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시명의 세계 술 기행 - 양조장과 축제장, 명주의 고향을 찾아 떠나다
허시명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난 술을 못마신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지역에서 유명한 술을 사오는 사람.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맥주박물관, 맥주축제, 전통주 양조장을 찾아다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왜? 술은 마시지 못해도, 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에 유명한 전통주가 있다면 양조장 또는 박물관(전시관)을 꼭 방문한다. 내가 여행하는 타이밍에 그 지역에 맥주(전통주)축제가 있으면 꼭 찾아간다.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즐기고, 동행자인 신랑은 술 자체를 즐기고(ㅋㅋㅋ). 그렇게 술을 못하지만, 난 술을 즐겼고 앞으로도 즐길 예정이다.
간혹 나한테 술에 무슨 이야기가 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술은 역사라고!
지금 사람들이 흔히 즐겨마시는 소주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초록병에 담겨있는 그저 그런 증류식 소주지만, 그런 소주가 탄생한 이유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주세령, 즉 가양주 제조 금지법이 있었다.
본디 우리나라 전통주 특징은 ‘가양주’다. 한마디로 집에서 만드는 술이다. 예로부터 제사를 중시했기 때문에,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서 제사상에 올렸다. 집집마다 술을 빚는 방식은 물론 술 빚는 비법도 달랐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양주 문화가 꽃 피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사실상 가양주 제조를 금지하는 주세령이 공포됐다. 곡물로 만든 술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고, 희석식 소주는 아주 낮은 세금을 매겼다. 일본에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를 한반도에서 팔기 위함이었다. 간혹 비밀리에 가양주를 지켜온 집안도 있었다. 하지만 해방이후에도 한국의 주세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가양주 문화는 그렇게 사라졌다.
물론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증류식 소주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널리 알려져있는 원 간섭기 때 한반도에 소주가 유입되었다는 것도 소주의 또 다른 이야기다. 더 나아가면 원나라 이전에도 중국 대륙에서는 동한이나, 당나라, 북송 등 증류 소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당대 중국과 교류했던 한반도에 있던 여러 국가에도 소주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데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였던 신라에, 당나라 소주가 유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증류식 ‘소주’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줄줄이 사탕이다. 이게 바로 술을 못마시는 내가 술을 즐기는 방식이다!
이 책 『허시명의 세계 술 기행』은 나 같처럼 술을 못마시는 사람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술을 500%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술에 대한 인문학 책이며, 술을 따라 여행을 한 여행에세이다. 술 마시는 사람들한테는 술자리에서 교양(?)을 뽐낼 수 있는 인문학책으로 추천! 술 못마시는 사람들한테는 나처럼 여행을 다니며 술을 인문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여행에세이로 추천한다.
술을 가장 풍성하게 소개하고 있는 우리 문헌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다. 『임원경제지』에는 180여개의 술 이름이 등장하는데, 밎는 방법을 소개한 술이 109가지, 효능을 중심으로 소개한 술이 62가지, 그리고 술을 관리하는 요령이 10여 가지 소개되어 있다. 중국 문헌에서 인용한 술도 있지만, 왜례주, 왜미림주와 같은 일본 술 제조법도 소개하고 있다. p 019
한국 술의 전통을 살피려면 중국과 일본의 술 문화를 살피면서 한국적인 특징을 포착해 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쌀이라는 주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많다. 백제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술 문화가 건너갔다면, 개항이 이후에는 일본인이 한반도에 건너와 식민 수탈을 하면서 일본의 양조 문화가 한반도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p 019
현재 주세법에서는 술을 탁주, 약주, 청주, 소주, 일반증류주, 과실주, 리큐르, 맥주, 위스키, 브랜디, 기타주류로 나누고 있다. 술의 특징을 구분하는 큰 이유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해서였다. 조선 시대에는 리큐르, 위슼, 브랜디가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맥주는 보리술로서 존재했지만 지금 같은 맥주는 아니었고, 과실이 들어간 술도 있었지만 지금의 과실주와 달랐다. 현재 방식의 술 분류는 1909년 일본인 주도로 만들어진 대한제국 주세법에서 세 종류로 구분하면서 시작되었다. p 021
아! 나는 술에 대한 이야기만 즐기는게 아니다.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술이 주인공인 축제나 맥주공장도 종종 즐기곤 했다. 물론 이 책 『허시명의 세계 술 기행』의 저자처럼 많이는 못가봤지만!
