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인문 기행 - 동해 바닷가 길에서 만난 우리 역사 이야기
신정일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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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육아때문에 여행을 못하고 있지만, 난 본투비 여행러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국내일주다보니,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돌아다닌 면도 있다. 지금까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에 체크하면 우리나라(정확히는 남한)의 약 80%정도는 다 찍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이런 성향이 어디서 왔는고 하면,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나를 차에 타우고 전 지역을 쏘다닌 부친의 영향이 오백프로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을 운전을 하신 내 아버지는 휴가철이 되면 우리가족을 태우고 여행을 다녔다. 정확히는 업무로 인해 지방을 내려갈때, 우리 가족 모두 같이 가는 거라고 해야하나? 아버지 일이 끝나면 그때부터 여행 시작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게되면, 도착지는 대부분 동해였다. 아버지 차로 동해 해안길을 달리며 차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캠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튼, 그렇게 해안길 여행을 자주 하면서, 동해안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녔다.



그래서 그런가? 다 커서는 신랑과 둘이서 소소한 짐만 꾸려서 해안 여행을 자주 했다. 둘다 직장인이라 장거리 여행은 불가능하기에, 해안길 여행을 할 때는 지역 몇 개씩을 묶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여행은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이런식으로 여행을 다녔다. 예컨데 동해로 치면 이번 여행 때는 부산부터 경주까지, 다음 여행은 (강원)고성에서 속초까지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해안길 여행을 하다보니 어느새 서해안, 동해안 길은 완전히 섭렵했다. 아, 물론 트레킹이 아니라 자동차 여행이었지만.



요즘은 서해안은 서파랑길, 동해안은 동파랑길이라고 해안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었는데, 내가 여행을 한창 다닐때만해도 이런 제대로 된 트레킹 코스가 없었다. 그저 ‘무슨무슨 해안산책로’ 이런 형식이었을뿐. 그래서 조금 아쉬운면도 있다. 왜 해파랑길 트레킹코스는 내가 한창 여행다닐 때는 없었나!!!! 근데 이게 또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파랑길(동파랑길, 서파랑길) 트레킹코스가 생겨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책의 저자 덕분이었다는 것. 허허허허. 내가 여행을 조금 더 늦게다녔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하하...ㅋㅋ






이렇게 TMI가 길었던 이유는 『해파랑길 인문기행』 이라는 여행에세이를 리뷰하기 위함이다. 여름휴가책으로도 손색이 없는 이 책은 말그대로 파란바다가 넘실대는 동해안! 해파랑길 트레킹코스를 완주하는 여행에세이다. 거기다가! 그냥 여행에세이도 아니고 무려 ‘인문기행’ 여행책이다. 동해안 해파랑길을 그냥 무작정 걷는게 아니라, 발길이 닿는 그 곳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어우러져있는 것이다. 완전 내 여행취향이랑 딱 맞는 여행에세이가 아닌가!



난 동해안 지역은 단 한 군데도 빼먹지 않고 다 섭렵을 하고 왔던 경험이 있고, 지금은 해파랑길로 명명된, 당시에는 그저 해안산책로였던 트레킹코스를 꽤 여러구간 걷고 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기대되었으며, 실제로 이 책은 내 기대에 오백프로 부응했다. 분명 내가 다녀왔던 지역이고, 내가 두 발로 걸었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역사적 지식들이 저렇게나 많다니! 역사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나도 꽤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물론 일반인에 비해서만), 역시나 나는 풋내기였다. 이 책을 들고 다시 동해안 여행을 다녀야 할 판. 하하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동해안은 정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원)고성이나 삼척, 영덕, 부산 앞 바다는 똑같이 ‘동해’라 불리우는 같은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맛과 멋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를 가든 특색있는 동해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번 여름휴가 여행지로 동해안에 인접한 그 어떤 지역을 가든지간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들고가야 그 재미가 보장된다!




 




이 여행에세이 속 저자의 동해안 해파랑길 트레킹은 부산에서 시작해서, 휴전선이 있는 강원도 고성에서 끝난다. 물론 어떠한 한 시점에 이 기나긴 해안길을 정복한 건 아니다. 내 여행방식이 그랬던 것 처럼, 저자 역시도 일정기간동안 일정구간을 걸었다. 그렇게 동해안 해파랑길 트레킹을 완주한 것이다.



