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괴담 - 오류와 왜곡에 맞서는 박종인 기자의 역사 전쟁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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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땅의역사 5권 이래 박종인 기자님의 신간이 나왔다. 크흡 기다렸어요 신간 ㅠㅠㅠ 진짜 완전 정말로!!! 



인터넷 서점 알ㄹ딘, 예ㅅ24에 박기자님 신간 알람을 아주 당연하게 걸어놨기에, 알ㄹ딘에서 「광화문괴담」 예약주문뜨자마자 냉큼 주문했는데 이게 왠걸? 와이즈맵 출판사에서 도서협찬 메일이 왔고ㅋㅋㅋㅋㅋ 아쉽아쉽. 만약 기자님 친필 사인본(^^)을 준다고 했으면, 모르는척 하고 책을 받았겠지만 난 너무 양심적인 독자라(..) 이미 책을 구매했다고 고사해버렸다. 어차피...서평쓸거니까 ㅋㅋㅋㅋㅋ?



박종인 기자님의 역사책은 대체적으로(?) 자/타의에 의해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타의에 의해 사실로 둔갑된 역사왜곡을 반박할 수 없는 증거(기록, 사진등)로 깨부순다. 근데 뭐랄까... 상상출판에서 출간되는 박종인기자님의 땅의역사 시리즈는 순한맛 이라면, 와이즈맵에서 출간되는 박종인 기자님 역사책들은 매운맛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난 역시 매운맛이죠아....ㅎ.....(실상은 맵찔이ㅋㅋ)



하지만 우리 뿡뿡이를 낳기 전 태교는 순한맛인 땅의역사 시리즈 정주행^_^ㅋㅋㅋ(TV프로그램 땅의역사 포함!) 이제 순한맛은 끝내고, 다시 박종인 기자님의 매운맛 「광화문괴담」 차례다!



이쯤에서 대놓고 역사책 추천하자면!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역사책 중에서 정말 읽을만한 역사책이 어떤 책인지 고르지 못하겠다면!! 학생들에게는 상상출판에서 출간되는 순한맛 땅의역사 씨리즈를! 어른들에게는 와이즈맵에서 출간되는 매운맛 대한민국징비록, 매국노고종, 광화문괴담을 아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 모든 책들 리뷰는 내 블로그에 고스란히 있으니, 한번 슬쩍 훑어보고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뭐 그런 이야기 ㅋㅋ



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는 것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저명하신 전문가들이 역사적 사실이랍시고 TV에서, 책에서, 여러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기 때이다. 아~~~주 저명하신 전문가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니, 우리는 당연히 ‘사실’로 받아들인다. 왜?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까!



설마 전문가들이 역사왜곡을 하겠어? 거짓부렁을 말하겠어? TV에도 자주 나오고, 책도 자주 쓰는 사람들인데?



정치에도 권력이 있듯, 문화에도 권력이 있다. TV에도 출연하고, 베스트셀러도 낸 저명한 전문가들이니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믿고, 우리의 믿음으로 그들은 문화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게 무한 반복된다. 전문가인데 유명하고,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이니 사실이고, 전문가니 거짓말은 안할거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믿음의 반복! 물론 그들이 하는 말이 전부 거짓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에는 거짓이 숨어있다. 역사적 검증이 되지 않은, 뇌피셜로 끼워맞춘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전문가이기에 그들이 하는 말은 그렇게 가짜뉴스가 역사의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 책 「광화문 괴담」은 그런 문화권력자들이 만든 역사왜곡과 오류를 깨부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에서 박종인 기자님이 깨부수는 역사왜곡, 역사의 가짜뉴스는 총 16편! 이 16편은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로,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야기다.



-청와대는 예로부터 천하 명당?

-풍수지리로 만든 조선의 수도 한성?

-조선 500년 간 광화문 앞에 월대가 있었다?

-일본 군 말 위령비가 조선 왕실 제단?

-고종이 '고종의 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아났다고?

-남대문이 임진왜란 일본군의 개선문?

-총독부가 경희궁을 없앴다고?

