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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p20)
이 책에서 남자는 다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아버지를 가리킨다. 그는 저자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다.
'나'가 담은 아버지란 노동자로 소상인으로서 평생을 살면서 배운 것 없다는 열등감을 최대한 숨기고자 했으며 어색한 표준어를 쓰며 애썼던 아버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존심의 큰 문제라고 여겼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세계가 있었고, 행복을 위해 지키고자 했던 자리가 있었다.
그는 그가 얻지 못해 딸이 가졌으면 했던 교양과 성공을 바랐다. 딸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뒤적거리며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느끼곤 했다. 바란대로 그렇게 그의 딸은 다른 세계로 걸어갔고,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인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그 세계의 욕망'에 굴복했다. 두 공간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으며 끝내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멈춰버렸던 시점부터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기까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던 그 차이, 그것을 글로 기록했다. 아버지가 변하지 않았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라는 것과 그에게 있어 삶의 문제란 먹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또 배고프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적었다. 그가 그런 아버지라는 것을 아버지의 자리, 한때 나고 자랐던 그녀의 세계로 돌아가 담담하게 어떤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어갔다. 그것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방식인 것처럼.
간혹 난 내게 감동되고, 공감 되는 정도에 따라 글을 바라본다. 열린책들에서는 이 책을 개정 출판하면서 제목을 <아버지의 자리>로 내려했다고 한다. 제목이 그랬더라면 읽으며 생각했다. 아마 며칠의 잊을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을 받았지 않았을까 하고. 그 아버지를 내 아버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아버지들로 바라보면서...
내게도 해당되는 아버지인지 생각하며 읽었고, 덮고서도 생각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세계를 먼발치 떨어져 단순하거나 하찮은 사람들의 것으로 바라보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어린 '나'가 내 아버지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책의 제목이 <남자의 자리>이기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던 내 아버지만의 자리를 볼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뭔가를 얻은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애정과 낯섦, 저자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나도 내 아버지를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다.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과 문장들은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나 또한 살았던 한 세계의 한계와 색채를 있는 그대로 그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