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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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음식과 관련한 책들이 꽤 있다. 음식 책 하면 단연 떠오르는 레시피 북도 있고,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도 있고. 한마디로 ‘음식’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서 세분화된 여러 장르의 책들이 있다. 그 여러장르 중에서도 없는 장르가 바로 ‘철학’인데, 이 책으로 하여금 음식에 대한 철학 책까지 내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음, 맞다. 이 책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음식의 사유와 철학’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과 철학’이라고 하니, 이 책이 뭔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전혀 그렇지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거운 철학이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그런 생각이 담겨있는 것 뿐이다. 예컨데 이 음식은 어떻게 내 밥상 위에 올라왔을까?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라고나 할까. 



일상에서 변화를 실천하고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바로 부엌이다.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 거듭되는가. 볼품없는 감자 한 알이 감자퓌레가 되고, 뇨키가 되고, 감자수프, 포테이토 수플레로 변신하는가 하면, 밀알은 빵과 파스타가 되고, 크로와상과 피자가 되며, 돼지고기는 베이컨과 돼지고기 구이, 테부어스트가 된다. 우리 아이는 특히 동물이 살코기가 되어 접시에 오르는 변화에 엄청나게 몰두했었다. 


“이건 전에 뭐였어?”


아마도 우리가 보다 더 자주 물었어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다. 너무도 많은 고통이 그 변화 과정에 숨어있으니까. p 044



“이건 전에 뭐였어?”


밥상위에 올라온 음식을 아무생각없이 먹어재끼던 내 3n년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아이의 질문이다.



내가 먹는 육고기의 시작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던 소, 돼지, 닭같은 동물들이다. 태초에 이 동물들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것은 아닐진데, 인간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어느순간부터 인간에게 가축화되어,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이 동물들을 인간이 먹으려면, 동물들이 죽어야 한다. 칼로 목을 치든, 약으로 죽이든, 죽이는 방법은 다양할거니 패스하고. 문제는 이 동물들이 죽어가며 겪는 그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해보았을까 하는 점이다.



난 인간들에게 먹히기 위한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단연코 생각해본적이 없다. 심지어 어렸을 때 시골 한 읍내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이 한 기계에 들어가 순식간에 털이 다 뽑히고, 죽어서 나온 것까지 보았음에도 말이다. 그 모든 일을 당하는 닭에겐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것이며, 엄청 잔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그 상황을 개의치않게 보았다. 그저 ‘저 닭은 누군가가 먹기 위한 치킨이되겠구나!’ 싶었을뿐.



적어도 내가 요리를 하는 재료들이, 내 밥상위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그냥 쉽게 생겨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내 밥상에 올리온 모든 음식들이 내 피가 되고 살이 됨에 감사하며 먹어야지.



우리 모두에게 뇌 요리는 색다르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 어렵다. 정말로 네 명의 아이를 위해 송아지의 뇌가 네 개나 있었나고? (……) 우리가 송아지의 뇌를 앞에 두고 역겨워했다면, 송아지 뇌 요리의 광팬들은 스파게티를 보면서 역겨워하지 않았을까? p 059



나라마다 소비하는 음식들 중에서 유독(!!!) 살고 있는 문화나 종교에 따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음식들이 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중국에서 먹는 박쥐나, 동물의 뇌 뭐 이런 것들. 반대로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을 보면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모든 걸 문화의 차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만, 그래도 역겨운건 어쩔 수 없지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왜 이런걸 먹어? 역겨워! 이런건 먹으면 안돼!” 라고 말하면, 그건 오지랖중에서도 대형 오지랖이랄까. 그냥 ‘아, 저 나라는 저런것도 먹는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일이다. 그저 서로 취향존중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이해안되는 부분중 하나가 ‘식용 개고기’에 대한 논쟁이다. 개를 아낀다는 사람들은 식용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며, 좁은 사육장에 있는 개가 불쌍하다며 반대한다. 근데 그들이 반대하는 사유가 오롯이 ‘개’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 참 그렇다. 닭이나 돼지들도 대부분 좁고 더러운 사육장에서 살며, 때에 맞춰 도축되고,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데 왜 이에대해선 반대하지 않는걸까? 개, 돼지, 닭 모두 다 같은 동물인데, 개는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먹으면 안되고, 상대적으로 식용가축에 속하는 소, 돼지, 닭은 어떤 환경에서 키우든 먹으면 그만이라는 걸까? 참 이중적인 마인드다. 



