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한국 토박이로서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가난한 소시민 집안에서 자랐다. 10대 후반에는 TV나 인터넷, 책에서 "꿈은 이루어진다.", "말하는 대로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라" 등등의 희망적인 메시지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말들을 지심으로 믿었다. 그렇게 20대가 되었다. …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꿈이나 꾸면서 그 말들을 참 열씸히도 따르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말들과 판이하게 달랐고, 29살인 지금은 20살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백수가 되어있었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일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29살, 10년 (120개월) 동안 내가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평생 이렇게 한량으로 지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대충 주말, 파트타임, 단기 아르바이트 등 전부 합쳐 55개월 (4년 7개월) 정도 일했더라. _P 021

30살이 가까운 성인이 돼서도 10대 때와 변함없이 부모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 비참한 거더라. 나이 먹을 만큼 먹어 놓고도 여전히 자기 인생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삶을 지불하고 나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_P 025

20~24살 조금더 놀고, 이 고민 저 고민 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오래 딴짓을 해도 여전히 20대 초반일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분득 내 나이가 몇인가 생각해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이 돼 있었다. … 20대 초반에 쌓았어야 할 스펙과 경력이 텅텅 비니까 20대 중반부터 줄줄이 안좋은 상황이 터지기 시작했다. _P 104

예전에 나는 20대 후반에도 20대 초반처럼 능숙하게 할줄 아는 일이 없어도 신입이어도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전공으로 배운 것도 없다 보니 언제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3살에 하는 공부, 하는 일들이 20대 후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뭔가 하나를 특별히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_P 108

나는 지금 동갑 친구가 0명,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은 1명이다. 대인관계가 1명이라는 소리다. 너무 심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가치관 차이, 오로지 가치관의 차이로 하나 둘 멀어져 갔다. _P 198

주변에 꼭 이런 사람 있다.

1. 기승전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인 사람

2. 심하게 부정적인 사람

3. 불행한 얘기만 하는 사람

그들은 일상에서 생긴 작은 스트레스부터 저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있던 시커먼 고민까지 잔뜩 쏟아 놓고는 한다. _P 202

누구든 무조건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게 되어 있다.

그 책임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든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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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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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경영서적. 하지만 회사 독서통신으로 『90년생이 온다』를 읽은 이후, 경영서적도 꽤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이번에 흐름에서 출간된 ★대작☆ 『룬샷』까지 손이 갔다. 룬샷, 이 책은 빌게이츠를 비롯하여 노벨상에 빛나는 대니얼 카너먼, 로버트 러플린, 에릭 메스킨등이 강력 추천하는 도서이기도 했다.


저명인사들의 어마어마한 추천사! 이 중에는 정재승 교수님(과학무식자 피로를 과학에 관심을 갖게해준 멋진 교수님! 흔한 알쓸신잡 애청자1)도 있다.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책이라고 하니, 읽기 전부터 두근반기대반! 본격적으로 읽어보려 하니, 바로 다음페이지에서 룬샷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아! 룬샷이라는 책 제목에는 별다른 생각을 안하고, 그저 유명인사들이 극찬하는 책이라는 사실에만 신경쓰고 있었다니, 조금 반성 ㅜㅜ


⑴ 룬샷 Loonshot :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고,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아이디어)


⑵ 문샷 Moonshot :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젝트, 아주 중요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많은 것을 투자한 프로젝트(아이디어)


⑶ 프랜차이즈 Franchise : 룬샷으로 탄생한 제품의 후속작 또는 업데이트 버전


이 책을 읽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 정확히는 문과형 인간들이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이 책은 일부 과학적 원리를 꺼내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듣도 보도 못한 물리학 용어 ‘상전이’와 ‘상분리’. 저자는 이 개념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나 같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 조차도 쉽게 이해했으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물리학 법칙이 일어난 곳이 조직(집단)이라고 했을 때 ‘상전이’는 유지와 변화의 경계이며, ‘상분리’는 유지와 변화의 공존. 그러니까 한 조직에서 상전이와 상분리가 유지될 때, 그 조직에서 나온 룬샷은 폐기처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지원을 힘 입어 멋진 결과물을 내고, 이는 조직 또는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 어느 집단도 동시에 두 가지 상태의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동시에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예외가 하나 있다. 앞서 말한 욕조의 물이 정확히 0도일 때 얼음 덩어리와 액체 상태의 물이 공존한다. 0도보다 조금만 낮거나 높아서 전체가 얼어붙거나 액체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상전이의 바로 그 경계에서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할 수 있다. P 034



잘 가꾸어진 룬샷 하나로 한 나라(또는 기업)의 운명이 바뀐다.


