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름 그알 시청경력 1n년차라 왠만한 사건사고는 그 어떤 타격감 없이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던 나다.  그알 시청경력이 몇 년 차인데! 이런거에 놀라고 호들갑떨어? 라고 생각했다. 하, 근데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을 몽창 흘렸다. 그것도 회사에서! 날 오열하게 한 사건들은 ‘아이’였다. 정말로 오로지 성인들만 관련된 사건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피해자, 가해자 또는 그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구성원이 중 하나가 성인이 아닌 ‘아이’가 들어가니까 와. 정신적 타격감이 너무 거셌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이게 참 와닿는게 너무 달랐다.



내가 그 아이들을 후원한 것은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지원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이 함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주면 좋겠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저 엄청난 슬픔과 파괴 속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가장 먼저 본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p 084




우리가 감히 유가족의 마음이 되어볼 수는 없다. 황망하게 떠난 가족이 얼마나 그리울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뜨거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무언가 몸을 움직여 행할 필요도 없고, 나의 시간이나 돈을 쏟을 필요도 없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p 188




하교한 아이가 집에 오자 엄마가 죽어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했고, 아빠는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는 그 날 자신이 보았던 상황을 경찰에 진술했다. 진술 속에서 아빠가 범인이라는 정황증거가 나왔다. 실제로 엄마를 죽인건 아빠였다. 이 아이는 엄마가 죽었는데, 엄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 아빠고, 그 아빠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결정적인 증거가 자신의 진술이었다. 또 다른 가정에선 엄마가 아빠에게 맞아 죽고, 아빠는 자살해서 아이만 혼자 남았다. 다문화가정이라 국내에 친인척이라곤 고모 뿐이었다. 




이 아이들은 법에서 말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기엔, 이 아이들에게 남겨진 고통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던 부모가 모두 사라졌을때, 엄마를 죽인 사람이 아빠였을때, 이 모든 진실을 감당하기엔 이 아이들이 너무나 어렸다. 무엇보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그 부모가 사라졌다. 이 아이들은 험한 세상을 부모라는 보호막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대다수는 나라에서 어련히 잘 돌봐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예상외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호 교수님은 남은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후원자가 자신의 부모를 부검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면, 아이들은 다시금 슬픈 과거를 떠올릴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줄 지도 모르기에, 익명으로 후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지만, ‘개인’은 가능하다. 이호 교수님처럼 개인적으로 후원할 수도 있고, 단체를 통해 후원할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게거든, 손을 내밀어주자.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부모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자기를 걱정하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아이야


여섯 살이잖니


두 손으로 셈하기에도


네 개나 남은 나이인데


엄마와 3더하기 3은 6


아직 읽곱 여덟


셈하는 놀이도 끝나지 않았는데


하룻밤만 잔다더니 여직 그곳에서 놀고 있니


너의 향긋한 냄새는


너의 침대 배갯잎에도


너의 꼬꼬마 인형의 때묻은 뺨에도


그리고 지난번 소풍에 찍었던


사진 속의 네 미소에도 남아 있는데


너의 보송보송한 얼굴과


너의 고운 음성은


어디에 두었니


왜 그리 꼭꼭 숨었니


아이야, 천사의 나갯짓을 하고


오늘 밤 또 내일 밤


잠 못들어 뒤척이는 엄마 곁에


향긋한 너의 향기 뿌리며 오지 않겠니


내 그때라도 너의 보들보들한 뺨에 내 얼굴을 비비고


너의 은행잎 같은 손을 내 눈에 대어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련만


오늘도 이 엄마는


너를 안았던 가슴이 너무 허전해


너를 부르며 피를 토한다


보고 싶은 내 아이야


귀여운 우리 아기야 


_ 박경란 「아이야, 너는 어디에」 中





「아이야, 너는 어디에」 이 시는 씨랜드 화재 후 아이를 잃은 부모를 보며 한 시인이 쓴 시다. 씨랜드 화재 이후 이렇게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이후로도 수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크고작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배가 침몰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왜? 배가 가라앉는데 꽤나 시간이 흘렀고, 침몰하는 배 주변에 해경을 비롯해 많은 배들이 와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299명이 사망했다. 그중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이었다. 이 학생들이 사망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른들이 곧 구해줄거라는 믿음과 ‘가만히있으라’던 선내방송을 따랐을 뿐이다. 이 방송을 따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뛰쳐나온 소수의 사람들(대다수가 성인)만 이 참사에서 살아남았다.




세월호 참사, 씨랜드 화재의 공통점. 바로 인재다. 관련자들의 사리사욕으로 시스템에 결함이 생겼고, 그 결함들이 쌓이고 쌓이다 발생한 인재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건축물을 지을 때 자재를 빼먹는 등 부실공사를 일삼거나, 적재용량의 몇 배를 더 실어서 운반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한다. 이런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선 숨기거나 허위로 관청에 신고하고, 허위 신고를 잡아낼 기관들은 탁상머리에 앉아서 현황조사는 하지도 않은 채 허가를 내준다. 이런 시스템적 결함들이 쌓이고 쌓여 대형 참사라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다. 만약 저 시스템 안에서 단 한명이라도 올바른 사고로 악순환을 끊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인재는 매년 지속되고 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으며, 각종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재사망사건들이 그렇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생된다는 건, 아직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정말 이런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죽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는 사실 얼마나 위험에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네카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사인 없이 죽어간 2만 8천 명 속에 있다. 우리 옆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속에 우리 사회의 불완전함이 있다. p 047



부검을 하면서 언제나 결과에 대한 처벌과 책임에만 몰두하는 게 답답했다. ‘그 전에 원인을 먼저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어디선가는 여전히 삐걱대는 시스템 속에서 누군가가 또 죽음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예방법의학을 만들자고 주장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길목에 작은 걸림돌 하나라도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p 103



도덕적 선택의 아이러니에 놓였을 때 우리는 칸트의 정언명력을 떠올려야 한다. 칸트는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를 통하여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라고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과연 모든 사람이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p 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