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사 -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후루타 모토오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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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타공인 역덕(이면서 잡덕ㅋ)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집 책장에는 역사책이 수두룩빽빽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수 많은 역사책을 국적별로(?) 나눠보면, 그 비율은 한국사80%, 세계사20%정도이다. 즉 한국사가 압도적이란 이야기. 그나마 있는 20% 세계사 역사책도 더 세세하게 나누면 일본사60%, 그외 세계역사40%이다. 아무래도 역사를 바라보는 내 취향의 반영되다보니, 이런 쏠림현상(?)이 생겨난듯 하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외 세계역사 40%쪽에 각종 서양사(거시/미시사)와 중국사가 있다. 이쯤되면 그래도 왠만한 세계사책은 다 있겠거니 싶지만, 아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동남아시아 관련 역사책은 우리집에 단 한 권도 없다.  하다못해 남아시아에 속하는 인도(인도네시아 아님ㅋ) 관련 책도 있는데, #동남아시아 관련 책은 진짜 1도 없다. 정말 소오름! 나름대로 역사편식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아직도 편식중. 허허허.




동남아시아는 오늘날의 국가로 말하자면 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동티모르·브루나이·필리핀 11개 나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 가운데 동티모르를 제외한 10개국은 아세안 가맹국으로, 아세안은 동남아시아로서의 결속을 국제 정치무대에서 과시하고 있다. (생략) 동남아시아는 자연 지리상으로는 대륙부(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와 도서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동티모르·브루나이·필리핀)로 나뉜다. p 011~012



나에게 동남아시아는 그저 여름휴가 여행지 정도다. 물론 내가 여름휴가로 동남아를 가본적이 있는건 아니지만, 남들이 동남아로 놀러다니는 걸 많이 봤으니까. 심지어 요즘 심심치않게 동남아로 여행가는 방송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아, 아는거 또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 당연히 알게되는 베트남전쟁! 그리고 작년에 발생한 미얀마 군사 쿠테타? 진짜 딱 요정도다.



우리 뿡뿡이는 나처럼 시작부터 역사편식하지않고, 폭 넓은 역사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남아시아 역사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게 바로 8월 역사책 신간인 #동남아시아사. 책을 받고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아주 쪼오금 거부감이 들었는데, 책을 펼치고보니 안심했다. 두꺼운 만큼 글자크기가 좀 컸기에 ㅋㅋㅋ 괜히 긴장했네!



동남아시아사에는 문외한이다보니, 목차부터 아주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큰 목차로는 총 10개로 나뉘고, 각 목차별로 또 소목차가 나뉘어있었다. 약간 논문스타일? 결국 목차보고 다시 긴장해버렸다^_T. 나름 역사에 대해선 일반인보다는 해박한 쪽인데, 동남아시아사. 이야. 심지어 책이 너무나 논문스타일이다보니, 살짝 거부감도 들었지만...................그렇다고 평생 모를수없으니까! 이때아니면 언제 동남아시아사를 공부하겠나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진짜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보다는,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읽었다.



▶동남아시아란?


종교적으로도 다양해서 오늘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민 대다수가 신앙하는 종교를 살펴보면, 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가 남방 상좌부 불교, 베트남이 대승불교, 싱가포르가 대승불교·도교,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가 이슬람교, 필리핀·동티모르의 경우는 가톨릭교가 우세한 형편이다. 동남아시아 주민 대다수는 인종적으로 남방계 몽골로이드에 속하는 사람들이지만, 언어적으로는 좀더 다양한 편으로 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필리핀어 등을 포함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 베트남어·캄보디아어를 포함하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버마어 등의 중국-티베트어족·태국어등의 타이·까다이어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분포하고 있다. p 013~014


