입니다. 정공 씨가 쓰신 글에 비해 제가 너무 과도한 노력을 쏟은 것 같아 이것참 아깝네요. 혹시라도 보시거든 좋은 하루 되세요.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 역사적인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크 캐스터.사이먼 정 지음 / 현암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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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법을 담당하는 게 미래에도 여전히 긍정적일지,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일지 생각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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