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칙한 이솝우화 - 삶의 자극제가 되는
최강록 지음 / 원앤원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이솝우화, 아주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이다. 그냥 어렸을 때도 아니고, 한창 동화책을 보던 코흘리개 시절말이다. 그래서 이솝우화는 당연이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머리통이 커진 이후로는 더더욱 읽어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솝우화의 ‘이솝’이 저자라는 것도 몰랐다. 거기다 이솝우화가 고전소설 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그정도로 나에게 이솝우화는 그저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이었고,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던 책이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1227/pimg_7440571783686349.jpg)
이솝우화에 대한 나의 인식이 저 정도였기에,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좀 반신반의 했다. 어른들을 위한, 어른을 독자로한 이솝우화라, 어른에게 이솝우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이 책 「삶의 자극제가 되는 발칙한 이솝우화」를 읽기 시작했다.
※이솝에 대해서
『이솝우화』의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기원전 620년~564년)’입니다. ‘이솝’은 아이소포스의 영어식 발음이죠. 그에 관해 알려진 정보는 매우 적습니다. 입담은 재치 있었으나 외모가 흉측스럽고 말을 더듬었따는 설이 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이솝은 도시 국가인 사모스 시민 이아드몬의 노예로 이야기를 잘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주인을 많이 도와줬다고 합니다. 훗날 자유인이 된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환영을 받았으나, 그를 질투한 델포이의 시민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남긴 우화는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후대에 문서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예 출신이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의 저자 중 신분이 가장 낮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인지 그의 우화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도덕적인 교훈만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칠고 잔인하며 처절하기까지 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탐독했을 정도니까요. p 007~008
놀랍게도 태초에 이솝우화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전이 아니었다. 이솝이 만든 우화는 이솝이라는 노예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이 쓸모를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 우화의 독자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잔혹한 마더구스나 그림형제 이야기가 어린이 동화가 되었듯, 이솝우화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가 되었던 것이었다.
이솝의 배경을 알고나서야, 저자가 이 책의 책머리에 쓴 이솝우화에 대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정치인이 읽으면 예민한 민심을 포착하는 심리서로,
사업가가 읽으면 세상의 흐름을 짚어내는 경영서로,
종교인이 읽으면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교육자가 읽으면 배움의 이치를 깨닫는 교과서로…
그저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라, 막연하게 아이들의 동화책이라 생각했던 이솝우화는 놀랍게도 일종의 풍자소설이었다. 노예였다가 훗날 자유인이 된 이솝은 분명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이고, 살면서 만났을 수 많은 인간들을 만났을 것이다. 특히 노예 때 만난 인간들, 자유인이 되어서 만든 인간들, 바운더리가 다른 인간들을 수 없이 만났을거고, 자신이 보아온 인간들의 삶을 이야깃거리로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솝의 이야기를 말그대로 ‘인간’에 빗대서 해설한다. 정확히는 인간의 ‘군상’, ‘심리’등을 통해서 말이다. 저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여서 그런건지,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인물 군상들이 이솝우화에서, 저자게 해설해주는 여러 일화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솝우화는 그저 아이들의 동화책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된 고전인 동시에, 살면서 있을 법한 여러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해주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책이었다.
이 책은 여러 이솝우화를 총 4개의 챕터로 구분했다. 각 챕터 속에서도 또 여러 소주제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만 골라 읽는 것도 가능하다.
1.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이솝우화: 불안
2. 좀더 성숙한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 성장
3.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을 때 이솝우화: 성숙
4. 복잡한 삶이 홀가분해지는 이솝우화: 활기
아래는 이 책에 실려있는 이솝우화와 저자의 해설을 일부 발췌하였다.
