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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 이일하 교수의 아주 특별한 식물학 에세이 ㅣ 지식 벽돌
이일하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3월
평점 :
과거에 식물 관련 책을 읽을 때는 약간 감성적인 부분이 앞서있었다. 대다수의 책들이 식물재배 실용서보다는 식물을 주제로한 ‘에세이’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이 주제인 만큼 식물 재배관련 정보가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정보의 수준은 꽤나 가벼운 쪽이었다. 에세이였으니까.
오늘 리뷰하는 식물 에세이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그간 읽어온 책들과 조금 달랐다. 감성도 감성인데, 전문 지식이 담겨있는 실용도 잡았다. 어찌보면 에세이 형식을 차용한 실용서 느낌이기도 하다. 분명 술술 읽히는데, 머리에 남는 게 많다고 해야할까? 전문 지식이 방대하게 녹여져있는데도 술술 읽히고 이해도 쉬운 건 쉽지 않은데!
이쯤에서 저자가 누군지 살펴보았다. 확인해보니 저자는 식물학과를 전공했으며, 현재는 생명과학 교수인 그야말로 찐 전문가다. 전공자이니 방대한 지식을 보유한 건 당연하다. 거기에 현재 교수이니 책도 많이 읽었으며, 쓰기도 많이 쓰셨을테다. 어쩐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내용인데, 가독성도 좋고 이해하기도 쉽더라니!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이제 막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사람, 또는 비전공자인데 임/농업관련 자격증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 읽어볼 책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몇 년만 더 빨리 출간되서, 내가 조금 더 빨리 읽어봤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난 최근 몇 년간 식물보호기사를 비롯하여 여러 농업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있어서, 비전공자이다보니 공부에 어려움이 컸다. 생소한 용어에 막히고, 식물이 사용하는 각 종 에너지들의 작용기법에 당황했고, 광합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광합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뿐인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식물의 질소대사는 하 머리가 팅 돌아갈 지경이었다.
헌데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선 이해하기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뒤 시험공부를 했다면, 분명 내 공부과정은 꽤나 쉬웠을 것이다. 진짜로. 백프로 확신한다.

씨앗이 놓인 위치마다 빛의 세기, 수분, 온도 등 미세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환경에 맞게 서로 다른 생장을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환경 차이에 따라 같은 유전형이 서로 다른 표현형을 보이는 현상, 그것이 바로 식물의 생장 가소성입니다. p 032
‘춘화처리’는 식물이 온도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어, 특히 긴 겨울의 저온을 경험한 뒤 꽃을 피우게 되는 생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적지 않은 식물들은 겨울의 추위를 겪지 않으면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겨울보리, 겨울밀, 그리고 월동형 배추가 있지요. p 081
춘화처리에 필요한 물리적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저온’, 다른 하나는 그 저온이 지속되는 ‘기간’입니다. 즉, 춘화처리는 단순한 저온 반응이 아니라, ‘긴 기다림’을 인식하는 과정인 셈이지요. 식물은 그저 조용히, 그러나 정교하게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p 086
식물은 빠르게 ‘움직이는’ 대신, 천천히 생장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굴광성 입니다. 굴광성은 식물이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굽어 자라는 생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시간이 걸릴 뿐, 이것 또한 명백한 식물의 운동이지요. p 130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농업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생소한 용어에 머리를 싸매 본 비전공자에게 친절하고 명쾌한 '개념 입문서'가, 반려식물을 키우며 그들의 언어가 궁금했던 식집사분들에게는 따뜻한 '교양서'가 되어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