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이 역사책 두 권을 같이 올리는 건 같은 대상을 상대로, 왕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여 초래되는 결과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판단은 포로로 잡혀있던 백성들을 무사 귀환시켰고, 또 한 사람의 판단은 전 국토를 전쟁에 몰아넣고 황폐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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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중일록』 : 1619년 명나라와 연합하여 후금의 수도를 선제 공격했으나 패배한 ‘심하전투’에 참전하고, 청나라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종사관 이민환이 남긴 종군 기록물이다(‘심하전투’는 명청전쟁에 속한 일부 전투 중 하나). 청나라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있던 조선군은 약 1년여만에 조선으로 귀환한다.


『산성일기』 :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던 김상헌의 아들 또는 조카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후금의 시작부터 병자호란 이후 삼전도의 굴욕까지 장장 50년 간 인조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책중일록


심하전투의 패배는 우리 해외 파병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참변이었다. 1619년의 사르후 전투와 심하 전투의 실상이나 조선군의 항복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패전의 주된 요인은 전체 병력을 네 갈래로 분산하여 공격을 시작한 명나라 지휘관들의 전략 실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명과 조선 연합군의 빈약한 무기와 군량 고갈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후금의 기병과 맞붙었던 작전도 결정적 패인이었다. 후금에 대한 조선의 선제공격은 뒷날 두 차례 호란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 머릿말 中



명/청교체기 과정에서 일어난 ‘명청전쟁’. 그 전쟁 중에 조선군이 파병하여 참전한 전투가 있다. 명나라와 조선군이 연합하여 후금을 선제공격한 ‘심하전투’와 ‘푸차전투’다. 매우 생소한 이름의 이 전투들은 명나라의 파병 요청으로 인해 진행되었다. 당시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다. 광해는 명나라의 파병요청에 응하려 하지 않았지만, 당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재조지은’의 나라였다. 조선의 대신들은 파병을 적극 찬성하며, 파병을 하기 위해 광해를 압박했다. 그들에게는 주변정세는 관심밖이었다. 이 파병으로 인해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재조지은의 나라를 도와줘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런 점은 2024년 현재,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측근들의 행동과 매우 오버랩된다.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냈던 명나라를 위한 조선군 파병. 광해군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조선군은 명나라군과 연합하여 후금의 수도를 선제공격했고, 결과적으로 패배했다. 패배의 원인은 열거하면 입아프니 생략. 전투에서 패배한 군인들에게 선택지는 두 개다. 죽거나 살아서 포로로 잡혀가거나. 



다행스러운 점은 광해군이 전투 전후로 중립외교에 힘쓰며 후금에 적잖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비록 패배한 전투이긴 하지만, 조선군은 위 전투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로 인해 후금은 명나라 포로들은 학살한 반면, 조선군 포로들은 생포했다. 특히 조선군 중 고위직 인물들은 꽤나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 일반 조선군 병졸 포로들에게도 매일 양식과 땔감을 지급했다. 청나라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파병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조선군 포로 중 양반 출신 일부가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만, 이는 청나라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니었다. 조선군 포로들이 주인을 죽이고 도망가거나, 여인을 강간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청 황제 누르하치는 조선군 포로 전부를 죽이려 하였으나, 측근들이 극구 만류하여 양반 출신 조선군만 죽이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렇게 포로생활 1년이 흘렀다. 그 1년간 광해는 중립외교로 청황제 마음을 돌렸다. 이미 승기는 청나라에 있었고, 대신들도 점점 재조지은을 외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군 포로들은 1년만에 조선으로 무사귀환 하였다. 



광해 말년의 평가는 차지하고서라도, 광해군은 주변 간신들과 달리 대외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조선을 안정화시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광해의 이런 점은 리더라면 꼭 갖춰야할 기본 소양 중 하나다. 전제군주든 민주공화국의 대통령든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자질인 것이다. 슬프게도 2024년 겨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이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사백여 년 전 왕보다도 못했다. 오히려 지켜야할 국민을 학살했던, 군부독재를 하던 박정희, 전두환과 닮아 있다.