1922년 미국 엔지니어 리오 영, 호이트 테일러. 이들은 실험중 우연히 레이더 탐지기술(송/수신기)을 발견하였다. 바로 해군에게 전투에서 레이더 탐지기 사용을 제안하였으나, 해군은 즉각 거절.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다듬어서,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역시나 거절. 그렇게 시간은 허무하게 흐르다가 나중에서야, 조기경보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테스트 중이던 그날 일본군 항공기 353대가 미국 진주만을 기습공격했고, 이 날 2,403명이 전사했다.


두 엔지니어가 만든 이 기술은 룬샷이다. 하지만 룬샷은 변화/혁신의 다른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미국은 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 안정과 혁신을 공존시킬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버니바 부시는 프랜차이즈를 잘하거나 룬샷을 잘하는 것은 조직의 ‘상태’때문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부시를 선택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다. 


‘우리 육군과 해군은 다가올 전쟁을 이기는 데 꼭 필요한 기술 면에서 독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군 스스로는 제때에 그 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부시는 루스벨트에게 연방정부 내에 새로운 과학 기술그룹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부시가 수장이 되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체제로 말이다. P 056


1939년 핵분열이 발견된 이후 첫 2년간은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이게 아무런 실용적 용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군사적으로든 다른 용도로든 말이다. 새로운 유형의 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집한 과학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1941년 영국의 어느 원자 물리학자 그룹이 만들어낸 새로운 결과는 부시가 다른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부시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핸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에게 비록 핵무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독일이나 일본이 먼저 핵무기를 손데 넣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루스벨트는 부시의 논리를 받아들여 그에게 이 문제를 맡겼다. 부시는 대대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개시하고 군과 저치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를 확보한 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을 군에 이양했다. P 71~72


루즈벨트는 부시에게 끝없는 신뢰와 지원을 주었다. 루즈벨트는 새로운 형태의 룬샷(버니바 부시)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룬샷(버니바 부시)을 아낌없이 지지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정치/행정은 타격이 없도록 안정을 유지했다. 이 책에서는 버니바 부시가 룬샷을 적절하게 활용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엔 부시보다 더 뒤에있던 루즈벨트. 그야 말로 룬샷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룬샷도 함정은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룬샷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전이’와 ‘상분리’가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바로 ‘동적평형’이다. 


정말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우연의 설계자들’은 그보다 덜 화려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어느 한 룬샷을 열열히 지지하기 보다는 많은 륜샷을 육송할 수 있는 뛰어난 구조를 만든다. 그들은 예지력 있는 혁신가라기보다 세심한 정원사에 가깝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양쪽을 모두 잘 돌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지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P 79


균형을 유지해서 어느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압도하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룬샷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프랜차이즈를 도모한느 병사가 똑같이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 나약하고 모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주 현실적인 얘기이자 자주 간과되는 요소다. P 83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이전’을 경영했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자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중시했다. P 216



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쉽게 말하면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말라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를 전폭 지원하면서도, 군이나 정치/행정도 균형적으로 바라보았다. 버니바 부시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본인의 연구소 사람들을 지원하면서도, 힘을 합쳐야할 해군에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야 말로 한 팀을, 조직을 다스리는 리더들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균형을 지키는 리더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처음에는 룬샷을 발견하고, 룬샷을 지원하는 멋진 리더였더라도, 그 룬샷에 목이 메여 균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성공한 룬샷이 프랜차이즈가 되고, 다시 새로운 룬샷이 나오는 선순환. 어찌보면 좋은일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순환은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한’ 선순환이다. 


