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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휴가 - 교황과 달라이라마의 5일간의 비밀 여행
롤런드 메룰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후의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아주 독특한 소설을 읽었다. 시작은 가톨릭교도라면 누구든 우러러보는 교황이 모두가 모르게 5일간(!!) 비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자신의 사촌이자 수석보좌관인 파올로에게 제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비밀여행의 동행자는 불교도라면 누구든 성스럽게 생각하는 달라이라마, 교황에게 여행을 제안 받은 파올로, 그리고 파올로와 이혼한 전처 로자. 이렇게 4명이다.
일단 교황이 아무도 모르게, 쥐도새도 모르게, 바틴칸 궁을 떠나 5일간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부터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그 동행자가 불교도의 수장인 달라이라마라니? 가톨릭과 불교계의 수장이 같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아이러니한테, 극비에 진행한다는게 과연 가능할까. 이 비밀여행을 진행시켜야할 교황의 사촌이자 수석보좌관 파올로는, 가뜩이나 추기경출신이 아닌 상태에서 수석보좌관이 된 케이스라, 바티칸 내에서도 미움을 잔뜩 받고 있는데 말이다.
따지고 들자면 장애물은 끝도 없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꿈은, 행복한 결혼생활이나 성공적인 육아나 영원한 구원과 같은 야심만만한 발상에는 비이성적인 믿음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체 모를 낙관주의에 취해 모든 게 잘 되길 바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p 035
현실을 우선시 하는 파올로 입장에선 교황과 달라이라마의 비밀여행은 매우 리스크가 큰, 어쩌면 본인의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는 일인데, 그는 결국 이 여행에 앞장선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천국이니까!
이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말 그대로 ‘비밀여행’. 그 누구도 교황을 알아봐선 안되고, 달라이라마도 알아봐선 안되며, 교황과 달라이라마를 납치했다고 대서특필 될 파올로를 알아봐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파올로는 전처 로자에게 SOS. 로자는 미용업계에선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실력가였으니까. 그렇게 교황의 비밀여행 멤버는 교황, 달라이라마, 파올로, 로자 총 4명으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이, 교황과 달라이라마, 파올로가 분장한 모습이다. 속세를 떠나 성스러운 인물로 대표되는 카톨릭계의 수장인 교황은 돈 많고 부유한 사업가로 변장했다. 역시나 속세를 떠나, 해탈의 경지에 있는 불교계의 수장인 달라이라마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록스타로 변장했다. 교황의 수석보좌관이자 이탈리아 토박이인 파올로는 무려 지중해를 건너온 보트피플,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와 혐오를 받는 난민으로 변장했다.
속세를 떠나서 어딜가나 추앙받던 교황과 달라이라마는 자본의 극치에 있는 사람이 되었고, 누가봐도 지적인 이탈리아인 파올로는 무시와 혐오가 일상인 난민이 되었다. 이들의 변장에서부터 교황이 주도한 이 여행이, 정말 쉬기위한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두 분 다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가 있다고 믿으시는거죠? 어린아이들이 죽고, 사람들이 암과 전쟁과 전염병으로 고생해도 조물주가 저 위에서 세상을 관장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됐건 부처님이 됐건 누가 됐건.” p 083 (로자)
거기다 동행인인 로자는 독자인 나처럼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교황과 달라이라마를 앞에두고 로자는 하고 싶은말을 가감없이 그대로 내뱉는다.
달라이라마는 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렌즈로 덮여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향한 애정과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뭐가 더 중요하겠어요? 정신없이 돈을 많이 벌고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 이번 생애에서 깨달음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것, 둘 중에서 말이에요.” p 094
“우리는 남들을 보고 소설을 써요. 저 여자는 이래, 저 남자는 저래, 봐, 저 여자는 늘 이렇잖아, 저 남자는 늘 저렇잖아. 이런 식으로 혼자 소설을 쓰기 때문에 현재 그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하죠. 화가 나거나 할 때는 자존심이 고개를 드는지 살펴요. 알았지요?” p 110~112
그런 로자의 질문에 달라이라마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불편한 기색없이 대답을 한다. 이 대답을 들은, 나와같은 독자를 대변하는 로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적어도 나는 조금이나마 생각이란걸 하게되었다. 분명 나도 돈을 많이 벌고 소유하는 것에 방점을 둔 사람이다. 풀소유를 하면 행복할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그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 정말 풀소유를 하면 행복한건가?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요즘에 더 행복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자살율이 전 세계 1위를 찍을까. 왜 하루하루 중대사건사고가 일어날까. 왜 이렇게 분노에 찬 사람들이 늘어나는걸까.
