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안의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15가지 약의 결정적 순간
키스 베로니즈 지음, 김숲 옮김, 정재훈 감수 / 동녘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투비 역사더쿠에다가 1n년 째 제약회사를 다니고 있다보니, 의약품 관련 세계사책도 자주 읽었다. 다만 지금까지 읽었던 의약품 세계사책은 내용이 거의 비슷해서 블로그에 리뷰는 안썼다. 예컨대 대다수 책은 ‘페니실린’이나 ‘모르핀’, ‘아스피린’ 같은 대중적인(?) 의약품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오늘 리뷰하는 『약국 안의 세계사』도 비슷할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알고 있는 의약품 역사도 있었지만, 전혀 의외였던 의약품 이야기가 여럿 있었다. 그래서 간만에 리뷰를 쓰는 거기도하고 ㅋㅋ




▶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


1.페니실린: 휴가를 떠난 플레밍의 실험실에 이상한 곰팡이가 날아왔을 때

2.퀴닌: 고열에 시달린 여행자가 우연히 키나 나무 주변 연못에 도착했을 때

3.리튬: 케이드가 전쟁으로 정신이 피폐해진 아버지를 본 순간

4.질소 머스터드: 전쟁 중 미국 배 한 척이 격침되며 의문의 가스가 살포된 순간

5.와파린: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싫어서 벌인 한 병사의 자살 소동

6.보톡스: 성형외과 의사 클락이 수술 중에 실수로 의료 사고를 낸 순간

7.미녹시딜: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고혈압 환자의 얼굴에 털이 가득 났을 때

8.피나스테리드: 맥긴리가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수상한 마을을 알게 됐을 때



의외였던 의약품 중 몇 개를 고르자면 아마도.. 우리 회사에서 제조 및 판매하는 약품인 ‘미녹시딜’과 ‘피나스테리드’라고나 할까? 정말 진짜 와. 아주 깜짝 놀랐다. 이 두 의약품은 항생제나 마취제 같은 대중적인 의약품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평생 이런 의약품을 접할 일이 없는 의약품이다. 벗뜨 이 의약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될(!!!!) 심지어 먹게되면 자의로 끊어서도 안될(!!!!) 의약품이다. 이 두 의약품의 정체는 다름아닌 탈모치료제.



탈모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도 정복하지 못한, 현재까지도 정복하지 못한 아주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그렇기에 치료제가 있는 것만이라도 정말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탈모 치료제가 ‘미녹시딜’과 ‘피나스테리드’. 그렇다면 이 약품들이 처음부터 탈모치료제였는가? 대답은 ‘NO’다. 당장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피나스테테리드’는 탈모치료제보다는 전립성 비대증 치료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말은 모다? 피나는 원래 전립성 비대증 치료제였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탈모치료제인 ‘미녹시딜’도 원래 고혈압 치료제다.


#미녹시딜


1971년 콜로라도 대학교 의과대학의 찰스 치지 지도하에 고혈압에 미녹시딜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이 시기에 전공의 1년생이었던 폴 그랜트가 이 약물을 복용하던 여성에게서 유난히 독특한 증상을 발견했다. (…) 고혈압이라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그 어떤 부작용도 감내할만한 각오가 돼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환자와 의사 둘 다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 부작요잉 있었다. 얼굴 전반에 털이 자라고 머리카락과 다리털이 빠르게 성장하는 부작용 말이다. p 305


머리카락이 다시 날 수 있도록 미녹시딜을 활용하는 첫 단계는 미녹시딜을 국소 부위에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경구 미녹시딜을 복용했던 그랜트의 환자에게서 목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제멋대로 털이 자라는 대신 원하는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자라길 바랐기 때문이다. 칸은 치지의 연구실에서 미녹시딜 가루를 조금 빼돌렸고, 에탄올과 프로필렌글리콜에 미녹시딜을 섞어 1퍼센트 용액을 만드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p 306


