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철학 백과사전 - 만화보다 더 재미있는 철학 이야기 세계철학 백과사전 1
샤를르 페팽 글, 이나무 옮김, 쥘 Jul 그림 / 이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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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역발상과 어울리는 말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에 난제에 도전한 철학자들은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사유를 사상이라는 딱딱한 말을 써가며 머리로 외우고 싶지는 않다. 발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 그에 어울리는 책이 뭘까? 하다가 발견한 이 책. 거창하게 백과사전이란 제목이 붙여있다.

 

몇 백 페이지의 책 한 권에 동양 철학자들 몇몇을 비롯해 유명한 서양 철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셔 놨으니 백과사전이라 부를만하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방대한 백과사전을 몇 컷의 만화로 그렸다는 점이다.

 

책을 쓰고 그린 두 인문학자의 기발한 발상은 철학에 접근하는 방법에 재미를 살린다. 플라톤을 동굴이란 나이트클럽의 주관자로 내세워 그의 이데아를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에스프레소와 설탕도 세계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기적이라며 모든 것을 다 가진 냥 흐뭇해하는 에피쿠로스를 혼자 잘난 척한다고 말한다.

 

붓에 잘 매달려라. 사다리 치운다. 하고는 정말 사다리 치워버리고 헤헤거리는 에라스뮈스를 풍자한 그림도 탁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모습은 어떤가. 이성으로도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답게 신앙에 이성의 옷을 껴입고는 변신한다.

 

이들이 한 장의 만화 안에 담은 촌철살인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키워드처럼 작용한다. 철학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주장했습니다,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칠판 한 가운데다가 핵심 키워드를 적어 이게 무얼 뜻하는 걸까요?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묻는 방식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다음, 재치 있는 해설을 뒤에 붙인다. 또 좀 더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부록을 마련하여 철학자들의 생애와 철학을 요약해 놓는다.

 

요즘 읽은 책들에서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인문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러고서 원문으로 보면 좋겠지만 번역서도 나쁘지 않다고 덧붙인다. 맞는 말이다. 근데 정신적 훈련 없이 무작정 덤빈다면 관심이 부담으로 작용될 것이다. 그래서 수준에 맞는 책이 낫겠다 싶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세계철학 백과사전>. 서양 철학 입문서로 적격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될 때 참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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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다시 시작하라 - 무기력한 신앙생활이 살아나는 비결
짐 심발라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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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버린 심지만 붙잡고 있는 내 상황에 화들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초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느긋해서 이상하다. 기도에서 말씀에서 멀어져 가는게 확연히 느껴진다. 이게 영적 침체라는 건가?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로 이끌림을 받아야한다. 이를 위해 언제나 기도해야 하는데, 이런 당연한 기도가 다른 기도에 밀리고 있는 판국이다. 개인의 위기가 교회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나의 우리의 해답은 하나다. 성령으로 다시 시작하라!

 

성령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은혜로운 삶인지를 담으며 '생을 풍성히 여물게 하는 은혜의 단비'를 외친다.

 

회복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날까. 그것은 메마르고 건조한 신앙생활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책은 활기 없는 신앙생활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거짓되고 불결한 것들을 태우시는 성령님과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이해가 잘 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모두 영향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어떤 영향력에 묶이는 것은 선택인데, 부정적인 것에 휘둘리며 통제당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영향력을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바로 후자의 삶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기쁨의 삶이다.

 

목사님은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신다. 내면의 거듭남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함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도우셔야 한다. 성령님은 영적으로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눈으로 깨닫게 하시고, 쓸모없는 것들을 태워 거룩한 것들이 남게 하신다. 게워낸 곳에서 사랑이 흐르게 하신다.

 

성령님은 또한 상황에 따라 변하는 행복이 아닌 언제나 지속적인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가 구원받았고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기쁨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때때로 우리는 죄에 굴복 당해 기쁨을 잊고는 한다. 그 때의 고통도 성령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그러면서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도우시니 말이다.

 

 

세상은 우리의 기쁨을 앗아 갈 수 없지만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 주님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p100)

 

 

성령님께서 다스리시는 삶은 풍성한 은혜와 평안의 삶인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간증은 정말로 성령님만이 우리의 내면을 변화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마약, 우울증 등에 빠져 방황했던 사람들 심지어 목사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기도 받기를 거부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기쁨에 치유된 이야기는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다.

