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예능에서 우리나라 4대 종교 지도자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놀라웠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스님, 신부, 목사… 그들이 믿는 신은 다르지만, 그들이 향하는 길은 그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길일 것이라고. 근데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오늘 읽은 #시집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시집은 원경 스님과 김인중 신부님의 합작품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두 종교인이다. 부처를 믿는 스님이 시를 쓰고, 예수를 믿는 신부님이 그림을 그렸다. 이 둘의 시와 그림은 원래부터 한 세트인것 마냥 조화롭다.
시와 그림 무지렁이인 나인데도, 원경 스님의 시편과 김인중 신부님의 회화(스테인드 클라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 한 구석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스님이 쓰신 시에서 ‘감사함’이, 신부님이 그린 회화에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는 이분들이 단순히 종교인이라서가 아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인이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을 주는 종교인들은 생각보다 드문편이기도 하고.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원경스님과 김인중 신부님이야말로 요즘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이 아닐까? 비록 지금 세상은 정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타인은 커녕 지인마저도 조심해야할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 되었지만. 이런 분들이 계시는 한,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빛섬과 달빛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빛섬이 되었다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도시마다의 빛섬
가없이 빛사래 치는 하늘별들을 닮아
스스로 빛을 지녀야 한다며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빛섬
모정처럼,
늘 마음 놓지 않고 빛섬 위를 맴도는 달빛
어둠 바다의 등대인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절집의 꽃문살이 달빛에 어리듯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햇살의 신비를 안는다
섬김이 미덕의 옷이기에
절집 공양의 정성처럼
봉헌 속에 빛난다
동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처소 없이 해와 달과 함께 꽃이 피거늘
서로 비추고 거울처럼 마주하노라면
저마다의 빛으로 향기 오간다
화장세계이기에
달과 모닥불
무지의 빛 검은 어둠이 있기에
달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냉정한 차가움이 있기에
모닥불 같은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랑의 길을 나섰기에
빛이고 불꽃이고 싶습니다
혼빛
그대는
빛의 혼을 그리는데
그리움 그리움 그리다 그리다
화룡점정에 이르러
쓰러져 잠드시리
잠 못 드는 한밤의 꿈을 꾸다가
새벽에 드는 비울음처럼
그리 쓰러져 울다 잠들면
바람도 쓰다듬듯 달래며
새날을 맞으리
시와 그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마음 속 여유가 사라져, 각박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