개인적으로 2017년에 갔었던, 일본 요코하마 독일 맥주축제가 기억에 남는다. 아카렌카 창고를 보러 간거였는데, 운 좋게도 딱 그날 그 곳에서 독일 맥주축제가 개최되었더랬다. 타이밍도 이런 굿 타이밍이! 생애 첫 맥주축제였는데, 정말 술을 못마시는 나였음에도 분위기에 취했다. 안주들도 저렴해서 좋았고. 물론 동행자였던 신랑은 진짜 술을 마시며 즐겼고!
#칭다오맥주 비닐봉지에 맥주를 담아 마실지라도!
칭다오에서 해마다 8월 중순이면 맥주 축제가 열린다. 중국인들은 뜨거운 차를 즐기고, 튀기고 볶은 음식을 즐겨서인지 찬 맥주를 싫어한다. (…) 어쨌든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맥주 생산국과 최대 소비국가가 되었다. p 130
칭다오 맥주 제조장은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생겨난 식민지 유산이다. 유산이 아니라 잔재인가? 유산이면 지킬 테고 잔재라면 지울텐데, 지키고 있으니 그냥 유산이라고 하자. 독일이 청나라로부터 칭다오를 강압적으로 조차한 것은 1897년 일이고, 독일과 영국이 합작하여 칭다오 맥주 제조장을 세운 것은 1903년 일이다. 양조 설비와 원재료를 독일에서 들여와서 가동했고, 1906년에는 독일 뮌헨 국제 박람회에 출품하여 금상을 받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1916년부터는 일본이 칭다오 맥주를 관리하였다. 1945년 이후에는 중국 정부가 관리하였고, 1993년에는 주식이 상장되어 자본 시장에 나와 국제 기업이 되었다. 1903년의 양조장 건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곳을 활용하여 100년이 지난 2003년에 맥주 박물관을 만들었다. p 133
박물관을 나오자 온통 맥주거리가 펼쳐졌다.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할 맥주가 있었으니, 그게 원장 맥주다. 원장 맥주는 양조장에서 살균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상태의 신선한 맥주를 말한다. 원장 맥주는 이곳, 칭다오 맥주 제조장 주변에서만 판다. 유리병이나 캔에 담긴 맥주보다 더 맛이 풍부하고 깊었다. 멀리서 칭다오 맥주 제조장 마을을 찾아오는 이유이자 마을에 맥주집들이 즐비한 이유이기도 했다. 원장 맥주를 포장해서 담아가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맥주를 병에 담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아 무게를 달아 팔았다. p 136
요즘 칭다오 맥주가 여러모로 부정적인 화제의 중심이다. 뭐, 중국에서 제조하는 음식 위생상태야 뭐 매년 이슈가 되서 새롭지도 않긴 하지만. 여튼! 난 칭다오 맥주가 온리 메이드 인 차이나 인줄 알았다. 뭐랄까, 칭다오 맥주 탄생은 시작부터 온리 중국이라고 생각했달까? 하지만 아니었다. 놀랍게도 칭다오 맥주는 유럽 제국주의 잔재였다. 우리나라를 점령한 희석식 소주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였듯이.
#뱀술 #미인술 멸망한 유구국의 슬픈 유산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남쪽 해변에 있는 사사히로 주조 주식회사였다. 마사히로 주조는 1883년 처음 창업할 때는 유구왕국의 궁궐이 있던 수리성 부근에 있었다. 양조장을 창업한 이는 궁중 요리사였고, 중간에 전쟁을 치르면서 단절을 겪고 지금의 제조장은 1965년에 설립되었다. 마사히로는 3대 후손의 이름이고, 지금은 4대 후손이 주조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와모리 증류주와 식초를 만드는데 둘 다 시간이 흐를 수록, 숙성의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와 가격이 올라가는 발효 식품이다. p 191
전시장에 들어와 우리는 뱀술을 보고 놀랐다. 뱀이 술병 속에 똬리를 틀고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는 동물 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음성적으로 거래되거나 호사가들이 사사로이 취하는 것이지, 공식 상품으로 유통할 수 없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뱀술, 하브주(뱀이 일본어로 ‘헤비)’가 특산주였다. 섬에 뱀이 많아서 그 뱀을 처치하다보니 뱀술을 상품화시켰다고는 하지만 보기에 섬뜩했다. p 193
뱀술을 마시는 법이 특별하다. 뱀술은 빨대로 마셔야 한다. 빨대를 목젖 가까이 대고 잇물에 술이 묻지 않게 마시는 거다. 독이 든 뱀술을 상처난 피부에 바르면 죽을 수도 있지만, 마시면 죽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내게 해준 이도 있었다. (…) 이렇든 뱀술에는 믿기 어려운,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p 195