위험한 선순환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폴라로이드. 즉석 카메라라고 알려진 그 폴라로이드다. 랜드가 처음 폴라로이드를 발명했을 때는 그저 허무맹랑한 룬샷이었다. 하지만 결국 찬사를 받는 성공한 룬샷이 되었고,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랜드는 폴라로이드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폴라비전이라는 즉석 영화 상영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룬샷은 실패했다. 이미 이 당시에는 홈 비디오가 대중화되어 있었다. 홈 비디어보다 간편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들었던 폴라비전은 그렇게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현장의 병사와 벤치의 예술가 사이에 오가는 균형 있는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통해 가장 유리한 룬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오직 신성한 리더의 뜻에 따라 아이디어가 정지될 때, 팀이나 기업은 함정에 빠진다. 리더는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바다를 갈라 선택받은 룬샷을 위한 길을 낸다. 위험한 선순환의 주기는 점점더 빨라진다.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서로를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 키운다, 전지전능한 리더는 전략상의 이점을 바탕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룬샷에 대한 애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바퀴가 헛도는 일이 일어난다. P 174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줄을 잇는 것은 회사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시어도어 베일은 ‘나머지를 희생시키면서 어느 한쪽을 무시하거나 편애한다면 반드시 전체의 균형이 깨질 것’이라고 했다.P 226

균형과 소통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내부의 장벽을 극복하게 도와줄 손길이 필요하다. 어느 모세의 보좌진의 손길이 아니라, 정원사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이전되는 데 힘을 너무 받거나(추상적인 명령) 힘이 부족하면(아무 지원 없음),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도 실험실에서 썩게 도리 것이다. 그러면 조직은 그 기술을 상실하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며, 그 기술을 발명한 사람의 충성심을 잃게된다. 핵심 인재는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P 268


정말 씁쓸한 사실이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버니바 부시 같은 리더는 없다. 팀이든 부서든 본부든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리더십 관련 경영서를 그렇게 읽었음에도 깨우친게 없는건지, 아님 책을 헛으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이렇게 또 한번 좋은 리더가 어떤 리더인지를, 언제쯤 이런 리더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아님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기나 한지를 생각하며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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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힘들다고, 혹은 오늘은 이런이런 일이 있어서 매우 화가 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얼마나 잘 들어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들어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꼭 답을 내려줘야 할 것 같고, 그 상황을 분석해야할 것 같고, 잘잘못을 따져줘야 될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내 인간관계가 좁은 건가 싶기도 하고. 하 뭔가 급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야겠다 싶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 잘 될 거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그럴 듯한 문장과 서사는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읽어보시겠다면, 그저, 무심결에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 수록 상실하는 것돠 상실되는 것이 하나씩 늘어가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어떤 감정의 알 수 없는 형태일 수도 있겠고 (…)

어짜피 끝내는, 다 잘될 거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저,

"…"의 침묵과

"그랬구나. 가끔은 그럴 수 있어."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인데 말이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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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는 바람을 깎아내며 그 반동으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나도 중증외상센터도 헬리콥터가 바람을 깎아 나아가듯,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이 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축해온 선진국 표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말없이 버티다 쓰러져나갔다. 결국 이 중증외상센터 바닥은 내 동료들의 피로 물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은 해양경찰이 관할하고 있었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지시였다.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무선에서는 영공에서 나가라는 지시만 계속 튀어나왔다. P 067

가라앉는 배 주위를 해매다 항공유가 바닥을 보였다. 인근의 진도나 목포의 해양경찰 기지 또는 공항에서 급유를 받으려고 했지만 모두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중략)

-아니, 목포에 공항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수색해야 할 우리가 왜 산악지대까지 갑니까?

서신철이 씁쓸하게 말했다.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P 070

우리가 다시 바다로 날아들었을 때 여객선은 함수 부분의 푸른 바닥만 힘겹게 물 위로 내놓고 있었다.

