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 - 타고난 기질과 성격으로 해석하는 당신 마음의 심리적 DNA
조연주 지음 / 북스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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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 책은 심리학책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 이다. 애 낳기전에는 들어보지도, 들을 일도 없었던 단어 ‘기질’. 애 낳고 나서는 아주 귀에 못밖히게 듣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왜? 요즘 육아 방식은 옛날과 달리 아이 기질에 맞는 육아라고 하니까. 금쪽이에서도 단골멘트가 있지 않은가. “엄마와 아이 기질이 너무 달라요!” 라는 오박사님 멘트!!


기질은 사전적 의미로 기력과 체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성질, 즉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생물학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천성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조절 능력과 정서적 반응의 유전적 개인차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p 024


기질은 한 사람의 행동을 특징짓는 정서적 표현과 반응양식으로 성격 발달의 기초가 된다. 이는 100% 유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스턴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 및 뇌과학 박사 사우디노의 <행동 유전학과 아이의 기질>에서 쌍둥이 및 입양 연구는 공통된 가족 환경이 기질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작다는 것을 일관되게 발견했다. 기질에 대한 상관관계가 유전적으로 무관한 입양 형제 자매의 경우 거의 닮지 않았지만, 유전적으로 관련된 형제자매의 경우 기질이 약 20% 정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가정에서 자란다고 가족 구성원들이 기질적으로 모두 닮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p 031


아이들 기질은 대체로 빠르게 적응하는 순한 기질, 고집이 세고 창의력, 호기심, 모험심이 강한 까다로운 기질,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을 만나면 뒤로 물러서고 낯선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느린 기질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이 특성이 혼합된 복합 기질을 갖는다. p 034


임신 전후로 금쪽이를 자주 보게 되면서 제발 내 아이만큼은 나와 비슷한 기질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왠만하면 아이 성향에 맞추겠지만, 그래도 나와 상극이면 서로 너무 힘들게 뻔하니까! 무엇보다 ‘기질’이라는게 부모, 자식간에도 정반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n년 간 보아온 금쪽이에서 증명해왔고, 전세계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도 오랫동안 연구하여 확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은 씨처럼 가족이나 사회적 환경이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통제적이면 자극추구 기질은 겉으로 드러나지 못한 채 내부에서 축적된다. 억눌린 자극욕구는 결국 조절되지 않는 방식으로 튀어나오며, 이때 그 표현은 당사자에게도 당황스러울 만큼 크고 예측 불가능하다. 특히 어린 시절, 통제와 억압을 자주 경험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탐색할 기회를 얻지 못해 충동 조절 능력이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 p 055


지영씨 남편이 높게 나왔던 자극추구 성향은 새롭고 신기한 자극에 끌리면서 행동히 활성화되는 유전적 경향성을 말한다. 기질적으로 자극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도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자극추구 성향이 높으면 모두 외도를 하는 건 아니지만, 충동성도 높고 반사회적인 기질까지 있었던 지영 씨의 남편은 이런 부분들이 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얼핏 정상적이고 차분해 보일 수 있으나 상대의 감정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이 끼친 해악의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배우자로서 충실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에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윤리적인 문제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 p 072



옛날 같았으면 유독 부모와 다른 성향이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넌 누굴닮아서 그러냐!” 라는 식으로, 오히려 더 아이를 통제하고 억압했다. 지금이야 이게 잘못된 육아법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과거에는 알길이 없었기에 다들 그랬다. 그게 맞는 육아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아이가 엇나가면 버티던 부모도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가 많은데, 그 시절이라고 없었을까. 심지어 그 시절엔 다자녀 가정이 많았고, 가정마다 유독 재능있는 자녀들이 한 둘씩은 꼭 있었다. 그러다보니 부모 입맛을 따라가지 못한 자녀들은 결국 소외되거나, 혹은 부모가 원하는대로 크는 대신 아이 속이 곪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다. 위 정은 씨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자신의 욕구를 끊임없이 눌러가며 자라온 탓에, 결국 욕구 조절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발행동을 하는 상황이 잦아졌다. 다 큰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그런 돌발행동들은, 사회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건 당연지사다.



