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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미술관 여행 - 자연 친화적이고 혁신적인 북유럽 미술관을 가다
이은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오늘 서평 주인공은 『북유럽 미술관 여행』이라는 미술 여행에세이 책이다. 미술관련 책이야 거의 분기에 한 번 꼴로 읽었던 터라, 이런 책에 바라는 기대치가 꽤나 높다. 적어도 초심자용(?) 미술관련책은 진작에 타파했고! 이후에는 미술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들을 읽으면서, 미술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북유럽 미술관 여행』이라는 책을 읽기전에, 내심 내 궁금증을 얼마나 해소해줄지 기대가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제목 그대로 북유럽 5개국에 있는 ‘미술관’에 초점을 맞춘 미술 여행 에세이다. 미술 작품 해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망 잠시 넣어두는 걸로!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술관’ 매력 빠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근처에 미술관이 있는지, 한 번쯤은 미술관을 가볼 생각을 하게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북유럽 5개국에 있는 미술관 여행을 하였고, 그 여행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당연히 미술관에 걸려있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미술작품 이야기는 일종의 곁가지이고, 주는 ‘미술관’ 자체라는거! 근데 뭐, 따지고 보면 미술관도 하나의 미술작품이나 다름없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외관은 둘째치고, 건물 자체가 품고 있는 역사성만 하더라도 왠만한 미술작품 저리가라니까. 따라서 이 책 역시 미술작품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유명 미술작품들은 대체로 고전작품이 많을뿐더러, 소장처는 루브르 박물관 같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그런 곳들이 많았다. 헌데 왠걸? 이 책이 소개한 미술관에는 내가 몰랐던 미술작품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으레 알고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심지어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내가 생각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방문했던 우리나라 미술관은 보수적인 공간 인테리어가 많았다. 전시실도 책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나 조각은 많았으나, 체험 공간이나 멀티미디어 공간이 많이 부족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갔었던 미술관은 대게 연식이 오래되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랬기에 이 책에서 소개한 북유럽 미술관이 하나같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무엇보다 부러웠다T_T.
아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미술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미술관 두 곳에 대한 내용이다. 왜 하필 이 두 곳인가? 에 대해서는 뭉크 그림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사심 듬뿍이라서다. 2014년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했었던 뭉크전을 보러갔었던게, 나에겐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뭉크 그림을 다시 한 번 두 눈으로 보고 싶달까?!
노르웨이: 문화의 아이콘, 뭉크 미술관
미술애호가들에게 오슬로는 에드바로 뭉크의 도시다. 붉은 노을이 지는 황혼 녘, 해골 모습의 사람이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명화, <절규>가 바로 이 도시에 있다.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뭉크만큼 절절하고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화가가 있을까. 루브르의 <모나 리자>만큼이나 유명한 <절규>를 만나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 명이 오슬로를 찾는다. p 017
뭉크 미술관은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뭉크의 작품와 아카이브 자료 약 4만 5,000점을 소장한 세계 최대 미술관이다. 이 방대한 소장품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기증 덕분이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노르웨이를 점령하자 아내도 자식도 없던 뭉크는 오슬로시에 자신의 작품과 소유물을 다 기증했다. 그가 사망하기 4년 전이었다. 이때 기증품 수는 2만 8,000점이 넘었는데, 단일 작가가 기증한 양으로는 역대 최다였다. 뭉크 미술관 소장품은 작가의 기증 외에도 그의 막내 여동생 잉에르의 사후 기증과 개인 컬렉터들의 기증으로 더 탄탄하고 방대해졌다. p 023
7층에선 뭉크가 생애 마지막 30년을 살았던 에켈리의 별장을 재현한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9층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시 공간이고, 10층은 음악과 시각예술의 융합을 경험해보는 특별한 공간이다. 11층은 체험형 작품 전시 공간으로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2022년에는 오슬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니 브링가케르가 초대돼 뭉크의 어린시절 바닥 낙서화에 영감을 받은 <브레인 미로>를 선보였다. p 033
뭉크 미술관이라고 해서 모든 층, 전시실에 뭉크 작품만 있을거라는 편견은 버리자! 각 층마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건 둘째 치고, 여러 체험공간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도 체험할 수 있다는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은 고리타분하다’는 당신의 편견을 완벽하게 부실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술관에 대한 내 편견을 깨부셨다.
