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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그늘
고광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1월
평점 :
리뷰를 하기에 앞서 주의해야할 부분이 있다. 난 한국전쟁으로 순국한 영령들을 폄훼하는게 절대 아님을 밝힌다. 단지 순국한 영령들을 볼모삼아, 자신들의 죄악을 숨기기 급급한 한국과 미국의 못난 위정자들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불과 십년 전만해도 한국전쟁 당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는 국군과 미군이었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쳐들어온 전쟁. 이 빨갱이를 몰아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 국군과, 그런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미군들. 이들이 전쟁에서 빨갱이가 아닌 민간인을 죽였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한국전쟁’이 가진 정체성은 흔들린다. 그 뿐인가? ‘한국전쟁’ 하나로 수많은 이득을 보았던 그들의 권력도 흔들린다. 그렇기에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그와함께 임진왜란 후 조선이 명나라에 그랬던 것 처럼, 대한민국은 미국을 재조지은의 나라로 섬겼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정부와 지지하는 세력들이.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한국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주한미군이다. 대한민국 정권은 이들을 환영했다. 재조지은의 나라가 아닌가! 국민들과 군인들이 죽던말던 한강다리 폭파하고 그렇게 꽁무니를 내뺐던, 싸울생각은 고사하고 전시작전권은 미군에게 바로 내주었던 그들은 그렇게 주한미군을 환영했다. 주한미군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범죄도 눈감아주었다. 주한미군판 위안부 기지촌을 운영했다. 주한미군이 일으킨 각종 범죄는 쉬쉬하며 눈감아주었다. 훗날 이로인해 일어날 각종 사회적 문제들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발굴 유해 봉안식 장면이 전파와 지면을 통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방송 기자는 이번 봉안식은 전반기이고, 후반기에 더욱 크고 성대한 봉안식이 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는, 창군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온 국민의 자유 수호 의지와 염원을 담아 더욱 거국적으로 성대히 치뤄질 예정이라고 거듭해서 덧붙였다. 레거시 언론사가 정권에 들러붙은 국정홍보처를 자처하는 것 같았다. p 028
그렇게 쉬쉬하며 침묵하는 동안 대한민국에는 많은 독버섯이 자랐다. 한국전쟁 당시 멍청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의 합작품이던 민간인 학살사건을 비롯하여, 참전미군의 문화재약탈 및 민간인 강간, 국군에 의한 민간인 강간도 당연히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독버섯은 계속 자랐다. 주한미군 위안부인 기지촌 운영으로 생겨난, 부모 없는 혼혈아들과 주한미군에 의한 성범죄 및 살인사건.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대한민국은 쉬쉬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7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군범죄는 쉬쉬한다. 미군이 버리고 간 기지촌 여성들, 혼혈아들은 대체로 가난을 되물림했다. 혹여나 누군가가 미군을 처벌하자고 말하는 순간 “니가 감히? 빨갱이야?!” 라는 삿대질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이 소설책 저자가 펜을 들었다. 한국전쟁과 멍청한 대한민국 정부, 주한미군이 심어둔 독버섯을 지금이라도 뽑기위하여. 칼보다 붓이 강하기에, 저자는 소설을 썼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주도하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을 큰 틀로 하여, 그 속에서 참전미군의 각종 범죄와 기지촌(양공주), 혼혈아 등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생된 각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픽션이 아니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29일 미군이 충북 영동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 500여 명을 피난시켜 주겠다며 모아놓고 무스탕 전투기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실체가 드러났으며, 이후 한미 양국 합동조사가 이뤄지고 2011년에는 사건 현장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 中
이 소설책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그 중 눈여겨 볼 주요 인물은 넷이다.
하지스: 한국전쟁에 파견된 미군이다. 그가 마주한 한국전쟁은 중공군을 무찌르는게 아니었다. 빨갱이가 민간인으로 위장할 수 있으니,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죽이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그 자리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료가 서슴치않게 민간인 강간하는 것까지 보며 경악하며 회의감을 느낀다. 이에 반발하여 여자 하나만은 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군 범죄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에서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안고 있다.
하봉자: 부자집 여종이다. 종년 팔짜 그러하듯, 봉자 팔짜도 그러했다. 부자집 둘째자식 도완구에게 팔려와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 도완구는 봉자를 겁탈하려했는데, 미군과 맞딱드린다. 하지만, 팔짜 더러운 년은 어쩔 수 없다던가. 봉자를 겁탈하려는 대상이 도완구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 뿐인가? 봉자의 가족들은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봉자의 삶은 고단했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그녀를 미군들은 ‘맘’이라 불렀다. 그녀는 미군들에게 음식을 팔고 있다.
도완구: 부자집 둘째아들이다. 친일매국노였다. 독립운동을 한 형제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모처럼 내려온 본가에서 봉자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봉자를 내달라고 행패를 부린다. 그렇게 봉자를 얻어와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미군과 마주하여 죽을 위험에 처할뻔 했지만, 도완구는 어떻게든 미군에게 살아남는다. 미군은 그를 피난민을 모아둔 노근리 쌍굴다리에 던졌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친일매국노 출신인 그는 여전히 돈이 많다. 하지만 쓰레기에게 쓰레기 난다고 했던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아들이 회사를 차지한 뒤로는, 뒷방 늙은이 신세다.