그뿐인가? 지영씨 남편과 지영씨 일화도 그렇다. 알고보니 반사회적 성향이 다분했던 지영 씨 남편. 그는 자신의 행동이 배우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공감을 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지영 씨는 이런 남편의 모든 행동을 실수라고 하며, 끊임없이 안고가고자 했다. 우선 서로간의 기질이 달라, 그 간극이 큰 것도 한 몫했지만 필시 지영 씨는 자라면서 부모에게 통제되는 삶을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아이의 기질을 무시한 채, 통제 및 억압으로 일관된 육아를 하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정은 씨 같이 욕구조절을 못하는 어른이 되거나, 반대로 지영 씨 처럼 자신의 모든 행동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잘못된 일에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춘기 시기를 ‘미운 네 살’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많은 부모가 아이의 변화에 당황한다. 어제까지 순하던 아이가 갑자기 고집을 부리고, 사소한 일에도 울고 떼를 쓰며, “싫어!”, “내가 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자아의식이 싹트고, 독립된 존재로 사회와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시기, 즉 일춘기로 본다. 이 시기의 아이는 세상을 탐색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의 욕구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며 세상과 본격적으로 부딪힌다. p 038



아이의 울음, 몸짓, 낯가림, 시선 회피 같은 작은 신호는 모두 기질이 사회와 처음 만날 때의 표현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사회적으로 되도록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기질 그대로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지지의 언어다. p 041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미운 네 살’은 아이의 기질과 외부 환경 반응성이 뚜렷해지는 시기다. 다시 말하면 아이의 기질과 외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고, 우는 것은 외부 자극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아이만의 표현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나이 대의 이런 행동을, 자율성과 수치심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시기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행동들은 자율성을 향한 건강한 발달욕구이며, 오히려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미운 네 살’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정말 가슴 속에 참을 인을 수 십, 수 백 번 새기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내 자식을 괜찮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니까! 언젠가는 조금 편해지는 날이 오겠지- 를 갈망하며 오늘 하루도 참는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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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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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한 기자가 #젠지스테어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 듣는 단어! 알고보니 요즘 온라인상에서 논란중인 Z세대의 무표정 응시현상을 말하는 거란다. 기자는 이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소통방식의 변화와 코로나 펜대믹을 들었다. 


라떼는…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예전 같았으면 서로 전화로 약속장소를 잡고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게 어려울 경우 유선 통화로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런 직접 소통이 대폭 축소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 SNS를 이용하여 텍스트 소통, 비대면 소통을 주로 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이런 경향이 증가세에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비대면 기조가 확연히 증가하며, 오히려 대면소통을 어려워할 정도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젠지스테어 논란에 서있는 Z세대는 한창 바깥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교류해야할 청소년기에 코로나 팬데믹을 맞닦뜨렸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흡수했어야할 그 시기를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으로만 배웠고, 그 결과가 지금 논란이 되는 ‘젠지스테어’ 인 것이다. Z세대에서 논란이 되는게 비단 젠지스테어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초년생인 Z세대들은 취업시장에서도 여러 이슈를 불러왔다. 예컨데 회전문 취업이라던가, 의무와 책임은 무시하고 권리만 챙기려는 행동들이 그렇다. 물론 일부의 문제겠지만, 적어도 내가 회사에서 본 대다수의 Z세대들은 그러하였다. 그렇게 젠지스테어 하나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현생이 바빠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읽은 책 덕분에 다시금 Z세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책 제목은 『경험의 멸종』. 생각해보니 그렇다. 대면에서 비대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면서 사라진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경험’이다. 결국 사회 현상까지 되어버린 Z세대 문제점의 시초는 ‘경험’ 부족이었다.




다윈의 이런 독특한 연구에 동력이 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의 몸짓과 표정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읽을’ 수 있게 진화했을까? 누군가가 안심시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왜 고개를 끄덕일까? 친구의 나쁜 소식을 들을 때 왜 친구의 찌푸린 표정을 따라하는 것일까? 다윈은 신체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이 대단히 중요한 연결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은 인간의 표정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이루며, 표정을 해독하는 것은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훨씬 전부터 진화 과정에서 얻은 기술이라고 믿었다. p 052


사회학자 조너선 터너는 이렇게 말헀다. “인간은 영장류이고(진화한 유인원일 뿐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상호작용은 생물학을 초월하지 않으며, 생물학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자세, 몸짓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기호와 글을 통한 의사소통은 우리 진화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달한 것이다. 동굴벽화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진화 역사에서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시기다. p 057