-원나라가 고려왕을 강제로 사위로 삼았다?

-베트남 호찌민의 애독서가 <목심심서>?

-추사 김정희가 명필 이광사의 현판을 떼라고 했다고?

-선조가 류성룡의 반대로 명나라 망명을 단념했다고?

-정조가 조선 학문 부흥을 이끈 왕?

-실학이 조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병장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아사순국?

-헤이그밀사 이준의 할목자살은 '대한매일신보'의 가짜뉴스!

-나라는 팔렸는데 조선왕실은 그대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8번째 주제인 원나라가 고려왕을 강제로 사위로 삼았다는 가짜뉴스에 대해선, 최근에 들어서 고려가 계속 사위삼아달라고 거듭 요청해서(!!) 라는 내용이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나왔으니, 그나마 아주 살짝(!) 바로잡힌 내용중 하나라면 하나랄까. 하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저 내용 그대로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있는다. 왜? 전문가들이 그랬거든. 그런 전문가들 중에는 문화권력을 제대로 쥐고, 한자리 하고 있는 인물들이니까^^! 거기다 누군가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을 하면 ‘니가 감히?’ 라는 시선들이 따라오기도 하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과 다산 정약용과 개그맨 유재석은 금기라는 우스개가 있다. 함부로 비판하거나 비난하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정희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권력이다. 세종도 그러하고 정약용도 그러하다. 김정희와 세종과 정약용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 전문가들은 이제 스스로 권력자가 된다. p 010



“전설도 사람들이 믿으면 사실이 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독일사람 요제프 괴벨스가 아니라 한국사람 유홍준이다. 맞다. 전 문화재청장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불후의 명작을 서술한 그 사람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유홍준은 이렇게 설파했다. “전설도 사람들이 믿으면 사실이 된다. 굳이 ‘전설에 따르면’ 이라고 붙일 이유가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저작과 강연 중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필자와 전화통화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사실이 된다’는 괴벨스 말은 워낙 유명하니 모를 리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했다면 ‘전설도 사람들이 믿게 되면 사실이 된다는 신념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전설을 거듭 말하면 사람들이 믿게 되고 그 믿어진 전설(근거가 있든 없든)이 사실을 대체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거나 대체하기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전설이 사실을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와 교훈은 찬란하게 빛나고 진실은 ‘사망’한다. p 010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 책들 중 몇권은 우리집에 있다. 특히 일본편이 나왔을 때는, 한일고대사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반갑기 그지 없었다. 반가운 마음과 유홍준 이라는 네임벨류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찬 채 책을 읽었는데, 하! 안읽음만 못했다. 특히 아스카, 나라편은 정말 실망실망대실망. 오죽하면 그 마음을 블로그 리뷰 포스팅에까지 썼을까.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일고대사 관련 책을 나름 닥치는대로 읽어온 나인데, 그런 나조차도 실망했다. 책을 쓸거면 조금만 더 자료를 찾아보고 썼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그런 마음이었달까. 하긴, 생각해보면 추사 전문가라는(!) 유홍준 교수가 출간한 <완당평전>은 비전문가였지만 추사 애호가였던 한 사람에 의해 200여군데 이상이나 오류를 지적당했다지. 그렇게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은 자의반, 타의반 절판처리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유홍준 교수는 <추사 김정희>라는 책으로 이름을 바꿔서 다시 출간! 추사에 대해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괜히 읽었다가 곧이곧대로 믿어버릴까봐 읽어보진 않았으나, 절판처리한 그 책 내용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라고 하는데 음. 근데 베스트셀러^^. 네, 뭐 그렇다구요. 하하하.



이때 깨달았던게 ‘아, 저명하고 유명하신 전문가는 네임벨류만 있으면 뇌피셜로 말해도 사람들이 다 믿는구나!’ 라는 거였다. 이후 내가 역사책을 고를 때, 책을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지은이가 전문가라고해서 무조건 읽지않기, 신봉하지 않기였다. 실제로 비전문가여도 전문가 뺨치게 파고들어, 사실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이쯤대면 비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라고 해도 이상하지않겠지만).



