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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올 여성들에게 - 페미니즘 경제학을 연 선구자, 여성의 일을 말하다
마이라 스트로버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스트로버는 페미니즘 경제학을 연 선구자 일뿐 아니라 삶 자체가 시대의 편견에 대한 저항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경제학은 남성이 독점해온 영역이었다. 따라서 여성이 교수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독신이 아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여성이 교수가 된 경우는 전무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강사와 조교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무엇보다 조교수는 정규직이고 승진하고 종신직으로 갈 기회도 있는 반면 강사는 그저 강사일 뿐이고 해마다 새로 임용되어야 하고 고용의 안정성도 없었다.
저자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으며 그 책의 메시지를 명확히 파악한다. 바로, 여성은 언제나 남성 다음의 존재였고 여성이 누리는 지위를 바꾸려면 사회 전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로 남성과 여성의 차별적 대우에 대하여 연구한다. 그 결과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백인 여성은 대략 60센트를 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금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1970년대에는 이런 연구가 거의 없었다. 나가아 성별 직종 분리에 대하여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여성과 남성은 왜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가? 남성이 일하는 직종의 임금이 여성이 일하는 직종의 임금보다 높은 까닭은 무엇인가 남성은 임금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어떻게 독점하는가? 여성은 남성이 직업에 정말 종사하고 싶은가, 아니면 전통적으로 여성이 종사해온 직업을 더 선호하는가? 돈을 더 적게 주는 일자리를 선호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책 후반부에 나온다. 일단은 직업에 본질적으로 남자일 혹은 여자일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선호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직종이 임금이나 승진 기회에서 매력도가 떨어지면 남성은 다른 직종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즉, 직종 변화의 동인은 남성의 선호이지 여성의 선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여성이 그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사회에 나와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가 어릴 때부터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안정을 남자에게 기대면 안 돼."라고 가르치셨다. 이런 가르침들이 바로 그녀의 학자로서의 연구와 페미니즘에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당시 코넬 문리과대학은 60명 중에 여학생은 15명만 뽑았다. 성 구분 없이 성적이 좋은 학생들 60명을 선발한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정원을 다르게 둔 것이다. 지금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시스템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보편적 시스템이었다. 저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코넬에 입학한다.
저자가 다니던 시절 코넬대 학부생 중에 여학생은 겨우 25퍼센트에 불과했다. 규칙도 차별적이었는데 남학생은 아파트에 살 수 있어도 여학생은 그럴 수 없고 무조건 기숙사에 살아야 했다. 여학생은 통금 시간도 엄격하여 저녁에 외출하려면 등록해야 했고 주말 동안 기숙사를 떠나려면 부모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저자는 가장 놀라운 규칙은 바로 영하 7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바지를 입을 수 없는 규칙이었다고 한다. 물론 남학생은 이런 규칙이 없다.
터프츠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다섯 명 중에 저자가 유일한 여자였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하버드에 박사과정을 지원하고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에서 교수는 직접적으로 저자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를 원하냐고 물어본다. 저자가 그렇다고 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거라면 경제학 박사 학위는 왜 따려고 하나?"
지금도 이렇게 앞뒤 꽉 막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저자의 시대처럼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시대가 바뀐 것만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더 변화되어야 한다. 이런 이들이 다른 사람을 뽑고 평가하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는 사회가 훨씬 건강한 사회이다. 저자는 하버드에 당연히 떨어졌는데 놀랍게도 MIT에서는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저자의 남편 샘이 영국 옥스퍼드에서 1년 동안 일하게 되어 MIT 입학 허가를 거절하게 된다.
"슬프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MIT의 입학 허가를 거절했다. 샘과 내가 명시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행동이 분명히 보여주었다. 샘의 커리어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이후, 결국 MIT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물론, 저자가 MIT에 들어간 것도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첫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교실에 여성은 그녀 혼자였다. 당시 경제학 박사과정 동기 서른 명 중에 세 명이 여성이었는데 결혼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집안 일과 육아, 공부를 모두 병행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데, 저자는 그 모든 것을 해낸다. 남편 샘도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 누구에게도 가사 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남편은 집안 일과 육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모든 일을 저자가 도맡아서 해결한 것이다. 둘 다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공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돌아보면 내가 아무 의문 없이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더구나 나는 아빠가 집안일을 꽤 많이 하는 것을 보며 자랐고, 할아버지도 가족이 많이 모여 저녁을 먹은 뒤에는 설거지를 했다. 하지만 아빠와 할아버지는 의사가 아니었다. 나는 의사가 될 남자와 결혼했다. 샘에게 집안일을 좀 하라고 부탁할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부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국방부 일자리가 나서 지원하게 되는데 면접에서 대놓고 여성에게 줄 일자리는 없다고 말한다. 아니, 그럴 거면 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저자는 책에 적고 있다.
"노동경제학자가 할 일은 없어요. 그리고 여성에게 줄 일자리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요? 폭격의 비용편익분석을 한다고요. 이런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아니겠죠. 그런 일을 원하는 여성은 없으니까요. OEO 면접을 보고 빈곤과 전쟁이나 도우세요. 그게 여성이 할 만한 일이에요."
저자는 여러 번의 좌절을 거치며 결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GSB)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명된다. 동시에 버클리에서도 조교수로 제안받지만 스탠퍼드가 집에서 10분 정도의 거리라서 매주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을 벌수 있기 때문에 스탠퍼드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당시 스탠퍼드 종신교수 트랙에서 여성은 5퍼센트에 약간 못 미치고, 정교수 중 고작 2퍼센트가 여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1970년대 들어 조금씩 여학생 비율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여학생 비율이 늘어난 것은 GSB뿐만 아니다. 1971년 상위 9개 경영대학원 입학생 가운데 여성은 8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75년에 이들 학교의 MB 과정 학생 중 13~33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조교수가 되어 강의를 맡았지만 여전히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수업 첫날 남학생 하나가 일어나 "당신 같은 사람에게 중요한 필수과목을 들으려고 학비를 내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나갔다. 이어 두 남학생이 따라 나갔다. 이것 말고도 무례함, 적대적이고 반지성적인 코멘트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내고 저자는 마침내 종신 교수가 된다.
저자는 페미니즘 경제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페미니즘 경제학의 핵심 사상은 시장의 프로세스나 소득보다 인간의 복지와 물적 충족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데, 노동의 젠더 분업이 경제적 분석의 근본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페미니즘 경제학은 결정적인 경제 공헌이 무급 노동, 특히 아동과 환자, 노인을 위한 돌봄 노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일이 그 사회적 공헌에 비해 훨씬 적은 보상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저자는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고 책에서 이야기한다. 여전히 스탠퍼드 여성 교수 비율은 25퍼센트 정도로 매년 0.5퍼센트 정도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여성 교수가 절반이 되려면 50년이나 더 걸린다고 지적한다. 조금씩 성차별이 줄어들지만 지금 속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예외적으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좋은 건강(필요할 때 좋은 의사와 건강보험에 접근한 것을 포함해서), 지적 자원, 충분한 에너지, 적당한 경제력을 갖춘 헌신적인 부모님, 평생 가는 영적, 현실적 가치관을 심어주신 조부모님이 있었다. 이중 어느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 질문하는 이들도 비슷하게 운이 좋은지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여성이 사회적 성취와 성공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개인의 성실함과 끈질긴 노력, 효과성만으로는 직업에서 형성성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힘을 얻으려면 우호적인 법적 환경,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사회 이데올로기, 여성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제도, 여정 내내 손을 내밀어 주는 남성과 여성 동지에게도 의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