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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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틴어수업」의 속편이 나왔다. 「라틴어수업」이 저자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면, 이번에 발간된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신학교를 다녔던 저자가, 종교에 대한 생각을 엮은 책이다. 정확히는 종교를 포함했지만, 그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과거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난 종교를 따지자면 무신론자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믿지않고, 무속에서 말하는 귀신도 믿지 않는다. 뭐, 하지만 관심사가 관심사인지라 소름돋게도 난 국내 무속신앙 책도 읽었고, 전 세계의 신화와 관련된 책도 거진 다 섭렵했다. 물론 너무 잡다하게 읽어서 그런지 머리속에 남는 건 없지만. 즉, 나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믿지않고, 믿을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학문으로써 혹은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함으로써의 종교는 공부하기 좋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 서문에 신학교를 다닌 본인이 깨우친 종교,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종교, 종교를 믿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쓴다고 했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나로써는 약간의 물음표가 떠다니거나, 이 책을 덮을 수도 있었겠지만 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저자의 전작인 「라틴어수업」을 읽어보았고, 물론 저 한권뿐이지만 저자가 어떤식으로 글을 쓰는지를 아주 대충은 느낄 수 있었고, 적어도 내가 혐오하는 방식의 종교를 옹호하는 글은 없을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추측은 맞았다. 이 책은 전작처럼 인문학책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 모습을 이해하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할지 이정표를 제시해주니 말이다.


최근 우연히 <나의 아저씨>라는 TV 드라마를 알게 됐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드라마 속 40대 주인공과 그 친구들을 보며, 자기 주위에 ‘저런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드라마를 다 보지는 않아서 내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삶에서 보고 배울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요. p 026



나보다 더 성숙하고 현명하며 지혜로운 누군가를, 이 혼란한 삶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생각의 어른’을 바란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 사회가 언제나 그런 생각의 어른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도 본인 스스로가 그와 같은 어른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인간의 성장에 비유한다면, 사회는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가는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p 028


아, 슬프게도 나 역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 주위에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뿐만아니라, 나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하던 그들 역시 진정한 ‘어른’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 주변에는 진정한 ‘어른’이 없다. 물론 나 포함해서 말이다.



그저 미성년이 아닌 나이이며,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나이, 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있을 뿐, 딱 거기까지다. 그러니까 다들 몸만 크고 나이만 먹었을 뿐, 생각의 성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근데 이게 내 세대만 그러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회사 동료들을 보자. 내 또래도 있으나, 나보다 한참 윗 세대, 심지어 정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세대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진정한 ‘어른’은 없다. 다들 남탓하기 바쁘고, 남의 공은 자기 껏으로 가로채기 바쁜 사람들 뿐이다. 그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라고,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더 충격적이게도 그들 중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은 없다. 서로 비방하고 헐뜯기 바쁘고, 국민을 위한다는 쇼맨십만 보이니 말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더더욱 진정한 ‘어른’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나 역시도 왜 내 주변엔 ‘어른’이 없는 건지 슬퍼했으니 말이다.



헌데, 저자가 이런 말을 했다. ​


“그 누구도 본인 스스로가 그와 같은 어른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완전 정곡. 나는 진짜 ‘어른’이 곁에 있기를 바랐지만, 내 스스로 그런 어른이 될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내 뒷 세대들도 이런 나를 보며, 진정한 어른이 없다는 사실에 한탄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더더욱 세게 와닿았다. 어차피 내 윗세대에게 진정한 ‘어른’을 바라는건,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에게는 무리한 일이며,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 스스로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 내 뒷 세대들만이라도 지금 내가 겪는 이 일들을 겪지 않게끔 하는 것.





어떤 시대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어느 시대라고 특별히 거룩하거나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다른 문제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는 지나간 역사나 인류 문명의 자산에 쌓인 데이터를 통해 통찰에 이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역사는 똑같지는 않아도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가장 좋은 예가 되어주지요. 그것이 오늘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 겁니다. p 100



