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레스토랑 - 오지랖 엉뚱모녀의 굽신굽신 영업일기
변혜정.안백린 지음 / 파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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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든, 무엇을 하든 ‘친환경’을 생각해야하는 시대다. 대기업들은 이미 앞다투어 ESG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기업이나 영세업체들은 ESG는 고사하고, ‘친환경’도 어려운게 현실이다. 사업주 본인이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사업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기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모녀가 있다. 이 모녀는 현재 서울에 위치한 비건 레스토랑 ‘천년식향’을 꾸려가는 오너이자, 이 에세이를 쓴 사람들이다. 여기서 조금 놀라운 건, 그들의 이력이다. 모녀 모두 소위 말하는,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특정 소비자를 타겟으로 하는 ‘비건음식’을 만들고 ‘제로웨이스트’ 까지실천하는 고급 식당을 말이다.

누가봐도 어려운 길인데, 이 어려운 길을 뛰어들다니! 이 일을 강력하게 밀어부친건 다름아닌 딸 안백린 쉐프였다.

동물권 옹호자이자 비건을 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딸 안백린. 딸이 못마땅에 언제나 잔소리를 했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있던 엄마 변혜정. 엄마는 딸이 하는 일을 못마땅했고, 딸은 엄마가 하는 말이 ‘입 발린 소리’라고 못마땅해했다. 딸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는 딸을 지지했다. 그렇게 고급 파인 다이닝 식당이자, ‘비건’식당이며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천년식향이 탄생한 것이다.

그냥 ‘장사’도 힘든데, 그들이 선택한 길은 일반적인 ‘장사’보다 더 힘든 자갈+가시밭길 콜라보! 그럼에도 그들은 그 힘든 길을 걸었다.

물론 그 순간의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자들에게 나의 말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었으며, 때로는 불편한 내 말은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또 대안 없이 비판적 주장만 한다는 비난도 많았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정작 내가 실천하려고 하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참 많은 말들을, 쉽게도 했구나 싶다. 그러나 장사는 내가 ‘꼰대’라는 것을 매일 깨닫게 해준다. p 032


저자는 천년식향을 운영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별다른 의미없는 본인의 행동이, 어떤 식당 주인에게는 진상으로 다가서진 않았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특권층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특권층에 속했고 아주 당연히 그에 대한 대우를 요구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싫어하는 건 남도 싫어한다는 모토를 가지며 살았다.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철저하게 내 기준에서 ‘진상’짓을 하려고 하면, 먼저 나서서 제지하고는 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내 행동이야말고 그 사람에게 진상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저 모든 이에게 민폐가 아닌, 오로지 내가 그 행동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딸은 말했다. 52시간 노동법을 지키고 있지만, 그렇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자기는 문재인이 아니라 홍준표를 지지해야겠다고. 평소 인권과 차별에 감수성 있었던 딸은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사장이 살아야 직원도 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알아야 한다며, 과연 식당에서 일해보고 정책을 만드는 것인지를 따지며, 나를 원망했다. 직장 내 괴롭힘부터 노동법까지 매일 훈수했던 나는 자영업자의 딸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p 040

지나고 나니 가장 안타까운 점은 본인이 한 공사비용은 지출 처리나 부가세 공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이 몸으로 때운 비용들, 그리고 제로 웨이스트를 위한 황학동 중고물품 구매 등은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아 실비용조차 지출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 당시는 몰랐던 이 사실은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통장 잔고를 넘는 부가세가 폭탄처럼 날아와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이런 일에 대비한다고 개업 초부터 세무사와 거래하고 있었으나, 알고보니 그들도 맞춤형으로 알아서 조언해주지는 않는다. p 048

52시간 노동법, 인건비, 세금문제…. 이 모두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는, 언제까지고 해결해나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소위 지식인들은 입바른 말을 한다. 현실적인 대안은 무시한채. 엄마 저자 역시 그런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딸 저자는 그런 지식인들을 원망하는 현실을 사는 자영업자였다. 실제 자영업자들 현실문제를 눈 앞에서 목도한 엄마저자는, 그저 침묵했다. 아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저자의 침묵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깨달은, 참회의 침묵이었다.