대면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다름아닌 타인의 ‘표정읽기’에 있다. 사람들은 문자를 사용하여, 언어로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체언어’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신체언어는 문자언어보다 더 유서깊은, 대단히 오래되고 역사 깊은 의사소통 수단인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거나, 실소를 터트리는 등 얼굴 표정에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감정표현은 어린아이를 키울 때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보며, 감정표현과 공감을 배우고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정표현의 발달은 신체언어의 발달 뿐만 아니아, 인간관계를 맺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인과 만남에 있어서, 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 만큼 중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신체언어는 뜻하지 않는 이해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표정이 신뢰의 척도가 아닐 수는 있지만 우리가 매개된 의사소통을 선호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능력에 영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 매개 의사 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자나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신체적 신호가 사라지면 우리가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기 위해 행동을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넬대학교의 제프 행콕 교슈는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이 더 능란한 거짓말쟁이르 만든다면서 “동기 향상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상대방을 마주한 상태라면 미세한 경련이나 수상한 눈의 움직임으로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망성일게 된다. 행콕은 화면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할 경우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동기가 더 커지고 거짓말이 성공할 확율도 더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p 061



얼굴을 직접 마주할 때 주고맏는 표정과 몸짓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중요하다. 미주신경계는 인간관계를 위한 생물학적 시스템의 일부다. 공감의 원동력이 되는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 신경계는 사용하지 않으면 능력이 저하된다. “기본적 생물학적 능력인 대면 상호작용은 정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 사라진다.” 프레드릭슨의 말이다. p 063


이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확인한 나스는 아이들이 대면 상호작용을 화면 매개 상호작용으로 대체하는 것은 “정서적, 발달적 측면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하며, 그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진짜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한다.” 그는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같은 영상 채팅 서비스는 대면 상호작용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 멀티태스킹을 하는 경우가 많고 화면 상의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스는 경고한다. “대면 의사소통을 피한다면 꼭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으 ㄹ배우지 못하게 된다. …… 사회적 기술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하며, 어린이와 가족 사이에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p 077


하지만 앞서 말했든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서 인건비 절감 및 자동화라는 명목하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기계 또는 AI가 차지했다. 하다못해 식당에서 메뉴 주문도 키오스크로 하고, 공항이나 호텔 체크인도 키오스크 또는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진행한다. 이러한 추세는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나는 내 딸을 어떻게 가르쳐야할까. 그나마 다행인건 내 딸이 코로나팬데믹 이후 세대라는 점이다.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그 때와는 다르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언제 어디서는 사람들간의 표정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랜기간 비대면 생활로 인한 부작용이 이슈화 되어, 비대면으로 진행된 많은 부문이 다시 대면으로 바뀌고,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의 Z세대 문제는 어쩌면 코로나팬데믹을 살아온 세대만의 일시적인 문제가 아닐까? 전 세대를 통틀어 봤을때, 그저 딱 청소년기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보낸 일부 세대 말이다. 결론은 뭐, 내 딸은 훗날 사회에 나갔을 때,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줘야겠다는 ...뭐 그런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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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투 2025-11-18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인데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밟힙니다. p.53에 나온 다윈의 초상화는 모자를 쓴 다윈이 아니라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p.131에서 소로가 지적하는 것은 산업노동자의 처우 악화를 지적하며 ˝우리가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우리 위를 달린다˝로 기술이 주는 편리함보다 희생을 지적합니다. 번역을 보면 편리함을 강조하네요. 마무리 편집이 아쉽습니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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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 한 켠에는 유홍준 교수(현 국중박 관장님ㅋ)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가 꽂혀있다. 전 권을 다 모은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거의 다 모아버린 상황★ 물론 다 읽지는 못했다. 본디 책이란 모으고 나서야(?) 읽는 법이니까! 고로 이번에 리뷰하는 책은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 시리즈 중 하나인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기존 시리즈인 ‘문화유산’ 답사기 제목만 살짝 바뀐 여행에세이다. 아! 왠지 에세이라는 단어보다는 산문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 책은 기존에 유홍준 교수........아, 이제 국중박 관장님.... 유홍준 관장님이 써온 글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한 권으로 출간했다. 제목 그대로 유홍준 관장의 인생이 담긴 책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문화유산 한 길인 만큼 이 책 곳곳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니 뭐, 목차만 봐도 제 2장, 제 3장이 문화유산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 2장부터 펼쳤다는 뭐 그런 TMI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시각장애인들이 형상 인식을 어떻게 하는지 대략 알고 있다. 20여 년 전, 원혜영 당시 부천시장과 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으로 ‘터치 미 뮤지엄’을 세우기 위해 많은 전문가와 함께 사례를 연구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시각장애인 미술관을 현장 답사하기도 했다. 그때 추진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은 시행 단계에 들어갔을 때 안타깝게도 미술관 부지 주민들이 ‘혐오 시설’이 들어온다며 반대했다. 이후 원혜영 시장이 부천을 떠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p 070


‘터치 미 뮤지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아니 그전에,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있는 시각장애인이 평면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포스아트 기법’). 이제 시각장애인들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기뻐한 것도 잠시, 다음 장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천시민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터치 미 뮤지엄’이 혐오시설이라고 단정하고, 무작정 반대하여 결국 무산되었다고.


