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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 - 겸산 홍치유 선생 권학가, 2020년 지역출판활성화 사업 선정 도서
홍치유 지음, 전병수 옮김 / 수류화개 / 2020년 10월
평점 :
가끔 고택에서 오래된 고문서나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고문서나 두루마리는 대부분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다. 국사책에 나올 법한 아주아주 유명한 위인의 글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박물관 수장고나 고택에서 계속 보관할 뿐이다. 이 책 역시 그럴뻔 했던 고문서중 하나였다.
이 책의 저자 겸산 홍치유 선생은 조선 말을 살아가던 유학자였다. 그러다 남헌 선정훈의 권유로, 관선정서숙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관선정서숙은 남헌 선정훈이 건립한 교육기관이다. 물론 현재 관선정은 남아있지 않다. 관선정을 세웠던 남헌 선정훈의 고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관선정은 당시 일제의 식민교육에 맞서 전통한학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이은 곳으로서, 1944년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철거되기까지 약 200여명의 학생이 관선정을 거쳐갔다. 이후 1945년 경북 문경 농암면 서령으로 옮기고, 또 경북 상주군 화북면 동관리로 옮겨 1951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p 010
이 책을 엮은이는 남헌 선정훈의 고택을 방문하여, 그 집의 며느리로 있는 겸산 홍치유 선생의 후손을 만났고, 그 곳에서 겸산이 쓴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시작이다. 어쩌면 광에 묻힐 뻔 했던 겸산의 글이, 선생의 후손과 그 글에 관심을 가진 엮은이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 두루마리에는 겸산 홍치유 선생의 후진들을 가르치기 위한 글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글이기도 하면서 가사(歌詞)이기도 하였다.
“대체로 초학자에게 글만 읽으라고 하면 싫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노래를 부르게 하면 쉽게 떨치고 일어나 분발한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반드시 이것(노래)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p 012
딱딱한 글은 배우기 어렵고 따라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가사(歌詞;노래)로 된 글은 배우기 쉽고, 따라하기도 쉽다. 해서 겸산 홍치유 선생은 딱딱한 글이 아닌, 가사문학의 형식을 취해 가르침을 남겼다. 그가 후진 양성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겸산의 글이 담긴 이 책은 유학자가 쓴 글이기에 유학이 무엇인지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가 유학자였기 때문에 공부한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한자와 한글이 같이 적혀있기에, 한자 공부에도 매우 적합하다. 무엇보다, 겸산의 글은 조선 말기에 쓰인 글이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이 썼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책에 실려있는 가사에는 전부 역주가 달려있지만, 본문만 옮겨적습니다.
人道가 不明하면(사람의 도리가 밝지 않으면)
天地도 長夜로다(하늘과 땅도 깜깜한 긴 밤이로다)
人身이 不修하면(사람이 수양되지 않으면)
家國이 어이되랴(집안과 나라가 어찌 되랴?)
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 p 91~92
사람의 도리가 밝게 드러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의 도리도 밝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 그러니까 세상이 깜깜해지면, 집안과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사람은 항시 수양을 해야한다. 어찌보면 공자왈, 맹자왈 - 죽은 자의 이야기만 읊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생각이 짧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수양을 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다는 의미이다. 학문적으로 갈고닦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도적적으로 갈고 닦는 의미도 내포되어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의 ‘됨됨이’를 갈고 닦는 것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며, 부모/형제/친구/동료 등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를 갈고 닦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헌데 이를 행하지 않게되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수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많큼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고, 그러다보면 범죄자가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이며, 결국 내 인생, 내 자식들 인생까지도 망치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다.