천년식향은 ‘가치를 판매하는 사업장’이 되고 싶었다.

현재 한국의 미식 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잠정적 결론이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천년색향의 불편함을 소개하면서도

감히 손님들에게 그 불편함을 요청했으니

참 건방지고 불편한 가게다.

불편한 레스토랑 p 070

여기까지가 자영업을 시작하며 느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소회라면, 아래는 ‘천년식향’ 운영방향에 대한 소회다. 일반 적인 고급 다이닝이 아닌, 무려 ‘비건’ 음식에다가,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식당인 만큼 일반적인 식당과는 운영방향이 사뭇다르다. 여기선 음식을 소비하는 고객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환경 아니 지구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고객은 지구를 위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게 이 식당의 룰이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정말 힘드셨죠. 참 죄송합니다.

천년식향은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여 일회용 물티슈도, 냅킨도 없습니다. 깨져도 괜찮은 돌그릇을 사용합니다. 앞접시는 부득이한 경우에 요청시 바꿔드립니다. 설거지 세제 또한 석유가 아닌 코코넛 베이스의 인체에 무해한 세제를 쓰며, 대부분의 음식 재료는 친환경 또는 못난이 채소입니다. 모든 음식을 맞춤형 수제로 만들기 위해 적은 손님만 모십니다. 외부 음식 반입이 되지 않습니다. 영업시간 전에는 직원복지를 위하여 출입이 불가합니다. 모든 성적 지향을 존중하며 화장실도 남녀 구분 없는 젠더 프리 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올라오기 힘드십니다.

식물성이지만 비건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음식의 시즈닝이 복합적이라 강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비슷한 재료가 들어간 자극적인 메뉴 세 개 주문을 지양합니다. 빵, 밥, 피클이 메뉴에 없습니다. 내추럴 와인만 와인 리스트에 있습니다. (이하 생략)

불편한 레스토랑 p 070

간혹 TV에서 비건 음식을 본 적이 있다. 육류는 일절 없는게 확실한데, 분명 TV에서 나오는 음식 형태는 ‘스테이크’다. 육류가 아닌 채소로 육류의 질감과 맛을 표현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몇 배의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주부 나이대 여성들이 가성비만 따지는 모습이었단다.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요리를 해야 맛있다는 것도, 그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까지도 몸소 느끼고 있을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같은 주부로서 너무나 씁쓸한 이야기였다. p 040

심지어 천년식향은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다. 유기농을 사용하면 금액대는 더 오른다. 요즘 아기를 키우면서, 유기농을 자주 사다보니 ‘유기농’이라는 단어만 붙어도 얼마나 비싸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가성비를 따지는 한국인. 참 슬프게도 아기가 먹는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가성비 위주로 장을 보고 음식을 사먹는다.

조금 생각해보면, 유기농이 왜 비싼지는 답이 나온다. 시중에는 채소 포함 식물을 키우기 위한 여러 비료 및 농약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품들이 환경에 좋은지 생각해보면, 그 답은 NO 다. 농약을 생각해보자. 다년간 농약 살포는 토양을 오염시켰다. 뿐만아니라 꿀벌들을 사라지게 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 생태계는 무너진다. 단순히 꿀벌만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농약’ 사용에 대한 단적인 예시다.

비건 음식도 그렇다. 비건은 그 속에서도 종류가 나뉘긴 하지만, 뭐 단순하게 육류를 안먹는 사람이라고 치자. 사람들이 먹는 육류는 보통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다.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은 대규모 농장에서 키운다. 가축의 양이 많은 만큼 폐기물이나 분뇨가 어마무시하게 나온다. 그에 따른 탄소 배출도 어마무시하다. 뿐만 인가? 가축들을 먹이기 위한 사료를 공급하기 위해, 또 어딘가에서는 많은 양의 물을 끌어다쓰고 농약을 치며 곡식을 키운다.