왜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촉각인지 미술관은 아주 당연히 비장애인들도 향유할 수 있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눈으로만 관람하던 미술작품을 만져볼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뿐인가? 미술관은 조용하고, 작품을 만지면 안된다는 엄격한 규칙 상 미술관 경혐이 전무한 어린아이들에게도, ‘터치 미 뮤지엄’은 어린아이들이 미술작품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 당연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알음알음 찾아갈테고, 그렇게 유명세를 타며 국내 유일무이 촉감인지 미술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터치 미 뮤지엄’ 무산은 님비현상, 즉 지역이기주의가 불러온 대표적인 폐해다. 님비현상 말나온김에!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반대라면 어느정도 이해라도 하겠다만, 이건 미술관이 아닌가. 미술관이 왜 혐오시설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그저 ‘장애인’이라는 단어만 보고, ‘혐오시설’이라고 낙인찍은 것인가. 정말 어리석다. 우리동네에 지어지면, 내가 진짜 주말마다 정문 닳도록 다닐텐데...!!!!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한 지 3년째 되던 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때 느닷없이 “문화재청장을 오래 지내면서 말 못할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때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은 “100년 뒤 지정될 국보, 보물이 이 시대에 창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는 대답이었다. p 102


문제는 건축이다. 현대건축의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멀쩡한 집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일이 다반사인 오늘날의 추세로는 100년을 넘길 건축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싶다. (…)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낸 ‘현대주택’이 몇 채나 지어졌을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가 넘는 집은 ‘호화주택’으로 치부하여 중과세가 부여되어왔고, 호화주택에 대한 국민 정서의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100평 넘는 복충 아파트가 즐비한 오늘날, 100평넘는 저택을 짓는다고 호화주택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될것 같지는 않다. 문화재란 최고 수준의 예술, 최고의 기술, 최고의 재력이 만나야 한다. 평범한 주택은 민속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아니다. 사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한옥들도 그 당시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 불린 호화주택이었다. p 103



백 년 뒤면 나 죽은 다음이라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홍준 관장의 한 마디를 보고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우리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백 년 뒤까지 살아남을 건물들이 없겠구나. 내가 살았던 시대를 알려줄 문화재가 없겠구나, 하고.


현재 우리나라 국보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산 중에는 조선시대 목초 건축물인 ‘한옥’이 정말 많다. 이 한옥들은 조선 양반들, 궁 밖에서 살아야하는 조선 왕실 사람들, 즉 돈 많고 권력있거나, 혹은 지역 유지들이 살던 집이다. 그 뿐인가? 명승으로 정해진 정원, 원림, 별서 등도 엄밀히 따지면 조선 양반들의 별장이거나, 혹은 대궐 같은 집 터에 조성한 정원이었다. 그저 이 별장을 집 근처에 지었는지, 근무지 근처 인지, 그도 아니면 경관이 좋은 강변에 누각만 세운 건지 등으로 나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백 년 뒤에 유산으로 칭송받을 많안 건축물이나 (개인) 정원이 있는가! 아쉽게도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현재 주거를 위한 건축물은 네모지고 길죽한 시멘트 건물, 아파트로 획일화 되어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단독주택들은 해마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없다. 전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개인 정원도 없다.


자, 그럼 별장으로 가보자. 별장은 말그대로 휴양을 위한 별도의 집이다. 누구든 별장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별장 소유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1가구 1주택’이라는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장을 소유하게 되면 1가구 2주택이 되며 그야말로 세금 폭탄이다★ 


생각해보면 주 타겟은 부동산 가치로 현금화가 가능한 ‘아파트’ 단 하나인데, 현금화가 어려운 일반적인 주택까지 가구 보유 수에 포함하다보니 별장 문화가 발달할래야 발달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1~2백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볼 문화유산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를게 없다. 오히려 21세기 조상들은 왜 남긴 문화유산이 없는지에 대한 의구심만 키우지 않을까?




※번외편, 업무 어려움을 위트있게 표현한 청장들.