고로 전문가라고 역사왜곡 안하는게 아니고, 반대로 비전문가여도 전문가보다 더 치열하게 연구하고 제대로 알고 있다! 라는 뭐 그런 이야기?


청와대가 터가 예로부터 명당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된 '天下第一福地'라는 문구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재의 본관 집무실이 공사를 진행할 때 북악산 기슭 암벽에서 발견됐다. 그 기원을 알 수 없지만 이 '천하제일복지'란 언급은 청와대 풍수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중략) 그렇다면 청와대 풍수의 핵심은 어디일까. 김두규 교수는 "현 수궁터, 처오아대 구본관이 있떤 자리가 중출맥의 기세가 온전히 전해진 진혈 자리에 해당된다"면서 "주산(북악산)에서 내려온 내룡이 내려앉은 곳"이라고 했다. 현재 이곳에는 천하제일복지라는 표지비석이 있고, 야트막한 동산이 조성돼 있다. (2022년 5월 31일 <매일경제>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와 청와대 가보니…북악산 기운 꿈틀대는 용맥') p 021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북악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이곳은 일찍이 명당으로 알려져 고려 숙종 9년 1104년 왕실의 이궁이 자리잡았던 곳이다. 이 가운데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던 높은 터를 경무대라 불렀다. 예로부터 천하제일복지라고 알려졌던 이곳 명당 터에 일제는 1939년 7월 총독관사를 건립하여 민족정기 단절을 획책함으로써 이 건물은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청사와 더불어 외세 침탈의 상징이 되었다. (청와대 안내판) p 029


청와대가 ‘예로부터(!)’ 천하제일의 명당이라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아있을 정도다. 지금은 청와대가 개방되었지만, 개방되기 전 광클에 성공한자들만 갈 수 있다는 청와대 관람을 나역시 몇번 갔었는데, 그때마다 해설사가 꾸준히 이야기 한 말이다. 뿐만인가? TV에서도 하도 말해서 전 국민이 청와대는 천하제일의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위에 새겨진 ‘천하제일복지’라는 문구. 언제 새겨졌는지 모르지만, 이걸 증거로(!!) 청와대는 정말 천하제일의 명당이다! 라는게 그 이유다. 그래서 나도 이 말을 믿었다지.......^^?





근데 여기서 반전. 이 ‘천하제일복지’라 새겨진 문구에 대해선 이미 연구결과가 나와있었다. 화강암에 음각한 획의 풍화정도가 깨끗하고, 비바람에 약한 화강암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각자가 새겨진 건 빨라야 1850년대라는 결론. 거기다 필체는 12세기 남송시대 명필가인 ‘연릉오거’의 필체를 따라한 거라고!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는 휴지통으로 슝슝슝. 청와대 부지가 ‘예로부터’ 명당이라는걸 널리 알리려면, 이런 연구결과는 알려지면 안되니까! 이 연구결과가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 각자가 왜 돌에 새겨졌는지조차 알려지지 못했다는건 함정이다.



청와대가 천하제일의 명당이라고 알리고 싶은 사람들은 신경안쓰겠지만, 이 각자가 새겨진 1850년대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까지 미친듯이 발행하면서, 무리하게 경복궁을 중건하던 시기였다. 청와대부지가 원래는 경복궁 부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네. 그렇죠. 경복궁 중건의 명분을 만들이 위한 흥선대원군의 한 수! 그러니까 흥선대원군이 만든 가짜뉴스를,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지금까지도 옳다구나!하고 답습 중^^



세종 때 조성된 월대는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판단되며,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광화문과 함께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광화문 앞에서는 왕실의 환궁 행사,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행사, 장례 등 왕실의 주요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백성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광화문 월대는 행사용 무대와 같은 기능으로 사람들에게 구경이 가능하도록 개방되었다는 점에서 금단의 영역인 궁궐과 백성의 거주지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로 의미가 있다. (명지대학교 한국건축문화연구소,《경복궁 광화문 월대 및 동,서십자각 권역 복원 등 고증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문화재청,2018) p 055