산성일기


《산성일기》를 통해 독자는 병자호란 당시에 있었던 참담한 우리의 역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떤 민족의 발자취를 직접 읽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이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우리 민족혼을 일깨우는 지침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머릿말 中



『산성일기』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용호장군’이라는 이름을 얻는데서 시작해, 1669년 12월 삼전도에 승전비를 세우는 데 까지 기록한, 장장 5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쓰여진 일기다. 이 일기를 쓴 사람은 전해지지 않으나, 작품속에 묘사된 내용을 보면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추정한다. 특히 김상헌이 목을 매었던 사건이나, 정온이 칼로 배를 찔러 죽으려 했던 모습, 인조가 성안에서 했던 행동이나 각종 외교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것으로 보아 역사가들은 이 책의 저자를 김상헌의 아들 김광찬 또는 조카 김광현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대표였다. 



솔직히 말하여,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답답함과 분노가 그라데이션으로 차올랐다. 지금까지 인조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무념무상하며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이 책은 역사책이기 전에 인조 옆에 있던 측근이 실시간으로 쓴 일기다. 확실히 현대인이 요즘 관점에서 쓴 역사책과는 다르다. 기백년이 지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해 아주 생생하게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되다니. 괜히 읽었나 싶으면서도, 현재와 오버랩되는 것이 반면교사 삼기 딱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조같은 콤플렉스 덩어리인 인간이 왕이 되자,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가! 



광해를 끌어내리고 왕이 되자마자 그가 한 일은 측근챙기기 였다. 임진왜란 직후라 민생을 챙겨야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측근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그 측근챙기기도, 성과를 따져 챙긴게 아니라 자기 입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들만 챙겨주다가 ‘이괄의 난’이 터져, 백성을 버리고(!) 공주로 도망가기도 했다. 정묘호란이 터졌을 때도 그는 백성을 버리고 또 도망갔다.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도 그는 백성을 버리고 또또 도망갔다. 그 뿐만인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얘탓이다 쟤탓이다 줏대라고는 하나 없는, 남탓하기에 급급한 왕이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피해는 조선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전 국토는 청나라 군에 짓밟혔고, 수없는 조선 사람들이 죽었으며, 살아있는 조선 여자들은 청나라에 끌려갔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모두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놀랍게도 사백여 년이 흐른 지금 컴플렉스 덩어리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측근챙기기였다. 자기 주변 인사를 최측근들로 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민생은 파탄이 났다. 파탄난 민생은 자기 탓이 아닌, 남탓으로 일관했다. 거기다 북한이 전쟁을 유발하도록 무인기를 보낸 정황까지 나왔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들의 안녕을 헤치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기어이 국민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2024년에 비상계엄이 왠말인가. 이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이 모두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반복을 끊어내는 해답은 다름아닌 ‘역사’에 있다. 



2024년 겨울, 나라의 존폐를 흔들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으로 인해. 그는 잘못된 명령을 내렸고, 지금도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고 있다. 콤플렉스 덩어리 임금인 인조와 똑 닮은 대통령, 광해군 주변에 있던 간신들과 똑 닮은 그 측근들. 약 400여년이 흘렀음에도 나라를 대표하는 자와 간신들의 얼굴과 이름만 달라졌을 뿐, 하는 짓은 똑같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 간신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 모든 일들은 국민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국민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투표를 잘못한 죄인가? 아니, 애초에 제대로된 검증 없이 저런 인물을 대통령 후보랍시고 내놓은 정당이 제일 큰 죄인이다. 이미 2016년 같은 정당 출신 대통령이 헌법 위배로 탄핵된 지가 불과 8년 전이다. 이쯤되면 인재를 보는 눈이 없거나, 국민을 기만하는 것 둘 중 하나이니, 정당 해체해야하는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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