남득: 어려서 기지촌에 살았다. 엄마는 양공주였다. 남득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튀기’라 놀림받고 늘 소외된 삶이었다. 그래도 기지촌에 있으면서 미8군 음악, 당대 핫했던 대중음악을 듣고 자라며 독보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재능마저 도둑맞으며 그는 체념했다. 현재는 기술을 배워 하루벌고 하루먹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운명을 되물림이라도 하듯 남득의 아들 영수도 척박한 삶을 산다.
잊은 사람, 끝나서 정리된 연으로 알았는데,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전쟁이, 아니 학살이 앗아간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그 학살이 남겨준 상처이자 유산인 남동생과 아들……. 58년동안 서리서리 쌓이고 곪아 터져서 짓무르고 굳어져 옹이가 된 기억들이 칼이 되고, 창이 되고, 바늘이 되고, 망치가 되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베고, 자르고, 찌르고, 쑤시고, 두들겨댔다. p 037
단군의 자손들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해 탄생한 자신들의 자식들을 책임지지 않고 유기했다. 자신들의 무능으로 오랑캐와 왜놈들에게 잡혀가 능욕을 치르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환향녀를 화냥년으로 만들어 스스로 책임을 회피코자 했던 치졸하고 비겁한 역사를 기꺼이 받아들여 재탕했다. 혼혈이 순혈들에게 빌붙어 먹겠다거나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멸시하고 천대하고 구박했다. p 156
어머니는 이장에게 다시 물었다. 좌익 빨갱이 짓을 한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죽였다고 하던데, 보도연맹과 아무 상관이 없는 봉수 아버지는 대체 왜 잡아가 죽인 것이냐고. 이장이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p 176
부모 품을 벗어나 멋모르고 하천 변 자갈밭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미군의 총격에 즉사한 어린아이의 시신이 피 웅덩이 속에 그대로 너부러져 있었다. 미군은 무리를 벗어나려던 -이탈이나 도주 목적이 아니라, 용변을 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청장년만 죽인 것이 아니라, 멋모르고 움직이는 어린아이까지 죽였다. 움직이는 대상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았다. p 278
이웃마을로 마실이라도 온 친지인 양 쌍굴다리로 어기적대며 다가와 기웃거리는 미군의 속내는 모르겠으나, 통역이 없으니 대화를 하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원점사격을 하고 표적지를 확인하러 오는 사격수 같은 태도였다. 미군은 피난민 몇몇이 토막 영어로 울부짖는 애원을 개 짖는 소리인 양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돌아가서 다시 사격을 가하는 짓을 일과처럼 반복했다. p 286
얼마나 지났을까. 폭격과 총격이 잦아든 뒤 미군이 산속으로 달아난 피난민들을 향해 내려오라고 했다. 미군에게 붙잡힌 피난민이 미군의 명령을 받아 방송헀다. 이 말을 듣고 산을 내려간 피난민들은 사살됐다. 미군들이 쌍굴다리 앞뒤를 포위하고는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p 310
그날 엄마와 두 동생을 잃었는데, 엄마와 봉순이는 아직껏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죽었을 터인데, 시신조차 찾이 못했다. 시신을 찾지도, 그날 그때 그곳에서 엄마와 봉순이를 봤다는 증언을 해줄 목격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철둑 위와 쌍굴다리에서 학살된 대다수가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들이었으나, 타지인인 엄마와 두 동생은 아는 사람이 없어 증언할 목격자를 찾을 수 없었는데, 경우가 비슷한 다른 희생자들도 마찬가지였다-에 봉자는 58년이 지났어도 엄마와 동생들을 그 자리에서 잃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길이 없었다. p 311
이 소설이 엔딩으로 치닫는 과정은 씁쓸하다. 이 과정이야말로, 이 내용이 소설이면서 사실에 입각하여 쓰여진 글이라는 방증일테지만.
미군이 주도한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시 일어난 다른 민간인 학살사건에 비하면, 그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무수한 어려움이 있었다. 국군이 주도한 학살사건이 아닌, 재조지은의 나라에서 온 미군이 주도한 학살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이 되어서야 미국의 ‘유감표명’으로, 겨우 기정사실화 되었을 뿐이다. 이 전까지만해도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언급을 한 사람은 ‘빨갱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2004년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대게 노근리에 연고가 있는 주민들이었다. 소설 속 봉자와 같은 케이스는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단 노근리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제주 4.3사건, 광주 5.18 민주화운동 등 정부 주도하에 진행된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에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다.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연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희생자들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책을 쓴 저자가 존경스럽다. 보통 역사소설이라고 치면, 우리에게 먼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그래야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사소설 「붉은 그늘」 처럼 가까운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면 달라진다. 권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에게 비난(더 나아가면 협박까지)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저자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권력을 지닌 소수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