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어를 곧잘 한다. 내 일본어 실력은 자격증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JLPT N1은 기본이고, JPT 800점대가 나온다. 심지어 일본어 관광통역사 자격증까지 있다. 자랑하고 싶은게 있다면, 학원을 다닌 적 없고 오로지 일본어를 독학으로 했다는 것. 거기다 관련 전공자도 아닐 뿐더러,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도 일절 상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 함정은 있다. 어려서부터 역사더쿠였기에 한문을 좋아했다. 그런 와중에 중학생 때부터(!!) 일본 만화와 성우에 미친듯이 빠져버렸다. 그렇게 남들이 말하는 이른바 슬기로운 더쿠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달까? 더쿠생활의 끝을 달렸던 고등학생 때는 졸업하면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다는 꿈도 꿨다. 슬프게도 이 꿈은 그저 꿈에서 끝났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지, 나빴다고 해야할지. 나는 워킹 홀리데이는 커녕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저 그런 회사에 취업했다면, 언제든지 때려치고 내 꿈을 쫓을 수 있었을텐데 이 역시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지. 내가 취업한 회사는 남들이 들으면 ‘오올!’ 하는 이른바 대기업이었다. 회사를 때려치고 꿈을 쫓기엔 아쉬울게 많을 정도로. 그렇게 난 평범하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덕질은 자연스레 안녕! 일본어는 취미생활이 아닌, 내 가치를 증명할 도구로 사용했다.
어느새 직장생활 1n년차. 길다면 긴 기간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도 하고, 신혼도 즐겼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낳았다. 지금의 난 ‘육아-회사-육아-회사’ 무한 반복이다. 육아와 함께 내 시간이 사라져서 그런가? 요즘들어서 부쩍 잊고있던 꿈이 떠오른다. 내가 포기했던 수많은 선택 중 하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이 책은 두 번의 워킹홀리데이로 일본과 아일랜드에서 지내고, 워홀이 끝난 뒤에는 세계여행을 하며 여행을 업으로 삼은 저자의 기록이다. 과거의 내가 포기했던 삶이다. 지금의 내가 가끔씩 부러워 하는 삶이기도 하다.
‘일본어도 안 되는데 일을 어떻게 구할까?’라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 오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구하러 다녔다. 전화로 일을 구할 만큼 일어도 안됐고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는데 사람을 구합니까?’라는 일본어만 외운 채 무작정 가게에 찾아갔다. 역시 외국인이 일어도 못하는데 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 일본에 올 때 ‘절대로 한국인들과 어울리지말자’, ‘한국 가게에서는 일하지 말자’ 라고 굳게 다짐하고 왔었다. 일본어를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동유모 사이트(한인 커뮤니티 카페)를 검색하며 ‘아카사카’라는 지역의 한국 가게에서 일하기로 했다. p 025
보통 언어는 3개월 단위로 계단처럼 오른다고 한다. 항상 도서관에 갈 때 또는 길을 걸을 때 한자 간판이 유독 많은 일본에서 언젠가 간판을 읽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신기하게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간판에 있는 글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순간 누군가 나에게 최면을 거는 것 같았지만 내 눈과 머리로 간판을 읽고 있다는 걸 의식했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역시 언어는 꾸준히 하면 는다. p 030
며칠 동안 검색해서 일본 카페와 식당, Bar 등에서 면접을 봤다. 결과는 단, 한군데도 흔쾌히 OK 하는 곳이 없었다. 면접을 보니 일본어 실력이 일할 정도는 안 됐나 보다. 갑자기 일본어 실력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작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치욕을 또 한번 느꼈다. 너무 자만했던 걸까? 좌절했다. 그렇게 이틀을 술 먹으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던 찰나, 에비스의 몬쟈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나를 채용한다는 합격 통보였다. p 049
내가 알고 있는 일본 워홀은 보통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실제로 한창 더쿠생활을 하던 그 때,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일본어 능력자들이 선택했던 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고 꽤 놀랐다. 일본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 워홀을 선택한 저자였기에. 무모하다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용기와 추진력에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언어를 모른 상황에서 외국행을 택했다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언어를 습득하여 외국에서 생활하겠다는 의지를 담보로 한거니까.
실제로 저자는 3개월만에 일상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일본어 실력이 늘었고, 두번째 직장은 온전한 일본 가게였다. 서비스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은, 정확히 자연스런 일본어 응대를 못하는 사람은 취업이 어렵다. 헌데 그 어려운 길을 해냈으니, 이 정도면 저자의 의지와 실행력은 정말 박수받을만 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생각이 많아졌다. 원하던 일본 가게에서 일도 하고 일본어도 늘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내 마음속의 불안함은 남아 있다.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주변 친구들과 달리 학교도 휴학하고 일본에 왔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을 과연 잘하고 있는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모든 물음의 끝은 결국 내가 정하고 결론을 내린다. 오늘도 생각이 많아진 만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p 071
인생을 살면서 온전히 ‘여행’만 한 적은 없었다. 여행이란 것은 짧게 다녀올 때 휴식의 개념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스태미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여행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매일 보는 풍경들과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일상이 되었고 그게 내 삶 속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름다움, 즐거움, 멋진, 무서움 온갖 단어의 의미를 정한 기준은 무엇일까? 무언가의 ‘기준’을 정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일반화된 논리이지 정답은 아니라는 것. 결국은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번 여행을 통해 ‘돈’과 ‘시간’으로 살 수 없는 ‘꿈’을 찾았다. p 098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던 1년. 2014년 3월 6일 ~ 2015년 3월 6일. 많은 사람을 만났고 추억을 쌓았다. 내 인생에 있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물네 살의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 아마 이번 워킹홀리데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쳇바퀴 돌듯 바쁜 일상을 살 것이다. 그렇지만 꿈은 더 커졌다. 내 꿈을 위해 달려가 보려 한다. 10년 후 미래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p 116
잠깐의 여행이 아닌, 모든 것을 다 내려두고 장기간 세계여행을 간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며 걱정이라는 이름의 오지랖을 부린다. 물론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걱정하는 그들이 간과하는 점이 있으니, 바로 세계여행을 선택한 당사자다. 그들 역시 앞날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여행을 택했다는 건,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겠다는 의지다. 뭐, 간혹 욜로★만 외치는 머리가 살짝 백지인 소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저자처럼 넓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을 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또 그려낼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모든것을 뒤로하고, 세계로 떠나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은 누군가의 걱정을 한 몸에 받을 그 선택이, 훗날 자신들을 걱정해주었던 사람들보다 여러 면에서 더 멋진 어른이 될 시작점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