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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평점 :
고 이어령 선생의 유작,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두번째 편이 나왔다. 책 제목은 「땅 속의 용이 울때」 (첫번째 편은 「별의 지도」).
첫번째 편인 「별의 지도」를 읽은 뒤, 진정한 인문학책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두번째 편 「땅 속의 용이 울 때」 역시도 읽기 전부터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보통 기대가 크면 클 수록 실망도 큰 법인데, 역시는 역시일까?! 이 책을 읽고보니, 이어령 선생의 책은 그 어떤 책을 읽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되면 베스트셀러인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도 한 번 읽어볼까 싶은?
아니 뭐, 생각해보면 내가 읽고 있는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야말로, 진정한 이어령선생의 마지막 수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 제목인 「땅 속의 용이 울 때」 를 보면서, 땅 속의 용은 무엇을 빗댄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시리즈가 ‘한국인’ 이야기이니, 땅 속의 용은 분명 한국인을 비유한 것일텐데... 뭐랄까, 용과 한국인? 딱히 와닿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 적 꼬부랑 할머니를 자처하며, 흙먼지를 풀풀 풍기는 우리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던 이어령 선생인데, 그런 그의 입에서 ‘용’의 이야기가 나온다는게 좀 의아했다.
그렇지 않나? 흔히들 우리 땅은 오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데, 실상 그 속의 이야기를 들춰보면 용처럼 불을 내뿜는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땅에 나는 풀 한포기에도 감사함을 잊지않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데! 내 이런 의문은 순식간에 풀렸다. 그것도 이 책의 첫 챕터를 읽자마자.
흙 속에 숨은 작은 영웅, 지렁이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게 있어요. 그 많은 벌레 중에 왜 하필 지렁이였을까요? 실제로 벌레 중 먹이사슬의 제일 밑바닥이 지렁이예요. 지렁이는 눈도 없어요. 그래도 몸으로, 피부로 빛을 느껴서 그 감각으로 빛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가죠. 지렁이는 암컷 수컷도 없어요. 한 몸에 암수가 다 있어요. 그리고 지렁이는 모든 동물의 밥이에요. 하늘을 나는 새부터 바닷속 물고기까지. 우리가 낚시할 때 낚싯밥으로 지렁이 쓰잖아요. 그러니까 먹이사슬의 제일 하층에 있죠. p 023
참 한국 사람들 대단하지요. 지렁이는 한자어 지룡(地龍)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그 하찮아 보이는 지렁이를, 햇빛 나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뿐인 그 약한 지룡이를 ‘저것은 지룡(地龍)이다, 땅속의 용(龍)이다’하고 생각했어요. 용이라는게 뭐에요.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할 만큼 신령스러운 동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존재 아닙니까. 자연현상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그러니까 용은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도 소중한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지렁이를 알아준 사람은 한국인, 그중에서도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에요. 다윈보다도 먼저 말이죠. 땅속의 용인 지렁이가 환상 속의 용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울지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준 우리 선조들이에요. p 046
옛날 사람들은 깊은 땅속에서 지렁이가 운다고 생각했어요. 지렁이는 울지도 않고, 소리 낼 방법도 없는데 왜 우리 농촌에서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었을까요? 저 알수 없는 지렁이 울음을 듣고 싶은 간절함. 깊은 땅속 흙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겠어요? 우리 농촌의 저 땅, 혹은 흙 아래에서 울려오는 소리, 숲에서 울려오는 것도,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도 아닌, 땅속에서 울어 나오는 저 소리, 그게 지렁이 울음이에요. p 033
땅 속의 용, 지룡은.....지렁이였다. 가끔 햇볕이 쨍한 날 땅 위에서 말라 비틀어져 있는 그 지렁이. 먹이 사슬 최하층의 지렁이. 모두에게 짓밟히는 지렁이. 처음엔 이름 한자 없었을, 하찮디 하찮은 생명체가 어느 순간에 ‘땅 속의 용’이라는 아주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름을 붙여준 건 다름아닌 우리 조상들이었고.
우리 조상들은 지렁이의 본질을 알았던 것이다. 지렁이는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존재로 인해 모든 생명들이 이 땅에서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이 땅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 조상들은 지렁이를 ‘땅속의 ‘용’으로 보았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였으나, 우리 조상들로 인해 땅 속의 ‘용’이 된 지렁이. 우리 조상들은 땅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땅속에 사는 용이 우는 소리라 칭했다.
그렇게 이름없는 하찮은 존재가, 땅 속에서 울부짖는 위대한 용이 되었다.
지렁이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덕(德)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첫째, 지구의 땅은 지렁이 덕분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질감도 좋게 만들어요.
둘째, 지렁이들은 뭐든 다 먹어 치웁니다. 부식한 것, 짐승이 절대로 먹지 않는 썩은 것도 먹어서 나쁜 균은 전부 자신의 장으로 걸러내고 좋은 미생물만 쏟아내죠. 또 지렁이의 배설은 다른 생물에 유익하고, 미생물이 먹어 치워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지렁이가 오줌을 누면 딱딱하게 변해서 그게 칼슘 같은 것이 되어 흙이 된다고 해요. 지렁이가 죽으면 미생물들이 또 먹습니다. 그래서 퇴비가 되죠. 나서 죽을 때까지 지렁이 신세를 지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셋째, 먹이사슬의 최하층답게 방어 수단은 일절 없지만, 상위 포식자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어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돕습니다. 지렁이의 천적은 두더지, 개구리, 두꺼비 같은 양서류, 새, 설치류, 육식성 거머리, 그리고 딱정벌레, 지네, 여치, 사마귀 같은 육식성 곤충등이 있지요.
