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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고 역사를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는 한국사를 유독 좋아했었고, 성적 또한 좋았었으며 한때는 사학과를 가볼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읽었던 책의 영향이 컸을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모 출판사에서 나온 위인 전기 30권짜리를 수없이 읽어왔으며, 모 출판사에서 나온 만화로된 한국의 역사 18권짜리를 100번도 넘게 읽었던거 같다. 그러다보니 선사시대부터해서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를 지나 현대사까지 전체적인 줄기가 머릿속에 잡혀있었던거 같다. 그 외에도 우리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의 역사관이 자리잡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좀더 깊숙한 것들 그리고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각의 책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일까라는 것이었다. 랑케로 대표되는 단순히 사실만을 기록한 역사보다는 E.H 카로 대표되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저술된 역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또 역사라는 것이 아무래도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교과서에 실려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중에서 부정되고 반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내용도 그러한 것들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신' 이번에 만나게 된 책 제목이다. 특별히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팩션소설이었기에 읽고 싶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쓰여진 팩션소설은 나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거 같다. 이 책이 처음 내 손에 들어왔을때 책 띠지에 쓰여진 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 조선 영조임금의 아들인 사도세자는 영조의 미움을 사 뒤주에 갇혀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니 단순히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무슨 근거가 있으니 띠지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리라. 과연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그러나 생각하면서 아무생각없이 표지를 넘기는데 저자가 외국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산에서 태어나 7세때 벨기에로 입양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역사에 대해서 쓴다는게 왠만해서는 쉽지가 않을터인데 이런 책을 썼다는게 책을 읽지 않아도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한편으로는 선입견이 없이 객관적으로 쓸수 있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대략 18세기경에 쓰여진 '진암집'이라는 책을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 책을 통해 당시 영의정에 올랐고, 불천위에 봉해졌던 진암 이천보가 자살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의정이라면 최고관직인데 그런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게 그것도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에서 흔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의 다른 두 재상 이후와 민백상 역시 자살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자는 거기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삼정승의 자살 이유를 찾게 되고, 거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결국 책 한 권을 펴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 책에는 영조 치세를 배경으로 하여 사도세자를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삼정승을 비롯해서 이천보의 양아들인 이문원과 그의 두 친구 조일천과 서영우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가 당파싸움이 심했고, 후계구도를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 벌어지는 와중에 왜 삼정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사도세자는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삼정승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보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내가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실록에는 이천보가 병사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 포털사이트의 백과사전에도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또 다른 정승인 이후를 같은 포털사이트의 백과사전으로 검색해보면 '세자(장헌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이 일어나 왕이 추궁하자 책임을 통감, 이천보 등과 음독 자결했다' 이렇게 나와있다. 같은 백과사전에 이천보의 죽음이 지병과 음독자결 이렇게 두가지로 나와있는 것이다. 물론 실수로 그렇게 올려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여러가지 역사 관련 서적들을 접해오면서 역사라는것의 진실성에 물음표를 달게 되는거 같다. 역사라는게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과정이고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인데 그냥 좀 씁쓸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확히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떻게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사건이 당시의 권력자들에 의해 거행되었고, 철처히 은폐되었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만들고, 나와는 뜻을 달리하는 다른 사람을 무참히 짓밟는 그런 속성을 지녔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할 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인데 말이다. 이 책 뒤표지에 소설가 박현욱씨가 쓴 문구가 가슴에 와닿는다. '사람을 죽이는 정치는 잘못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 저자가 대단한거 같다. 그것도 외국인으로서 말이다. 비록 벨기에 인으로 자라났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쨌든 작가의 대단한 이야기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역사는 나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질 학창시절에 영어, 수학 등에 밀려나고 있고, 국사는 그냥 시험을 위한 형식적인 과목이 되고 있는거 같다. 이러한 책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흥미진진한 책을 만날 수가 있어서 좋았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