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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 - 끝나지 않은 마음 성장기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작년에 읽었던 에세이가 있었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점점 물건을 줄이다보니, 어느새 미니멀리스트가 된 사람의 이야기. 의도치않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고보니, 점점 환경문제까지 생각하게 된 이야기. 심지어 그 책의 일러스트도 저자 본인이 그렸기에, 더더욱 와 닿았던 이야기. 그 책은 거실에 있는 내 책장에 꽂혀서, 매일매일 내 눈에 밟혔고, 덕분에 내 소비습관도 점차 줄어들게 했더랬다. 그렇게 의도치않게 내 행동을 개선해준 책의 저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이번 신간은 지금을 사는 2030, 바로 나를 대변하는 이야기였다. 앞선 세대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자라왔지만, 정작 성인이 되고 나니 끝없이 펼쳐진 포기와 좌절, 실패에 둘러쌓인 2030. 하지만 이들을 위로해주고, 이끌어주어야할 어른들은 사실상 전무한 지금.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찾은 방법 중 하나가,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게 아니라는 것. 알고보니 내 친구도 힘들고, 내 친구의 친구도 힘들고, 심지어 무언가로 인해 성공한 누군가도 나와같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위안이 되어주기 시작했다.
이 책 『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는 바로 우리끼리의 위안이고, 위로고, 힐링이다.
꿈을 포기하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이 꿈을 내려둘 좋은 기회 같았다. 이루기 전에 그만두는 편이 내게는 더 좋을지도 모르니까. 포기를 기회라 여기며 긴 시간 함께했던 꿈을 정리했다. 대신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꿈 때문에 내 근처에 얼씸거리지도 못한 다른 가능성을 살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게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다짐이었다. p 023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두고, 나는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꺼냈다. 처음엔 그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다. 나의 폭이 협소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짧은 순간에 번뜩이듯 낯설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배운 적 없고, 평소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일이 자연스레 떠오를 리 만무했다. 어쩌면 나도 은연중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꿈을 편히 내려두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니 다행이다. 좋아하는 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까. p 025
요즘은 ‘꿈’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내가 할 수 있는일을 찾는게 우선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꿈을 꾸지 않는 청년들도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꿈’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만해도 이제는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할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분명 교복을 입었을 땐,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새내기때만에도 꿈에 부풀었던 것 같은데,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모든건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당장 내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를 찾아야했고, 그렇게 ‘꿈’이라는 것은 사라졌다. 그리고 번듯한 회사에 취업했다.
나름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고보니, 별안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던 시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연차가 쌓이고, 내 자리가 확고해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시작했나보다. 뭐,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었을때, 무엇을 하고 살아야하나? 라는 그런 노후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한몫하긴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꾸었던 꿈이 무엇인지는 당최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다보니 당연히 ‘문자’를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게되고, 일본어를 꽤 잘하는 편이고, 역사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등등등. 이렇게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나열하고 보니, 문득 어린시절 내 꿈들도 떠올랐다. 책방 주인도 되고 싶었고, 고고학자도 되고싶었고, 역사학자도 되고 싶었고, 여행작가도 되고 싶었다. 잊어버렸던 꿈들을 찾아내어, 지금 내 위치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내 ‘노후’까지도 생각해서 말이다. 저 꿈들의 조합에서 생각해낸 것이 국가자격증인 ‘관광통역안내사’ 였다. 그래서 바로 관통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선 공인된 외국어시험 점수와, 필기시험, 실기시험(외국어면접)이 있었다. 공인된 외국어점수야 아주 가볍게 패스할 수 있으니, 이건 껌이었고. 필기과목을 확인해보았다. 국사, 관광자원해설, 관광법규, 관광학개론 총 네가지 과목이었다.
국사랑 관광자원해설은 역사와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역시나 껌이었다. 남은건 관광법규와 관광학개론인데, 내가 또 (무늬만)행정학 전공자였으니, 법이나 개론따위야 달달 외우면 되겠지 생각했다. 워낙 ‘문자’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필기시험공부는 낙승이라 생각했다. 실기는 뭐, 필기 붙고나서 생각하면 될일이고. 그래서 출,퇴근전 필기시험공부를 두달간 빡세게 했다. 그리고 진짜로 필기를 덜컥 붙었다. 이후 남은건 외국어 면접인 실기시험. 그리고 시험은 보기좋게 망한.....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합격!