“10만은 200곱하기 500해서 나온 수치인데, 인천에서 강릉까지 동서가 약 200킬로미터,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남북이 약 500킬로미터니까 (우리나라 면적이) 10만 제곱킬로미터가 되죠. (평수로 환산) 약 300억평입니다. 참고로 서울이 약 2억 평이고, 제주도가 약 6억 평입니다.” - 통계청장


“우리나라 면적 300억평 중 3분의 2가 산이기 때문에 산림청은 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 산림청장


“경찰청은 에누리 없이 300억 평의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 경찰청장


“우리나라 바다는 영토의 4배이니 해양경찰청은 1,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 해양경찰청장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있는 국보, 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로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에 가 있는 노랑부리저어새가 잘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 문화재청장


“우리 기상청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이 되지 않아요” -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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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
박진한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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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역사책, 일본사 교양서적으로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일종의 역사기행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가는 해외여행지가 일본인 만큼, 일본을 가기전에 가는 곳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 지식을 챙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일본 내에서 도쿄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성이라던가,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의 상징성. 반대로 교토 유력 관광지(거대 신사나 사찰)가 실은 한반도계 도래인이 조성했다는 사실 뭐 그런거! 이런 역사적 지식을 알고 있다면 조금 더 풍성한 일본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이 포스팅을 쓰는 본인은 일본여행 목적이 늘 한일관계유적지 답사였다.




현재 일왕가의 선조라 불리는 야마토 왕조는 7세기 무렵 수립되었다. 바다 건나 한반도는 통일신라, 대륙은 수-당 통일제국. 이런 국제 변화에 대응하고자 일 왕실에서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중앙집권적 왕권강화를 시작한다. 예컨데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 《일본서기》 등도 이 시기에 왕실 주도로 집필되었다. 이 역사서들은 천황제의 이데올로기 확립 및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집필되었기에, 허위와 과장이 넘쳐난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 위해서는, 당대에 집필된 중국 역사서나 한반도 역사서를 교차검증이 필수다.



이 책은 야마토 정권이 도읍을 정한 아스카 시대부터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당시 야마토 정권은 어느 한 곳에 도읍을 정하지 않고 현재의 나라현 일대를 전전하며 새 왕이 즉위할 때마다 새 궁을 짓고 처소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군주가 권좌에 오를 때 마다 새 궁을 지어 처소를 옮기는 관행을 ‘역대천궁’이라고 부른다. 언어학자 중에는 궁을 지칭하는 ‘미야’와 장소를 말하는 ‘도코로’의 ‘코’를 합친 ‘미야코’가 도읍을 뜻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궁을 옮기는 역대천궁의 전통에 따라 궁이 있는 곳을 도읍으로 부르던 언어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p 026



‘역대천궁’의 관행이 남아있던 당시 천황가가 아스카로 천궁한뒤, 1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이유는 아스카가 ’소가 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소가 씨는 백제계 도래인이으로 추정되며 딸들을 천황가에 시집보내고, 외손들을 천황으로 옹립하는 등 야마토 정권을 좌지우지 하던 강력한 호족이었다.



일본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동시간대 역사서인 《수서》에 따르면 수문제는 견수사에게 왜의 정치가 후진적이라고 힐난했다. 이러한 《수서》에 실린 기사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왜는 쇼토쿠 태자를 중심으로 한 ‘관위12계’, ‘17조 헌법’등 정치개혁을 단행한다. 견수사 보고에 따라, 진행된 정치개혁으로 추정된다. 물론 《일본서기》에는 《수서》에 적힌 수 문제의 힐난은 적혀있지 않다. 이유는 앞서 말한 역사서 편찬 목적 때문이다. 천황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집필된 역사서인데, 수 문제의 일왕가 비난을 적는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가 씨를 멸망케 한 잇시의 변은 야마토 조정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살해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고교쿠 여왕은 정변을 주도한 동생 고토쿠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잇시의 변 당시 또 한 명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나카노오에 왕자가 소가 씨를 대신해 야마토 조정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새로 즉위한 고토쿠 대왕은 나카노오에 왕자 드으이 도움을 받아 일련의 정치 개혁을 안행했다. 먼저 ‘다이카’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개신에 관한 조’를 내려 호족 세력이 보유한 인민과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국가로 이양하는 대신 이들에게 식봉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공지공민’에 관한 원칙을 표명했다. p 044




고토쿠는 아스카를 벗어나 나니와(현재의 오사카)로 천도했다. 이 과정에서 고토쿠와 나카노우에 황자의 의견이 엇갈렸고, 나카노우에 황자는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함께 아스카로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고토쿠는 갑작스레 사망하고, 왕위는 나카노우에 황자의 모친이자 전 천황인 고교쿠 여왕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렇게 다시 아스카로 천궁하였는데, 다시 아스카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으니 다름아닌 백제 멸망이다.