아래는 저자의 첫번째 트레킹 부산에서 시작해서 울진에서 끝나는 9일간의 첫번째 여정 중 일부다.



부산부터 울진까지



 


이곳 연화리 일대에서 나는 미역이 명물이다. 기장 미역은 다른 어느 바다에서 채취한 것에 비해 잎이 두텁고 넓으며 파릇한 빛깔과 윤기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지역 돌미역이 『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과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임금의 밥상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이곳에 곽전이라고 불리던 유명한 미역밭을 두어 직접 관리했다. (…) 당나라 사람인 서견은 자신의 저서 『초학기』에 “고구려인들은 고래가 몸을 풀고 미역을 뜯어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따라 미역국을 해산 식품으로 먹는다”라고 고구려 사람들의 독특한 해산 풍습을 기록했다. p 025~026



죽성리에는 죽성리 왜성이 있다. 마을 이름을 따서 ‘두모포 왜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서울에서 후퇴한 왜군이 장기전 태세를 갖추기 위해 쌓은 성 중 하나다. 당시 동원된 인부 수만 해도 약 3만 3천명 정도이다. 이 왜성에 올라서면 두모포만 전체를 아우르는 해안 절경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성에 머물렀던 왜군들은 임진왜란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특히 기장과 경남 일대 도공들이 이 왜성으로 꿀려와 결국 왜군들과 함께 일본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p 027



기장미역이 부산에 특산품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기장미역이 무려 고구려 때 부터(!!!)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이정도면 지자체의 특산품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건 뭐. 천 년을 훌쩍 넘는 미역 사랑이 아닌가?!




 


 


동방섬, 새뜸섬, 고래 아구리섬, 질무섬 등 크고 작은 섬들에 시선을 두고 걷다 보니 울산시 구류동이다.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떤 하곡 사람 박윤웅에 얽힌 일화가 많은 지역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박윤웅은 신라 54대 경명왕의 후손으로, 신라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왕건의 고려 창건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한 공을 높이 평가한 왕건은 박윤웅의 고향을 부로 승격시키고, 구류동 앞바다의 소출이 좋은 몇 개의 바위에서 채취하는 미역 일부를 박윤웅에게 세금처럼 바치도록 했다. 지금도 그곳 바위에는 ‘윤웅’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p 047



우리의 발길은 울산광역시의 마지막 마을인 북구 신명동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신라시대 박제상에 관한 전설이 남아있다. (…) 그의 아내와 딸들은율포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산마루 치술령에 올라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으나, 박제상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내린 그들은 전설의 새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내는 치조라는 새가 되도 딸은 술조라는 새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그들이 매일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박제상을 기다렸다는 산마루가 경북 경주시 외동읍 내동면과 경상남도의 경계지점에 있는 치술령이다. 그리고 모녀가 서서 기다렸다고 알려져 있는 망부석이 있다. 뒷날 사람들은 박제상의 아내를 치술신모라고 부르며 치술령 기슭에 신모사라는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냈는데…. p 049



부산에서 시작한 미역이야기는 울산에서도 ing!!



신라시대 박제상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한지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신 중 하나인 치술신모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개를 엮어볼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지? 물론 현재는 신모사도 사라지고, 제사도 사라졌다지만. 박제상에 대한 이야기와 치술신모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을 두고 보았을때, 대체로 박제상만 알고 그의 부인인 치술신모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게 조금은 씁쓸하다.






 


읍천리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천연기념물이자 명승이 발견된 것은 2011년이었다. 내가 2007년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19일 동안 걸을 때는 근처 군부대에서 ‘민간인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표지판을 세워놓아 들어가지 못하고, 7번 국도로 돌아갔다. 그 뒤 『동해 바닷가 길을 걷다』라는 책을 펴낸 후에 문화체육관광부에 나라 안에서 제일 긴 도보 답사길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 길이 이후에 ‘해파랑길’로 명명되면서 나라 안에 아름다운 길로 자리잡았다. 그 길을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다시 걷게 된 2011년 봄,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초소에 군인들이 없어서 들어갔는데, 유레카!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p 054