▶내가 먼저 물러나는 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실제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나 시골 마을 오솔길 혹은 외진 산자락에 난 협로에서 마주 오는 차와 맞닥뜨리면 곤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두 차가 비켜갈 만큼 넉넉한 공간이 나올 때까지 뒤로 물러나줘야만 평화롭게 해결이 날 수 있습니다. 두구든 먼저 양보하는 게 가장 빨리 가능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어려운 걸까요? 비단 운전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각종 단체나 모임 등에서 나와 타인 사이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p 063
‘양보하면 지는 거야.’, ‘여기서 물러서면 나만 바보 되겠지?’, ‘조금만 더 버티고 밀어붙이면 내가 이길 수 있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승부를 가리는 게임 혹은 승패가 판정나는 경기로 생각하는 것이죠. ‘양보=패배’, ‘고집=승리’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것니다. (…) 손해보고 싶지 않는 마음, 양보를 꺼리게 만드는 심리를 ‘손실회피편향’ 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얻게 될 이득보다 내가 보게 될 손해에 더 주목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득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해로 인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죠. 기쁨은 순간이지만, 쓰라린 기억은 상당히 오래갑니다. p 064~065
내가 먼저 물러서고 양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지금 당장 손해인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영향이 내게 긍정적 결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중 한마리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내가 뒤로 물러날 테니 네가 알고 있는 맛있고 싱싱한 풀 있는 곳 한 군데를 알려줄래?”
그랬더라라면 맞은편 염소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좋아, 알려주지. 그리고 다음에 외나무다리에서 또 만나면 그땐 내가 먼저 물러날게.”
두 염소 모두 죽지 않고 맛있고 싱싱한 풀을 나눠 먹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것 하나를 더 얻으려다 큰 것까지 전부 잃게 되는 건 알량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입니다. p 066~067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구리와 황소
우화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새끼 개구리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 개구리의 눈물겨운 모성애는 한편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아무리 그래도 개구리가 황소만해지려 했다는 건 용기보다 만용에 가깝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을 ‘망상’ 이라고 합니다. 상황이나 사태를 잘못 해석해 갖게 된 지각이나 경험을 두루 포함합니다. p 126
엄마 개구리는 자신이 황소처럼 커질 수 없단느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새끼 개구리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그까짓 것 왜 못해?’,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하고 한껏 부풀려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것이죠. 그런 다음 헤어나지 못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이런 증상은 열등감, 패배감, 불안감 등을 보상하고자 노력하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보상받기 위해 현실을 왜곡시키고 강하게 믿으면서 결국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p 129
과대망상을 치료하려면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소 현실 감각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고민과 걱정은 적정한 선에서 멈춰야 하며, 적당한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자만심은 경계해야 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일 경우 지나치게 나무라거나 야단쳐서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건 위험합니다. 그가 과대망상에 빠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쓰라린 열등감, 깊은 패배감, 힘겨웠던 불안감 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p 131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깊이 공감하는 태도: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개라고 착각해 입에 문 고깃덩어리를 뺴앗으려다 자신의 고깃덩어리마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개에 관한 우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 누구나 개의 어리석음에 혀를 찹니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죠.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나 자신을 돌아보면 어리석은 개처럼 과도한 욕심과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p 166
없어서 소유를 갈망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있지만, 타인이 가진 게 더 좋고 멋지고 탐스러워 보여 그것까지 다 갖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겁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로 개인이 불행에 빠지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며, 사회에 불안이 잉태됩니다. 부족과 부족,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 내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장남아니까, 내가 모셨으니까, 내가 제일 친하니까, 내가 제일 가난하니까 더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속내는 욕심 뿐 입니다. p168
정신분석학에선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는 태도를 ‘나르시즘’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리비도(인간의 생물학적인 성적 에너지)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말로 ‘자기애’라고 번역합니다. p 169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내가 아닌 타인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와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내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인정하며 늘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건 오랜 훈련과 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과도한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고 현재에 자족할 줄 아는 지혜 역시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p 171
‘소탐대실’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작은 걸 탐하다가 큰 손실을 당한다는 뜻이죠. 내 재주와 노력과 능력과 분수 이외의 것을 과도하게 욕심내거나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지혜입니다. p 172
다시금 깨닫는다. 이솝우화는 어린이 동화책이 아니라, 삶의 이치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고전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