萬券詩書 다 읽어도(만 권의 시서를 다 읽어도)
無一善行 可稱하면(일컬을 만한 선행이 하나 없다면)
이 내 몸에 무삼有益(이 내 몸에 무슨 보탬이 있으랴)
不學無識 다름없다(배우지 않아 무식한 것과 다름이 없다)
위와 이어지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아무래 학문적으로 높은 위치를 이루었다 한들, 그 학문적 지식을 엄한데 쓴다면 무식쟁이와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예컨데 공부 열씸히 해서 LH공사 같은 곳에 들어가도,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그 지식을 쓴다면, 그들은 무식한 것과 다름 없다는 이야기다. 조선조 말을 살아간 사람이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1백년이 훌쩍 넘는 지금에 큰 울림을 준다.
이렇게 자신의 수양을 위한 글도 있는 반면, 우리의 역사에 대한 글도 쓰여져있다. 이는 겸산이 유학자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이다. 단군 조선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에 대한 내용이 이렇게 가사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世宗의 文武大業(세종의 문덕과 무략의 큰 업적)
天縱하신 聖知시고(하늘이 내린 성지시고)
輯賢殿 雪夜貂衾(<문종이> 집현전 <학사에게>눈 내린 밤 담비가죽 이불을 덮어주고)
待士恩禮 特殊터니(학사를 대우하는 은총과 예우가 특별하였는데)
淸泠蒲 自規소리(청령포 두견새 소리)
千古怨恨 그지없다(천고의 억울한 한 끝이 없네)
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 p 194~199
세종과 문종의 업적을 칭송한 반면,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의 비극을 이야기한 가사다. 조선 말의 유학자가 세조를 보는 시각과,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세조를 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아래 2문장에 담겨있다. 결국 세조는 왕이였던 어린 조카를 끌어내리고, 심지어 죽여버린 비정한 삼촌으로 역사책에 남았다. 거기서 더 들어간다면, 조선 개국 이후 신하들에게 권력을 넘길 수 있는 첫 단추를 꾀어버린 사람이 되었달까.
이 외에도...
조선조 오백 년 동안 학문을 높이고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려 교화하여
여러 현인이 무리 지어 나오니
예의를 아는 동방의 조선국이 세계에 빛났는데
종남산 큰나무 수령이 오래되어 속이 썩네.
당쟁이 일어나자 공론은 없어지고
사장학의 폐단인 형식에만 치중하여
과거시험을 거쳐야만 현량이 되고,
지체와 문벌이 잇어야만 재상이 되는 세상이로다. p 236~244
바다 건너온 도적이 빈틈을 타고 들어와
을사년에 늑약을 감행하였다.
정미년 6월에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의사 이준이 피를 뿌리며 억울함을 외쳤고,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벼락소리는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간신배가 나라를 팔아먹었으니
경술국치가 비통하고 분노가 치민다. p 250~254
선조 이후 붕당정치를 비판하고, 바다 건너온 도적 왜놈들을 비판하고, 그런 왜놈들에게 빌붙은 간신배를 비판하였다. 조선 말을 살아간 유학자 겸산 홍치유는 비뚤어진 세상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비뚤어진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눈을 가졌다.
살아오며 비뚤어진 세상을 보아 온, 그 세상을 비판해온 나이든 유학자 겸산 홍치유. 그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四千餘年(우리도 사천여 년)
歷史가 있는 나라이니(역사가 있는 나라니)
亂極思治 此時機에(어지러움이 극도에 달하여 태평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 시기에)
老夫一言 省念하소(늙은이의 한마디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시오)
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 p 278
겸산이 살던 시대는 어지러움이 극도에 달했던 시기였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그 성격은 다를지언정, 어지러움이 극에 달한 시대라는 사실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나이든 유학자, 겸산 홍치유의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난 비뚤어진 이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건 아닌가 하고.
난 그동안 공자왈, 맹자왈 - 죽은 자의 말만 읊으며 조선을 쇠락하게 하고, 외세가 침략할 빌미를 주었던 유학자들을 좋게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제대로 된 사상을 가진 이가 있었으며, 삐뚤어진 세상을 비판할 줄 아는 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쓴 겸산의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언젠가 지금은 사라진 관선정 터를 찾아가, 이런 겸산의 마음을 돌아보리라.