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 - 먼 곳에서 선명해지는 시간의 흔적들
청민 지음, Peter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읽은 여행에세이다. 여행에세이는 언제 읽어도 좋다. 다만 그 감정이 코로나19 전과 지금이 매우 달라졌다. 코로나19 전에는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오! 여기 찜콩. 여기도 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읽었더랬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의 생활방식이 싸그리 바뀌어버리고, 여행도 쉽게 갈수 없게 됨으로써 나에게 여행에세이는, 조금이나마 여행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대체제가 되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이번 책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다만 이 책에선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 뿐만 아니라, 내 가족, 나에게 여행은 무엇이었을까?같은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가 왕왕 나오고, 그 이야기속에서 아주 진하게 가족에 대한 애정이 풍겨나오기 때문이다. 조금은 부러울 정도로.



저자의 가족애는 이 책의 구성에서 나타난다. 보통 글과 사진작가가 다를경우 친구나 동업자(?)인 경우를 자주 보았는데, 이 에세이의 사진작가는 저자의 부친이었다. 정말 에세이를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는 가족과 여행을 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는지 느껴진다. 정말... 책을 읽으면 저자의 가족에 단 한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는데, 이 책만큼은 저자의 가족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가족간의 사랑이 어느정도가 되어야, 좋은 장소를 보면 가족과 함께 가고 싶고, 아버지가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어머니가 주식으로 쌀이 아닌 파스타를 줘도 오히려 이해하며 맛있게 먹고, 남매간에 이렇게 화목할 수 있을까?



나도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더랬다. 대부분이 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여행이 많았지만, 언제나 어딜 가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가 당연하게 운전대를 잡았고, 엄마가 지갑을 챙기고, 나는 여행코스를 짰다. 물론 이 가족여행에는 언제나 동생은 없었다. 



동생, 그러니까 엄마아들이 내 여행계획에 없는게 아주 당연했다. 말이 동생이지, 뭐 나에게는 그저 혈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일단 어려서부터도 그렇게 우애가 좋지 않았고, 둘이 성향차이도 너무컸고, 서로를 이해못했다. 심지어 엄마아들은 내 인생에 수차례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는 아마 내 엄마아빠의 양육방식이 문제였을거다. 엄마아빠 눈에 나는 고작 한살 어린 남동생을 챙겨야하는 장녀였으니까. 그러니까 80-90년대 가정에서는 흔히 보였던, 장녀-남동생 양육방식이었다. 아마 지금 오은영박사님이 보면 솔루션을 받아야 할 가족이었을지도. 



그래서 그런가, 나에겐 ‘동생’이라는 존재가 딱히 없었다. 엄마아빠야, 내 엄마아빠니까 사랑하지만, 글쎄. 저자처럼 저렇게까지 애틋하고 살갑고, 좋은 걸 보면 생각날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여도, 성장과정에서 나도모르게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좋은 걸 보면 생각나고, 보여주고 싶은건, 혈연이 아니지만 나에겐 정말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는 우리 신랑뿐. 아! 몇달 뒤에 태어날 내 새끼까지 포함해서!



아, 뒤늦은 깨달음! 생각해보니 저자와 나는 그저 ‘가족’의 범주가 다를뿐, 그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같은 결이다. 난 결혼 후 신랑와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항상 좋은 걸 같이보고,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서로 사진찍어주는 거 좋아하고,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이렇게 보니 저자의 가족애가 이해된다.




 


 



여행하면서 알게 됐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으려면 돈이 든다는 사실을. 입장료를 지불하고 여행 경비를 내고, 시간과 돈을 쓰면서 말이다. 지금껏 나의 취향을 지켜준 얼굴들이 스쳐 갔다. 어릴 적 고모가 우리에게 사줬던 해리포터 책값, 거기에 함께 읽으면 좋을거라며 넣어준 초등생 필독서들. 그리고 같이 먹으라고 사준 간식들까지. 그때는 어려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비로소 보였다. 돌아보면 전부 지켜진 마음이었던 거다. 당시 고모가 어린 조카들에게 준 책은 그냥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세상에는 마법사가 존재하는 이런 세계도 있어’라고 말하며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끔 해준 선택권이었다. p 024



와, 계속해서 놀란다. 나에게 고모라는 존재는 선물을 줬다가, 자기 자녀 태어났다고 빼앗간 존재일뿐이었는데. 그때 내 동심은 바사삭이었는데. 하하.