다 바꾸지 못할거면, 그냥 서로 취향존중하는게 어떠한지-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우유는 지구촌 전체에 걸친 문제이다. 유럽은 지나치게 많은 우유를 생산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소규모 낙농 농가는 대규모 낙농업자 때문에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는 터무니없이 많은 우유를 생산하려고 젖소의 건강을 해친다. 더는 소를 목초지로 내보내지 않는다. 우리의 전원도 덩달아 황량해지고 있다. 우리가 생산한 우유를 분유로 만들어 수출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에서는 낙농법이 파탄 일로를 걷고 있다. p 077



초콜릿이 주는 위로 덕분에 우리는 때때로 실패와 좌절, 근심을 잊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삶의 모든 좌절과 고통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초콜릿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은 곤란할테지만. 그리고 아동을 노동에 투입하거나, 거대한 코코넛 농장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등 정치적인 이유에서 피해야 하는 특정 제품도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이젠 아무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하다못해 초콜릿 하나 먹는 것도 말이다. p 089



나는 독일에 있는 모든 닭이 한목소리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걸 듣는다. 닭의 삶은 소름끼치도록 끔찍해졌다. 우리가 닭의 생육 환경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유기농 닭’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것도 없다. 왜 우리는 몇십 년이 흐르도록 칸칸이 쌓아 올린 닭장과 병아리 분쇄기를 두고만 보고 있을까? 뭐가 잘못된걸까? 제정신이긴 한 걸까? p 104



독일로 돌아온 나는 내 손에 들린 아보카도를 바라본다. 녹색의 황금. 아보카도에 얽힌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린다. (……) 아보카도 토스트, 과카몰레에 대한 나의 열정, 아보카도 전쟁, 물 부족, 누구도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보카도에 ‘혐오 식품’이라는 뜻으로 ‘Hass’라는 작은 스티커를 붙이는 건 어떨까? p 196



환경 다큐도 꽤 즐겨보는 나로써, 이런 부분들은 꽤 마음이 아프다. 



과카몰레를 즐겨먹던 나인지라, 마트가면 아보카도 한 두개씩 꼭 집어왔었는데, 이 아보카도가 물 부족에 엄청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섣불리 아보카도를 사먹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더 들어가자면, 아보카도는 물 사용량도 많지만 ‘탄소발자국’도 큰 식품중 하나다. 



‘탄소발자국’이란, 개인이나 국가 또는 아보카도 같은 이런 과일같은 모든 것들이 직, 간접적으로 발생기키는 이산화탄소같은 온실기체의 총량이다. 한마디로 탄소발자국이 클 수록 온실기체 발생량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지구의 기후변화에 엄청나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보카도는 물 사용량도 어마무시하지만, 탄소발자국도 엄청시리 커서 지구를 점점 망가트리는 대표 과일중 하나라고나 할까. 뭐, 아보카도가 이런 결과를 원하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일뿐. 아보카도를 사례로 들긴했지만, 대게 먼 외국에서 날라오는 열대과일류는 탄소발자국이 큰 것들이라 할 수 있다(열대과일 농장을 만들기 위한 산림 파괴, 저임금 노동착취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즉, 우리가 열대과일을 즐겨먹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뭐 그렇다고 먹지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고 먹는 것보단 알고 먹는게 낫다고 생각하는지라. 뭐, 그렇다.



우리에게는 동물의 예술 작업에 대한 심미안이 전혀 없다. 그런 이유로 복어는 알아서 미리 대비했을 것이다. 복어는 독성이 매우 강하다. 일본에선 매년 복어 독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식당에선 복어 살로 만든 요리, 특히 복어 간 요리가 별미로 손꼽힌다. (……) 복어는 비교적 자기 자신을 잘 보소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을 셈에 넣지 못했다. 그사이 품종 개량이 돼서 독성이 없는 복어가 나온 것이다. p 141



복어 독! 복어요리를 꽤나 좋아는 나인지라, 신랑이랑도 이런 동식물의 심미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예컨데 복어는 분명 살아남기 위해 체내에 독을 만들었을거고, 매운 고추도 살아남기 위해 캡사이신을 만들어냈을거다.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식물들의 지혜는 인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복어에 독이 있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그 독을 제거하고 복어를 먹고, 고추가 아무리 매워도 인간은 땀을 뻘뻘흘리며 먹는 등 인간은 음식앞에선 목숨조차 내걸 정도로 진심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음식을 먹으면서 이토록 식재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내 생각의 폭이 매우 넒어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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