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동화’라 하면 권성징악 따위를 말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일컫는다. 심지어 동화의 ‘동’짜는 한자로 ‘아이’를 뜻한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 하나. 동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편집되고 각색된,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고 자라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동화의 원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뭇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백설공주”, “라푼젤”, “피노키오”, “빨간모자” 등 원전은 아이에게 읽어줄 수 없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단 서양 뿐이랴? 동양, 특히 우리나라 동화인 “콩쥐팥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무서운 동화를, 진정 동화라고 해도 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잔혹동화’ 다.
우화외 괴담을 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어른을 위한 야식
강지영 소설가 추천사
이 장편소설 『귀여운 것들』 실로 ‘잔혹동화’에 걸맞는 책이다. 제목만 봤을 땐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동화같지만, 책을 펼치면 잔혹한 세상이 펼쳐진다.
이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등장인형(?). 등장인형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긴 한데, 진짜 등장인형이다. ‘도살자 깔랑’, ‘그로테’, ‘어디든 뼈다귀’ 등 전부 인형이니까. 이희지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인형 공장에서 불량품이었던 그로테, 혹 난 쥐라 불린 뼈다귀, 그리고 지점토 인형까지. 모두 인형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았고, 사랑받길 원했고, 사랑받기 위해 사람 손에서 태어난 인형들.
난 첫 단락인 ‘깔랑’편에서부터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잊었어? 내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잖아. 나밖에 없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깔랑은 인형일 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인형. 짧은 시간 동안 사람에게 사랑받다가 쓰레기봉투 안에 버려진 후에 매립지에 묻힐 운명을 가진 인형 말이다. p 021
한편으로 이희지가 밉고 원망스러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웠다. 이희지는 깔랑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던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 p 048
깔랑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제 처지를 그저 수용하며, 모든 상황을 꾸역꾸역 감내해내기도 했다. 그게 바로 이희지였다. 깔랑은 그런 주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인간 곁에 저라도 찰싹 달라붙어 손톱만 한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p 058
네발로 기던 한 여자아기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깔랑은 아기의 일상을 온전히 함께했다. 하지만 아기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갈수록 깔랑은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비단 깔랑이 하나만의 일일까? 한 아이의 애착인형이 되었다가, 그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새 잊혀져 서랍장 구석에 쳐박히고, 소각용 봉투에 들어가는 것. 대다수의 인형의 삶이다. 나역시도 어렸을 땐 분명 애착인형이 있었을 터인데 당장 기억나는게 없기도 하고.
이제 두돌인 우리 뿡뿡이도 없으면 울고 불고 난리날 애착인형이있다. 이미 해질대로 해진 애착인형. 혹시나 안에 솜이 터질까, 똑같이 생긴 인형을 하나 더 사서 보관중인 애착인형. 이 인형들의 끝은 어떨까? 우리 뿡뿡이가 더 커서, 더 재미있는 무언가에 빠지게 되면 애착인형의 존재를 잊게 될테고, 그럼 나는 정리를 한답시고 해져버린 이 인형들을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왔나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탄생했으나,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귀여운 것들을 위해.
사랑도 받아봐야 제대로 줄 수 있다고 했던가. 검은 여자가 홧김에 지점토 인형을 때려 부수고 다시 이어 붙여줬던 것처럼, 지점토 인형이 다른 인형들에게 줄 수 있는 종류의 애정도 그런 것들뿐이었다. (…) 하지만 그로테는 달랐다. 그로테는 익숙한 길로만 달리던 지점토 인형의 방향을 틀어주었다. p 160
지점토 인형은 엄마가 만들어주었으니 그저 존재하면 됐다. 돌망치가 내리쳐 지점토를 깨부쉈으니 파괴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엄마가 지점토를 뭉쳐줄 때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됐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지점토 인형은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아닌 누구를 위해서도. 이토록 가슴 뭉클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점토 인형은 선택해다. 건너도 될지 아닐지 모르겠는 신호등을 그냥 건너버리기로. p 180
어찌보면 한국판 ‘처키’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이 소설의 시작. 헌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게 정말 ‘인형’만 겪는 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형 ‘깔랑’은 누군가 키우다 버린 반려동물과 오버랩되고, 지점토 인형은 가정에서 학대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와 오버랩된다. 또다른 등장인형인 뼈다귀, 그로테도 사회적 약자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분명 버려진 애착인형 ‘깔랑’에서 시작된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 속 인형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소름끼치도록 오버랩되서 되려 찝찝함과 왠지모를 답답함만이 가슴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토록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나설 나의 깔랑, 그로테, 뼈다귀, 흰털, 곰 그리고 동그라미가 된 지점토, 너희의 내일을 응원할게! p 234 (작가의 말 中)
부디 이들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