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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의 세계사 - 페르시아전쟁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지리의 순간들
이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평점 :
의도하진 않았는데, 요즘 세계사책을 자주 읽는다. 그것도 통사 위주로! 내가 주로 읽는 책이 역사책이긴 하지만, 대체로 한국사 위주였는데. 이거참. 이러다 세계사책 편식하게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하하하하..하하하. TMI 각설하고!
요근래 읽은 세계사책마다 주제(또는 지향점)가 달라서 그런지, 같은 장르여도 읽을 때마다 새로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리뷰하는 역사책 『발밑의 세계사』도 그렇다. 통사이긴 하지만 서술하는 관점이 ‘지리(또는 지정학)’ 기준이다. 아직까지 세계사는 ‘정치사’ 위주로 생각하고 있는 나라서 그런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역시나 나와 다른 관점은 새롭다. 역사는 어떠한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그 재미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이 역사책 『발밑의 세계사』는 초보자용 입문서는 아니다. 그렇기에 세계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어렵다. 세계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일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컨데 중/고등학교에서 세계사 수업을 받았고, 어느정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르다. 한마디로 세계사 초급교육(?)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 책만큼 세계 역사를 정리하는데 수월한 역사책은 또 없다.
『발밑의 세계사』는 시대순으로 동양과 서양이 골고루 배치하여 서술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동양과 서양이 따로 국밥이 아니라는 점. 한마디로 동, 서양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 알고보면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라, 지리(또는 지정학)적인 맥락으로 보면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서 유독 마음에 들었던 챕터가 있었으니 바로 동, 서로마 제국의 분열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다.
1n년 전 학교 정규 교과시간에도 배웠던 내용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고는 ‘훈족의 남하로 인해 어쩌고저쩌고~’ 정도가 끝이다. 동, 서 로마가 왜 분열했는지는 아예 기억도 안나고. 아무래도 학교 교과과정 목적 자체가 ‘시험 고득점’ 이기에, 방대한 세계사 내용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여력도 안될 뿐더러, 굳이 시험에 안나오는 내용을 가르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내 머리속에는 동, 서로마의 분열과 ‘훈족이 왜 이동했는지’ 가 연결되지 않고, 연결되지 않으니 머리속에서 그려지지 않아서, 아무리 세계사책을 봐도 머리속에 남지가 않았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공백으로 남았던 동, 서로마 분열과 서로마 제국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덕분에 제대로! 정립되었다. 심지어 이 챕터는 두 세번 정독했다. 이제서야 한 켠에 남아있던 역사공백이 채워진 느낌이랄까?
그래서..ㅋㅋㅋㅋㅋ 내 역사공백을 채워준 그 챕터 내용을 아래에 옮겨왔다.
동, 서로마 제국의 분열의 숨겨진 이유? 기후변화! (그리고 훈족의 탄생)
3세기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로마. 영토가 넓다는 것은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마는 대내외적으로 넓은 영토를 관리할 여력이 없었다. 로마는 보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동로마, 서로마로 분할 통치를 시작했다. 시작은 동방은 황제, 서방은 부황제였다. 무엇이든 새로운 제도는 부침이 따르는 법. 어찌저찌 동, 서로마 분할 통치가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3세기 들어 로마는 곳곳에서 발생한 피지배 민족의 반란과 국경을 혼란하게 한 이민족의 침입, 군대의 황제 폐립 등으로 휘청거렸다. 아예 이 시기를 정의하는 ‘3세기의 위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58년 제국의 동방은 황제가, 서방은 부황제가 다스리는 체제가 도입되었다. 너무 거대해진 제국을 황제 일인이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제국 서방의 부황제가 황제로 승격되며 황제 두 명이 다스리는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293년부터는 두 명의 황제를 두 명의 부황제가 보좌하는 4제 통치가 시작되며 3세기의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 p 108
때마침 중앙아시아에 살던 훈족이 선진하고, 이에 밀린 게르만족이 파도처럼 밀려들자, 로마의 지배하에 안정적으로 통일되어 있었던 유럽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남하로 군사력을 대거 소진한 로마는 결국 395년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쪼개졌다. 특히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을 정규군으로 흡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10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476년 멸망했다. p 109
동, 서로마 분할통치가 자리잡힌 게 무색하게, 1세기 만에 서로마 제국은 몰락하고 말았다. 게르만족 침입에 의해서. 이후로 유럽 일대는 우리가 사는 21세기, 현재까지 통일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게르만족은 갑자기 왜! 서로마를 침입한걸까? 그 이유는 예상외로 우리가 다 알고 있다. 중앙아시아 일대에 살던 훈족이 게르만족이 살던 지역까지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영토를 빼앗긴 게르만족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서로마 제국 밖에 없었다.