따라서 '월대 복원'은 왕도정치와 시민주권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역사적 가치와 화합, 통합의 미래적 가치를 담는 상징적 표현이다. (<2020년 문화재위원회 제9차 사적분과위원회회의록>문화재청, 2020년 9월 9일) p 055



오랜 세월 역사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경복궁 앞 월대의 복원은 조선시대 왕과 백성이 소통하고 화합하던 상징적 공간의 복원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2021년 4월 27일 서울시장 오세훈 긴급 브리핑) p 057


백성과 소통공간이라던 광화문 앞 월대. 그래서 억소리나는 국비와 서울시비를 들여서 복원한다는 월대!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어가는 이 복원공사의 명분은 슬프게도 가짜뉴스다. 더 웃긴건 광화문 앞 발굴조사 시 ‘고종 이전 시대 월대 흔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월대 복원공사를 강행’한다고 했다. 뭐 정확히 저렇게 말한건 아니지만, 문화재청장이 고종 때의 경복궁 완공 시점인 1888년부터 궁궐로서의 기능 상실 이전 시기인 1907년 까지를 복원 기준 연대로 잡았는데, 혹시나 그 시기 이전의 월대 흔적이 없어도, 없는 걸 복원한다는 뭐 그런이야기?



애초에 정도전이 설계했을 당시의 경복궁도 아니고, 임진왜란 전의 경복궁도 아닌, 고종시대 ‘전제’ 왕권강화를 위해(!) 급격하게 비대해진 경복궁을 복원한다는 것도 웃기는 짬뽕인데, 거기에 세종때는 없었던 월대를 굳이 세종까지 운운하면서 복원한다고 하니 뭐. 억소리나는 세금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쓰는게 우리나라 행정이지, 암 그렇고 말고.



세종 때 월대가 없었음은 실록에서 아주 대놓고 증언하고 있다. 오히려 세종은 농사에 방해된다며 월대공사를 기각! 이 외에 세종 때의 월대에 대한 기록은 실록에 전무하다. 그럼 고종 때 만들어진 월대는 백성과 소통의 공간이었나?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경복궁 월대는 문화재청은 세종 때 국민과 소통의 장소라고 하고, 정부와 서울시는 억소리 나는 돈을 들여 월대를 복원한다고 하고!! 당시 정부는 이상하리만치 고종을 미화하는 것을 뛰어넘어 띄워주기를 해댔는데, 꼭 광화문앞 월대복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아닌 의심이 든다. 있지도 않은 ‘고종의 길’ 복원한다고 했을 때 부터 알아봤어 아주-_-.




문화재청은 용산 미군기지 내 미대사관 예정부지 약 2만 4,000평에 대한 지표조사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2005년 6월 16일, 28일(2일간) 실시하였습니다. 조사결과 소량의 조선시대 토기편 및 백자편, 기와편 및 석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제천행사를 거행하던 '남단' 자리(추정)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2006년 문화재청 확인감사 김재윤 의원(민주당) 서면답변) p 073


"거기에요.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봤더니 있어요. 남단이 있는게 아니라, 주춧돌과 위에 흐트러져 있는게 이 자리다, 하는 사이트는 정확하게 짚을 수 있고, 그 남단의 의미는 굉장히 크고…" (유홍준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 2020년 1월 7일 CBS<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p 073


진심 전문가들이 만든 역사왜곡 중 제일 웃긴게 용산공원 남단 터다. 비전문가인 내가봐도 일본식 비석 기단인데, 무엇을 보고 남단 터라고 했는가 싶은? 아니 왜성이나 일본비석 기단을 봤다면, 이걸 구분못할리가 없는데? 우리나라 방식과는 대놓고봐도 다른데, 대체 어딜 어떻게 보고 그 석재가 남단 터라는 것인지. 진짜 기가막히고 코가막힐 노릇이다. 문화재청장이자, 현 용산공원추진위원장이라는 유홍준 교수나,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다른 전문가들이나 정부나. 어휴. 심지어 그 석재가 일본군 야포병연대가 포 운반을 위해 동원된 말들을 위해 새운 추모비라는 사진까지 있는데? 



