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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화된 신
레자 아슬란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이슬람교였던 저자는 십 대에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후 다시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그는 석사는 하버드대에서 신학으로 박사는 캘리포니아대에서 종교사회학으로 받은 종교학자이다. 저자는 신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서두에 밝힌다. 왜냐하면 이를 밝힐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어 신앙은 순전히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인다.
"이 책은 우리가 신을 어떻게 인간화해왔는지를 다룬 역사인 동시에, 인간의 강박적 욕망을 신적인 것에 억지로 떠안기는 충동을 중단하고, 신에 대한 '범신론적' 견해를 더욱더 발전시키자고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을 우리 형상대로 만들었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려주려고 썼다."
종교의 기원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꿈에서 본 환상, 자연과 조우 혹은 고인이 된 조상에 대한 사색 등 다양하다. 저자는 무엇이든 간에 이 기원들의 공통점은 바로 '종교가 대답하기 어려운 의문의 답을 구하고, 위협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뒤르켐은 종교가 사회적 결속 수단으로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론은 종교적 충동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는 본질적으로 통합하고 결속하는 힘이 없다고 말하며 이 이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종교는 포용과 배척이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양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선사시대의 결속은 혈연이 기반이지 종교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종교적 충동의 기원에 대해 합리적으로 여겨지고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이 이론들은 종교가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생겨났느냐보다 종교가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종교와 관련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증거에서 확인되었듯이 종교가 사람을 선하거나 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종교가 당연한 역할인 양 우리 행동을 단속하고, 사회에서 협력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종교가 다른 사회적 기제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타심을 향상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에 도덕적 행위를 유도하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원천적으로 사회에서 협력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에 대한 우위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종교가 반드시 마음을 달래주고 영혼에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종교가 기계적으로 불안감을 줄여주고 번식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종교가 적자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인지과학자들은 종교의 기원을 진화론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답을 생각해낸다. 그것은 종교가 진화적 적응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진화적 적응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인지과학은 종교는 신경학적 현상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뇌에서 종교적 충동의 기원을 추적해야 한다. 나아가 종교의 역사에는 바로 신인(신인 인간)이라는 반직관적 개념이 있다고 설명한다.
"'과민성 매개 탐지 장치' 덕분에 우리는 자연현상에서 어떤 힘을 행사하는 매개를 민감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마음 이론 때문에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상을 '인간화'하는 본질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럴진대 어떻게 우리가 신을 인간의 형상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자신이 우주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이해하는 창이다. 인간이든 아니든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것에 우리는 개인적 경험을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를 인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신까지 인간화한다."
"신적인 존재를 우리 형상대로 만들어내려는 무의식적인 인지적 충동-신적인 존재에 우리 영혼을 부여하려는 충동-으로 시작된 것이 그 후로 영성이 조금씩 발달한 1만 년 동안 신을 더욱더 인간에 흡사하게 만들어가려는 의식적 노력으로 변해갔고, 마침내 신이 그야말로 인간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고대 신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어디에서나 '탈인간화'한 신은 극소수였다고 지적한다.
종교가 여러 모양으로 발현된 건 수십만 년 전부터였는데, 일신교라고 불릴만한 종교는 기껏해야 3,000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일신교의 배타적 성격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택일신론이 성공한 이유는 신적인 존재를 인간화하려는 결과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바로, 현실에서 메소포타미아 독립적인 도시국가가 절대 권력을 왕에게 양도하듯이 신들도 특정한 신을 절대적 통치자로 떠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인들과 성경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대 이집트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발굴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몇 세기 전부터 학자들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두 신을 섬겼다는 걸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세 오경은 짜집기 작품이라고 말하며 창세기 1장과 2장만 해도 두 가지 창조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한다. 또한 이스라엘은 '엘'을 최고신으로 섬겼지만 실제로 가나안인과 똑같이 '신들'을 공유했다고 설명한다. 즉, 이스라엘 왕국이 야훼 숭배를 했지만 이는 일신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바빌론 유수로 정체성 위기가 오자 바빌로니아에 당한 재앙적 패배를 합리화하려고 일신교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바빌론 유수에서 탄생한 신은 새로운 종류의 신, 즉 단일하면서도 인격화한 신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았지만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든 단일한 신이었다. 또 인간의 좋고 나쁜 감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원하고 분할되지 않는 신이었다."
저자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신격화가 다른 사례와 다른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대 근동의 다른 모든 '신인'은 많은 신 중 하나가 취한 인간의 다양한 형상 중 하나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예수는 우주의 유일한 신이 취한 단 하나의 인간적 형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의 원로들은 유대인의 일신론을 완강히 고집하는데 이는 신학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고수함으로 주교 한 명의 지배 체제를 합리화해주었다. 하나의 신, 하나의 주교를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는 범신론을 다루는데 '우리가 신을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려는 인지적 충동을 갖게 된 전적인 이유가 우리 하나하나가 신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 '두려움과 근심이 아니라 우주의 움직임에 대한 경외감과 경이감에 신을 섬긴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선택은 당신 몫이다. 신의 존재를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을 정의해보라.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신화 속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본받아 금지된 과일을 먹어보라. 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