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에도 난 인공지능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어찌되었든 한 판은 이세돌 9단이 이겼으니, 아직까지 인간의 저력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먼저 온 미래』에 된통 당한 바둑계가 인간이 바둑을 버리고 AI의 바둑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2026년 현재, 남들보다 한참 뒤늦게 나는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으며, 구글 노트북LM 이라는 신세계에 빠져있다. 



AI가 바둑의 기존 틀을 몇백 년을 앞서간 수법을 보여준 때가 있었어요. 알파고 마스터와 알파고 제로 사이였습니다. 알파고 리는 충격적인 실력이기는 해도 충격적인 수법까지는 아니었어요. 알파고 마스터부터는 인간 기사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라 할 만한 수법들을 보여줬습니다. 초반부터 그런 수법들을 보여서… 그때 제일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에 저는 AI를 통해서 계속 송장하고 그 수법들을 이해하고 흡수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p 069, 신진서 9단 인터뷰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나는 그들을 만났고 “인공지능이 둘 수 없는 ‘인간의 바둑’이란 뭔가요?”라고 물었따. 뜻밖에도 7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인간의 바둑’이 뭔지 제대로 설명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바둑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도 ‘인간의 바둑’을 향한 노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인간의 바둑을 버리고 인공지능처럼 두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p 076




AI가 나오기 전까지만해도 바둑은 인간의 직관과 감각,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정석과 미학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알파고의 등장은 그 전제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인간이 쌓아 올린 바둑의 역사 위에, 전혀 다른 차원의 바둑이 출현한 것이다.



대국 이후 프로기사들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더 이상 ‘인간답게’ 두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처럼’ 두는 것. 젊은 기사들은 AI와 대국하고, AI의 기보를 외우며, 왜 그런 수가 나왔는지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인간 특유의 감각이나 미학, 개성은 점점 사라져간다.물론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천년 이상 켜켜이 쌓아올린 인간의 바둑이 사라진다는 우려, 특유의 미학을 지닌 바둑이 그저 계산 게임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비판조차 AI를 배제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승리의 공식을 쥔 쪽이 AI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고민은 실제로 그 분야에서 쓸 만한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그 분야의 규칙 자체가 바뀌며, 그때부터 해야하는 고민은 ‘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된다. 어쨌든 경쟁은 다른 사람과 하는 거니까. p 079


나는 일단 인공지능이 어떤 업계에 도입되면, 그 업계 내부에서 인공지능을 옹호하는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업계 내부에 인공지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이후의 갈등 구도는 더 이상 ‘인공지능 대 인간’이 아니다. 3장에서 말한 대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전문가 대 다른 인공지능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다른 많은 전문가 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구세대 전문가’의 구도가 펼쳐진다. p 105




저자 장강명은 ‘AI와 바둑’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당시만해도 AI가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을 무너뜨린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을 무너뜨린 AI는 이후 전 세계 산업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바둑은 AI 영역 확장에 앞서, 운 나쁘게, 아니 어쩌면 오히려 운이 더 좋은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영역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노동도 AI를 탑재한 로봇이 대신하고, 글쓰기도 AI가 대신해주며, 그림도 AI가 그려주고, 음악도 AI가 만든다. 한 사업체를 좌지우지할 보고서 조차도 AI의 도움을 받는다. 바둑계처럼 AI를 모방하는건 기본이고, AI와 협업은 필수이며, 심지어는 AI가 메인으로 일을 진행하는 산업도 많다. 


인간의 영역인 바둑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AI 자신의 영향력을 새로운 영역으로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도착해버린 미래다. 효율, 합리성, 최적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AI의 판단을 참고하고, 점점 그것을 표준으로 받아들이다보면 당장 50년 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바둑계에서는 인간의 바둑을 연구하던 구세대가 사라진 뒤, AI로 훈련한 젊은 기사들이 바둑계를 점령했을 때를 말했다. 이미 인간의 바둑이 아닌, AI의 바둑을 배운 인간들이 바둑계를 점령했을 그때 말이다. 그때는 AI와는 또 다른 형태의 최강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이 질문은 현재 AI와 함께 일하는 모든 영역에도 해당된다. 


AI 이후의 바둑이 결국 또 다른 바둑을 낳았듯, AI 이후의 인간 역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문제는 그 변화가 인간의 주도로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효율과 최적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밀려난 결과일 것인가이다. 『먼저 온 미래』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AI의 시대를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 세대이자, 동시에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