백번 양보해서 일본군 말 추모비 사진을 찾지 못해서 모른다고 치더라도 문화재청 정도 되면 왜성 축성방식은 잘 알텐데 말이다. 심지어 왜성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잖아? 일본식 탑 기단은 우리나라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고. 나만해도 이런 일본식 탑 기단을 목포에서도 봤고, 포항에서도 봤는데 허 참. 오백번 양보해서 일본군 추모비 사진이라는 것도 못봤고, 왜성 축성방식이란 걸 몰랐다고 치자. 그럼 남아있는 남단에 대한 기록은 연구를 안했나? 왜 기록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곳을 남단이라 칭하는걸까? 진짜 문화재청 직원들은 일을 안하나....뭐지 정말?



남단 받고 하나 더!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은 대륙 진출을 위한 군용철도를 건설하는데, 그 정거장 위치가 현 신용산역이다. 철도역 주변과 군사기지를 중심으로 일본인 신시가지가 급속도로 건설됐다. 그 철도 동쪽에 건설한 군사기지를 일본군은 용산기지라고 불렀따. 용산공원 역사 설정을 주도한 유홍준은 이렇게 말했다. 

“거기 있는 산을 용산이라고 그랬으니까, 용 용자에 뫼 산자로 해서” (2020년 1월 7일 CBS<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용산이 용산공원에 있따고? 괴담이 아니라 무식이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용산공원 설계를 총책임지는 지식인 입에서 이런 천박하고 무식한 말이 튀어나오다니. 믿을 수 없다.


유홍준이 말한 ‘거기’ 용산공원 부지에는 용산이라는 산도 없었고 따라서 아무도 이곳을 용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옛 용산은 서대문 쪽 안산 줄기에서 한강 쪽으로 뻗어있는 산줄기가 용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지금 원효대로 좌우측 지역, 구체적으로는 숙명여대-효창동-공덕동-용문동-원효로2가 지역이 옛 용산이다. 그래서 조선후기 공식 명칭은 ‘용산방’이었다. 


그렇다면 용산공원 부지는 무엇이었나. ‘둔지방’이었다. 용산방은 ‘용산’을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이었고 둔지방은 이곳에 있는 ‘둔지산’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행정구역이었다. 둥지방에 있는 산 이름은 유홍준이 믿는 것처럼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이다. ‘자연이 단절돼 있다’는 승효상 주장과 달리 엄연하게 지금 용산공원 안에 우뚝 솟아 있는 그 둔지산이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산줄기가 바로 둔지산이다.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이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따라서 ‘다시 잇는 작업’이 필요 없는 둔지산이다. p 086 ~087


더 말해 뭐하겠는가. 문화를 권력으로 쥔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은폐한건지, 아니면 진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의 뇌피셜로 구성한건지. 문제는 이런 문화권력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아주 당연하게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베트민의 호찌민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이런 것을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싶다.(유홍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p70) p169



베트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호찌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7년 11월 11일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 문재인 대통령 축하영상 메시지) p173


호찌민의 애독서가 <목민심서>라는 이야기는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가 TV에서 하도 말을 많이해서, 아마 다들 속고 있는 가짜뉴스 중 하나가 아닐까. 문재인 전대통령까지도 저렇게 말할 정도면, 거의 전 국민이 다 믿고있는 가짜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 황인경, 시인 고은, 다산연구소 이사장까지도 같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서 설은 시간순으로 보면 ‘소설가 황인경(<소설 목민심서>, 1991) - 유홍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993) - 시인 고은(<경향신문> 인터뷰, 1994) -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다산연구소 2004)’ 라고한다. 이들은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서/필독서 주장을 하면서, 정작 호찌민이 어떤 경로로 <목민심서>를 입수했는지에 대한 근거는 대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설가를 통해서 시작된 이야기는, 저명한 전문가를 거쳐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심지어 2009년에 또다른 소설가 안재성은 박헌영을 통해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선물받았다는 살을 붙이면서, 호찌민의 <목민심서> 필독서 설은 근거까지 완벽한 사실이 되고 말았다.