현실문제에 가로막혀 포기했던 꿈들을 재조합해서 도전한 자격증시험을 보기좋게 합격하고 보니, 일단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걸 해야하는건가 싶었다. 마음같아선 자격증을 받자마자 회사 때려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여기서 다시 현실문제로 돌아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래도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대기업 월급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자격증은 다시 서랍속으로 고이 들어갔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자격증이 쓸 날이 올거라는 생각을 하게되니, 회사생활이 맘 편하진건 비밀아닌 비밀이랄까?
사람은 돈 앞에서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상 제작비용을듣는 순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는거지? 큰 기업은 통이 커도 너무 크다면서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셨다. 두둑해진 통장은상상하기만해도 짜릿했다. 그러나 곧 내가 제작해야 할 영상의 분량을 보고 그 금액을 이해할 수 있었다. p 075
결론이 나왔다. 내가 하면 안되는 일이다. 아무리 큰돈이 욕심나도 이건 아니었다. 정해진 일정까지 납품하지 못해 계약불이행으로 법정에 선 내 모습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이 불행한 상상이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p 076
하, 돈 앞에서 약해지는건 만고진리 불변의 법칙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때려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모름지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나 가변성이 있고, 지금 내가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큼 벌 수 있을지 알수 없는 모험이다. 나 뿐만 아니다. 이는 회사를 때려치고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아주 무섭디 무서운 망령과도 같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성공한 사례가 많기라도 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아 도전이라도 해볼텐데, 현실의 성공사례는 아주 극소수다. 대부분이 실패의 연속일뿐. 그래서 내가 계속 이 회사에 묶여서 1n년째 노예아닌 노예생활중인 것이다.
과거 부모님 밑에서 살때는, 이 노예생활이 그렇게나 지겹고 싫었는데 말이다. 내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 노예생활이 얼마나 다행인지. 휴. 노예생활 덕분에, 매달 정기적으로 내 통장에 찍히는 월급덕분에 나는 내 집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을 수 있고, 각종 공과금을 낼 수 있고, 내 가족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
뭐, 노예생활이면 어떠하리. 내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토대만 되어준다면, 앞으로 몇년은 더 노예생활을 할 수 이..ㅆ.....읍읍^_T...
나는 자주 불안하다. 편안한 와중에도 한 구석에는 불안이 자리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까. p 139
불안은 대체로 나쁜 것으로 치부되어 하대당한다. 그래서 나도 불안을 싫어했다. 불안이 엄습할 때면 왜 자꾸 쫓아오냐고 밀어냈다. 하지만 불안이없었다면 얻을 수 없던 것들이 내게는 너무 소중했으므로 불안을 끌어안기로 했다. p 140
살아가다보면 뭔지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올때가 있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회사생활 중 뭔가 께름칙하거나, 왠지 뒷맛이 구린 그런 일들은 퇴근후에도 계속 날 따라다니곤 한다. 그런 날에는 꼭 악몽까지 꾼다.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유독 심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다보니 일이 설었고, 심지어 선임자라는 사람은 내가 입사전에 이미 퇴사한 뒤였기에, 진짜 모든 일을 내 스스로 알아서 배워야만했다. 덕분에 입사 1~2년간은 불안감이 없던 날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 불안감 덕분에 난 생각보다 유능한(?) 직원이 되고야 말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완벽주의를 지향했던 사람이었음을.
집에만 있으면 ‘될대로 되라~’라는 식의 마인드가 날 지배했는데, 이상하게 회사에만 가면 모든지 ‘완벽’해야하는 이상한 마인드. 그 덕분에 어느새부터인가 난 회사에서 해결사가 되어있었다. 하, 회사에선 눈칫껏 못해야하는데, 사회초년생인 시절의 나는 그 사실을 1도 몰랐다. 덕분에 1n년간 내 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건 안 비밀^_T.....
적당안 안정감과 불안감이 나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균형을 맞추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잘해내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이 불안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 불안에 응답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내 옆을 지키고 있는 불안 덕분에 부지런이 움직이고 있다. p 141
뭐, 요점은 그거다. 불안감 덕분에 내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 과한 불안감은 내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지만, 적당안 불안감은 나를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 하루 일과에 지장이 줄 정도의 불안감이라면 떨쳐버리는게 맞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의 동행자로써 함께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