-교수님, 여전히 사고 해역에서 빨리 나가라는 명령만 합니다. 더는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P 072

대답은 한결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인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 뿐이었다. 모두들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를 귀에 달고 있었다. P 077

-정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거 아냐? 한/미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P 082

세월호 침몰 당시, 쌍용훈련을 마치고 미7함대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함은 최정예 해상 구조대원과 구명보트까지 장착한 특수 헬리콥터 MH-60 시호크 몇 대를 사고 해역으로 신속하게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 불허 방침으로 회항했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사고 해역을 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미 해군의 시호크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정부는 사고 다음 날 그들에게 사고 해역으로부터 17마일(약27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배정했고, 생존자 구조 임무가 아닌 사체 수거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P 094

-교수님, 외상센터가 바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기관이 노동부에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진퇴양난이었다. 외상센터의 일은 줄지 않았고 줄일 수도 없었다. 나는 병원으로 오는 중증외상 환자의 수를 조절할 수 없고 병원 문턱을 넘어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전원시킬 수도 없었다. (중략) 병원의 많은 부서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부서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므로 외상센터에만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P 117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김지영은 담당간호사의 근무일정표를 더 이상 짤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김지영이 극도로 어두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전담간호사 한 명이 또다시 유산해 2주간 병가처리를 해야한다며 승인을 요청해왔다. P 295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비용을 상회한다. 소방항공대 두 세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 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P 259

나는 단 한번이라도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P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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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 두 번째 권. 읽기 까지 너무 망설였다. 『골든아워』 첫 번째 권을 읽고 난 뒤 내 마음 속에 남은 건,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한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에 대한 안타까움, 병원 정치에 대한 역겨움, 더 살릴 수 있었으나 살리지 못한 목숨들에 대한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환경에 대한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든아워』 두 번째 권을 읽기 시작한 건, 이국종 교수님이 얼마나 힘들게 중증외상센터를 지키려 했는지,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 책을 집필했는지, 조금이나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은 해양경찰이 관할하고 있었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지시였다.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무선에서는 영공에서 나가라는 지시만 계속 튀어나왔다. P 067


가라앉는 배 주위를 해매다 항공유가 바닥을 보였다. 인근의 진도나 목포의 해양경찰 기지 또는 공항에서 급유를 받으려고 했지만 모두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중략)

-아니, 목포에 공항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수색해야 할 우리가 왜 산악지대까지 갑니까?

서신철이 씁쓸하게 말했다.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P 070


우리가 다시 바다로 날아들었을 때 여객선은 함수 부분의 푸른 바닥만 힘겹게 물 위로 내놓고 있었다.

-교수님, 여전히 사고 해역에서 빨리 나가라는 명령만 합니다. 더는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P 072

대답은 한결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인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 뿐이었다. 모두들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를 귀에 달고 있었다. P 077


-정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거 아냐? 한/미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P 082


세월호 침몰 당시, 쌍용훈련을 마치고 미7함대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함은 최정예 해상 구조대원과 구명보트까지 장착한 특수 헬리콥터 MH-60 시호크 몇 대를 사고 해역으로 신속하게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 불허 방침으로 회항했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사고 해역을 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미 해군의 시호크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정부는 사고 다음 날 그들에게 사고 해역으로부터 17마일(약27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배정했고, 생존자 구조 임무가 아닌 사체 수거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P 094


2020년 4월 16일, 6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 자연재해도 아닌 인재로 일어난 대참사였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며, 정말 뼈를 씹어도 분에 풀리지 않을 정치인의 탈을 쓴 짐승들이, 그리고 기레기들이 지금까지도 유린하고 있는 사건이다.