동남아시아는 히말라야로 이어지는 산맥이 뻗어있는 대륙부에 큰 강이 흐르고, 풍부한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크고작은 국가들이 생기긴 했으나, 통일국가로 이어가진 못했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는 도서부는 세계 여러나라와 교역을 하며 여러 국가가 번성했지만, 이쪽도 통일국가로 이어가지 못했다. 쉽게말하면, 한반도라는 하나의 땅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같은 여러 국가가 생기긴 했지만, 후에 통일신라나 고려 또는 조선같은 통일국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청동기 문화와 초기국가


BC2000년기에는 현재의 베트남 북부에 풍 응우엔 문화로 불리는 신석기 문화가, BC1500년 무렵에는 금속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BC5세기 무렵에 (중국)운남 지역에서 동고(청동 북)을 받아들여,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 문화인 ‘동 선’문화가 성립되었다. p 017



오늘날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남부에 걸치는 메콩강 하류 유역에 1세기경 성립했고, 7세기 무렵까지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번영했던 푸난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중국의 사서에 수록된 푸난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푸난 사람들은 본래 나체로 살았고, 유엽이라는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생략) 현재의 베트남·캄보디아 국경 지대에 있는 ‘옥 에오’는 푸난의 외항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로마 금화·힌두교 신상·한경·일출 및 트라이던트 은화 등의 출토품은 바다의 실크로드를 활용한 동서 교역과 동남아시아 역내 교역으로 푸난이 번영을 누렸던 정황을 말해준다. p 024~026



2세기 말에는 일남군으로 한나라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던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에서, 중국 자료에서 ‘임읍’으로 불렸던 국가가 자립하게 된다. 임읍은 영내의 산지에서 침향으로 대표되는 향료가 산출되었고, 남중국해와 타이만을 연결하는 교역을 통해 번영했다. p 027


내가 세계사를 보는 관점은, 해당 년도에 따라 우리 역사에선 어떤 나라가 있었는지를 비교하며 보는 것이다. 우리 역사와 비교하지 않으면, 당최 머릿속에 남지를 않다보니. 세계사를 보면서 머릿속에 남기기위해 내가 고심한 방법이다.



동남아시아에 청동기문화가 들어왔을 시기는, 대충 우리 역사에선 고조선이 있었을 시기다.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BC 4세기로 추정되지만, 멸망시기는 비교적 확실하다. 한나라(전한)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멸망했다고 중국 사서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한나라가 당시 베트남 중부 지역에 있던 임읍(일남군)을 지배했던 것이다.



푸난이라는 국가는 중국식 발음이며, 크메르어로 프놈이라고도 불린다. 캄보디아 메콩강 하류 지역에 있었고, 임읍과 더불어 중국의 사서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던 국가다. 1세기에 건국되어 6세기에 멸망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한반도에선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다. 고구려랑 백제가 7세기에 멸망했으니, 푸난도 꽤나 오래지속된 국가인듯 싶다. 다만, 학자들에 의하면 푸난의 경우 일종의 도시국가들의 연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푸난은 연맹국가치고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된셈이다. 놀라울따름. 참고로 푸난과 건국시기가 비슷한 백제나 신라는 연맹국가인 마한과 진한에서 시작되었다.




▶고대국가의 시작


7세기는 동남아시아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통일을 달성하고, 뒤 이은 당나라의 발전에 힘입어 거대한 중국시장이 출현하게 되었고, 동서교역이 활성화 되었다. 이것은 멀라까 해협의 이용을 촉진시켰고, 이 해협을 지남으로써 점으로 이어지던 항시국가가 아니라 해상교역로의 광대한 영역에 패권을 확립했던 스리비자야가 출현했다. 또한 이 시기에 인도에서 새로운 농법이 도입되어서, 캄보디아 평원·동북 태국·짜오프라야강 중유역·버마 평원에서의 국가형성이 진전을 보게 되었다. p 029




7세기에 기존의 육로교역에서 해로교역으로 루트가 바뀌면서 푸난이 쇠퇴하고, ‘스리비자야’가 번성했다.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리비자야’는 (인도네시아)자바섬에 기원을 둔 ‘사이렌드라’에 편입된다. ‘사이렌드라’ 는 지금도 유명한 (대승불교)보로부드르 사원을 건립한 왕국이다. 9세기 중반이 되면 ‘사이렌드라’도 ‘산쟈야’에 흡수된다.




