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평점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끝나지 않은 한국인 시리즈’ 세번째 권 『바이칼 호에 비친 내 얼굴』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 이어령 선생이 작고하기 전 집필했던 원고를, ‘끝나지 않은 한국인 시리즈‘로 엮은 인문학책이다. 이 시리즈야말로 진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며, 인문학책으로도 단연 돋보적이다. 개인적으로 한창 타올라야할 젊은 지성들, 20대 30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문학책이기도 하다.
이 인문학책 『바이칼 호에 비친 내 얼굴』은 ‘사람’이 주제다. ‘한국인’을 찾는 여정이 담긴 책이다. 정확히는 한국인의 ‘얼굴’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우리가 배워온 역사, 우리 몸 속을 이루고 있는 유전자 등 한국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를 아울러 한국인의 ‘얼굴’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같은 유인원들을 포함한 영장류가 점차 진화 발전하여 현생의 인류에 이르렀다는 것이 우리가 가장 광범위하게 인류의 기원으로 믹도 있는 진화론이죠. 이 중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 유인원은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정글과 숲의 나무에서 내려와 너른 평지에서 삶의 터전을 잡게 된 유인원들입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는 사막지대도, 정글도 아닌 사바나 지역이에요. 즉 숲에서 나와 초원에서 생활하게 된 유인원들이 인류의 조상입니다. p 026
다시 말해 북방계를 대표하는 고대 악마문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돼 살고 있는 원주민의 게놈(유전체)을 슈퍼컴퓨팅을 통해서 융합했더니 현대 한국인의 게놈과 아주 유사하더라는 겁니다. 또 남방계와 북방계 두 계열의 혼합 중에서도 실제 한국인은 남방계 아시아인과 유전적 구성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의 한족은 유전자의 동일성이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p 054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을 전제로 인간 진화생물학자들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 경로가 두 개의 길로 나뉘었을거라고 추정한다. 하나는 유럽, 또 하나는 인도를 거쳐 아시아 남하하는 경로다. 이렇게 나뉜 인종을 코카소이드(백인), 몽골로이드(황인), 니그로이드(흑인)라 부른다. 이 중에서 코카소이드 및 몽골로이드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택한 인종이다. 조금 아쉬운 점은 단어 자체에 피부색으로 구분한다는 차별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캅카스 산맥을 넘은, 코카소이드(서양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대놓고 차별적인 단어라는 점에서 요즘은 이 단어들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인종은 ‘몽골로이드’로, 코카소이드보다 더 먼 길을 택한 인종이다. 몽골로이드는 한국인 조상이기도 히며, 세부적으로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뉜다. 북방계는 시베리아로 북상하여 바이칼호까지 다다랐는데, 때마침 신빙하기가 도래하여 바이칼호에 갇혔다. 바이칼호 근처에서 영하 70도라는 극한의 추위를 견딘 그들이 바로 한국인의 직접적 조상이다. 남방계는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골라낼 수 있는 얼굴을 지닌(!) 인종으로 대체로 중국을 거쳐 동남아, 일본(오키나와 등), 호주로 흘러간 인종이다.
세계인의 용모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획득하고 있는 용모적인 특성이 있다고 해요. 해부학에 근거해 전 세계인의 표본을 대상으로 방대한 자료의 조사는 물론 엄격한 분석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통계인데, 한국인 만의 네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p 057
눈이 세계 1등으로 작다.
털이 없기로 세계 1등이다(털이 많은 서양인과 비교해 털이 적은 한국인이 더 진화했다는 이야기).
귀에서 머리까지 길이가 1등이다. 즉 두상이 크다(즉 뇌도 크다?).
한국인의 치아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우리의 발음 체계와, 식문화도 깊은 연관이 있다).
바이칼호에서 시작된 우리 조상들의 1만 km가 넘는 대장정이 지금의 우리 얼굴 모양과 무관하지 않아요. 신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호에서 영하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입니다. 얼굴 중에서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부위가 코와 눈이에요. 혹독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됩니다. 또 얼굴 광대뼈는 튀어나오게 되었어요. 쌍커풀 없이 두툼해진 눈, 튀어나온 광대뼈, 납작한 코, 이것은 그 어떤 인간도 겪어보지 못한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그래서 결국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입니다. 혹한이 만들어낸, 바이칼호가 만들어낸 조각이고 예술품이고 상징인 셈이지요. p 059
실제로 문무왕릉비에 보면 ‘투후제천지윤’이라는 구절이 있지요. 투후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인 김일제를 말합니다. 정말 신라 왕족의 직계 조상이 흉노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왜 이런 글을 남겼을까를 추론하면 이렇습니다. 고구려, 백제는 부여 계통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북방계 사람들이었죠.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역시 그에 못지않은 북방계 혈통과 용맹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북방계 흉노의 후손임을 내세운 것은 아닐까 싶어요. p 065
본 책 내용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위 문무왕릉비에 적혀있는 ‘투후제천지윤’이라는 문구와 신라와 북방계 연관성에 대해 보충해보려 한다. 신라는 한반도계 고대국가 중 유일하게 문화가 다른 나라다. 한마디로 부여를 뿌리로 하는 고구려, 백제와 다르다는 이야기다.