엄청 큰 파도가 몰아쳤거나 태풍에 휘말리는 등 정말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재였다. 그것도 경색된 정치,행정권 수반과 자극적인 기자를 쓰는 기레기들이 빚어낸 인재였다. 선내에 있던 희생자들이 들었던 말은 “기다리라”, 그리고 속보로 접한 국민들이 들은 말은 “전원 구출” 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약 3백여명이 희생되었다.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하여 수 많은 의료진이, 한/미해군들이 세월호에 있던 탑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식절차’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윗선’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구조를 하려고 도착했던 사람들은 전부 사고해역 밖으로 밀려났다. 꽤 오랜시간 세월호는 바다에 떠있었고, 나를 포함하여 많은 국민들이 생중계로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누가봐도 구조가 가능해보였고, 실제로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급작스럽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실시간으로 보고있던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들을 구하지 못한 이유가 강력한 태풍 같은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라, 그저 ‘윗선’의 지시가 없어서, ‘윗선’에게 보고할 자료를 만드느라, ‘절차’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얼마나 경색되었던 나라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쓰디쓴 사례인 것이다. 한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행정력이 이렇게 경색이 되어 있는데, 일반 사조직들이야 당연지사.


-교수님, 외상센터가 바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기관이 노동부에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진퇴양난이었다. 외상센터의 일은 줄지 않았고 줄일 수도 없었다. 나는 병원으로 오는 중증외상 환자의 수를 조절할 수 없고 병원 문턱을 넘어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전원시킬 수도 없었다. (중략) 병원의 많은 부서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부서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므로 외상센터에만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P 117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김지영은 담당간호사의 근무일정표를 더 이상 짤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김지영이 극도로 어두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전담간호사 한 명이 또다시 유산해 2주간 병가처리를 해야한다며 승인을 요청해왔다. P 295



정부에서 하는 여러 정책들, 누군가에는 좋은 정책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도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많은 기업/근로자들이 반발했다. 저녁이 있는 삶, 그 누가 싫어하겠냐만은 현실이 그렇지를 못했으니까(물론 공무원/공기관은 제외). 인력부족은 당연지사였다. 그렇다고 인력을 충원한다? 대부분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비용에 민감하기에, 인력충원은 정말 ‘개나 줘버리’는 이야기다. 


혹자는 <주5일제>를 예를 들며, 이렇게라도 시행을 하면 언젠가는 주 52시간도 정착될거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나 학교 다닐때 해도 주 5일제가 왠말? 주 6일제였다. 토요일은 4교시라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고등학교 다니던 중간에 주5일제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주6일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생각보다 많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정책을 뒷받쳐주는 환경이 되어야만 제대로 굴러간다. 아쉽게도 이 나라는, 위 이국종 교수님의 외상센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정부가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그에 따른 부차적인 해결방안등이 따라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은 당파싸움을 위해 서로의 지지층을 끌어모아, 좋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나라다. 그래서 주 5일제가 아직까지도 자리 못 잡는 회사가 많다. 아니 정확히는 공식적으로는 주 5일을 지키고 있으나, 그 속을 들어가면 편법으로 주 6일이 밥먹듯이 일어난다. 분명 우리나라는 주 52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고 법적으로 못 박았으나, 아직까지 온갖 편법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비용을 상회한다. 소방항공대 두 세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 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P 259


이국종 교수님이 설립하려 한 중증외상센터, 이 센터는 이 나라에 꼭 있어야 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지자체, 정부기관 세곳이 합하여 예산이 많이 든다고 비난을 가한다. 그런데 비난을 가하면서도, 어떻게든 유지하라고 압박을 한다. 유지를 하려면 그만큼 예산이 들어가는데, 예산은 주지않고 유지를 하라고만 하니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하여 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들만 죽어난다.


참 웃긴게, 어떻게든 예산을 짜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그들은 연간 적자 15여억원을 부르는 안전 체험 테마파크를 설립했다. 누가봐도 전시행정이다. 자기를 뽑아준 지자체 시민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테마파크다. 시민들이 고혈이 담긴 1,800억원의 세금을 써서 만든, 연간 15여억원 적자를 내는 테마파크. 이런 곳은 지자체별로 참으로 많으니,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정말 필요한 시설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은 중증외상센터는 돈을 많이 쓴다고 공격하고, 정작 전시행정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우리나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단 한번이라도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P 303



이 나라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국종교수의 말처럼, 다음 세대 의사 중 누군가가 중증외상센터를 만들려고 해도 아마 성공하지 못하리라. 정말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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