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 풀꽃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편지 아우름 50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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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시와는 거리가 먼 나지만 유퀴즈에서 나태주 시인이 출연한 모습을 보니, 한 번은 이 분의 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시집을 통채로 읽어보기엔, 아무래도 시를 음미할 줄 모르다보니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나, 나태주 시인님의 에세이가 나왔다. 이 에세이 안에는 나태주 시인님의 시도 곳곳에 들어있어서, 시를 읽어보고 싶지만, 시집을 통채로 읽기에는 조금 부담이 느껴지는 시 초보자에게도 딱 좋은 구성인듯 싶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냥 에세이가 아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단 하나의 주제가, 에세이 전체를 관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풀꽃 시인이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20대에게, 3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어서 내곤 한다. 하지만 그런 에세이 중에서 진정 가슴에 남는, 우리를 위로하고, 위안을 주고, 격려를 해주는 책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대부분의 책이 젊은 세대가 왜 힘들고 아픈지, 그 현실은 직시하지 않은채, 그저 다 커가는 과정이다, 성장통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힘내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 등등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입 바른 이야기만 나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이 쓴 이 에세이는 그런 에세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뭐라고 해야할까? 모든 글에서 진정한 ‘어른’의 위로가 느껴진다.



난 지금까지 본인이 어른이라고 대세우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 속에 진짜 ‘어른’은 없었다. 꼰대들만 있었을뿐. 어쩌면 진정한 어른은 내 꿈속에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주변에는 본인이 어른임을 내세우는, 나이만 든채 미성숙한 사람들만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난 나태주 시인은, 내가 꿈속에서 그리던 진정한 ‘어른’ 이었다.



그는 내가, 우리들이, 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어떤 현실에 힘들어하고, 어떤 현실에 아파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이 되어버린 걸 같이 마음아파하고, 어른으로써 이런 현실을 만들게 되버린 것을 미안해한다. 하지만 이미 이런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더라도 이런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그는 진심을 다해 한 마디 한마디를 써 내려갔다. 거기다 모든 문장들이 딱딱하지도 않고, 가르치려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럴까? 같은 말이라도 나태주 시인이 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있고,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나태주 시인의 글을 읽으면 왠지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여진다.



나를 키운 것은 마이너입니다. 결핍입니다. 부족함입니다. 실패가 나를 키웠고 마이너 요인들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해 주었습니다. 그 무엇도 좋은 것, 반반한 것, 자신 있는 것, 내세울 만한 것, 자랑스러운 것이 못 되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p 029


우리 부모님께선 나를 키울 때 적어도 지금까지 경제적인 문제로 강하게 제지를 하거나, 밥을 굶기거나 하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걸 응원하면 응원하셨지, 경제적인 문제로 반대를 하신적도 없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우리 부모님은 항상 밖에 나가 힘들게 일을 하시며, 돈을 벌어야 했지만.



오히려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들어서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금수저, 흙수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흔히 말하는 금수저에 대한 내용을 보다보니, 그들의 생활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솔직히 현타도 많이 왔다. 우리는 아등바등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먹고 싶은거 덜 먹고, 사고 싶은거 덜 사서 학자금을 내고, 결혼자금을 마련하고, 어떻게든 대출 받아서 내 명의로 된 집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데 금수저라 불리는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금수저라 불리는 그들은 언제나 편하게 남이 벌어오는 돈을 쓰는 편에 속했고(예컨대 대기업 자제들), 지위가 높은 부모님 파워로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돈이 많은 부모님 덕택에 대출 1도 없이 본인 명의 집을 사는건 아주 쉬운일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를 깨달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TV속에서 금수저들이 나올때마다 언제나 그랬다.



“나를 키운 것은 마이너입니다. 결핍입니다. 부족함입니다.”



하지만 위 문장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분명 나는 그들 입장에서 보면 흙수저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과 달리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채우기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왔다. 실패를 마주해도,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었고, 그 실패를 양분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민폐끼치지 않고, 내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 내 삶. 항상 부족했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 아닐까?  



내가 금수저들에게 느꼈던 박탈감은 그야말로 내 감정 낭비였다는 것을, 난 이미 내 스스로 부족함을 잘 채워가며, 잘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은 꼭 외형적으로 보아 그럴듯한 성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타인의 평가나 인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긍정과 인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은 또 만족감과 행복감과 통합니다. 만족과 행복이 없는 성공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습니다. p 049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내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떵떵거릴만한 재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말하는 유망 직종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내 삶이 충분이 행복하니까. 어찌되었던 퇴근하면 쉴 수 있는 포근한 집이 있고, 그 집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다. 



성공에 대한 관점을 조금 바꾸니, 내 삶도 충분히 성공한 삶이란걸,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재물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how’ 보다는 ‘무엇 what’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란 말이 나올 정도였지요. 여기서 편법이 생기고 지름길이 생기고 정직하지 못한 삶이 있었습니다. 불법만 아니면 불의한 일이라도 괜찮다는 참 나쁜 인식들이 싹트게 된 것이지요. p 063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을 때도 너 커서 무엇이 될래, 하고 묻지 말고 너 커서 어떻게 살래, 하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 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도 ‘무엇 what’에서 ‘어떻게 how’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보다 더 가지런해지고 덜 고달파지고 덜 공소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p 064



내가 그동안 돈이 많아야, 혹은 ‘사’짜 돌림의 전문 직종을 가져야 성공한거라고 생각했던 건,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해야한다고, 서울 4년제에 들어가기 위해선 무조건 공부를 해야한다고, 학교에서 무수히 들어왔던 이야기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사기, 횡령, 갑질 등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자. 대부분 내가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성공’의 기준에 부합한 사람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분명 그들은 내가 되고 싶었던 ‘성공’한 사람들이고,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높은 사람인데, 국민의 비난과 지탄을 한번에 받는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니 나태주 시인의 말을 다시 곱씹게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을 때도 너 커서 무엇(what)이 될래, 하고 묻지 말고 너 커서 어떻게(how) 살래, 하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부탁하고 넘어갑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생을 포기하지 안겠다는 말이 그말입니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먼 길입니다. 아름답고 좋을 때도 있습니다. 현재의 처지가 힘들다고 처음부터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한테 미안한 일이고 죄짓는 일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한 발자국씩 노력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라고만 말하고 싶어요. 



어쨌든 함께 갑시다. 가는 데 까지는 가봅시다. 그러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나이 든 사람의 말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좋은 쪽으로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p 103



요 근래 죽음과 가까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여러 차례 읽었다. 그 책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죽음이 있는데, 다름 아닌 스스로를 포기하는 죽음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삶을 포기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힘든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난다. 그만큼 세상에 절망만 가득해서일까 싶기도 하고, 내가 사는 이 나라는 정말 희망이 없는걸까 싶기도 해서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 쯤은 웃을 날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 날을 믿고 기다리면서 버티다보면 진짜 한번 쯤은 웃을 날이 오지 않을까? ‘아, 그때 죽지 않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하루 쯤은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함께 갑시다. 가는 데 까지는 가봅시다. 그러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나이 든 사람의 말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좋은 쪽으로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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