크메르인에 세웠다는 첸라(진랍)는 6세기에 현재의 라오스 참빠삭 지방에서 시작했다. (생략) 681년부터 약 2세기 동안에 걸쳐서 해안부·메콩·델타를 중심으로 한 수첸라, 캄보디아 서북부·동북 태국을 중심으로 한 육첸라로 대립·분열하는 시대가 이어졌다. p 035



에야워디강 유역에는 1세기 부렵부터 10세기에 걸쳐서 쀼라고 불리던 집단의 세력이 번영했다. 쀼는 각 지역에 원형 혹은 타원형의 성곽 도시 유적을 남겼고, 밭농사와 소규모 관개 벼농사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형성하고,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를 수용했다. p  036



쨔오프라야강 유역과 오늘날의 동북 태국에는 6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엽에 걸쳐서 몬족이 ‘타와라와디’라는 국가를 형성했다. 타와라와디도 쀼와 마찬가지로 타원형의 성곽 도시 유적을 남기고 있고, 은화가 출토됨으로써 교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p 037



▶중세국가로 넘어가다


1000년 이상이나 중국의 지배가 이어졌던 것이므로 독립 당시 베트남에 있어 중국의 영향은 여전히 강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아서 10세기 베트남은 중국적인 중앙집권 국가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고 (생략) 그러한 베트남에게 중국적 국가 체제 도입의 길을 택하게끔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중국으로부터의 위협 때문이었다. (생략) 그래서 1009년에 성립한 리 왕조는 큰아들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규정을 세움으로써 1225년까지 존속하는, 베트남 역사에 있어 최초의 장기 왕조가 될 수 있었다. p 047


베트남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건 ‘베트남 전쟁’밖에 없지만, 그 와중에도 아주 살짝이나마 베트남, 그러니까 당시 안남국의 리 왕조에 대해선 알고있다. 왜냐? 베트남 리 왕조가 몰락할 때, 이용상 왕자가 탈출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고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있던, 왕건이 세운 그 고려말이다. 리 왕조의 이용상 왕자는 고려에 귀의해서, ‘화산군’에 봉해졌고 그렇게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대 화산 이씨 종친들이 베트남에가면 왕족대우(?)를 받는다는 사실!



뭐 여튼, 리 왕조는 불교국가였지만, 토착신앙도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공자도 숭배하였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다이비엣(대월)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고, 당나라에서 안남국왕에 책봉되어, 중국/한반도/일본과의 외교에선 안남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국호가 왕조가 바뀌어도 계속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 뿐만 아니라 농업을 진흥하고 해양교역도 번성하여 국가로써의 국제적인 지위도 높았다.



바다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쟈바에서는 사이렌드라가 중국 시장이 폐쇄됨으로 인해서 쇠퇴해버리자, 중부 쟈바의 분지국가인 고 마따람 왕국이 산쟈아 왕가의 통치하에서 다시 부활했다. 10세기 전반의 신독왕은 왕도를 브란따스강 유역의 동부 쟈바로 천도했다. 이 신독 왕으로부터 13세기 끄르따자야왕까지의 시대가 ‘끄다리왕조’라고 불리고 있다. (생략) 11세기에는 중국·유럽에서 말루꾸군도의 특산물인 정향 등 향신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했던 시대였다. 특히 남송이 성립했던 12세기 이후로는 중국인 상인들이 동서 교역에 참여하는 수가 늘어나서, 끄다리와의 직접적인 조공 무역, 민간 교역도 크게 발전했다. p 059~061