박헌영이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한 1929년 호찌민은 정글 속에 있었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호찌민은 1923년 모스크바로 가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다니며 활동한 뒤 중국을 거쳐 1928년 태국 방콕에서 본격적인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모스크바에 체류한 기간이 겹치지 않는다. 만남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앞의 <박현영 평전(소설가 안재성)>의 주장은 참고할 가치가 없다. p 179



1902년 장지연이 처음으로 <목민심서>를 출간했다. 그 전에는 지방 관청에서 저마다 만든 필사본밖에 없었다. (중략) 정약용이 흘려 쓴 글을 활자로 옮긴 한분본에 분량 또한 48권 16책으로 방대하다. 아무리 한자권 지식인이라도 호찌민이 정글에서 들고다니며 애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박헌영은 <여유당전서> 출간 전인 1929년 국제레닌학교를 졸업했다. 호찌민은 박헌영을 만날 방법이 없었고, 정약용의 존재 자체를 알 방법이 없었다. p 180


소설가에서 시작한 말들은 말그대로 소설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라니. 아, 물론 내용이 워낙 우리에게는 빛나는 이야기니 혹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잖아, 아무리 믿고싶은 이야기라도 사실인지 아닌지 연구정도는 해봐야하는거 아닌가? 근데 느낌적인 느낌상 알면서도 이런 가짜뉴스를 미친듯이 퍼트리고 다니는 것 같기는 하다만...



호찌민이 있던 베트남에서조차도 ‘목민심서 호찌민 애독서’ 설은 명백한 허위, 가짜뉴스!! 라고 이야기 했다.


2006년 1월 9일 <연합뉴스> 베트남 특파원 김선한은 ‘호찌민박물관과 집무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다’고 보도했다. 김선한은 “<목민심서>와 관련된 주장은 와전된 것이 분명하다”는 응웬티띵 관장 말도 함꼐 전했다. 김선한은 “한국에서 호찌민 <목민심서> 애독설이 나올 때마다 베트남 주재원들이 본사로부터 사실 파악 지시가 빗발쳐 생고생을 했다”고 했다. 띵 관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왜곡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우리에게는 그것을 자행하는가.” p 181



현지에서조차 역사왜곡을 하지말라고 하지만, 띠링! 우리나라의 저명한 전문가들은 신경도 안쓰는걸?



“전설도 사람들이 믿으면 사실이 된다.”라고 본인 입으로 말한 아주 유명하고 저명한 전문가의 말은 아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전문가와 국가기관, 유명 연구소등이 나서서 역사왜곡이 담긴 가짜뉴스를 아주 수도없이 온갖 매체에서 떠벌렸고,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짜뉴스를 그저 찬란하고 빛나는 우리 역사라 생각하며 ‘사실’로 받아들였으니까.



정말 역사왜곡에 대해선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넘 똑같아서 실망이고 소름이다. 역사를 배우면서 그 속에서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왜곡된 역사 속에서 대체 뭘 배우라는건지. 그저 우리의 역사를 빛나는 역사로만 기억되게 하려는 건가? 어둡고 슬픈 역사는 숨겨버리고? 뭐,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는 대체로 빛나는 역사의 비중이 엄청 높았지. 아니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야하나? 정작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나라들은 어두운 역사 교육에도 상당부분 할애한다던데. 참으로 비교되는군.



아참참참, 참고하자면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왜곡은 모든 정권을 망라했다. 그러니 혹시나 한 편으로 치우쳐져있는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은 그 의심을 접도록! 그나저나 지금 정권은.... 요즘 핫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도 그렇고, 서울시 총독부 사진이나, 축제에 일왕, 일본순사옷 입고 사진찍기 부스도 그렇고, 대체 왜들그러는건지. 자라나는 아이들이 대체 뭘 보고 배우겠냐구요.



이제 4개월된 우리 뿡뿡이......이런 역사왜곡 속에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려면 어떻게해야하나T_T 한숨이 절로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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