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저주 - 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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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A와 B라는 국가(또는 문명, 도시)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두 나라는 붕괴되었다. 분명히 붕괴된 나라들이지만 A는 계속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A를 모방하는 크고 작은 국가들이 꾸준히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반면에 B는 잊혀졌다.


A는 설명이 필요 없는 로마 제국이고, B는 미시시피강 습지 한켠에 있던 카호키아다. 로마는 사라졌지만 살아남았고, 카호키아는 정말로 사라졌다. 똑같이 붕괴했음에도 한쪽은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이름으로 살아남고, 또 한쪽은 잊혀지는 것. 그 차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역사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루크 켐프의 『골리앗의 저주_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이 역사책은 상당한 두께의 벽돌책이라는 사실이다. 벽돌책 특성상 초반 흡입력이 없으면 완독이 어렵다. 나 역시 여러 벽돌책을 읽어보았지만 완독 여부는 초반 흡입력에서 갈렸다. 내 기준을 통과했던 책으로는 『사피엔스』, 『소련 붕괴의 순간』 등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남다른 초반 흡입력을 자랑한다. 비유하자면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닮아있다.




앞서 언급한 로마제국과 카호키아. 대다수 사람은 로마를 알고 있지만 카호키아는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카호키아라는 문명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똑같이 붕괴했음에도 로마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카호키아는 잊혀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카호키아가 잊혀졌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무례한 말일지도 모른다. 카호키아가 개척한 미시시피 문화는 그곳 원주민들에게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카호키아를 모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1퍼센트의 역사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언어, 관습, 문화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조차 로마의 흔적(예: 상원 제도)을 심심찮게 채택했다. 즉 패권국들이 로마를 소비하고 모방했기에 로마는 '승자의 역사'로 계속 소환되었다. 반면 카호키아는 피지배층이 된 원주민의 문화였기에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상류층과 승자가 소비한 문화만 기억하는 역사의 편향성, 여기까지가 이 책의 서론이 던지는 강렬한 화두다.



하지만 서론은 시작에 불과하다. 

본편으로 들어가면 진짜 충격적인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위대했던 '골리앗'들은 왜 하나같이 무너졌는가?"




붕괴의 역사는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역사적 현상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는 대참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사람들이 대참사에 대한 회복력을 어떻게 입증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극히 위험한 곤경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붕괴를 관찰하다 보면, 어떻게 사회가 자멸로 이어지는 위협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른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붕괴는 대규모 권력구조가 어떤 식으로 소멸되는지에 관한 문제일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 타자의 소멸을 초래하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p 025




저자인 루크 켐프는 300여 개가 넘는 제국과 정권의 역사적 사체를 해부하며, 거대하고 강력한 문명(골리앗)일수록 내부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골리앗의 저주'를 파헤친다.


문명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자원 착취 구조, 소수 엘리트 계층의 권력 독점과 극단적 불평등, 그리고 복잡해진 사회 유지를 위해 드는 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비용대비 효율은 점점 줄어드는 것. 문명이 거대해질수록 이 시스템들도 점점 거대해지고, 거대해진 만큼 아주 작은 외부 충격에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 것이다.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을 숨을 끊을 수 있는 칼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이 이토록 소름돋는 경고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다름아닌 '오늘날의 현대 사회'다.


과거 로마나 카호키아가 무너졌을 때, 민중들은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어떤 의미에서 문명의 붕괴는 대중에게 '해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전 지구가 단 하나의 연결망으로 묶인 '글로벌 골리앗'의 시대다. 에너지, 식량 공급망, IT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마비된다면 자급자족 능력을 상실한 우리는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경험했다. 코로나 펜대믹, 러시아vs우크라이나 전쟁, 미국vs이란 전쟁 등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되고, 물류가 마비되는 것을 보았다.



서론의 '카호키아와 로마' 이야기로 지적 호기심을 극도로 끌어올린 이 책은, 본론에 이르러 인류가 걸어온 오만의 역사를 뒤흔들고, 결말에 이르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의 시한폭탄을 직시하게 만든다.


혹여나 벽돌책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문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에 서 있는지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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