미녹시딜을 국소부위에 사용하는 임상시험은 매우 낮은 농도의 미녹시딜로 시작해 2퍼센트까지 늘려나갔다. 그중 1~2퍼센트 용액을 복용한 환자에게서만 상당량의 모발이 자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랜트를 포함한 4명의 핵심 인력에게 시험하기 위해 칸이 만든 용액 농도가 1퍼센트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행운의 여신이 어떻게 이들을 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p 307


미녹시딜은 머리카락의 모낭에 존재하는 황산 전이효소와 상호작용한다. 이 효소는 미녹시딜을 활성형인 미녹시딜황산염으로 변화시킨다. 이 다음부터 미녹시딜이 어떻게 머리카락 성장을 촉진하는지 그 매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다. (…) 흥미롭게도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존재하는 황산 전이효소와 상호작용해 미녹시딜이 활성형인 미녹시딜황산염으로 변화하지 못하게 만들어 약품의 효과를 떨어뜨렸다. 미녹시딜을 복용하는 사람들이여, 이 지점을 꼭 기억하시라. p 312


어떤 형태든 미녹시딜은 고양잇과 친구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소 부위에 바르는 미녹시딜은 고양이에게 매우 유독할 수 있기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바르는 미녹시딜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 사례가 있다. 고양이 두 마리가 국소 부위에 미녹시딜을 바른 피부와 접촉하자 눈에 띄게 무기력해지고 하루 하고 반 나절 정도 숨을 쉬는 데 문제를 보였다. 그리고 미녹시딜 샘플에 몸에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생을 마감했다. p 317


#피나스테리드


탈모 치료제와 발모제로써 피나스테리드가 쓰이게 되기까지 여정은 독특한 장소에서 시작됐다. 그 장소는 바로 카리브해 살리나스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기서 코넬대학교 의과대학 줄리언 맥긴리는 여성의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신체적으로는 자웅동체 특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연구했다. (…) 1974년 맥긴리는 카리브해 어린이들의 유전암호에서 돌연변이를 목격한 사실을 밝혔다. 이 돌연변이는 테스토스테론을 더 강력한 분자인 디히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전환하는 5-알파-환원요소 억제제라는 효소의 양을 줄이로, 이렇게 5-알파-환원요소 억제제가 부족해지면 사춘기가 시작할 때까지 남성의 특징이 발달하지 못하게 했다. p 326


맥긴리 발표는 파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도 여기에 관심을 보였다. 머크의 기초연구장인 로이 바겔로스는 크기가 작은 전립선과 맥긴리가 언급했던 5-알파-환원요소 억제제의 부족한 활성 사이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 전립선의 크기가 커지는 전립선비대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전립선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기대로 말이다. p 327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피나스테리드의 또 다른 용도인 발모 효과를 발견했다. 과도한 양의 DHT가 모근에 존재하면 DHT가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고 그 이후에 모근이 축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피나스테리드는 테스토스테론이 더 강력한 DHT로 변하는 과정을 막아서 결국 탈모를 멈추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 라는 상품명으로 포장된 피나스테리드는, 1997년 남성형 탈모증 치료제로써 FDA 승인을 받았다. p 328


그러나 탈모와 피나스테리드 사이의 싸움은 쉽지 않다. 피나스테리드 복용을 멈추면 12개월 안에 발모와 정확히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피나스테리드도 일련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대부분은 성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이었다. 여성형 유방, 정액량 감소, 고환과 음경의 크기 축소 등 말이다. 성욕을 잃거나 발기부전이 보고된 경우도 있었다. p 329


피나스테리드는 임신 중에 약물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FDA 임산부 약물 등급표에서 X등급이라는 흔치 않은 경고를 받았다. 만약 알약을 부러뜨리거나 가루를 내면 현재 임신 중이든 그렇지 않든 여성은 그 가루를 만지면 안된다. 피나스테리드가 임산부 몸속에 흡수되면 남자아이에게 기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FDA는 여성의 피나스테리드 복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글을 쓰는 현재로선 피나스테리드 알약이 부서졌을 때 태아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국소 부위에 사용하는 형태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피나스테리드로 국소 부위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발모제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p 330


