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기 전에
권용석.노지향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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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첫장부터 눈물흘리기가 쉽지 않은데, 이 에세이 『꽃 지기 전에』가 그것을 성공해냈다. 



보통 책을 읽을 땐 서문을 꼭 읽는지라, 이 에세이를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 가볍게 책을 열고 읽었는데, 왠걸. 방심했다. 서문에 쓰여있던 글은 이 책의 공동 저자 권용석님이 아내이자 또 다른 저자 노지향님에게 받치는 글이었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자신의 끝을 함께 해줄 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그리움이 담긴 글이었다. 분명 담백하고 짧은 글이었음에도, 순식간에 저자에게 이입이 된건지 눈물이 나와서 조금 당황했다. 하필 책을 읽은 공간이 회사였기에, 더 당황했다면 당황했달까. 하하.


나의 남편 권용석은 1963년 태어났고 1988년에 결혼, 10년은 검사로 그 후 15년은 변호사로 살았다. 2009년 사단법인 행복공장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2022년 5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가 가기 4, 5년 전 부터 쓴 것들이다. p 015


담백하면서도 슬픈 서문을 읽고 난 뒤 알게된 사실은, 이 글을 썼으며 이 책을 공동으로 집필한 권용석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권용석 님의 유고집이다. 권용석님이 살아오면서 써온 글과 시를 모아서, 아내인 노지향님이 책으로 엮어서 낸 것이다. 



사실상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끝은 죽음이다. 어찌보면 죽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한번 뿐인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가깝지 않다고,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정작 중요한 일은 뒷전에 둔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을 선고 받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어쩌면 삶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서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해야 하는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미루어 왔던 일들이 지금 내가 할 일이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했던 일들이 내금 내가 그만두어야 할 일입니다. 남은 삶 동안이라도 쉽게, 단순하게 살겠습니다. p 028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죽음이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다가 왔습니다. 왜 그리 걱정하고 안달하며 살았을까? 뭐가 그렇게 못마땅해서 미워했을까?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일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훨씬 기쁘고 생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p 037



주 저자인 권용석님은 검사로, 변호사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 모든 직을 내려놓고 ‘행복공장’을 설립해 오롯이 자기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해던 찰나에 암 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완치가 어려운 암. 그렇게 젊다면 젊은 나이에 그는 시한부가 되었다. 언젠가 죽는다가 아닌, 곧 죽을 것이다라는 선고를 받게 된 그의 삶과 시간은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죽음을 선고받기 전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남은 시간을 어찌 살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저 이 에세이로나마 그의 삶을 잠시 엿본 나로써는, 죽음을 선고 받기 전의 그의 삶은 찬양받아 마땅한 것 같아 보이는데도,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이 책에 추천사를 써준 분들의 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남들은 선뜻 살 수 없는,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온 그였으니까. 착한 사람은 하늘이 빨리 데려간다는 말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의 삶은 선하고 또 선했다. 이렇게 선한 사람이 검사생활을 어떻게 했으며, 검사생활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지 눈에 보일정도로.


그렇게 바쁘게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며 매일을 치이고 치이는 삶을 살았던 그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홀로 성찰 할 수 있는 독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행복공장’을 설립한 공장장이 되었다. 나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선한사람은 죽음을 앞두었다 한들 달라지지 않나보다. 그는 오히려 자기 자신보다 휴식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남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한결 같을 수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 살인, 강간, 강도보다 더 큰 죄가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고,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사람은 남이 얼마나 귀한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함부로 하게 된다. 여러분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해서 자신에게 함부로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을 가둔 것은 경찰이나 판사, 검사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주라. 여러분은 당당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구속보다는 자유를, 불행보다는 행복을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길을, 자유의 길을, 행복의 길을 가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과 엄청난 돈을 가진 재벌들이 다른 길을 걷다가 수감되거나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에게 함부로 하면서 남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하여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것으로부터 모든 죄가 시작된다.”

제 말이 학생들의 마음에 닿아서 학생들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p 072


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대게 자신들을 비난만 하는 어른들을 만나왔을 비행 청소년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저 입발린 ‘나쁜짓 하지마라, 너네가 그러면 그렇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만 보았을테니 말이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딱지가 붙기 전에, 이런 어른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 아이들의 인생에 ‘비행’이라는 딱지가 붙을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유독 자아 성찰에 대한 글들이 많이 보인다. 


뉴스나 댓글을 보면서 ‘나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선한사람인가, 악한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돌팔매질 당하는 사람에게 내 모습이 보이 기 때문인지 돌팔매집이 가혹하게 느껴지고, 환호받는 사람에게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인지, 환호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 ) 사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드러난다면, 아마도 나는 이 땅에서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구에나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한쪽 면만 보면서 욕하고 박수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빛을 사랑하는 거은 좋지만, 빛 속에 숨어있는 어둠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충분히 경계했으면 좋겠습니다. p 091


돌이켜보면 남을 위한 일이나 남이 시킨 일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소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열심히 들으면서 내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남들에게는 정성을 다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정성스럽지 못했습니다. 남들로부터는 인정받으려 애쓸 뿐,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많은 시간을 돈을 벌고, 돈을 쓰는데 허비했습니다. 남들 살아가는 모습 구경하다가 내 삶이 떠내려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p 103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오점을 떠올리며 반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죽음을 앞두면 삶에 대한 후회가 많아질테지만, 그 후회가 과연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는냐는 다른 이야기니까. 그래서 그럴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선고받게될 날이 올텐데, 그 때가 된다면, 난 내 삶을 어떤식으로 후회를 할게될까? 후회가 반성으로 이어질까, 아니면 무언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으로 이어질까. 부디 전자였으면 좋겠다.


끝으로 그가 남긴 감동적인시 두 편을 소개한다.



행복공장


행복공장을 왜 하냐구요?

제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들 수심이 가득해 보여서.

행복하지 않은 내가 너를 물들일 것 같아서.

행복하지 않는 너에게 내가 물들 것 같아서.

행복으로 물들이는 너와 내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행복공장을 합니다. 



꽃 지기 전에


“곧 보자” 했던 이의

‘부고’ 문자 받아들고

하늘을 본다.


보고 싶으면

정말 보고 싶으면

지금 보자.

꽃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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