내가 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과거보다 더 나은 오늘, 내일로 향하기 위해. 단지 그 하나뿐이다. 그렇다고 역사에 기록된 모든 시대가 전부 잘났느냐? 그건 아니다. 일단 지금인 민주공화정시대와는 달리 과거에는 왕조시대였다. 철저한 신분사회였고, 신분간의 계층이동은 불가했다. 뭐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는 신분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할말 없지만, 적어도 왕조시대였던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살기 좋아진게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수 많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들은 대게 반복되었다. 분명 시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거의 비슷했다. 전쟁의 결과는 한반도에 살고 있던 무고한 백성들의 피해. 귀하신 양반네들은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그놈의 양반운운하며, 어떻게든 부와 권력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픈 역사가 반복대는 와중에 무언가를 깨우쳤던 한 양반, 류성룡. 그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징비록’을 집필했다. 대부분의 아픈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권력층들의 부패와 무능, 외교에 대한 무지였으니, 앞으로의 역사에서는 이런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징비’하라는 의미로 책을 집필한것이다. 하지만 이런 ‘징비록’ 조차도 부패와 무능에 찌든 권력층에게는 하등 소용이 없었다. 이후로도 아픈역사는 반복되었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민주공화정 시대인 지금은 어떠한가? 이 땅에서 한국전쟁 이후로 서로의 목숨을 죽고죽이는 ‘전쟁’은 사라졌으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외교, 정치, 사회, 경제 아주 전반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 피해는 역시나 국민들에게 가중된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고 있기에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한다. 왕조시대에는 부패와 무능에 찌든 권력층을 끌어내릴 수 없었으나, 민주공화정 시대는 다르다. 적어도 국민들이 깨어있다면, 권력층을 끌어내릴 수 있고,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전 세계에 알릴 수도 있다. 뭐, 그렇다고 부패한 권력층이 스펙타클하게 바뀐다는 건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비록 오랜시간이 걸릴지언정 변할거라는 희망이 있다.



우선 종교의 자유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본권으로 여기에서 헌법상의 다른 기본권이 파생합니다. 세속주의 헌법을 채택한 우리나라 헌법 제20조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사실 종교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신앙의 자유’와 ‘신앙실현의 자유’, 둘로 나뉩니다.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로서 신앙을 선택하거나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이에 더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합니다. 반면 신앙실현의 자유는 ‘상대적인 자유’로서 종교 의식, 종교 선전, 종교 교육, 종교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말합니다. 다만 종교의 상대적인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사회 공동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조화로운 범위 안에서만 인정됩니다. p 131



우리나라는 분명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해서 누구는 불교를 믿고, 누구는 천주교를 믿고, 누구는 개신교를 믿고, 누구는 원불교를 믿는다. 또 누군가는 나처럼 종교를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가 믿는 게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지탄해서는 안되며, 서로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유독 특정 종교에서, 그 특정 종교를 믿는 아주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길이 없다. 심지어 그 종교를 앞에서 정치까지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 종교가 과거에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때, 당시의 선교사들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 종교가 믿는 신 역시 대한민국 땅에서 자신을 믿는 일부 신자들이,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우리나라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국가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으며, 누구도 종교 때문에 차별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상식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또한 내가 가진 종교적 신념이 존중받으려면 상대의 종교적 신념도 존중하는 것이 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라는 것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생략…)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혹은 종교적 가르침을 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행동이 신에게 기쁨을 주는 종교적 실천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자 오만입니다. 성경에서 예수가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라고 말했던 의미를 그리스도교뿐만아니라 모든 종교 공동체가 모른 척 하지 않아야 합니다. p 136



난 종교, 신, 귀신 그 어느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교 사찰 답사를 좋아한다. 개화 당시에 한반도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지역 곳곳에서 최초로 세워진 성당 답사를 좋아한다. 제주에 남아있는 우리의 무속신앙 흔적을 찾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외에 한국 땅에 있는 개신교의 흔적을 찾는 것은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마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개신교의 민폐와 부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세계사에서 배웠던 개신교는 종교개혁이래 구교(천주교)에 반발하며, 파생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고 배웠다. 분명 역사속에서 배운 개신교는 학문으로써 배움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개신교는, 글쎄. 내가 역사에서 배운 프로테스탄트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개신교 신앙에 심취한 일부 신자들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배척하며 비난한다. 뿐만인가? 그저 신을 찾는 독실한 신자들의 주머니에서 정말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가져가는 행위도 있다. 오죽하면 부자교회, 세습교회라는 말까지 나올까. 거기다 부패한 정치권력과 결탁까지. 이런 현상 역시 내가 역사속에서 배운 프로테스탄트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난 이래뵈도 초등학교 땐 교회를 몇년간 다녀봤고(친구따라), 중학교때는 성당을 다녀봤고(친구따라), 고등학교는 심지어 천주교학교인 미션스쿨을 다녔다. 뭐, 그와 별개로 어렸을 때부터 사찰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사찰에서 모셨다(친가 불교). 그러니까 이유야 어찌했든 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종교는 나름대로 겪어본 셈이다. 뭐 이 과정에서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은? 



종교를 믿고, 구원을 청하느니, 그럴 힘으로 나 자신을 믿고, 내가 번 돈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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