예컨데 신라는 다른 고대국가와는 달리 황금 문화 및 (나뭇가지 또는 사슴뿔 형태)금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난생설화가 주류인 다른 고대 국가와 달리, 금궤짝 설화(김알지)가 있다. 물론 신라도 박혁거세의 난생설화가 있지만, 고대 신라부터 최정점에 이르고, 쇠락할 때까지 권력을 잡았던 것은 금궤짝 설화를 지닌 김알지의 후손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신라인들은 자작나무로 생필품, 공예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대표적인 유물이 천마총 말다래다.
놀랍게도 이런 황금 문화, 금관 문화, 자작나무 생필품 등은 북방계 유목민족들에게서(흉노나 훈족 등) 보이는 대표적인 전통이다. 특히 신라에선 자작나무가 자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작나무 생필품이 널리 애용되었다는 것은 자작나무 공급처가 있다는 말이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수목이다.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그것도 인제 같은 북쪽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신라는 북방계 유목민과 동일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북방에서 주기적으로 자작나무를 공급받고 있었고, 문무대왕릉비에 ‘투후제천지윤’이라는 문구를 새길 정도로 북방계와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친밀한 관계라고 애둘러 말했지만, 사실상 북방 유목민계 후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통일하면서, 신라의 문화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이후에 후삼국 시대를 지나, 고려가 다시 한반도를 통일했다고는 하나, 고려는 친신라 노선을 지향했다. 애초에 고려는 신라 호족들의 연합에서 시작한 나라였으니까. 결과적으로 한국인 조상 찾기 중 제일 가까운 조상을 고르라고 치면 신라인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부여를 뿌리로 하는 고구려 및 백제 역시 북방계이긴 하나, 신라를 필두로 하는 시베리아쪽 북방계와 문화나 그 결이 달랐을 뿐이다.
동북아시아에 있어 북방민족일 수록 얼굴이 수직팽창하고, 남방민족일수록 수평팽창한다는 설이 있다.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를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나오더군요. 수직팽창은 얼굴이 길쭉하거나 달걀모양이란 뜻이고, 수평팽창은 넓적하거나 넙대대한 얼굴을 말합니다. 한국인은, 북한을 빼고 남한에 사는 한국인은 남하 종족(북방계)과 북상 종족(남방계)이 절충된 얼굴로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과거만해도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6~7세기 경 백제 귀족 부부의 머리뼈를 복원해 점토로 얼굴을 재생한 것을 보면 수직팽창한 북방계임을 알 수가 있어요. 곧 고구려의 유민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p 108
서양 사람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소프트한 유동식을 먹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딱딱한 걸 주로 먹죠. 딱딱한 걸 먹기 때문에 세계에서 치아가 가장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씹기보다는 갑니다. ‘그라인딩’입니다. 서양의 ‘츄잉’과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추위를 견뎌온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맷돌처럼 그라인딩하는 식문화 때문에도 턱이 발달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게 된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하나의 설 입니다. p 109
위에서 한국인 얼굴을 찾기 위해 인류의 ‘시작점’을 찾아보았다면 이번엔 한국인의 ‘미소’다. TV를 키면 나오는, 요즘 한국인들의 미소가 아닌 천년, 이천년을 내려온 한국인의 미소다.
이번에는 한국인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볼까 합니다. 미소야말로 한국 문화의 얼굴입니다. 멋쩍에 웃는 웃음을 ‘오리엔탈 스마일’이라고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닙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두루봉 동굴에서 출토된 ‘뼛조각 인물상’을 본 적이 있나요? 코는 없지만 눈과 입은 뚜렷합니다. 입을 벌려 아이가 밝게 웃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p 113
삼국시대 대표적인 작품인 국보 78호 미륵보살반가상을 떠올려 봅니다.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볼을 짚고 사유에 잠긴 미륵보살의 눈웃음에는 중후한 기상이 서려있어요. 이런 미소를 염화미소라고 하지요. (…) 국보 80호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집상은 상투 모양의 머리에 콧날은 날카롭지만 분명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무건가 넉넉하게 품에 안는 듯한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느껴지면서도 왠지 장난기가 묻어나는 미소라는 생각도 들어요. p 116
사람 크기와 맞먹는 등신대로 제작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은 미륵보살반가상(국보 78호)와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cm나 됩니다. 얼굴의 눈두덩과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풍기고 있어요. 알듯 모를 듯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같습니다. 해탈의 웃음일지도 모릅니다. (…) 국보 24호인 석굴암 본존불인 석가여재롸상의 미소도 빼놓을 수 없지요. 모든 얼굴의 부분들이 단 한 순간의 어긋남도 없이 원만한 완벽의 조화를 이루며 지극히 인자하고 고요한 웃음을 짓습니다. p 117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 또는 인면문 수막새에는 가장 한국적인 얼굴의 미소가 담겨 있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미소 막새는 ‘신라의 미소’ 혹은 ‘천년의 미소’로 불릴 만큼 신라를 상징하는 유물로 자리잡았습니다. 당대 신라인의 미소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신라인들은 나쁜 기운을 몰고 올 험상궂은 귀신이 미소 막새를 만나면 힘을 잃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p 121
본 책을 포함하여 이어령 선생은 ‘천, 지, 인’ 3부작을 완성했다. 헌데, 이 시리즈는 총 6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가제로 붙여진 제목만 봤을 때 다음 3부작은 ‘의, 식, 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의, 식, 주’, 다름 그 누구도 아닌 이어령 선생의 글인 만큼, 어떻게 풀어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