멀라까 해협 주변에서는 10세기 이후 중국 쪽 자료에서 언급하는 ‘삼불제’가 빈번히 중국에 조공하고 있었다. (생략) 삼불제의 지리적 범위는 말레이반도 중부 이남, 수마뜨라섬의 북단으로부터 멀라까 해협의 연해지역, 서부쟈바, 그리고 서보르네오 지역 등으로 서아시아·남아시아 및 쟈바와 중국 사이의 교역로를 지배하고 있었다. 송대 중국에서는 동남아시아산의 침향과 서아시아산의 유향 등의 향료가 주요 수입품이었는데, 그 대부분은 삼불제를 경유해서 중국에 수입되었다. p 069


동남아시아의 고대국가가 중세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요인들은 아래와 같다.


1) (서양) 인도양에서 온 무슬림 상인들의 활동


2) (동양) 당나라 쇠퇴 후 송나라의 중국 통일, 중국의 도자기 무역 번성


→동남아시아는 무슬림 상인과 중국상인의 해상교역의 교차로가 되며 점차 발전하게 된다.




▶13~14세기 전환기를 거쳐, 15~17세기 교역의 시대로


동남아시아의 가장 유력한 수출품으로 떠올랐던 것이 후추였다. 후추의 원산지는 남인도였지만, 1405년 무렵에 북 수마뜨라에 묘목을 들여와서 동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이후 본래 동남아시아 원산이었던 정향·육두구에 더하여 이 지역은 후추에서도 중요한 원산지가 되었던 것이다. (생략) 이러한 ‘교역 시대’ 동서 무역은 바닷길이 주류였으며, 그것이 동남아시아에 있어 교역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몽골제국이 14세기 무렵에 이르러 몇 개의 나라로 쪼개지고, 그 여파로 아시아·유럽 사이의 육로를 통한 교통이 곤란해졌던 상황에 더해, 13~14세기에 나침판의 보급이 확대되고 장거리 항해의 확실성이 증가했던 사정도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활성화된 교역 활동은 당시 신대륙·일본 양대 산지에서 공급되는 대량의 은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더욱더 촉진되었다. p 086~087


11세기~13세기, 유럽에서는 이 긴 기간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십자군전쟁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은 동방에 크나큰 관심을 갖게 된다. 13세기에는 칭기즈칸의 몽고(후에 원나라)가 대 제국을 이루면서 유럽땅까지 차지했다. 이로인해 본격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13~14세기 동남아시아 및 세계상황※


 1) 몽골제국의 침략과 이로 인한 태국계 여러 종족의 남하(기존 대승불교, 힌두교 문화에서 남방 상좌봐 불교 및 이슬람 문화로 변모)


 2) 유라시아 대륙에 대제국이 출현함으로써 동서 교역 및 해양 교역이 활성화됨


 3) 14세기 페스트 대유행 및 지구 한랭화(기근이 빈발)



15세기가 되면 일명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유럽 각국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찾아다니는등 동-서양의 해양루트가 활성화되었다. 특히 서양에서는 없어서 못사는 조미료(후추 등)이 동남아에서 나왔기에, 동남아시아와 서양의 해양교류가 본격화된다. 




▶근세국가로 넘어가다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친 시대의 동남아시아사는 ‘교역 시대’의 번영이 종언을 고한 뒤로, 식민지 지배하에 놓이기까지의 틈새 시기로 종래에는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년에 이르러 이 시대를, 근현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여러 요소가 형성되었던 시대, 즉 ‘근세’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정착하는 추세라 하겠다. 이러한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던 사태의 변화는 20세기 말 이후의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경제발전이었다. p 133



