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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 눈꽃처럼 살다 간 소녀, 아야의 일기, 개정판
키토 아야 지음, 정원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1월
평점 :
저자 키토우 아야 (木藤亜也)는 폴 모리아의 토카타를 좋아한다고 한다. 자신의 문학적 소양과 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오히려 어릴 때 적은 일기에 더 드러나고 있는 게 뚜렷하여 '아쉽다'. 나는 리스트 (Franz Liszt)의 나단조 곡들을 들으며 그의 삶을 곱씹었다.
지금까지는 여동생이 심술궂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실은 다정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남동생은 나를 두고 척척 앞으로 가 버리는데, 여동생은 더딘 나랑 보폭을 맞춰서 걷는다. 그리고 육교를 건널 때는 가방을 들어주고, "언니는 손잡이를 잡아."라고 말해 준다.(p.23)
엄마가 의사 선생님께 내 상태를 설명했다. 넘어질 때는 보통 팔을 앞으로 뻗어 몸을 보호하는데, 그러지 않고 얼굴을 그대로 땅에 부딪쳐서 턱을 다친 것,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아서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 살이 빠진 것, 동작이 둔하고 민첩하지 못한 것 등. 엄마가 설명하는 내용을 듣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늘 바쁘게 지내는 엄마가 이렇게나 자세히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니……. 엄마는 내 모든 걸 꿰뚫어 보고 계셨구나.(pp.26-27)
내가 죽을 둥 살 둥 공부하는 건 이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한테서 공부를 빼면 불편한 몸만 남을 뿐.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외로워도 힘들어도, 이게 현실인걸. 머리는 나빠도 좋으니 제발이지 몸이 건강했으면…….(pp.49-50)
학생수첩 외에 신체장애인수첩을 받았다. 척수소뇌변성증.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운동신경을 지배하는 소뇌의 세포 움직임이 약해지는 병이라고 한다. 한 100년쯤 전에 처음 발견한 병이란다. 이 병은 왜 나를 택했을까? 운명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p.53)
"절대로 무리하지 마. 택시 회사에는 엄마가 설명해 두었으니까 너는 택시비를 내지 않아도 돼."
엄마, 난 꼭 돈 먹는 벌레 같아요. 언제까지나 부담만 주는 아이 같아요. 엄마, 미안.(p.55)
장애인도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마음을 지녔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편할 뿐이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지려면, 건강한 사람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무언가를 익혀야 한다.(p.69)
특별활동 시간에 임원과 각각의 학급 일을 맡아서 할 담당자 선거가 있었다. 반 학생 수는 마흔다섯 명. 담당자로 선출된 건 마흔네 명. 나 혼자만 아무 일도 맡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난 천사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자. 떨어진 휴지를 주울 수도 있고, 창을 닫을 수도 있어. 하려고만 하면 할 일이 얼마든지 있거든.(p.69)
히가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정신 바짝 차리고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희망을 남겨 놓는 게 필요했다.(p.102)
자연히 나아질까? 17살이 되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싸워야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까? 나는 엄마의 지금 나이인 42살이 된 나를 상상할 수 없다. 히가시 고등학교를 2학년 때 그만두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듯이 42살까지 산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불안하다. 하지만 살고 싶다.(p.127)
초등학교 때는 크면 의사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대학에서 복지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히가시 고등학교 때는 문학 계동으로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바뀌어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은 한결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졸업한 후에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주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손을 잡아 사람의 따스함을 전해 주고 싶다.(p.139)
눈물을 참고, '엄마, 다시는 걸을 수 없어요. 붙잡고 서려 해도 설 수가 없어요.'라고 종이에 써서 문을 열고 내밀었다. 내 얼굴을 보여 주는 것도,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워서 얼른 문을 닫았다.(p.219)
화장실까지 3미터를 기어서 간다. 복도가 싸늘하다. 내 발바닥은 부드러워서 손바닥 같다. 반대로 손바닥과 무릎은 발바닥처럼 딱딱하다. 보기 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유일한 이동수단이니까.
뒤에 인기척이 났다. 기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기어오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으뜨리면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단번에 터져 나와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게 내버려 두었다. 엄마의 무릎이 내 눈물로 흠뻑 젖고, 엄마의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p.219)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