당시 한반도에선 나당연합군 전선이 고구려와 백제를 몰아내고 있었다. 백제 멸망시점이 바로 고교쿠 여왕이 재차 왕위에 올랐던 시기다. 백제와 친밀했던 천황가는, 백제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한반도로 파견했다. 결론만 말하면, 백촌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백제 부흥군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천황가는 혹시나 나당연합군이 일본까지 처들어올까 두려워하며, 한반도와 인접한 지역에 산성을 쌓고, 아스카보다 조금 더 내륙에 있는 지역으로 천궁한다.



여기서 질문! 고대 천황들이 도읍으로 정했던 아스카는 고대도시인가?


아스카가 고대도시가 맞는지를 논하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도읍과 고대도시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왕궁만 있어도 도읍이 성립할 수 있으나, 고대 도시는 다르다. 고대 도시가 되기 위해선 도시적인 경관과 함께 강력한 왕권이이야 말로 제일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아스카 시대 일왕들은 여러 호족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며, 왕권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스카는 일본 고대국가의 ‘도성’이지만, ‘고대 도시’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헤이조경은 율령국가의 수도로 7대에 걸쳐 784년까지 불교와 함꼐 번성을 누렸다. 그 사이에 쇼무 천황은 역병과 내란을 피해 일시적으로 구니경, 나니와경, 시가라키경으로 거처를 옮긴 적도 있다. 그렇다고 천도를 단행하지는 않았다. 율령제가 정착하면서 관인의 숫자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이전처럼 간단히 천도를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세기 후반 새로이 천황에 즉위한 간무는 조정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천도를 지시했다. 비대해진 사원세력을 정리하고 후지와라 씨와 같은 귀족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도를 선언한 것이다. 여러 우여곡적을 겪은 끝에 결국 794년 지금의 교토에 해당하는 헤이안경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헤이안경으로 천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헤이조경 일대는 다시 논밭으로 되돌아갔다. 심지어 궁궐 터의 위치조차 잊혔다. p 096




백촌강 전투 이후 왕실은 후지와라 경으로 천도한다. 후지와라 경은 중국의 도성제에 기반하여 조성된 도성되었다. 이미 동아시가 각국에선 도성제를 갖추고 있었기에, 어찌보면 조금은 늦은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지와라 경이 도성 역할을 한 건 고작 16년. 그 이후엔 헤이조경으로 천궁한다. 헤이조경이 도성 역할을 한 건 백 년이 채 안된다. 이후로 우리가 잘 아는 헤이안 시대, 교토 천년의 시대가 열린다(후지와라 경, 헤이조 경이 몰락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건 생략).




후지와라경에서 헤이조경으로, 다시 나가오카경을 거쳐 헤이안경으로 천도가 거듭되면서 야마토에 본거지를 둔 호족들은 고향에 대한 유대감이 점점 약해졌다. 그 결과 야마토를 떠나 헤이안경으로 아예 이주를 결정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야마토뿐 아니라 멀리 북쪽과 서쪽의 변경에 사는 지방 호족 또한 이주했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 헤이안경으로 이주한 지방 호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립성을 상실하고 천황 권력에 귀속된 궁정 귀족이 되었다. p 114




헤이안경은 모든 면에서 이전 도성들과 비교했을 때, 일본 도성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천황의 권위도 그동안의 부침을 벗어나 정점에 이르렀고, 행정 등 정무도 자리가 잡힌 뒤였다. 점점 천황은 행정 실무에서 손을 떼고, 권위의 존재로 군림하게 된다. 자연스레 천황을 대신해 현실정치를 주관하는 대리인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섭정’과 ‘관백’이다. 훗날 외척인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을 차지하며 권력을 좌지우지 하게 되고, 더 오랜시간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관백’을 차지하여 권력을 차지하는 등 섭정과 관백은 천황보다 더 앞에 있는 실질적인 권력가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되어버린다.




