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안쪽 - 속 깊은 자연과 불후의 예술, 그리고 다정한 삶을 만나는
노중훈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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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좋아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신랑과 정말 많은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시작한 초반에는 대놓고 ‘난 여행객이다!’ 라는 아우라를 뽐냈다. 맛집도 검색해보고, 핫플레이스도 검색해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인드가 변해갔다. 여행객보다 현지인처럼, 핫플레이스를 찾기 보다 동네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쪽으로.



그래서 그런가? 옛날엔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빠릿하게 움직였다면, 마인드가 바뀐 뒤로는 우선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발을 딛은 그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이 마을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를. 이런 식 여행은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오늘 리뷰하는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풍경의 안쪽"



이 책은 《풍경의 안쪽》은 여행작가 노중훈 씨가 기록한 여행에세이다.

거창하게 늘여놓자면 이렇습니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풍경도 기쁘고 좋지만 풍경의 겉면에만 머무르지 말고 발품과 마음 품을 팔아 안쪽으로 조금 더 진입해보자. 진입해서, 풍경을 일별하고 돌아가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풍경의 안쪽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p 004



정말 제목을 잘 지었다. 그어떤 표현보다 마음에 들고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저자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도 자주 써먹어야겠다!!



▶ 중국 쓰촨 :: 매운 요리보다 더 얼얼한 풍경

중국 쓰촨. 대중적으로 보면 매운 요리로 유명한 지역이다. 약간 더쿠의 시선으로 보면 삼국지, 시선 두보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푸공주, 푸바오가 돌아갈 ‘자이언트 판다 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 안녕 푸바오T_T...

무후사는 촉나라 황제 유비와 불세출의 전략가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다. 6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청나라 강희11년(672)에 중건되면서 지금의 골격을 갖췄다. 무후사가 흥미로운 것은 주군과 신하를 함께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도 유일무이한 경우라고 한다. 제갈공명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하긴 무후사라는 이름도 공명의 시호인 무향후에서 따온 것이다. p 050

육중한 체구에 귀여운 외모를 지닌 판다. 널리 알려졌듯이 중국인들의 판다 ‘집착’은 유별나다. 언젠가 판다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해 수확한 녹차의 가격이 50g에 우리 돈 390만 원으로 책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청두 교외에 판다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자이언트 판다 기지가 있다. 하루에 100m도 이동하지 않을 만큼 게을러터진 나머지 종족 보존의 의무마저 저버린 판다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p 053


사흘 밤, 나흘 낮 동안 쓰촨을 활보했지만 하늘은 회색의 엄숙한 낯빛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유일하게 청명한 날씨를 만난 곳은 어메이산이었다. 중국 불교의 4대 명산은 여러모로 남달랐다. (…) 얼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순식간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사진도 이렇게 멋진데 실제로 보면 인생이 바뀔것 같아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이백은 “어떤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도 어메이산에 비할 수 없다”고 칭찬했다는데, ‘형식주의자’ 두보라면 어떤 논평을 내놓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p 058

개인적으로 쓰촨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다. 위에서 말한 더쿠적 시선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랄까? 특히 저자가 갔었던 무후사. 유비를 모시는 사당은 중국 여러 지역에 있지만, 쓰촨의 무후사는 그 많은 유비 사당 중 두 번째로 큰 곳이라 한다. 기본 대륙 스케일 중에서도 두 번째로 크다하니, 감히 상상이 안간다.


당나라 시인, 시인중에서도 시선이라 일컫는 두보가 기거했던 초당도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근데 꽤 고단한 삶을 살았던 두보가 기거했다고 하기엔, 지금의 두보초당은 큰 규모의 정원을 거느린, 너무 잘 꾸며진 장소가 되었다. 이건 흡사 ‘초당’이라 이름하고, 초가는 없는 다산 초당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예능 〈신서유기〉에서도 나왔던 러산 대불이다. 러산대불의 규모는 뭐 말해 뭐해. 대륙 스케일은 바로 그 자체다.





▶ 몰타 몰타, 고조, 코미노 :: 지중해의 섬나라에서 보낸 아흐레

몰타는 어디..?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듣는 나라이름이라 약간 동공지진.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확실

한건 일반적으로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라는 것. 적어도 한국에서는. 바로 이 점이 저자를 몰타로 이끌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 내가 모르는 곳. 무지의 장소. 그렇기에 푹 쉴수 있는 곳.


나를 몰타로 이끈 것은 무지였다. 몰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어쩌면 오랜 세월 직업 여행가로 살아오며 남루해진 마음을 환기시키기에는 ‘익명’의 공간이 제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하룻밤 숙박료는 3만원이 조금 넘었다. 슬리에마의 호텔은 형편없었지만 그 형편없는 숙소를 몇 발짝만 벗어나면 탁 트인 지중해가 반겼다. ‘걸인의 숙소 왕후의 바다’ 였다. p 104

일요일 아침, 고민한 것도 없이 몰타 섬 동남쪽의 어촌 마사슬록으로 향했다. 일요일마다 어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문패는 어시장이지만 해산물을 비롯해 갖가지 농산물과 공산품이 집결했다. 한가지 서운한 점은 누가나 견과류 같은 간식거리 이외에 끼니를 때울 만한 음식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안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노천시장과 마주한 식당들 중 한 곳을 골라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굴, 홍합, 오징어, 조개 등을 한 그릇에 담아낸 해산물 믹스는 익숙한 맛이었다. 익숙해서 편안했고, 편안해서 일요일 오전이 한결 나른해졌다. p 110


딱히 갈 곳이 있지는 않았지만 숙소로 복귀하기에는 시간이 일렀다. 대충 지도를 본 다음 222번 버스를 타고 ‘옆길’로 새기로 했다. ‘우연히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격언이 진하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p 112


인접한 코스피쿠아, 센글리아와 함께 쓰리시티의 일원으로 묶이는 비토리오사는 도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덩치가 작았다. 두 번에 걸쳐 산책했는데 역시 골목 탐방 시간이 제일 말랑말랑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느다란 길에서 아이들은 천진하게 뛰어다녔고, 베란다의 빨래는 조속조속 졸았으며, 이름 모를 예술가는 밤늦도록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다. p 114



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한 이유로 선택한 여행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롬복. 롬복은 당시만해도 딱히 알려지지 않았던 여행지였다. 당연히 롬복에 가서도 한국말을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완벽한 익명의 공간이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바닷가에 누워서, 바다 위 어선을 보곤 했다. 근처 시장을 걸어보고, 현지인들의 삶을 보았다. 분명히 낯선 곳인데, 그곳에서 난 편안함을 즐겼다. 나에겐 정말 큰 모험이자 도박이었던 롬복여행. 그 여행은 대 성공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저자의 몰타 여행기는 다른 챕터보다 유독 공감이 간다.


  

화려한 여행지를 쫓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번지르르한 여행지 겉면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의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지금껏 생각치 못한 여행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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