두 의약품이 발견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주의사항까지 언급되어있다. 생각해보면 우리회사에서 피나를 생산 및 실험할때 여자한테 위험하다고, 절대 가까이 오지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피나 실험자는 절대 남자만. 여자는 실험못하게 했고. 그땐 크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와. 피나가 임산부 약물 X등급이었구나. 근데 뭐랄까? 그저 회사에서 제조하는 의약품이라는 생각만 했던 것들을 이렇게 책 속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이 세계사 책에는 의약품 역사 뿐만 아니라, 짧은 클립 형식인 ‘약국 밖 레시피’가 있는데 이 내용들도 꽤 흥미롭다.



▶ 알약 두 개를 복용하면 왜 두 배만큼 좋아지지 않을까?


여러분이 선택한 진통제의 겉 포장지에는 네 시간마다 알약을 복용하라는 설명이 있다. 네 시간마다 복용하는 수고를 덜고 빠르게 통증을 없애기 위해 한꺼번에 두 알 혹은 세 알을 복용하면 안될까? 그렇다. 그렇게 복용하면 안된다. 어떤 약물이 치료제로 사용되는지 혹은 체내에 유독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 끗 차이다. 적절한 용량을 판단하기 위해 연구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청 속 약물 농도를 측정해 효과적인 용량을 결정한다. 약을 복용할 때 유효량이 어느 지점에 도달한 후에 더 많은 양을 복용하는 것은 종종 부정적 영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 많은 약물이 몸 속에 흡수되면 환자 상태는 약물의 치료 범주를 넘어 추가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p 129


▶ 영양제는 FDA 승인을 받을까?


영양제는 FDA의 신약승인 신청의 승인 과정 대상자가 아니므로 제조업체가 공언하는 그 어떤 효과도 FDA 관점에서는 영향력이 없다. FDA는 영양제를 음식과 비슷하게 간주한다. 제조업자들은 노골적으로 영양제라고 표기하며 영양제가 시장에 등장한 후 일반 대중에게 안전한지에만 관심이 있다. 놀라운 주장과 함께 판매되는 수많은 영양제 광고에는 어디에서나 본 것 같은 일반적인 비타민, 허브 추출물, 아미노산, 효소 등이 있다. FDA는 이런 주장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FDA의 관점에서 진실을 제단하지 않는다. 다만 실재하는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영양제는 불법으로 간주한다. FDA는 영양제를 처방전이 필요한 혹은 필요하지 않은 약물과 함께 복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언급하고 의료진들은 환자가 복용하는 모든 영양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p 321


TMI이긴 하지만, 제약회사 다니는 사람으로써, 일단 기본적으로 영양제(건강식품) 광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그냥 원료랑 함량보고, 나에게 필요한 요소가 뭔지 그 기준으로 구매할 뿐. 무슨무슨 추출물? 이런거 진짜 하등 필요 없는 것. 심지어 싼 값으로 물량 공세하는 이류, 삼류 회사가 FDA승인을 받았다고 허위광고를 보면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힌다. 애초에 FDA승인 자체가 안되는 제품인데 말이지. 저렇게 허위광고하는 업체를 보면, 외려 위생적으로 만들기는 하는지 의심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의약품을 무조건 접할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두통이 발생하면 진통제를 사먹기도 하고, 눈 떨리면 건강기능식품 중에서 마그네슘을 찾아서 먹기도 하니까. 고로 의약품은 인생에서 절대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의약품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나왔는지 한 번쯤은 알아보면 좋지 않을까? 내가 처방받은 의약품 역사를 찾아보면, 위 탈모치료제처럼 신박한(?) 이야기나 놀라운 이야기도 많아서 은근 재미있는 역사책 읽는 기분도 드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