 

이 책을 읽게 해주신 성령님께 감사하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도 성경을 읽기 전에 기도조차 하지 않'던 내 모습을 회개하게 하셔서 감사하다. 지금의 침체기를 잘 극복하게 도우셔서 영적 성장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는다. 기도로 간구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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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빈 - 숙종시대 여인천하를 평정한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 숙빈 최씨
김종성 지음 / 부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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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왕의 여자>를 읽다가 보게 된 최숙빈의 일화. 몇 줄 안 되었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았고, 이 여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극적인 신분 상승의 주인공 최숙빈은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 이상으로 최숙빈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크지만 남겨진 사료와 이에 대한 연구는 변변치 않다. '드라마 동이'의 동이란 이름도 허구고, 출생지는 물론 무수리라는 신분도 추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 여인의 삶을 끌어다 책으로 재탄생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첫 장에 잘 나와 있었다. 최숙빈이 태어난 조선 후기는 서민들의 변화가 격동적인 시기였다. 부농, 부상들을 주도로 많은 서민들은 사회적으로는 신분 상승의 꿈을 실현했고, 문화적으로는 그들 본유의 서민 문화를 가꾸어 즐겼다. 그렇지만 정치적 진출은 예외였다. 최숙빈을 제외하고.

책에서는 고아 출신 궁녀로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왕의 어머니까지 된 이 여인을 '걸어서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표현한다.

 

 

이 여인의 무엇이 조선의 예외를 무너뜨렸는지, 역사적으로 재조명할 필요성이 크다. 당시의 기록, 후대 발견된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꼼꼼하게 최숙빈과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되짚는다.

 

 

최숙빈은 애기 항아로 궁에 첫 발을 내딛었다. 후에 고종이 들었다는, 왕자 이금(영조)과 최숙빈의 이야기에 추측해 볼 때 최씨는 침방 나인으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 후에야 인현왕후를 모시는 지밀 나인으로 중궁전에 배치되었는데, 두 사람의 인연은 여러 가지로 최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최씨와 숙종의 만남를 기록한 일화를 볼 때, 그녀가 얼마나 인현왕후를 따랐는지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최씨의 의리있는 성품에 숙종은 반했고, 최씨는 숙종의 신임을 받게 되면서 인현왕후와 서인 세력의 복귀를 도울 수 있었다.

 

 

최숙빈은 당쟁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었다. 치열한 궁 안에서 의탁할 곳 하나 없었던 그녀는 자신과 아들 연잉군을 보호하기 위해 당파를 이용해야 했다. 최씨는 정치적 색을 띠지 않은 무소속의 신분으로 서인의 편에 가담했고, 이는 당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장희빈 사사에 기여했던 것이다.

 

 

책에서는 당시의 당쟁사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며 남인과 서인의 대결에서 서인이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된 뒷배에는 최숙빈의 간접적인 역할이 숨어있었음을 말해준다. 최숙빈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방식을 보고 자란 영조도 노론의 힘에 의존해 목숨을 보존하여 마침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로 영조의 통치 스타일에서 최숙빈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노론 정권을 통치 기반으로 삼았지만 탕평책을 실시한 균형 잡힌 왕이었다.  

 

이렇듯 최숙빈은 현명하면서도 영특했다. 그러나 장희빈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인생도 실상 내리막길이었다. 숙종이 후궁이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이후 금하게 한 것이다. 최숙빈은 오래도록 아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렇게 외로이 지내다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얼마지 않고 병이 들어 끝내 눈을 감게 되었다. 너무 젊은 나이였다.

 

 

훗날 우여곡절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어머니를 왕의 후궁이 아닌 왕의 어머니로 기억되고자 온 힘을 쏟는다. 근 30년 동안의 반대를 무릅쓴 추숭 사업 끝에 최숙빈의 '소령묘'도 '소령원'으로 격상되는데, 이 때 영조가 남긴 묘갈을 보면 영조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아! 이십 오년 동안 애쓰신 은혜에 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붓을 잡고 쓰려 하니, 눈물 콧물이 얼굴을 가린다. 지난날을 추억하노니, 감회가 갑절이 되는구나.

 

 

 

최숙빈을 통해 조선 후기 정치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조선의 격동기를 잘 이끈 성군 영조와 정조가 최숙빈의 대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최숙빈이야말로 정말 걸어서 하늘까지 오른 여인이 맞다! 몇 구절 안 되는 기록으로 이만한 책의 분량이 나온 것은 이 여인이 한국사에 있어 반드시 살펴볼 가치 있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할 것이다. 뜻깊게 본 책이었다.(그래도 은근히...아니 좀 많이 남는 것은 생생히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아쉬움...)

 

 

최숙빈을 기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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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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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p20)

 

 

 

이 책에서 남자는 다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아버지를 가리킨다. 그는 저자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다.

 

'나'가 담은 아버지란 노동자로 소상인으로서 평생을 살면서 배운 것 없다는 열등감을 최대한 숨기고자 했으며 어색한 표준어를 쓰며 애썼던 아버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존심의 큰 문제라고 여겼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세계가 있었고, 행복을 위해 지키고자 했던 자리가 있었다.