‘절규의 방’은 조도를 낮춘 무척 어두운 공간이었다. 한 공간 안에서 그 유명한 <절규>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으나, 아뿔싸! 판화 버전 한 점만 벽에 걸려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너무 몰려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보는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렵게 만난 그림이라 그런지, 관람객들은 다들 그림 속 비명 지르는 사람을 흉내 내며 인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왜 유화 버전은 없는지 궁금해 주변을 둘러봤더니, 벽에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 가지 버전의 <절규>는 작품 보호를 위해 한 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공개된다는 내용이었다. p 025
지금은 노르웨이의 국보 대우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화지만, 처음 <절규>가 발표됐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평론가들은 ‘정신병자가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뭉크는 발끈하지 않고 그림 왼쪽 상단에 이렇게 썼다.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광기를 인정한 것이다. p 027
지금은 국민화가로 불리는 뭉크지만 생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연이어 누이를 잃었다. 아버지는 강압적이었다. 거기다 뭉크 본인과 여동생은 정신질환까지 앓았다. 업친데 덥친격이다. 뭉크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물론 뭉크에게도 연인은 있었다. 결론적으로 뭉크의 연애사는 여러모로 처참했다. 그런 뭉크가 그림을 그렸다. 당대 사람들 가치관으로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그림들이었다. 지금은 뭉크 작품으로 제일 유명한 <절규>가 바로 당대 사람들이 외면한 그림 중 하나다.
스웨덴: 뭉크와 니체를 품은 컬렉터의 집, 티엘 갤러리
문화적으로 봤을 때 스웨덴의 행운은 하나 더 있다. 바로 티엘 갤러리다. 노르웨이의 국민화가 뭉크의 작품을 노르웨이 밖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 중 하나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데스마스크도 소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섬에 지어진 건축과 미술, 조각 공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자 아는 사람만 아는 스톡홀름의 숨은 명소다. p 212
원래 이 건물은 부유한 은행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에르네스트 티엘과 그의 아내 시그네마리아 티엘이 살던 집이었다. 소장품이 늘어나자 티엘은 수집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하얀 궁전을 유르고르덴섬에 지었다. 거주 공간과 갤러리 공간이 함께 있는 빌라 형태의 건물이었다. 경제 대공황 때 티엘은 재산 대부분을 잃었다. 1922년 완전히 파산 상태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살던 빌라와 수집품, 가구까지 모두 팔아야 했다. 다행히 스웨덴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정부는 1924년 티엘의 집과 소장품을 일괄 매입한 후 1926년 국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후 건물은 현대화를 위해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했지만, 대부분 20세기 초에 지어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 214
티엘갤러리는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티엘이라는 부유한 사업가가 살던 집이었다. 다만, 티엘이 워낙에 미술 오타쿠&컬렉터다보니 어느새 집에 많은 많은 미술작품이 쌓였을 뿐이다. 자연스레 집이 미술관처럼 변했고, 티엘은 내친김에 집을 갤러리 공간으로 바꿔버렸다. 역시 덕질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배웠달까. 허허허.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방대한 뭉크 컬렉션이다. 층고가 높은 뭉크 홀의 벽면 모두 뭉크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티엘 부부의 초상화는 물론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픈 아이>와 <절망>도 만날 수 있다. 티엘 갤러리는 뭉크가 그린 열 두 점의 유화와 100점에 가까운 판화를 소장하고 있는데, 노르웨이를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큰 뭉크 컬렉션 중 하나로 손꼽힌다. p 222
꼭대기 층에 있는 타워 룸에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데스마스크와 뭉크의 판화 작업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1900년 니체 사망 직후 만들어진 데스마스크가 여러점의 에디션으로 제작됐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티엘은 니체의 열렬한 팬이었다. 해서 데스마스크를 소유했을 뿐 아니라, 1906년 뭉크에게 의뢰해 니체의 초상화도 그리도록 했다. 다리 위에 서서 아래의 풍경을 응시하는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티엘 갤러리에 있는 이유다. p 224
돈많은 오타쿠(!)답게 티엘은 당대 여러 화가와 교류했는데, 그중 한 명이 뭉크였다. 뭉크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 모두를 노르웨이 오슬로시에 기증했는데, 모든 작품을 기증한 건 아니었다. 자기 가족에게 주거나, 혹은 지인에게 주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티엘도 개인으로는 단연 돋보적으로 많은, 뭉크의 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티엘은 망하고, 티엘이 소장하던 모든 작품들은 스웨덴 정부가 매입하여 국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결과적으로 제일 이득을 본 건 스웨덴 국민들이라고 할까? 만약 티엘이 망하지 않고 자신의 미술작품들을 계속 소장하고 있었다면, 그가 소유한 모든 미술작품들은 티엘과 그 가족들만 볼 수 있었거나, 혹은 아주 비싼 값을 내고 미술작품을 보러 왔어야 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