여러 도시 문제 가운데 당시 사람들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배설물의 처리였다. 한 사람당 하루에 배출하는 분뇨의 양을 대략 0.5리터 정도로 추산해, 헤이안 경의 인구를 10만 명으로 어림잡으면 연간 분뇨배출량은 1만 8,250킬로리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 일본에서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비료로 만들어 농사에 재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이후 중세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인분의 활용법을 알지 못했던 헤이안 시대는 흐르는 강물에 배설물을 투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처리방식이었다. 귀족들은 대로 옆에 흐르는 도랑에서 물길을 끌어와 측간을 거쳐 다시 도랑으로 흘려보냈다.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과 유사한 처리 방식이지만 문제는 대로 옆 도랑으로 흘려보낸 용변이 쌓여 물길을 막거나 사람들이 통행하는 도로로 흘러넘쳐 악취를 풍기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p 129



각종 배설물 처리와 더불어 헤이안경에 거주하는 이들을 괴롭힌 또다른 문제는 빈번히 발생하는 자연재해였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천도 직후인 9세기에 발생한 지진 가운데 진도 6이상의 강진만 하더라고 모두 6차례 확인된다. 이 가운데 887년에 발생한 ‘난카이 대지진’은 수많은 민가와 관청에 피해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건물이 무너져 압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헤이안경은 목조 건축물이 대부분이어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화재 역시 지진 못징낳게 커다란 피해를 일으켰다. 대화재로 천황의 거처인 다이리가 소실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p 130




앞선 도읍이었던 후지와라경 역시 배수시스템과 공중 위생문제로 폐도가 되었기에, 헤이안경 역시 발전이 없었다면 폐도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헤이안경은 폐도는 커녕 도읍으로써 천년동안이나 존속한 것으로 미루어볼때,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교토 도시문제 해결에 앞장선 사람들로는 도래인 하타씨 일족을 들 수 있다. 6세기에 이미 거대 집단이 된 도래인 하타씨는 열도 곳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중 하타씨 거대세력 일부가 교토에 자리를 잡았다. 하타씨는 토목(제방공사), 광산, 농업, 염전, 양잠, 양조등 도시개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지닌 집단이었다. 이런 하타씨가 교토에 자리잡고 제방공사(대언천 제방), 경제기반 발달(농/광/상업 등)등을 이끌며 교토 도시개발에 앞장섰던 것이다.




리뷰는 여기까지!  앞서 말하긴 했지만 일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은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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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 인생 9할을 웃음으로 버틴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
순자엄마(임순자)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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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세이 『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는 유명 유튜버가 쓴 에세이다. 그냥 유튜버가 아니다. 자녀 출가시키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순자엄마다. 물론 난 유튜브라고 해봐야 자격증시험 무료강의정도만 보는 터라, 유명한 유튜버라고 해도 잘 모른다. 근데 순자엄마 채널이 백만 구독자가 넘었다고 하니, 진짜 유명한 유튜버인가보다. 그 유명세 8할은 순자 엄마 65년 인생 내공이 아닐까!



65세 순자엄마. 딱 우리 부모님 세대다. 요즘에 비하면 한없이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가계를 위해 쉼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출가시키기까지. 오롯지 가족만을 위해 달려오며,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는지 눈에 선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고생끝!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옛날처럼 아이 키우기위해 앞만 달릴 필요 없이, 뒤를 돌아도 보고, 쉬엄쉬엄 걷기도 하면서 오롯이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는 순자엄마다.



그런 순자엄마가 젊은이와, 본인 처럼 인생의 제 2막을 앞두고 있는 중년들을 위해 용기를 주고자 책을 썼다.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도전인데, 순자엄마는 그렇게 또 도전했다. 책을 읽을 우리들을 위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 말 싫어하지? 근데 사람이 말이야, 고생도 좀 해보고 그래야 끈기라는게 생겨. 뭘 하나 해야곘다고 마음먹으면 죽어라 파는 연습을 해봐야돼. 회사 몇 달 다니고 힘들다고 그만두고, 몇 년 일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고 그럼 못써. 난 못배운 사람이니까 내 말이 다 맞다고는 못하겠지만, 인생 선배로서 말하자면 그렇게 옮겨 다니다가는 마음도 흔들리고 중심도 안잡힌다고 생각해. 뭔가 하나는 끝까지 해봐야, 그 힘으로 사회생활도 잘하고 결혼생활도 잘하고, 인생에서 밀려드는 별별 풍파에도 안 휘청거릴 수 있어. p 022



어느 순간부터는 남 부러워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날이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젊은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남하고 너무 비교하지 마. 인스타랑 유튜브도 조금만 보고, 친구 연봉 자꾸 물어보지 말고, 지금 사는 집이 몇 평이냐고도 물어보지도 마. 자꾸 그러면 지치는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야. 친구랑 인생을 바꿔살지도 못하는데 그런 생각 자꾸 해봤자 뭔 소용이냐고. 남 따라가지 말고, 그냥 지금 내가 가야되는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면 돼. 천천히 가도 결국 좋은 날은 오니께. p 037