그 뒤 읍천리의 주상절리는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했다.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 담겼으며, 지금은 그 일대가 대처가 되어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중국 귀주성의 만봉림이나 장가계가 뒤늦게야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 같이 해파랑길을 제안한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때문에 알려진 명승이다. p 055



봉길리 하봉 부근 소나무 우거진 숲길로 들어서 한참을 걸으니 수제마을이다. 봉길리 북쪽 수제마을은 예부터 가뭄이 들면 경주부윤이 마을 북쪽 해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동쪽으로 약 100m거리 바다에 대왕암이라고 부르는 문무왕 수증릉이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릉은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p 057



경주시 감포읍 이견대 아래 위치한 대본리, 그 남쪽으로 큰 나루가 있었고, 동북쪽 독촌산에는 봉우재가 있는데 그 재 밑에 ‘용의 돌’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동해를 바라보다가 그 바위에서 용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 조’에 이견대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p 061



읍천리 주상절리!!! 진짜 저 주상절리는 너무나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꽤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얼마나 많은 천연기념물이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라는 제한으로 인해 숨겨져있을까? 정부 차원에서도 몰랐고, 이 책의 저자가 발견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서 천연기념물로 지정까지 할 정도이니.



경주 문무왕릉과 이견대, 감은사지는 더 이상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그럼에도 모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 진짜 경주 역사 이야기는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구나!




 


뇌성산 뒤쪽에 있는 성동리 하성마을은 영천 황보씨 마을이다. 1454년 단종 2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영의정이던 황보인의 삼대, 곧 그 자신과 그의 후손 다섯 명이 수양대군의 칼날에 희생된다. 그때 황보인 집안의 늙은 여종이 황보인의 젖먹이 손자를 물동이 안에 감춰서 도망친 뒤 이 땅 동쪽 끝, 구룡포에 들어와 살며 황보 씨의 맥을 잇고 마을도 일군 것이다. 마을 남쪽으로 광남서원은 황보인과 그의 아들 석, 흠 형제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순조 31년에 사액을 받았고, 광무 4년인 1900년에 복원한 뒤 1941년에 복설했다. p 073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에게 피살된 그의 시신은 청나라 정부를 통해 국내로 이송되어 양화진에서 육시처참형을 당한다. 그의 왼쪽 팔이 장기곶(호미곶) 앞바다에 내던져졌는데, 그때가 동학농민혁명이 한창이었던 1894년 갑오년 5월이었다. 이곳을 투기 장소로 정한 이유는 동해로 돌출되어 있는 이곳 지형에 역모의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p 083



포항의 향토연구가 박일천 씨는 연오랑과 세오녀로 상징되는 이 집단을 신라 초기 ‘근기국’으로 불리던 부족국가라고 설명했다. 진나라 멸망 뒤에 동쪽으로 이주해 온 세력 중의 하나로, 이들 부족에서 베 짜는 기술을 신라에 전해주었으나 신라가 강성해지자 무리를 지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지금도 영일 지방에는 줄줄이 이어 수평선 위를 지나가는 행렬을 지칭해서 “왜배 가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아득한 옛날 이 부족들이 가축과 가재도구를 싣고 수평선 저쪽으로 왜 나라를 향해 줄줄이 사라져 가던 모습에서 유래된 표현이라고 한다. p 088



현재 포스코가 자리 잡은 곳에 대송정으로 유명한 조선시대의 역, 대송역이 있었다. 대송정은 동쪽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그 숲 앞에 흰 모래밭이 있으니 경관 좋은 해수욕장을 이루었으리라. 하지만 공업단지 조성으로 그 풍광은 사라졌고, 동촌 남쪽으로 부련사 라는 절집도 사라진 지 오래다. 포스코가 들어서 있는 포항시 남구 송내동 주진리에 조선시대 행인들의 편의를 제공하던 주진원이 있었으나, 그 역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p 091



난 분명 포항 호미곶에 가서 상생의 손 동상을 보고 왔다. 그때는 약간 흉물(?)이라는 느낌 말고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더랬다. 그런데.. 포항 호미곶에 김옥균의 왼쪽 팔이 버려졌다니?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호미곶 상생의 손 동상이 좀 다르게 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왜.....왜 하필 호미곶에 버려진게 김옥균의 팔인가;;;;; 다리도 아니고 목도 아니고, 이거 참 묘한 우연이네?