꼰바웅 치세에는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랑군이 버마 목재 수출과 인도 면직물 수입등으로 번영했고, 육로를 통한 대중국  무역 루트도 활황을 이루어, 버마 면화 수출과 중국 비단 수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외 경제의 발전에 힘입어 국내 경제 활동의 ‘화폐화’가 진척되었고, 은과 합금이 상거래, 납세 등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꼰바웅 왕조 치세에는 중앙 정권에 의한 지방 통치의 실효화도 진행되어, ‘묘’라는 지방 행정단위가 새로 설치되었고, ‘드지’라는 해당 지역의 지배자가 다시 그 수장에 임명되어, 징세, 징병을 담당토록 했다. p 150



응우옌 왕조는 그때까지의 왕조들과는 국토의 크기가 전혀 다른 위대한 국가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804년에 청나라로부터 ‘월남’(베트남)이라는 국호를 승인받았지만, 한편으로는 1838년부터는 종래의 ‘다이비엣’을 대신하여 ‘다이남’이라는 국호를 자칭하기 시작했다. 응우옌 왕조는 출발부터 다원성을 지녔던 국토의 통합을 위해서라도,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더 자국이 (인도차이나반도의) ‘중화’라는 점을 강하게 자기주장했던 것이다. p 155


근세국가로 명명되는 이 시기는 일종의 ‘낀 시기’여서 크나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요즘들어 재평가되는 시기라고 한다.



※18~19세기 초 동남아시아 및 세계상황※


1) 청나라의 번영과 그에 따른 아시아 내 교류의 발전(중국은 쌀, 설탕 등 식료품 및 은, 주석등의 광물자원, 면화등의 원료를 동남아시아에서 수입)


2) 대규모의 중국 상인들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며, 자리를 잡음(차이나타운 형성)


3)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영국, 인도, 중국의 삼각무역 활성화 (면직물:영국→인도, 아편:인도→중국, 차:중국→영국)




▶ 19세기 식민지배와 2차대전,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독립


이 시기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나보니, 읽는데 무리가 없었다. 해서 따로 내용을 발췌하거나 요약 정리할 필요도 없는걸로!


서양열강이 동남아시아 뿐만아니라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배 한 것이나, 일제의 침략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과 민주화. 이는 한국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가 읽어도 이 부분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거기다 극공감에 빡이 치는 상황(?)까지 온다고나할까. 고로 여기서부터는 공부하는 마음보다는, 가볍게 읽었다.



이래저래 동남아시아는 고대국가, 중세국가를 지나는 동안 강력한 통일국가가 만들어지지 못했고, 결국 전근대 이후에는 동남아시아 전반에 걸쳐 서구열강에 의한 식민지배가 시작되었다. 서구열강이 지나간 후에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이어졌다. 그 이후에는 동남아시아 여러나라가 독립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역시나 조금 어려웠다. 특히나 동남아시아 곳곳에 있었던 각종 왕가, 종교 기타등등에 대한 부분들 말이다. 일단 왕가의 명칭이 익숙하지 않았고, 자주 나온 종교인 불교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불교가 아니었다. 하하하하. 더군다나 동남아시아에대한 지도가 머리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서 그런가, 어느 강부터 어느 산까지 A국가, 그 옆에는 또 B국가 이런게 확 와 닿지않았다(한중일은 눈만감아도 지도가 그려지는데^_T;;). 또 우리나라와는 달리 국가 이름은 그대로 가되, 왕조만 바뀌는 행태라던가(우리로 말하면 왕조의 성씨가 바뀌는?)도 조금 어색했다. 그만큼 내가 동남아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야기인듯하다. 하하하. 그래도... 나름대로 전반적인 세계사 흐름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T_T. 동남아는 예외였던걸로. 흑..



읽으면서 느낀사실은, 이 책은 만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서 형식의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전공자들의 초기 입문서or개론서 또는 동남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역사책 같았다. 거기다 저자가 일본인이다보니, 19세기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자국과 빗대어(또는 비교하여) 서술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자국가 빗대어 서술하는 부분에선, 일본인 특유의 정신승리(?) 부분이 있기도 하는데 뭐, 그런건 귀엽게 넘어갈만하다.



확실한건 동남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매우 도움이 될 책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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