포기해도 된다는 말이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안 될 일에서 될 일로 갈아타란 소리지. 과거는 과거고, 웃으면서 계속 앞으로 넘어가는 게 인생이야. p 059



요즘엔 다들 나보다 많이 배웠잖어. 머리로만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모든 노동은 똑같이 값지다, 이러면 뭐하냐고. 막상 그런 일 하라 그러면 부끄럽다고 안 해버리는데. 친구들은 서울에 있는 대기업 직원에, 공무원에, 사짜 직업인데, 나만 힘 쓰는 일 하려니까 막 어디 숨고 싶고 그렇지? 인생이 망한 것 같고, 쓸모도 없는 인간이라도 된 것 같고, 그치? 몸 쓰는 일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할 일 없다고 누워서 부모 돈이나 까먹는 신세가 더 부끄거운 줄 알아야 돼. 세상 천지에 널리고 널린게 일인데, 핑계는. p 063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조언이고, 또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잔소리다. 그 차이는 듣는 이의 기분에 따라 나뉜다. 듣는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조언이 되고, 반대로 듣는 이가 간섭과 지적으로 느끼면 잔소리다. 순자엄마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조언 그 자체다.



힘들어서 안하고, 조금만 하다가 포기하고, 부모 집에서 얹혀살고…. 요즘 20대에서 자주 보이고, 심지어는 사회문제로 부각된 행동들이다. 국민학교 졸업과 함께 궂은 일 마다않고 쉼없이 달려온 순자엄마는 이런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뭐라도 하나 뚝심있게 해야, 근성도 생기고 마음의 근육도 붙고 그러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뭐만 하면 포기만 하니. 뭐 엄밀히 따지만 자녀를 그런식으로 키운 부모에게 원죄가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다 큰 자녀에게 부모가 한 소리 하면 잔소리로 넘어가는 것을.



하지만 자녀들이 즐겨보는 유튜버 순자엄마가 말하면 다르다. 부디 이런 2030들이 순자엄마의 조언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랄뿐이다.







젊었을 때는 몰라. 내가 다른 사람이랑 경쟁하면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면 싫지. 달리기에서 누가 1등 하냐, 2등 하냐 그게 엄청 중요하잖아. 살아보면 등수는 하나도 안 중요해. 돈이 많으면 뭐해. 건강 상하면 돈도 다 필요없고, 자식 농사 망하면 걱정 근심이 한가득이야. 돈이 많든 적든, 대학을 다왔떤 안 나왔든 나한테 행복한 일이 뭔지 알아야 돼. 아침에 일어나서 맛있는 밥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친구들이랑 같이 운동 가고, 하하호호 웃고 떠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인생에 대단한 일이 생겨야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한 일상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도 없어. 그리고 인생 참 길다. 60 넘으면 죽을 날 만 바라보고 살 것 같지? 아즉 한창이야. p 132



촌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다 지금 이순간에만 집중해서 그래. 도시처럼 번잡하게 살다 보면 그런 걸 못느껴. 근데 여기선 그냥 그날그날 해야 할 일 열심히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가고 몸도 피곤하니까 잠도 잘 오고 그런다니께. 난 이제 테레비 보면서도 ‘저 사람처럼 살아야지’ 싶은 사람도 없더라고. 뭐 가끔 배울점이 있는 사람들은 있지. 그럼 나도 똑같이 따라해보면서 좀 더 발전해야겠다 생각하고, 그게 다야. p 137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흐린 날이 있지? 그럴 때는 꼭 밖에 나가. 아무리 날씨가 흐리고 마음이 무거워도, 그냥 신발 신고 밖으로 나가서 30분이라도 걷다 와봐. 우울증이 있으면 집에서 마냥 누워만 있고 싶다며? 내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그런 날이 왜 없었겠어. 젊었을 적에는 허구한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가 자책하고, 어떤 때는 고된 농사일 좀 그만 헀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 날씨가 우중중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흐리게 두지마. 비가 오면 그 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야. p 142



에세이 전반부가 20대를 위한 조언이라면, 후반부는 도전을 망설이는 중년을 위한 조언이다. 중년이라고 해도 순자엄마에겐 그저 젊은이로밖에 안보이겠지만. 순자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좋은 날이 있으면 우울한 날도 있는 거라고. 60먹은 본인도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살만하지 않느냐고. 순자엄마는 이렇게 자신의 도전과 실패를 담담히 이야기하며, 그럼에도 포기보단 도전하는게 낫다고 말하며 도전을 망설이는 중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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