여튼!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려면 돈이 든다는 사실은 어렸던 나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내 취향들을 보면, 돈도 오지게 많이 들었더랬다.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책을 사기엔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론 턱없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대여점에서 빌려 읽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심지어 대여료도 역시나 돈이 나가기에, 그 돈을 벌려고 얼마나 우유배달을 했던가^_T(울 엄마님은 나에게 용돈을 주는게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시급을 주었음..)



그렇게 열씸히 돈 모아서 책 빌려읽기! 그러다 머리통이 좀 커지니 내 시급도 올라가서, 받는 돈도 많아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 사들이기! 하필 이렇게 머리통이 커졌을 땐, 만화책에 빠져있을 때라 만화책을 그렇게 사모았다. 그것도 원서로. 나름대로 일본어를 혼자 깨우쳤고, 그러다보니 원서를 읽기 시작하고. 근데 또 원서를 사면 국내판보다 금액이 비싸서, 또 돈이 쭉쭉쭉......T_T.... 거기다 장난감까지 사들이기 시작했으니! 돈을 버는 족족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 써버렸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려면, 그만큼 금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걸 너무 어렸을때 깨달은 불쌍한 나.



근데 또 아이러니한게, 내가 좋아해서 내 돈써서 샀던 것들을, 흥미가 떨어져서 되파니까 세상에 이게 또 돈이 되네? 그 어린나이에 제태크를 시작했고, 그렇게 내 돈 써서 산걸, 다시 되팔아서 돈을 조금 더 벌고, 또 그 돈으로 그때 좋아하는 무언가를 사는 무한 반복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다 커서도 이러고 있다는 것...ㅋㅋㅋㅋ



다만 과거에는 유형의 것들을 좋아해서 되팔면 돈이 되었지만, 지금은 여행같은 무형의 것 들을 더 좋아하게 되버려서....재테크가 잘 안된다. 하...




 


여름밤의 남산,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삐걱거리던 그에게 우리 좀 설렁설렁 살자던 나. 아직 어린데 벌써부터 너무 주먹 꽉 쥐고 살지 말자며, 어린 동생을 챙겨야 하는 맏이말고 그냥 너답게만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임질 수도 없는 말이었는데,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의 끄덕임은 용기였을지도 모르겠다. p 078



몽골로 떠나게 된 데에는 오래된 친구의 채근도 있었지만, 나때문이기도 했다. 초여름이었던 그 무렵, 나는 한 사람과의 권태로운 관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마음이 끝나버린 것과 별개로 지난 기억을 충분히 애도해야 했으니까. 잔잔하게 남은 감정은 치우려고 하면 할 수록 마음에 잔열을 남겼다. 그래서 떠나자는 친구의 말에 기대 도망치듯 몽골로 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p 082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내던져서, 지금껏 마주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시련(?)들과 마주하면서 머리속이 복잡할때가 참 많았다. 그럴 땐 여행이 참 좋은 것 같다. 그것도 오랜 친구와 훌쩍 떠나는 여행은, 가족과 떠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나 역시도 힘들었던 사회초년생시절 어느때였나, 내 오랜 친구와 훌쩍 여행을 떠난적이 있었다. 한번은 당일치기 군산으로, 또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아! 여행은 아니지만 정말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 이 친구를 무작정 끌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창덕궁이었나 ㅋㅋ)으로 향했던 적도 있었다. 답답한 수험생활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때였는데, 왜 하필 도피처로 나는 궁을 선택했나!!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이 외에도 공연보러가자고 이 친구를 끌고가고, 어디 가자고 또 끌고가고. 정말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때마다 여기저기 많이도 끌고다닌 것 같다.