 

그는 그가 얻지 못해 딸이 가졌으면 했던 교양과 성공을 바랐다. 딸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뒤적거리며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느끼곤 했다. 바란대로 그렇게 그의 딸은 다른 세계로 걸어갔고,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인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그 세계의 욕망'에 굴복했다. 두 공간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으며 끝내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멈춰버렸던 시점부터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기까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던 그 차이, 그것을 글로 기록했다. 아버지가 변하지 않았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라는 것과 그에게 있어 삶의 문제란 먹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또 배고프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적었다. 그가 그런 아버지라는 것을 아버지의 자리, 한때 나고 자랐던 그녀의 세계로 돌아가 담담하게 어떤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어갔다. 그것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방식인 것처럼.

 

간혹 난 내게 감동되고, 공감 되는 정도에 따라 글을 바라본다. 열린책들에서는 이 책을 개정 출판하면서 제목을 <아버지의 자리>로 내려했다고 한다. 제목이 그랬더라면 읽으며 생각했다. 아마 며칠의 잊을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을 받았지 않았을까 하고. 그 아버지를 내 아버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아버지들로 바라보면서...

 

내게도 해당되는 아버지인지 생각하며 읽었고, 덮고서도 생각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세계를 먼발치 떨어져 단순하거나 하찮은 사람들의 것으로 바라보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어린 '나'가 내 아버지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책의 제목이 <남자의 자리>이기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던 내 아버지만의 자리를 볼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뭔가를 얻은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애정과 낯섦, 저자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나도 내 아버지를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다.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과 문장들은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나 또한 살았던 한 세계의 한계와 색채를 있는 그대로 그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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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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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제목이 내용 전부를 말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욕망을 품고 산다. 죽어 사라져도 기억으로든 기록으로든 존재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인간이 품는 욕망이 정말 끝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존재하니까 욕망한다. 그러니 사랑도 욕망의 표현 아닐까.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내 존재 그리고 누군가를 통해 기억되는 내 존재…

 

이 책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욕망을 담고 있다. 남성 위주의 공쿠르 상에 반한다는 의도로 제정된 페미나 상 수상작이라 한다. 상의 심사위원이 모두 여자인데, 수상작의 작가는 남자다. 왜 그럴까 했는데, 작품 자체가 여성적이었다. 여성이 좋아할 만한 삼각관계 구도. 또 나른 나른하다고 하나? 여하튼 뭔가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필력(나한텐 좀처럼 책장 넘기기 힘든 필력이였지만). 이런 것들이 뭉쳐서 자극된 감성으로 한 여자를 욕망하는 두 남자의 흔하고 흔한 사랑 이야기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블레리오는 파리에서 프리랜서 번역가 일을 한다. 그에겐 지적이고 유능한 아내가 있긴 하지만 같이 살긴 해도 이미 벽을 둔지 오래다. 그는 따분한 일상을 깨고 다가온, 운명이라 확신하는 노라를 그리워한다. 눈앞에 없어도 블레리오 머릿속에는 언제나 노라가 있다. 블레리오가 그러는 동안 노라와 함께 살았던 머피, 하버드 출신의 경제력 좋은 증권 중개인으로 런던에 살고 있다. 어느새 머피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과거 모든 것들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믿게 한 사람.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사라졌다.

 

노라는 이렇듯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블레리오 앞에 나타나 그의 욕망에 동참하여 함께 웃고 즐기기를 하다가 돌연히 사라져 머피에게로 간다. 곧 노라는 그녀의 사랑도 진실 되기를 바라는 그러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머피에게 기대고 있다.

 

불 같고 물 같고 바람 같다. 각자의 사랑 방식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결국 이 차이가 이들을 지치고 또 미치게 했다.) 이해도 공감도 잘 되지 않는다. 특히 바람 같은 여자 노라가 그렇다. 그녀가 정말 원하는게 사랑인지 아님 자유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게 그녀의 욕망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다.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작가는 현재형으로 진행된 문장을 통해 이것을 눈앞에 생생히 펼쳐 보였다. 한편의 영화 같이.

 

생각해보니 이 책이 페미니 상을 받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때때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을 보다가 안타까운 삼각관계가 등장하면 이 사람과 잘 되면 좋겠는데 하면서도 그럼 저 사람은 어찌 되는 건지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냥 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둘 다 함께 할 수는 없나? 욕망 비슷한게(?) 생긴다. 이 책의 노라가 여성들의 그런 욕망을 대변해줬다고 해야 할까. 노라를 이해하려고 했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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