질문을 바꿔보자.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훈족은 왜! 게르만족 영토를 침범했을까? 놀랍게도 그 배후에는 훈족의 전신인 흉노족과, 몽골 일대까지 휩쓸었던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를 알아야만 한다.
우선 훈족의 전신인 흉노족은 누구인가. 고대부터 중국 왕조를 수시로 침략했던 유목/기마민족이다. 중국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심지어 한나라는 흉노족과 2백여년간 전쟁을 벌였다. 그러다 한 무제가 흉노정벌에 성공하면서, 흉노족은 터전을 버리고 중앙아시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몽골 일대가 척박해져 목축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한나라 무제마저 대규모로 공격해오니, 이를 버티지 못하고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기후변화는 고대에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흉노족이 고향을 떠나고 수 세기가 흐른 뒤에는 로마가 기후변화로 고난을 겪었다. 고향을 떠나 유라시아를 유량하며 독기를 품을 대로 품은 훈족과 거대하지만 이미 무력해진 로마가 만나 큰 파도를 일르켰다. 유럽의 분열은 바로 이 동서양 충돌의 결과였다. p 109
흉노족은 도망치듯 서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앙아시아 북부와 캅카스 일대에서 살아가던 여러 민족 집단과 통혼했다. 그 결과 흉노족의 외모는 금발벽안, 적발녹안 등으로 묘사될 정도로 크게 달라졌다. 그렇게 여러 세대가 지나자 흉노족의 후예, 또는 흉노족과 관계를 맺은 중앙아시아의 민족 집단들을 통틀어 훈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p 113
기백년간 중국 왕조를 유린했던 흉노족이 갑자기 한나라에 정벌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기후변화다. 흉노가 살던 몽골 일대는 유목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100년 무렵부터 급격하게 한랭기후가 시작되며, 생계가 어려워졌는데 타이밍 좋게 한무제가 흉노정벌을 단행한 것이다. 특히나 당시 한나라는 몽골일대와 달리, 온난한 기후로 국력까지 높아진 상태였다.
중앙아시아 일대로 터전을 옮긴 흉노. 흉노는 중앙아시아 일대에 있던 여러 종족들과 혈연을 맺었다. 이들이 우리가 말하는 ‘훈족’이다. 훈족은 그렇게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터전을 잡고 살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는 또다시 찾아왔다. 훈족이 살던 4세기 중앙아시아로.
4세기다 되어 중앙아시아의 기후는 또다시 급변했다. 강력한 엘니뇨-남방진동으로 338년부터 377년까지 중앙아시아는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남동태평양과 서태평양 사이의 기압은 서로 역상관관계로, 마치 시소처럼 한쪽이 높아지면 다른 한쪽은 낮아진다. 이를 남방진동이라고 한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의 페루와 에콰도르에 면한 열대 해상 수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엘니뇨가 발생하면 남동태평양의 기압이 낮아지므로, 남방진동에 따라 서태평양의 기압은 높아진다. 경우에 따라 서태평양 너머 인도양까지 영향받기도 한다. 그러면 중앙아시아에 가뭄이 들 수 있다. p p114
훈족은 살기 좋은 땅을 찾기위해 계속 서진했고, 그렇게 그들은 게르만족이 살던 영토를 차지했다. 당시 게르만족은 국가를 이루지 못했기에, 국가적 대처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영역을 잃은 게르만족도 역시나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그 곳이 바로 서로마 제국이었다. 그것도 전성기가 끝나고, 대내외적으로도 혼란했던 서로마 제국. 그렇게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일대의 기후변화가 로마의 운명, 아니 유럽 일대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특히 3세기 급격한 한랭화는 유럽 일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유럽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수차례 화산폭발까지 발생하였다. 기본값인 한랭기후에 화산재까지 덮여서 로마 국력은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했다. 내부 권력다툼은 덤이다. 그런 상황에서 게르만족이 쳐들어왔으니, 서로마제국이 이를 방어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서로마 제국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서로마 제국이라는 주인이 사라진 빈 땅에 여러 게르만계 국가가 생겨났으니, 이는 사실상 오늘날 유럽 지도의 근간이 된다.
놀랍지아니한가.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 동, 서로마 제국의 분열과 서로마 제국 멸망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은. 정말 이런 맛에 내가 역사책을 읽는다. 물음표로 남겨뒀던 역사 공백이 이 책 덕분에 하나, 둘 채울 수 있었다.
다만 위에서도 말했듯 이 역사책은 지리, 지정학적 관점으로 서술된 세계사책이다. 따라서 ‘정치사’에 대한 설명은 빈약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기본교육을 받았다면, 이 책만큼 세계사를 정리하는 데 효과적인 책은 또 없다고 자부한다. 정말 세계사 역사책으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