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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ㅣ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십년 전에 나온 소설이 올해 번역되었다. 당시가 인터넷이 이제 막 보편화되는 시기라 지금 읽기에 어색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작가가 고발하는 가상과 현실이란 주제는 여전히 화제 중의 화제다.
중년의 남자가 살해된다. 경찰은 이 남자가 인터넷상에서 ‘가족 연극’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상의 가족들을 출두시켜 심문한다. 이것을 취조실의 유리창 밖으로 남자의 딸이 지켜본다. 남자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을까.
R.P.G의 약자는 ‘실제 상황을 상정하여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문제 해결법을 터득하도록 하는 학습법, 실제 역할연기법(Role-playing)’이라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언뜻 보기에 피해자의 가족 연극이란 이해 불가한 취미를 가리키는 말 아닌가 싶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경찰이 계획한 수사법을 의미한다.
경찰의 계획이 성공해 범인과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놀랍지 않았다.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현실을 도피했던 모습이 경찰이 사실은 재연한 연기였다는 것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냥 허탈감만...
허탈감을 뒤로 하고 마지막 인용된 묵직한 시를 계속해서 읽었다.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이 시에 다 들어 있는듯 했기 때문이다. 범인의 마지막 심정까지도 느껴졌다.
나비(사이조 야소)
이윽고 지옥에 내려갈 때,
그곳에서 기다릴 부모와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랴.
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
일생을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것을 쫓았노라고.
(P284)
<R.P.G>에서는 그렇게 오로지 외곬으로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려 한 인물이 나옵니다. 정신없이 쫓아던 나비. 그러나 결국 그 끝에 있는 것은 잔해뿐이었지요.
복잡한 사회에서 내 이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 타협과 사랑으로 마찰을 줄이는게 공존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타협할 의지가 없고 나에 맞게끔 굴복시키고자 한다면 그 관계란 파경에 이를 것이다. 이런 비극이 가족 안에서 벌어졌다. 그들이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최악이었다.
“다소의 환상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준다면, 별개의 문제입니다.” (P237)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P149)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조금의 그릇된 생각이 지금의 비극을 낳게 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가족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가족이 나를 위해서 살아야하는지 라는 질문에 잘못된 답을 찾은 그들이 너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