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교사 위광조
꿈몽글 지음 / 파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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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과 제도는 선한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학교폭력 처벌 법 또한 그렇다. 하지만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졌든지간에, 그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이 소설  『학폭교사 위광조』 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불과 몇 년 전만에도 언론에서 ‘학교폭력’ 보도를 접하면 남들처럼 가해자를 보며 욕하고, 피해자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학교에서 학폭을 은폐한다는 보도를 보며 학교를 욕했다. 그게 끝이었다. 나에게 학교폭력은 남의 일이었으니까. 그렇지않은가. 난 이미 학교를 언제 졸업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그저 그렇게 사는 성인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학교폭력 보도만 봐도 지레 걱정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뿡뿡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테니까.



장편소설 『학폭교사 위광조』를 다 읽고, 조금 당황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학교폭력’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헌데 책 속에 나온 학교폭력은 내가 알고 있던 학교폭력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매 챕터마다 충격이었다.



절대 학교폭력이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내가 봐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어떤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인데, 학교폭력으로 둔갑했다. 피해학생 부모가 학교폭력이라고 신고하면, 피해학생이 금방 떠올리기 어려운 그저 그런 일상적인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대로 실제로는 학교폭력 가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신고하여, 실제 피해자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둔갑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소설 첫 챕터부터 충격적이었고 씁쓸했다. 친한 친구들끼리 놀면서 ‘메롱’하고 뛰어갔는데, 메롱을 한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왜? 메롱을 받은 내 아이가 입은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꺼냐며, 소리치는 자칭 피해학생 어머니로 인해서. 피해학생은 그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왜? 그저 친구와 노는 일상적인 시간이었으니까. 언제나처럼 같이 놀았을뿐인데, 한명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고, 또 한명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었다. 고작 ‘메롱’하고 뛰어갔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와 그 부모의 마음을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학교폭력 신고 가이드 북에는 ‘사소한 괴롭힘’도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사소한 괴롭힘. 피해학생이 괴로움을 호소한다면 사소한 괴롭힘도 학교폭력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게 문제다. 친구들끼리 놀다가 ‘메롱’, ‘이 바보야’ 몇 마디 했다고 그게 사소한 괴롭힘이 되는게 맞는건가? 심지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놀면서 나오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인데 말이다. 그저 부모의 잣대로 이를 학교폭력으로 규정짓는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부모라면 모름지기 내 자식을 보호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보호가 과보호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자녀의 인생을 파탄낸다면 생각한다면 이런 진상 부모짓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적어도 과거 내 부모는 이런 진상짓을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난 올바르게 컸다고 자부한다.



‘메롱’ 한마디만으로 내 아이가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학교 폭력 신고를 하는 부모 밑에서 자녀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사소한 다툼도 견디지 못할 게 분명하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미 과거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사회초년생이 된 아이들을 살펴보면 부모 의존도가 높은 부류가 굉장히 많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사회초년생들의 부모 의존도, 사회적으로 미숙한 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기도 하고.


광조도 안다. 학교폭력 신고는 신고한 사람이 절대적인 갑의 위치다.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광조의 교직 선배가 그렇게 누누이 강조했던 부분이다. 조금만 수틀리면 그들은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는 학교의 옹졸한 행태’로 학교의 모든 노력을 평가절하하게 된다. 그들과 학교가 적이 되는 순간, 모든 법의 화살은 학교를 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할지언정 광조는 자기가 만난 첫 번째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p 054


두번째와 세번째 챕터는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왕따, 그러니까 제대로 된 ‘학교폭력’에 대한 사안이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왕따를 주동한 아이 모친은 학교폭력전담위원회 위원이다. 이 엄마는 자기 아이가 문제행동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자기 아이가 학폭 신고 가해자로 접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쳐, 학폭전담위원에 나선 것이다. 즉, 내 아이 문제행동을 고칠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내 아이가 언젠가 학폭 가해자로 신고 될 수 있으니, 그 때 내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학폭 위원이 된 것이다. 



이 엄마는 내 아이가 문제 행동을 일삼고, 반 친구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내 새끼 지킨다는 명분으로 학폭 위원이 되었고, 실제로 자기 아이가 학폭 가해자로 신고되었을 때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자기 권력을 사용하기에 급급했다. 때마침 피해학생의 부모가 일이 커지길 바라지 않기에, 학폭신고가 무마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신고된 것이 앙심을 품은 이 엄마는, 다른 학부모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기 아이가 괴롭혔던 피해학생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학교폭력 신고 제도를 아주 제대로 악용한 사례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버렸다. 가해자가 된 피해학생은 즉시 분리 조치되었다. 학교폭력 신고가 들어가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해야한다는 법률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돌림 피해학생은 갑자기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었고, 학폭 분리조치로 인해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만약 첫번째 학폭신고 때 피해학생 부모가 제대로 대처했다면, 피해학생이 가해자로 둔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학교폭력 사건들은 언제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불리한 상황만 일어났더랬다. 이러한 사례들을 학습했던 피해학생 부모는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 결과, 피해학생은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교실에서 쫓겨났다. 



이로 인해 교실에서 제일 권위가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따돌림을 주도했던 진짜 가해학생이 되었다. 선생님은 실제 따돌림 당했던 학생을 도와주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가해학생과 그 엄마가 더 힘이세다는걸, 어린 아이들은 배웠다. 가해학생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교실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을.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지열은 학교폭력의 성립 조건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직 4학년에 되지 않은 아이의 입에서 ‘학생이 피해를 입으면 무조건 학교폭력’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지열의 보호자는 진단서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단 듯이. 그렇다. 이것은 지열과 지열 보호자만의 판단이 아니다. 배후엔 누가 있을까. 이것도 금방 떠올랐다. 윤성의 모 최현정은 학교폭력 전담기구 위원으로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p 134



담임교사의 지시를 바로 따르기보다 윤성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법과 제도에 따라 윤성은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었고, 법과 제도에 따라 담임교사는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교실 속 학생들은 모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p 139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학교폭력 신고 이후에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마 과거 학교폭력을 은폐하던 수많은 학교들로 인해, 은폐할 수 있는 구멍 자체를 막기 위함이리라.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가 정말 단 하나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학교폭력 신고 전에 학교폭력 과정을 알고 있음에도 이에 개입할 수 없고, 학폭 신고 이후에도 누군가의 입김으로 사건이 유야무야되면 이 역시도 학교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학교폭력 신고를 위한 법과 제도가 외려 악용되어, 선량한 아이들이 피해를 입고, 선량한 아이를 도와주려던 선생님들의 권위마저 떨어뜨렸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아니,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는거겠지. 훗날 뿡뿡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할까? 벌써부터 눈앞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 나는 이 소설들이 정말 소설이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학교폭력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이런 일들까지 실제하는 거라면 대체 내 자식을 어떻게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말 이 소설책 저자들이 말했듯, 소설이길 바란다. 아무리 이 소설이 실제 사건에 기반하여 집필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저 소설이기를 바란다. 제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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