 


영덕 지방에서 가장 큰 항구인 강구항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기도 하지만, 영덕 대게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이어지는 대게 철에는 수많은 대게잡이 배들이 항구로 집결하고 위판장이 운영되며, 일명 ‘대게 거리’로도 불리는 식당가도 3km나 이어져 있다. p 112



동해 바닷가 어촌인 영덕읍 노물리에서는 지금 미역, 조개, 새우 등이 주로 잡히지만, 조선시대에는 물개를 잡아 나라에 진상했다고 한다. 방어가 많이 잡혔다는 방아짬, 돌매라는 사람이 미역을 따던 돌매방우, 상어 비슷한 물고기인 지투가 많이 잡히던 지투짬 등 노물리의 아름다운 옛 지명을 통해 이 지역에 해산물 종류가 다양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풍무한 어종 때문이었는지, 궁벽진 이곳까지 광대들이 자주 찾아들어서 광대에 얽힌 지명도 많이 남아있다. 광대가 줄을 타고 재주를 부렸다는 강대 줄탄모기 고개, 광대들이 가무를 즐기며 놀았다는 깨뭇개도 있다. p 115



지명의 유래로 그 지역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걸 좋아라하는 편인데, 이야. 영덕 노물리의 지명은 정말 놀랍다. 바닷가니까 해산물 종류가 다양하고, 그에 따른 지명이 생성된건 이해가 되는데.......광대라니! 전혀 생각치 못한 지명 유래라서 그런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광대로 인한 지명 유래가 생길정도면, 영덕 해안가 지역이 꽤나 상업적으로(?) 발달했고, 시장도 발달했었다라는 사실도 유추할 수 있고. 



이래서 사람은 어딜 가서 뭘 보든, 조금이라도 더 알고 봐야해!





 


대진항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대진 해수욕장이다. 이곳은 해안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특히 관어대 일출이 빼어나다. 관어대는 영해면 괴시리에 위치한 조망대다. 그려 말 문신 목은 이색이 외가인 호지마을에 왔다가 바닷가 상대산에 올랐는데 넓은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바닷물이 아주 맑아서 물고기가 뛰노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다고한다. 그 모습에 이색은 이 산을 관어대라 이름 붙이고 글을 남겼다. (…) 이색이 살았던 괴시리는 원래 호지마 또는 호지촌이라고 부르던 곳이었으나,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온 이색이 이곳 지형이 중국 괴시와 흡사하다며 붙인 지명이라 한다. p 127



대진항에서 덕천, 고래불로 이어지는 해수욕장. 바다에서 바다로 이어진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보자. (…) 한국의 포경지, 고래불 해수욕장. 고래불은 병곡면 병곡리에서 휘리리까지 동해 바다를 따라 약 4km에 이르는 긴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예전에 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p 128



금곡 북쪽으로 서낭당이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칠보산 토지지신 골매기님’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데, 소원 성취에 매우 영검하다고 한다. 유금남서쪽으로 선덕여왕 시절 창건된 유금사라는 사찰이 있고, 유금 남쪽 도리봉 위로 마고할미 집터도 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사이에 도계를 이루는 지경 마을을 지나 울진군 후포면에 이른다. 드디어 첫 번째 일정긴 1구간 여정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아프다. p 130



목은 이색의 흔적을 울진에서 찾게 될 줄은 또 몰랐다. 대체 난 울진에서 뭘 보고 온건지..ㅋㅋㅋ 울진 대게만 먹고 왔나. 허허 이거 참. 나도 나름 울진에서 여러곳 답사도 하고 그랬는데^_T. 더군다나 다른 지역이긴하지만 목은 이색의 흔적이 있는 곳도 찾아 다니긴 했었는데. 정작 울진은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목은 이색이 지명까지 바꾼 곳인데..허허허..



내가 가봤던 부산에서 울진까지, 저자가 걸었던 부산에서 울진까지의 갭이..너..너무 크니까 ㅋㅋㅋ 이거 뭐 정말 내가 가봤던 곳이라고는 생각치 못하겠는데? 어휴, 안되겠다. 이번 여름은 글렀지만, 내년 여름휴가는 뿡뿡이와 함께 이 책을 들고 동해 여행을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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