조선의 눈으로 유구를 추억할 수 있는 술들이 있다. 유구 사신들이 조선을 찾아왔을 때 가져왔던 술로 미인주와 천축주가 있었다.미인주는 세조 8년 유구 사신이 왔을 때 답한 이야기 속에 일일주(하루 만에 빚은 술)로 등장한다. 유구 사신에게 “주초, 염장의 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깨끗이 씻은 쌀로 밥을 지어 누룩에 섞어서 술을 빚으며, 다만 일일주는 15세 처녀가 입을 깨끗이 씻고 밥을 씹어서 술을 빚는데, 그 맛이 기막히게 달다. 초도 또한 쌀로 빚는다.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다. 장은 밀을 써서 바로 만든다”라고 하였다. 젊은 여자들이 입으로 밥을 씹어서 빚어 미인주라고 물렸다. p 197
사람의 침 속에는 아밀라제라는 효소가 들어 있어서 곡물을 당화시킬 수 있다. 누룩이나 발효제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젊은 여자들이 항아리에 둘러앉아 곡물을 씹어 항아리에 뱉어 담아 두면 천연 효모가 안착하여 알코올 발효를 시킨다. 오래 두면 알코올 도수가 제법 나오겠지만, 술을 빚은 지 하루만에 마셔서 일일주라고 했으니 도수는 아주 낮았으리라. 술 빚어 하루를 두면 당화는 되지만 알코올 발효는 그다지 이뤄지지 않아 독하지 않고 달달한 맛만 띠게 된다. 오키나와에서 지금은 특별한 행사 때만 미인주를 시연하고 있다. p 197
일본에 강제로 흡수되기 전까지만해도 ‘류큐’라는 독립 국가였던 오키나와. 류큐시절 부터 오키나와인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술 중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미인주 라는 전통주가 있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위생적으로 좀(...) 꺼려지는 생산방식이지만, 뭐.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니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엄밀히 따지자면 현재의 미인주는 특별한 행사 때만 시연한다고 하니, 일본에서도 위생적으로 꺼려지긴 하는가보다.
#식초 술의 종착역
술의 종착역은 식초다. ‘초醋’의 한자어를 살펴보면 ‘술 주酒’를 뜻하는 변에 ‘저녁 석昔’이 붙어있다. 술의 저녁, 술이 저물면 식초가 된다. 초산균은 알코올을 영양분으로 삼아 초산을 만든다. 그래서 술이 많들어지는 곳에서 좋은 식초도 나온다. 일본 규슈 가고시마는 흑초와 고구마소주로 유명한 동네다. p 231
후쿠야마 마을이 흑초 고장으로 특화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이 고장의 곡물 식초를 흑초라고 부른 것은 1975년 사카모토 양조장에서 처음이라고 하니, 흑초 시대가 열린 건 40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에도 시대 1800년경부터 이 마을에서 식초를 빚었다고 하니, 그 전통은 200년이 넘었다. 식초를 만들던 전통이 새롭게 해석되어 흑초를 탄생시켰다. p 234
가고시마현은 흑초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국립대학이나 식품종합연구소와 연계하여 흑초에 관한 과학적 연구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홍보관에는 1983년부터 이뤄진 90편의 흑초 연구 논문 목록을 게시해놓고 있었다. 또한 흑초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휴대용에서부터 음료용까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놓았다. (…) 가고시마 흑초가 유명해진 데는 활화산에서 분출되는 연기, 밭에 놓인 수만 개의 항아리, 3년 숙성된 깊은 맛, 마을의 전통적인 제조법, 흑초의 성분 분석 자료, 흑초 전문 매장과 레스토랑, 다양한 흑초 요리 세리피 개발, 용량이 다른 흑초 상품들, 음료용으로 개발된 과일 흑초 등 다양한 콘텐츠가 기여하고 있었다. 음식을 맛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복합 문화로 판다는 것을 가고시마 흑초가 잘 보여주고 있었다. p 237
맛있는 술이 나오는 지역은 맛있는 식초를 만들 수 있다. 생각치도 못했다. 더 놀라운건 이를 지자체 관광 활성화로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식초를 빚었던 가고시마현 후쿠야마 마을. 지역인구가 줄고 경제도 현저히 안좋아지자, 그들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지역 특산품인 고구마 소주와, 흑초였다. 후쿠야마 마을 사람들과 지자체, 여러 연구기관이 합심한 결과, 흑초 고장이자 유명한 관광지로 이름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일본은 지자체 관광 활성화를 정말 잘하는 나라 중 하나다. 내가 다녀본 일부 일본 소도시를 보면 몸소 느낀다. 이런 점은 우리도 배워야하는데, 항상 나랏밥 먹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나쁜 것만 배워오니 원.
다시금 말하지만 술은 마시지 못해도 즐길 수 있다. 왜? 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