우리에게는 스승이 주어졌다. 나와 교황과 10억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달라이라마와 수많은 추종자들에게는 부처가. 그밖에도 소크라테스, 모세, 마호메트, 아인슈타인. 이런 스승들이 한 방향을 가리켰지만 우리는 그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호흡이나 땅이 쩍 갈라지는 것이나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전자로 이루어진 100만개의 소용돌이치는 우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현재 종이장처럼 얇은 얼음 위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호수를 건너는 중이고 언젠가는 그 속으로 빠져서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 이해한다고, 세상을 어느 정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p 126
역사 이래 수많은 스승들이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류애를 말하고, 또 말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는 그저 ‘소유’를 쫓으며 살아간다. 아니, 말이 살아가는거지 실상은 하루하루 죽어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그 목적을 ‘소유’에 둔다.
수많은 스승들의 바람과는 달리 소유가 삶의 미덕이 되면서, 소유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죄의식이 옅어지고, 소유를 위해 악착같이 사는 사람들은 소유를 위해서 죄의식이 옅어졌다. 그렇게 오롯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들로 머리속을 채운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나는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고, 마리아를 믿는다고. 대체 이 모순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걸까. 차라리 나는 돈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솔직하고 순수해보일지경이다.
하지만 고문과 살해를 당한 성인들은 어떤가? 능지처참과 화형식을 당하고 화살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힌 성인들은 어떤가? 예수님은 어떤가? 그건 어떤 업보였을까? 요제프 스탈긴 같은 사람은 어째서 별다른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했을까? 티베트의 수많은 승려들이 중국인 이교도들에게 고문을 당한 이유는 뭘까? 아이들이 암으로 고통 받거나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천국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얼룩진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는 뭘까? p 162
다시 책 속으로 돌아오면, 교황과 달라이라마, 로자와 여행을 하던 파올로의 관념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올로는 가톨릭을 가정에서 태어나, 계속 가톨릭을 믿는게 당연한 삶이었다. 심지어 사촌이 교황이 되었고, 그 사촌을 따라 본인은 교황의 수석 보좌관이 되었다. 타인이 보면 누가봐도 성공한 가톨릭교도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본인이 믿어 의심치 않던 종교의 모순을 조금씩 깨닫고, 그 속에서 ‘왜?’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시기, 질투어린 시선이나, 교황의 측근이라는 부러움을 샀던 그가, 난민에게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혐오를 받기 시작했다.
이 여행을 시작한건 분명 교황이지만, 이 여행에서 제일 큰 깨달음을 얻은 건 파올로,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우리 모두일것이다.
“내 생각에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네. 그들은 위선을 기가 막히게 간파하지. 심지어 교회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가난한 계층에 대해 계속 어쩌고저쩌고 떠들면서 금색 제의를 입고, 금으로 만든 성배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난방비로 수백만 유로가 들며 전 세계 대다수 인구가 구경조차 한 적 없을만큼 으리으리한 대성당에서 의식을 거행하잖나.” p 198
물론 이 여행을 시작한 교황, 달라이라마도 파올로와는 다른 그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여행은 교황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 아니다. 달라이라마도 이유없이 그 여행에 동참한게 아니다. 알고보니 각각 다른 이유가 있었고, 또 그 이유가 서로 일치했다. 달랐으나, 같았고, 같았으나 다른 이유. 다만 이 책을 읽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그 내용은 리뷰에서 전부 배제했다. 소설은.... 스포일러만큼 무서운 적이 없으니까!
확실한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가 생각났다. 아마존 에디터가 왜 최고의 책이라 극찬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저 바라는게 있다면, 이 책이 영화화 되는 것!
교황과 달라이라마, 파올로가 바티칸을 몰래 탈출하는 장면이 영상화 된다면 긴박한 추리극이 펼쳐진것처럼 쫄깃할 것이다. 그들이 재해현장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과, 여행길에 만난 매춘부와 식사를 하는 장면은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부셔줄것이다.
와, 뭐라고해야할까.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일반 문학을 읽은 것도 오랜만이지만, 그 와중에 서양권 문학을 읽은건 더더욱 오랜만인데, 이렇게 일반 문학을 감명깊게 읽은 건, 보자.......... 내 생에 처음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