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형제가 겪어야 했던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깝게는 60-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우리 부모형제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밥 대신 끼니를 때웠던 것이 붕어빵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었떤 세대에게는 구호물자로 나눠준 밀가루로 풀 반죽을 해서 풀빵 그러니까 붕어빵을 구어팔아 생계를 이어갔던 생존의 몸부림이 기억으로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떄 모든 면에서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의 붕어빵은 동전 한닢으로 따듯하게 허기진 속을 달래며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던 구원의 먹거리였다. p 020 - P20

단팥빵의 겉모습만 봐서는 내용물에 통단팥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팥앙금이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해서 통단팥을 넣은 단팥빵에는 겨자씨를 뿌려놓았고, 팥앙금을 넣은 단팥빵에는 참깨를 뿌려 놓았다. 먹는 사람들이 참꺠가 뿌려져 있는지 혹은 겨자씨가 뿌려져 있는지를 보고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표시를 했던 것이다. p 034 - P34

지금 우리가 먹는 단팥빵을 보면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데 소금에 절인 벚꽃 열매를 놓기 위한 흔적이라고 한다. 또한 일왕이 단팥빵을 처음 먹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4월 4일을 단팥빵의 날로 기념한다. p 036 - P36

일본에서 다양한 일본식 빵이 만들어진 것은 빵이라는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강했지만, 서양음식을 통해 왜소한 일본인의 체형을 서구인처럼 키우려는 노력도 있었다. 아시아를 벗어난 일본을 유럽화 하려는 탈아입구의 일환이다. p 041 - P41

건빵은 한국군에서만 보급할 것 같고 한국군이 만든 독창적인 전투식량 같지만 사실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만든 결과물이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건빵을 개발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빠르게 발전했으며, 태평양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때 제국주의 일본군대에 전면적으로 보급되면서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자리잡았다. p 053 - P53

크로켓은 고로케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일본에서는 1872년 포테이토 고로케 만드는 법이 기록으로 나오니까 상당히 빨리 전해진 셈이다. p 064 - P64

(마시멜로는)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이집트 사람이 먹었다. 그러니까 4,000년이 넘는 유서깊은 과자다.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에게 마시멜로를 제물로 바쳤고 파라오들도 먹었다. 그렇지만 과자라기보다는 의약품이라는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p 070 - P70

동양에서 순대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에 보인다. 기원전 11세기에서 8세기까지 중국에서 불린 시와 노래를 기록한 책인 시경에, "훌륭한 요리를 곱창과 순대를 준비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p 078 - P78

한편 우리나라 문헌에서 순대라는 한글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19세기 말 요리책인 『시의전서』다. 한글 이름은 그렇지만 한자로 동물창자를 요리했다는 기록은 17세기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개 창자, 18세기 증보산림경제에 소 창자를 삶은 우장찜이라는 기록이 있다. p 078 - P78

우리나라의 실학자 이덕무도 닭발이 천하의 진미라는 사실에 동의를 했고, 서기 3세기 무렵의 문학가인 장협도 닭발을 산해진미라고 했지만, 역사서를 보면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의 임금이 닭발을 무척 즐겨먹은 것으로 나온다. p 135 - P135

엉뚱한 소리 같지만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반드시 약과를 놓는 것은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p 273 - P273

고려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에서 약과가 빠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요란을 떠는 장면이 고려사에 보인다. (중략)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이라는 것은 중국 전국시대 때의 노래를 엮은 『초사』에 근거를 누고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루는 초혼부라는 노래에 자신의 임금이었던 초나라 회왕을 그리워하며 ‘밀이’라는 음식을 차려놓았으니 돌아오라는 구절이 있다. p 275 - P275

양(羊)은 왠만한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는 한자로 네발 달린 가축인 양을 뜻하는 한자이지만, 갱(羹)은 왠만큼 한자 실력이 좋은 사람 아니면 읽기조차 힘든 글자로, 국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양갱은 양고기 국이라는 뜻이다. p 280 - P280

일본에서 양갱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다. (중략) 중국에 유학을 온 승려가 귀국하면서 이 떡을 일본에 전했는데,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기 때문에 양고기 대신 팥을 넣어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양갱이 됐다고 한다. p 280~281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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