결혼 후에는 내 오랜 친구와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수험생 시절 훌쩍 궁으로 떠났던(?) 그때처럼, 매년 여름 차를 끌고나와서 서해바다를 보러가곤했다. 정확히는 오이도를 지나, 서해바다를 품은 시화나래휴게소를. 요 몇년 간은 코로나때문에, 서로 안전상(?) 비대면으로만 연락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도 가끔 서로 줄거 있으면, 마스크쓰고 문앞에서 주고 쿨하게 헤어진다.



분명 이 친구와 나는 성향이 꽤나 다른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맞는 건..... 전생에 부부였나 ㅋㅋㅋㅋㅋ




 


여행의 끝은 언제나 조용하다. 분명 어제까진 낯선 나라의 골목을 걷고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담요를 둘러 덮고 있다. 승객들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데,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여행의 꼬리가 소란스러운 꿈처럼 사부작사부작 밟힌다. 내일부턴 원래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겠지. p 094



여행의 끝자락에 <ONCE>를 다시 꺼내는 건 반복되는 나의 여행들이 이 영화와 닮은 것 같아서다. 떠나고 싶어 근질근질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시끄러운 이벤트는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현실로 돌아가는 사랑과 닮은 것 같아서.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두고 왔던 삶을 이어갈 내일의 나와 닮았다. p 095


아, 여행의 끝. 여행의 끝은 정말 싫다. 여행의 시작과 여행의 끝은 그 방식이 언제나 같다. 예컨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면 시작과 끝도 비행기, 국내여행이라면 시작과 끝은 자동차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쩜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렇게나 다른지.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내가 있던 현실과는 다른 이세계로 향하는 느낌이랄까? 반면에 여행의 끝은 정반대다. 계속 이세계에 있고싶은데, 목덜미를 잡혀서 어쩔수 엎이 현실로 끌려오는 느낌. 진짜 딱 그런 느낌이다. 내가 몇일간 낯선곳을 걸어다니며 여행을 했던 기억들은 꼭 꿈인 것마냥, 그렇게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여행의 끝. 



하지만 여행의 끝이 안좋은 것만은 아닌것이, 여행의 끌을 지남으로써 나에게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을 꿈꾸게 한다. 팍팍한 현실을 살려면, 언제든 여행이라는 쉴틈이 있어야하니 말이다^_T..




 


여행만 끝나면 여행을 마쳤을 미래의 나에게 엽서를 보낸다. 처음엔 그저 여행을 기념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뭔가 특별하게 기억될 수 있는 걸 모으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을 수집하자는 아이디어가 번뜩였고, 나의 엽서 여행은 시작됐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상점에 들려 엽서와 국제우표를 사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p 148



때로 여행은 물건으로 기억된다. 삶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기억하고 싶다는 핑계로 값을 지불하는 느낌이지만, 물건이 지닌 깊이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니까. 처음에야 여행지에서 데려왔다는 낯선 신기함에 매일 들여다보지만, 삶은 언제나 정신없이 빠르고 여행의 기억은 바쁜 일상에 쉽게 잊힌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잊고 지냈던 여행의 물건이 다시 보인다. 아! 여기 있었구나. 그제야 정신없이 흘러가던 하루를 멈춰 세운다. 이거 거기서 샀었지. 맞아 나 그곳도 갔었지, 한 호흡을 쉬게된달까. p 164


나는 여행을 기념할만한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마그네틱, 팜플릿, 입장권 밖에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마그네틱을 사고, 팜플릿이랑 입장권은 티켓북에 정리하는걸로 내 여행을 기록하곤 했다. 그런데! 엽서라니!!!!!!!!!!! 와, 나는 왜 저자처럼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엽서와 국제우표를 사서, 미래의 나에게 엽서를 보내는 것. 여행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과거의 내가 보낸 여행엽서를 받을


 때의 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여행은 끝났지만, 다시금 여행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들것만 같다. 하, 이런 좋은 방법을 진작에 알았다면 해외여행, 국내여행 가는 족족 미래의 나에게 엽서를 보냈을텐데. 그러고 어느 날 그 엽서를 받으면 괜시리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서 기뻤을거고, 다시없을 여행 기념품을 받은 것 같아서 행복했을텐데T_T 역시 여행 고수들은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이런건 기억해놨다가 잘 써먹어야지!



아... 여행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