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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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읽었다. 한일 근현대사를 다루는 인문학책이다. 단순히 한일근현대사를 나열하는게 아니라, 그로 인해 생겨난 갈등과 사회적 문제, 및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한일관계는 지금까지도 여러 문제가 잔존해있기에, 꽤 무게운 주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의 시작점이 근현대사에 기인하며.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 세대를 지나 미래 세대애까지 끊임없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아니 집단은 20대 일본 학생들이다. 



이 인문학책 『우리가 모르는건 슬픔이 됩니다』 는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20대 학생들이, 살면서 배우지 못했던, 혹은 왜곡된 역사 공부로 인해 몰랐던, 자국이 숨겼던 가해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뿐만아니라, 가해국가에서 자라난 자기들을 비롯하여 다른 친구들이 가해 역사를 정확하게 ‘마주’하고 ‘기억’하기 위한 여정이다.

아래는 이 책의 추천사다. 추천사를 쓴 사람이 흥미롭다. 다름아닌 일본 역사왜곡에 맞서는 서경덕 교수다.

여기 멋진 일본 청년들을 소개합니다.
한류를 통해 단지 한국 문화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일 역사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추천사 中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학생들 마음 속 한켠에는 찜찜함이 남아있다.  이 책은 그 찜찜함을 마주한다. 바로 한일 근현대사. 그들에게 한일 근현대사가 찜찜한 이유는 단 하나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제대로 된 한일 근현대사를 배우지 못했다. 왜? 2000년 전후로 일본에서 ‘역사 수정주의’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단어만 봤을 땐 그럴듯한 ‘역사 수정주의’. 무엇이 문제일까?


1997년 일본은 고노 담화에서 ‘일본군 위안부(일본군 성노예)’에 대해 사과했다. 이와 함께 일본 역사 교과서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등 일본의 가해역사가 기술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극우세력. 그들은 이런 내용들이 패배주의적 관점이라며 역사 수정주의를 내세웠다.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역사 수정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였고, 이로 인해 자국의 가해역사에 대해 올바른 교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쉽게말하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자국의 가해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며, 더 나아가 피해국가 및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운동이다.


그들이 가정, 학교에서 배운 일본 근대사는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여러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일본 가해역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한국, 중국처럼 ‘반일’감정이 있는 나라가 아닌, 우방국이자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한 유럽권에서조차도 ‘일본 가해역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국에서는 배워본적 없는, 일본의 가해역사를. 


배워본적 없은 일본 가해역사도 믿을 수 없는데, 내 최애가 소녀상 굿즈를 착용하거나, 일제강점기 시대극등을 출연한다. 심지어 내 최애가 일본 세계유산 등재에 부정적인 의견을 펼쳤을때,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말한다. 이때마다 한류를 좋아한 일본 대학생들은 마음 속 찜찜함과 마주한다. 찜찜함과 마주한 대부분은 일본 전체적 흐름인 ‘역사수정주의’를 따라 눈을 돌렸다. 하지만 몇몇 일본 대학생들은 달랐다. 그들은 마음 속 찜찜함과 마주하며, 대체 이 찜찜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일본 학생의 관점에서, 자국의 가해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문제가 비단 일본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당장 피해국가인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다. 일본 학생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다. 그들 역시 마음 한켠에 찜찜함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일본 가해역사를 직시하고 교육하고 있는데, 대체 왜?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일본 문화(정확히는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다만, 난 일본 문화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역사도 좋아했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마음속 찜찜함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내 나라에 대한 역사와, 내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언제나 일본 역사 왜곡에 당당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로 인해 나는 당당하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문제는 다만 당당했다는 것.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은 대체로 한일역사에 눈을 돌렸다. 일본문화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내가 일본 문화를 즐기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이쪽 마음도 알겠고, 저쪽도 마음도 알겠지만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양쪽 한일 근현대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는 했으나 딱 그정도까지였으니까.

TMI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거다. 이 책을 쓴 일본 학생들이나, 우리나라 학생들 모두는 서로의 문화를 즐기는 데 있어서, 한일근현대사에서 기인한 여러 문제점들이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학생들이 찾은 문제 해결 방안은 이 책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한국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놀랍게도 해결 방안이 일본 과 다르지 않다. 이 책 제목에도 나와있다.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이 말을 요약해보자. 바로 ‘기억’이다. 기억하는 것이다. 단순히 피해역사를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기억’하고 목소리를 내야한다. 



일본은 ‘관용이 넘치는 상냥하고 친절한 나라’나 ‘문화를 받아들이며 진보해 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나라’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런 현실에 가담하는 것만은 싫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 그 위화감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라는 강의를 들었는데,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한 시대의 이야기가 나왔다. 강의 중에 소개된 《문서 미나마타 민중사 제5권 식민지는 천국이었다》라는 증언집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안에는 식민지 지배자로서 조선에 건너간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 폭력 등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렇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p 015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 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p 016

케이팝 팬이라면 ‘위안부‘ 문제에서 ‘위안부’ 지원 기업의 굿즈를 착용한 한국 아이돌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도 유명 케이팝 아이돌 팬이 있는데, 그 케이팝 아이돌이 착용한 ‘위안부’ 지원 굿즈를 제작, 판매하는 기업이 ‘반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또 부모님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설명하는 통에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털어놓은 지인도 있다. 이렇게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된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반일’의 상징으로 치부되고, 분명히 자주 들어봤지만 정작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p 037

일본군 ‘위안부’ 제도란 1932년부터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기까지 일본군이 아시아 각지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삼은 제도이다. 보통 ‘위안부’라고 하면 한국인 피해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텐데, 실제로 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한반도(대한민국, 북한) 출신이다. (…)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끌려가 ‘위안부’에 동원되었다. 예컨데 조선이나 대만에서는 일단 일본군과 일본 경찰이 업자를 선정한 뒤 업자가 여성들의 빈곤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다’라며 여성을 속이거나 부모에게 돈을 건네고 연행하는 방법을 많이 이용했다. 이것은 명백한 유괴와 인신매매다. 폭력과 협박을 이용한 연행(약취)도 있었다. 유념해야 할 것은 업자는 어디까지나 군의 수족으로 움직였을 뿐, 여성을 해외로 이송하는 과정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제도 전체를 운영한 것은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이다. (…) 강제로 끌려간 ‘위안소’에서 생활은 처참했다. 여성들은 군의 삼엄한 감시하에 ‘위안소’에 갖혔고, ‘위안부’를 그만둘 자유도 군인의 성적 요규를 거부할 자유도 없었다. p 03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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