지금까지 수많은 다큐를 보며 알게된 내용들이다. 어라? 이렇게보니 나도 환경 자체에는 꽤 관심은 많은 편인..것 같기는 하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천년식향의 또 다른 모토인 ‘제로웨이스트’. 이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해볼수 있고,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실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실천하는 장소가 사업장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보통의 한국 소비자들은 깨진 접시에 내가 먹을 음식이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을 테니까. 왜? 돈을 낸 만큼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식당을 표방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옛날 인류는 지구에 친절한 토기를 사용했다. 지금처럼 지구에 불친절한 플라스틱이나 여러 소재가 짬뽕된 그릇들이 아니라!

천년식향은 깨진 그릇도 사용한다. ‘제로 웨이스트’ 컨셉트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실은 그릇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가격이 있는 식기를 손님도 깨고 직원도 깬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 나간 그릇을 싫어한다.손 다칠 수 있어서 싫어하나 했는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깨진 그릇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했다. 이것은 손님이 나를 부르는 첫째 이유이기도 하다. p 090

최근데 시카고의 미슐랭 1스타 다이닝에 갔었다. 그곳의 식기들은 찌그러진 깡통에서부터 돌, 조개껍데기, 일회용 케첩까지 정말 다양했다. 가격도 비싼 미슐랭 3스타부터 가이드까지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떤 누구도 가게의 특별함, 기이함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긴다고 할까? 외국의 다이닝 경험이 물론 모범사례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만큼은 존중하고 싶다. p 092

해외 유명한 식당 중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시행하는 곳들이 있다. 심지어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고급 식당이다. 그 식당을 갔던 고객들은 이에 대해 클레임은 커녕,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국내에서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음. 향후 1백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그들과 다른 문화권인 이유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정말 깨끗하게 세척해서 재활용하는게 맞는지에 대한 신뢰도가 없기도 하고.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는 그놈의 돈 때문에(!) 음식가지고도 장난하는 업자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보니 버려지는 기물들을 깨끗하게 세척해서 재활용한다는 자체를, 그저 돈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돈 아끼려고 그러는거 같은데 세척은 제대로 하기나 할까? 라는 식으로 꼬아서 생각하게 된다. 분명 좋은 취지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게 다 이기적인 일부 업자들 때문에 생겨난 편견이라면 편견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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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친환경 신기술, 비용 같은 그런 물질적인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마도 미래에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아름다움’, ‘불편함’의 정의가 변해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기후위기 대책을 보니 너무 배울 것이 많았다. ‘추우면 겉옷을 입고, 냉방을 하면서 절대 문을 열어놓지 않는다’같은 기본적인 부분부터 실천하려는 자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p 076

이처럼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순간 귀찮지만 결국 나, 그리고 내가 사는 지구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을 믿고 현재의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하자! 어쩌면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창과 방패처럼 각 개인이 직면한 모순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p 079

천년식향은 비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여러 문제점을 마주했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그들의 가치관과 정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인간은 보다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바다를 메웠고,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았다. 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수많은 교통기관을 만들었다. 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수많은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일회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빙하가 녹고, 바다 수온이 오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인간이 ‘편리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하자, 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한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환경파괴로 인해 제일 큰 피해를 입게 될 대상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동, 식물들도 많은 피해를 입겠지만 말이다. 문득 일전에 읽었던 김상욱 교수의 저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런식으로 환경이 파괴되면, 종국에는 인간의 대멸종을 불러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수차례 대멸종이 있었는데, 대멸종의 대상은 언제나 당시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현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인간이 그저 ‘편리함’만을 위해 환경파괴를 지속하면, 그 부메랑은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아니 이미 부메랑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부메랑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 뿐이다.

천년식향은 부메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최전선에 나와있는 것 뿐이다. 비건이나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여, 인간이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걸로 지구 환경에 안정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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