넷째, 약재와 식용으로도 쓰입니다. 뉴질랜드나 아프리카 등지에는 아예 식용으로 쓰는 굵고 커다란 녀석이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토룡탕이라는 것을 먹는데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지렁이를 고아서 만든 국입니다.
다섯째, 지렁이는 강력한 생명력의 소유자입니다. 원폭이 떨어져도 산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다른 생명의 삶까지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p 026~027
생각해보면 그렇다. 현대인들은 지렁이를 그저 지렁이로 대할 뿐, 지렁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 식집사들은 예외일지도. 적어도 식집사들은 지렁이들이 만들어주는 흙, 일명 ‘지렁이 분변토’를 돈주고 사온다. 간혹 화분에서 지렁이가 나온다면? 그 순간 지렁이는 지렁이‘님’이 되어 박멸이 아닌, 귀빈 모시듯 다시 고이 화분 속 흙으로 보내준다. 왜? 지렁이가 내 화분 속의 흙을 더 좋게 만들어주고, 그 좋은 흙 덕분에 식물들이 더 많은 영양을 얻을 테니 말이다.
일개 화분에서 발견된 지렁이도 이렇듯 귀빈 모시듯 하는데, 과거 농업이 주가 되었던 이 땅의 조상들은 땅 속에서 발견된 지렁이들이 얼마나 이뻤을까? 그러니 지렁이를 땅속의 ‘용’으로 대접하지 않았을까.
하찮지만 귀한 존재 지렁이. 이어령 선생이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어째서 한국인 이야기에 ‘땅 속의 용’을 빗대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난 늘 이야기를 해요. 한국 사람이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고요. 세계적으로 지금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국민소득으로 따져도 잘 해봐야 우리는 세계 10위에서 13위를 왔다 갔다 하니까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10개 나라도 넘는거에요. 그 나라들보다 우리가 못살고, 노벨평화상 하나를 빼고는 학술 분야에서 노벨상을 탄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남의 민족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고 그 가슴에 못질한 적도 없어요. 남을 침해하지 않은 민족 가운데 우리만큼 사는 민족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정말이에요. p 125
우리는 남을 정복하기는커녕, 우리 고향에서도 내쫓기던 민족이었어요. 그래도 남의 눈에 피눈물 안 나게, 남의 가슴에 못 안 박고 올바르게 살았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잘사는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은 다 전과자에요.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바로 “너희 몇 년에, 몇 세기 때 우리에게 와서 착취했던 나쁜 사람들이야”라고 지탄받지만 우리는 그게 없잖아요. p 126
지금이야 K문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을 만큼, ‘대한민국’ 전 세계에서 그 위상이 드높다. 하지만, 불과 백년 전...아니 백년도 채 안되는 시간 전까지만해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쳐들어오는 외세로 인해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다. 우리 역사에서 굵직한 외세침략을 꼽아보면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귀주대첩, 원간섭기, 살수대첩 등. 정말 역사의 매 시간대마다 외세의 침략이 있어왔다. 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어쩔수 없다면, 어쩔수 없는 것이긴 해도. 이렇듯 언제나 외세에 짓밟히던 한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여기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지금 세계에 위상을 드높이는 여러 나라들을 보면, 전부 수많은 식민지를 거스렸던 나라들이다. 오로지 한 나라의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제외한, 잘산다고 하는 10여개의 나라들은 불과 백여년 전 온 나라가 더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켰던 그 시기에,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것들을 토대로 부를 쌓아 올렸다는 이야기다.
뭐, 조금 더 따지고 들어간다면 우리도 월남전에, 베트남 민간인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역사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돈받고 파병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 학살한 것이나, 베트남에서 버려진 라이따이한 등 안면볼수 한 사건들에는 절대로 면죄부를 주면 안되지만 말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래?” 라고 묻는다면 “나 지렁이처럼 한 번 살아 볼래”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실 지렁이처럼 살면 밟힙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밝은 자’의 역사가 아니라 ‘밟힌 자’의 역사예요.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밟힌 지렁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초목이 나오고 어떻게 나뭇잎이 다시 살아나는 봄이 옵니까? 우리의 모든 역사는 ‘밟힌 자들의 역사’이기에 영웅이 생겨나고 지도자가 있어온 것이 아니겠어요?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암흑의 영웅, 무명의 영웅, 밟히면 꿈틀한다는 먹이사슬 최하위에 있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야 합니다. 저 땅속에서 울리는, 사실은 울지도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땅강아지의 울음이라고 해도 그걸 지렁이 울음이라고 합시다. p 228
이어령 선생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장 하찮은 지렁이가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듯, 외세에 침략을 받던 한반도가 지금은 전 세계에 K문화를 선도시키듯,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